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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주님의 임재 [ 함께 계신다 ] 속에서 시편 16;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편 16;8]
하나님의 자녀가 자신의 미래 에 하나님의 인도와 도움을 받는 것은 우리 삶과 영혼에 극히 중요한 일입니다.
오늘 시편 기자는 자신의 미래 많은 어려운일, 고난과 ,어떤 재앙 에서도 전진 할수 있는 이유늘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이렇게 주님이 사셨습니다.
주님의 삶을 보면 왜? 그렇게 많은 기도을 새벽에, 밤을 새워가면서, 그렇게 많은 시간을 ㄷ기도로 보내셨을까?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을 항상 그분앞에 모시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 하나님을 위해, 그분에 의해 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밝히십니다. ‘항상 기도하고...’ 우리는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살전 5:17 에서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를 쉬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왜 기도를 쉬어서는 안 될까요?
기도는 영적인 호흡이기 때문입니다.
호흡이 끊어지면 죽듯이 기도가 끊어지면 영적으로 죽는다는 말입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영적으로 죽은 것 같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것은 확실한데, 천국 가는 것도 확실한데 지금 내 생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하나님과 단절 되어 있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지만 하나님을 느낄 수 없습니다. 찬송을 하지만 하나님과 단절되었다고 느껴집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지만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이 행합니다. 왜 그럴까요? 기도 즉 영적인 호흡이 끊겼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때에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믿음이 약해집니다.
과학적 사고방식 때문입니다.
‘이런 과학시대에 미개하게 기도나 하고 있다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과학이 발달했다고 하더라도 과학으로 증명하지 못하는 일들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은 적습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은 더 적습니다.
지금은 말세입니다. 말세의 증상 중에 하나는 바쁘다는 것입니다.
마귀가 기도를 못하게 만드는 방법 중에 하나는 우리를 바쁘게 만드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바빠서 기도할 틈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 기적의 주인공들은
바쁘기 때문에 더 간절히 더 절실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백화점 왕이었던 존 워너메이커를 본받기를 바랍니다. 그가 가진 백화점 지점만 해도 160개가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사람은 안 바쁘면 하루에 한 시간 기도하고, 바쁘면 두 시간 기도하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면 세 시간 기도했다고 합니다.
바쁘다는 것은 일이 많다는 것이고 일이 많다는 것은 그 만큼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이 더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다윗의 삶의 두드러진 특징은 무엇 일까?
나에게 무슨일이 일어날지라도 ,
모든 것은 괞찮습니다. 왜?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무엇이 온다고 할지라도 ,
나는 요동치 않을 것입니다. 왜?“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이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1. 하나님의 임재[함께 하심] 하심을 인식하면서 살기로 단호하게 결심하는 것입니다.
그는 “ 내가 여호와의 임재을 인식하면서 살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한다면 내가 흔들리지[요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하리로다
다윗의 최상의 삶의 목표는 “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입니다. 자기 앞에 하나님을 “ 모신다” 의 단어의 의미는 무엇 입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 [함께하심] 안에 둔다는 것 ,,, 할수 있을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의 의도[무엇을 하고자 생각하거나 계획하다]입니다.
예을 들면 골로새서에서 바울은 골로세 교회에게 편지 합니다.
골3;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위의 것을 생각”하는 것을 마음에 둔다는 것입니다.
모신다는 것은 단호한 결심이 동반 됩니다.
의지의 행동이 매우 확실한 결정을 의미 합니다.
이런 단호한 결심과 의지가 우리의 삶을 조정하고 이끌어 가는 모든 경향을 말합니다.
예] 밀턴의 시 ]
나의 삶이 어떻게 지나갔는가를 생각해 볼 때
이 어둡고 넓은 세상에서 반 이상이나 낭비 되었음을 봅니다.
밀턴은 자신의 생애을 낭비 햇다고 느꼈습니다.
왜? 꼭해야 할 것을 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벌써 어둠이 와 버렸습니다.
우리는 여러 일과 계획된 일들을 마무리 할지 못했을 때 , 친구들 그리고 ... 일이 너무 바쁘다 보니 우리의 영혼은 거의 잊어버리고 삽니다.
이 세상에서 힘든것중 하나가 자기의 삶을 통제하고 격리 시키지 못하고 주위의 상황에 따라 움직있는 삶이다.
이런때 할수 있는일은 “
“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의 결심입니다.
1937년 미국 '미시간 주'의 '앤아버'라는 곳에서 태어난 '톰 마네건'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톰 마네건에게는 짐이라는 형이 있었는데, 어머니는 두 아들을 다 키울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가난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나가서 일주일 내내 일을 해봐야 27불 50센트, 한 주에 3만원밖에 벌지 못하니까 아들 둘을 키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둘째 아들 톰은 결국 고아원으로 보내야 했습니다. 톰은 고아원에서 자라며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환경 속에서도 항상 그의 마음속에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는 '디트로으트 타이거즈'라는 야구팀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언젠가는 내가 타이거즈 야구팀의 구단주가 되겠다.'라는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황당하기 짝이 없는 소망입니다. 고아 처지에 오르지 못할 높고 높은 나무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꿈을 가지고 늘 기도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그가 23살 되었을 때에 형과 함께 조그마한 피자가게를 시작했습니다. 500불의 자본금에 400불을 대출 받아서 900불로 가게를 인수하고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피자가게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톰에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당시 미국에는 음식을 배달해주는 문화가 없었습니다. 음식을 먹으려면 반드시 차를 타고 식당까지 가서 먹어야 하는데, 처음으로 집으로 배달해주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또한 시켜 먹을 때에도 동일한 맛을 느낄 수 있도록 뜨거운 음식을 30분 이내에 집으로 배달해주는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30분이 지나면 음식값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피자 배달 서비스를 시작하여 전 세계적인 피자그룹으로 발전했습니다.
1970년대 200여 곳의 체인점을 냈고, 지금은 미국 전역에 5,300여 체인점에 11만 5천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대기업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 회사가 바로 유명한 도미노 피자입니다. 1년 매출이 25억불,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2조 3천억 원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무것도 없이 900불로 시작한 도미노 피자가 세계적인 그룹이 된 것은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훗날 그는 말하기를 C.S 루이스가 쓴 '순전한 기독교'라는 책이 자신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고 했습니다. 그 책을 잃고, '나도 주님을 섬겨야겠다.'라는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그 후 그는 많은 자선 사업을 하며, 교회도 세웠습니다. 그리고 1983년에는 그가 어릴 적 꿈대로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를 5천 300만 불에 인수했습니다.
기독교인의 삶에는 두가지 면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의 결과 우리는 스스로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죄로 인해 죽었을 때 아무것도 할수 없지만
그러나 우리에게 생명이 주어졌을 때 우리는 할수 있을뿐 아니라 또한 해야만 합니다.
“위의 것을 생각”하라 그럼 스스로 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활동 해야 합니다.
어떤이는 “우리가 이렇게 있는다면 하나님이 무엇인지 하실것야” 라고 하는 견해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성경에 비추어 보면 잘못된 것입니다.
어떤 어리석운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서 ” 오늘 아침에는 별로 기도할 마음이 나지 않으니 내일 해야지“ 리고 한다면 ...이게 어떻게 ” “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라고 말할수 있습니까?
다윗은 “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분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활동력을 가지고 , 열심히 하나님을 찾습니다.
히브리 저자는 11장6절 ]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열심으로]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한글 개역 성경에는 “ 열심히” 라는 말이 빠졌습니다.
2.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묵상입니다.
묵상은 나 자신을 훈련 시키는 것입니다.
나에 관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의도적으로, 의식적으로 명백하게 자신에게 말해야 합니다.
너는 하나님의 자녀다.
영원한 유업을 받는자이다.
하나님이 너를 알고 계신다.
너는 하나님께 속한자이다.
묵상은 의식적으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 함께 하심]을 찾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동화작가 안데르센이 청년시절에 저명한 여류작가 '브레멘'을 만나기 위해 여객선에 올랐습니다. 선장과 대화 중에 자기의 여행목적을 말하자 선장은 애석한 표정으로 '브레멘'여사가 '외국여행을 떠났다는 조간 신문의 뉴스를 보았다.'고 말합니다. 안데르센은 실망이 컸습니다. 가난한 청년에게 뱃삯과 시간 손실이 컸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 시간쯤 뒤에 선정이 달려왔습니다. '안데르센씨 이건 기적입니다. 작가 브레멘 여사가 이 배에 타고 있습니다.' 그는 그녀와 한 배에 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너무 기뻤습니다. 그는 훌륭한 작가와 많은 대화를 하면서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좋은 작품을 쓴 것도 이 날 받은 영감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훌륭한 사람과 함께 있는 것도 은혜인데, 하물며 세상우주만물의 창시자인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은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하나님은 '네가 어디로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내가 너희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믿는 사람은 그 신앙의 삶이 다릅니다.
뭐든지 자신 있게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겸손한 자와 함께 하십니다.
은혜를 주십니다. 굳세게 하십니다. 도와주십니다. 의로운 오른손으로 붙들어 사용하십니다.
성경은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성경을 읽으세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있습니다. 읽고 더 읽으면 더 하나님의 임재[ 함께 하심] 안에 들어 갈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는 시간을 많이, 가지십시오.
3. 기도 합시다.
기도는 하나님께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이런 방법이 하나님을 우리 앞에 모시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사람으로 비유한 진술들이 있습니다.
슥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다니는 여호와의 눈이라 하니라
얼마나 사실적이고 놀라운 표현 입니까!
하나님은 보시며, 모든 것을 아십니다.
하나님의 눈은 항상 나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나의 눈이 항상 그분을 응시하고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지혜의 본질의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히4;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4. “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의 이유는 ?
우리가 확실한 것은 언젠가 하나님 앞에 확실히 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주님을 내 앞에 둡니다.
우리는 언제 그날리 올지 모르나 그것은 확실합니다.
롬14‘12]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이것은 불가필한 사실이요 가차없는 요구입니다.
이런 현실을 그냥 넘긴다고 한다면 얼마나 가련하고 어리석습니까!
기독교의 본질은 우리을 하나님과 교제 안으로 인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 하면서 동행 할수 있습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 했습니다.
노아 역시 동행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친구로서 동행 했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과 동행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큰 특권 입니까.
이런 삶은 평안하고 견고 합니다.
주님이 매순간 나와 함께 께시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렇게 살면 평안하고 견고한 삶을 살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매일 매일 시험에 직면할수 있습니다.
우리의 대적 마귀는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마귀는 하나님의 사랑하는자을 그의 모든힘을 다하여 공격할 것입니다.
이런 영적 전쟁에서는 오직 한길.,
주님이 매순간 . 우리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와함께 하시면 ,, 그의 시험의 능력은 힘을 잃어 버립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는 힘을 얻습니다.
시련은 여러 모양으로 오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쇠약함으로,.
병으로도 올수 있습니다.
사랑 하는 사람의 죽음과 ,
세상의 문화와 붕괴로 말미암아 ,,, 그러너 중요한 것은
우리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주님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16;32]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주님께서도 이렇게 겪으셨습니다.
에드워드 모트] 은
세상의 모든 것 끊어질 그날 되어도
구주의 언약 믿사와 내 소망 더욱 크리라
굳걷한 반석 이시니 그위에 내가 서리라
그위에 내가 서리라
그렇습니다, 죽음이 온다고 하여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느곳,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계실 것입니다.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히13;8]
여호와 하나님을 모시십다.
그가 우리의 우편에 계시므로 요동치 아니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