대티 대현
짧은 봄방학에 들어 시간의 여유가 생겼다. 아침 식후 푸성귀를 삶았다. 먼저 냉장고 보관 중이던 브로콜리를 잘라 데쳤다. 이어 북면 지인 텃밭에서 캐 온 파릇한 배추를 데쳤다. 마지막으로 며칠 전 진례 도강마을 뒤서 걷어온 벼룩나물을 삶았다. 냉이는 이미 데쳐 놓았기에 한동안 찬거리 걱정은 안 해도 될 상 싶다. 나물을 데치느라 쓴 냄비를 씻고 개수대를 말끔히 정리했다.
주방 일을 끝내고 배낭을 메고 현관을 나섰다. 마산역 관장으로 가려다 어시장으로 바로 가는 704번 직행버스가 먼저 왔다. 어시장으로 가서 구산 갯가나 삼진 지역 산기슭을 걸어볼 요량이었다. 어시장에 내렸더니 의림사 방향 76번과 대현으로 가는 72번이 연달아 왔다. 의림사 계곡은 걸어본지라 대현으로 가는 72번 버스를 탔다. 댓거리에서 밤밭고개를 너머 동전터널을 지났다.
진동 버스환승장에 잠시 들렸다가 운전면허시험장을 거쳐 골짝을 올라갔다. 대티를 지나 중촌이고 마지막이 대현 종점이었다. ‘한재, 대현, 대치, 대티’는 모두 큰 고개라는 뜻의 동의어다. 고개를 령(嶺)이라 하고, 현(峴)이라 하고, 치(峙)라 한다. ‘티’는 여린입천장소리 '치'가 변형되어 난 것이다. 지역 사람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대현(大峴)은 큰 고개일 가능성이 있다고 짐작했다.
골짜기는 고성 통영 방면에서 가야와 의령으로 가는 79호 국도가 지나갔다. 왼쪽으론 서북산과 여항산에서 이어진 베틀산에서 봉화산이 우뚝했다. 고개에서 오른쪽은 대산과 광려산이 무학산으로 이어지는 곳이었다. 대현 종점에서 내려 고개 마루로 걸어 오르니 찻길을 4차선으로 확장하는 공사가 아직 마감되지 않아 굴곡 구간이 더러 있었다. 창원 진동과 함안 여항의 경계였다.
산마루 양편엔 휴게소와 음식점이 마주해 있었다. 고개를 넘어 여항 첫 마을은 봉곡이었다 아마 봉화산 밑이라 붙여진 이름인 듯했다. 마을 앞을 지나다가 고춧대가 삭은 밭이랑에 겨울을 이겨 낸 냉이가 보였다. 배낭에서 꽃삽을 꺼내 냉이를 몇 줌 캐었다. 뿌리엔 흙이 많아 말끔히 털어내지 못하고 담아 배낭에 넣었다. 여항에서 가야로 가는 길은 4차선 확장공사가 끝나 있었다.
광려산을 등지고 내곡마을과 두곡마을이 있었다. 4차선으로 확장된 국도 곁으론 농기계가 다니는 시멘트길이 있었다. 찻길보다 농로를 걸으니 매연이 없고 안전해 좋았다. 외암초등학교를 지나니 여항면사무소였다. 때로는 확장되기 전 구부정한 옛 국도를 따라 걷기도 했다. 여항을 지난 강명리부터는 함안면이었다. 함안면은 경전선에 가야역이 들어서기 전엔 군의 중심이었다.
이제는 KTX선로가 뚫리면서 함안면사무소 가까이 함안역이 옮겨왔다. 농촌진흥청에선 신교마을 가까이 꽤 넓은 농지에다 시설원예시험장을 이전시키는 공사를 하고 있었다. 비닐하우스에서 키울 특용작물 재배를 연구하는 대단지 시설이었다. 점심요기는 길가 분식집에서 칼국수를 들었다. 주인아주머니한테 함안향교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마을 골목을 빠져 산 밑으로 가라고 했다.
야트막한 산자락 비탈에 대성전 건물이 보였다. 골목을 지나가니 평지에 명륜당이 보였다. 향교 정문 격인 풍화루 앞엔 수령이 500년 넘은 노거수 은행나무가 있었다. 안내문엔 조선 초 파수에 세워진 향교를 한강 정구가 함안부사로 부임해 그곳으로 옮겼다고 했다. 향교 위치가 들판 끝 야산이다 보니 제례 공간인 대성전은 경사면에 있고 교육 공간인 명륜당은 평지에 있었다.
향교에서 나와 봉성리 골목을 걸었다. 면소재지라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었다. 면사무소와 농협 건물 곁으로 5일장이 서는 시장거리도 있었다. 지난해 말 진주까지 KTX선로가 뚫리면서 옮겨온 함안역은 면소재지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역사는 들판 가운데 덩그랬다. 무궁화는 한 발 앞서 떠나보내고 봄볕을 잠시 쬐면서 서울로 올라가는 산천을 기다려 탔더니 금방 창원역이었다. 13.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