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치고 힘들 때 이 맛에 기대. 무엇을 먹어도 입안이 까칠할 때 이 맛을 기억해. 목포9미 중에서도 밥도둑 3인방, 준치무침, 갈치조림, 꽃게무침을 소개한다. 그동안 잃은 것이 입맛만이 아니었음을 목포 맛길을 걸으며 알았다. 만남과 맛남은 언제나 소중해!
준치무침
준치무침 하나 시켰는데 이러한 상차림이라니요? 무엇이 메인인지 알 수 없는 신선하고 맛 좋은 찬이 가득이다. 준치무침 하면 선경준치횟집이다.
어떤 사람이 길을 걷다 여러 번 넘어졌다. 확신하며 한참을 가던 길이 잘못 든 길임을 알았다. 그럼에도 세상을 원망하기보다 나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길을 찾으려는 다짐을 한다. 참 준치 같은 사람이다. 준치를 향한 찬사에 ‘물어도 준치, 썩어도 생치’가 있다. 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본연의 가치를 잃지 않는다는 뜻이다. 맛도 멋도 으뜸인 이 생선이 더욱 궁금해진다.
전설에 새가 물에 빠져 조개가 되고, 새가 변하여 준치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준치 대가리 뼈를 모아 맞추면 새의 모양이 된 데서 유래했을 것이다. 하늘을 날던 새가 이제 그만 쉬고 싶었을지, 그 아래 바다가 궁금했 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준치가 된 새는 바다를 하늘 삼아 자유롭게 날았을 것만 같다. 생선 중에 그 맛이 참되고 으뜸이라 진어라고도 불리는 준치는 사계절 내내 잡히는 병어와 달리 4~7월 서남해안에서 주로 잡히고, 어획량이 줄어들면서 더욱 귀한 생선이 되었다. 예전에는 국, 자반, 만두 등으로 다양하게 요리되었지만 현재는 무침으로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준치 고유의 풍미를 방해하지 않는 초장 양념에 아삭한 채소를 버무렸다. 바다와 육지의 뗄 수 없는 하모니에는 손맛이 필수라지요.
개항장으로서 목포의 역사와 맥을 함께하는 다순구미 마을 초입에 선경준치횟집이 있다. 그 앞에는 그림처럼 바다가 드리워져 분위기에 취해, 음식 맛에 취해 낮부터 손님으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이다. 예전에는 매화나루터라는 작은 만이 있어 배가 드나들던 자리이기도 하다. 50여 년 역사를 간직한 식당에는 목포, 바다, 음식에 관한 궤적이 무심한 듯 액자와 족자로 걸려 있어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도 지루하지 않다. 1980년대 만선을 기원하며 첫 배를 출항했던 때의 모습도 빛바랜 사진으로 남아 있다.
잡히자마자 포를 떠 냉장 보관한 준치는 사장님의 노하우로 그 많은 가시가 잘 발라져있다. 그냥 먹어도 감칠맛 나는 양념장에 버무려진 준치를 밥에 비벼 먹으면 상큼 달콤한 맛에 미소가 머금어진다. 단백질과 비타민B가 풍부한 준치를 씹는다. 어쩌다 잇새에 느껴지는 잔가시도 뱉지 않고 잘근잘근 씹어 준치 고유의 풍미를 내 안에 담는다. 이 하나의 준치가 내게 오기까지의 여정을 생각하며.
갈치조림
도둑은 나쁘다. 밥도둑만 빼고. 배가 부르든 배가 부르지 않든 목포9미 갈치조림은 밥을 부르니 꼭 고무줄 바지 입고 식당에 방문하시길!
목포 먹갈치와 제주 은갈치의 차이는 무엇일까? 알고 보니 이 둘은 같은 종이란다. 목포에서는 예로부터 깊은 바다에 서식하는 갈치를 그물로 어획했다. 끌어올려진 갈치끼리 서로 부딪치고 그물에 쓸려 군데군데 은비늘이 벗겨져 먹색으로 보인다. 제주에서는 주로 낚시로 갈치를 잡으니 갓 잡은 갈치 특유의 비늘이 번쩍번쩍 빛난다. 목포에서도 낚시로 갈치를 잡기도 하니 이건 또 목포은갈치로 불러도 전혀 무리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부르는 맛이라고 할까? 고유 명사처럼 자리 잡은 목포먹갈치를 생각하면 또 다른 맛으로 기대심리가 생긴다.
주산지인 목포에서도 갈치는 고급 생선에 속한다. 금어기인 7월을 앞뒤로 몸값도 달라지니 목포에 방문한다면 참고하자. 갈치는 산란을 마치고 월동을 준비하는 늦가을까지 왕성한 먹이 활동을 한다. 그래서 가장 살이 찌고 기름이 오르는 가을의 갈치 맛을 최고로 친다. 기자가 미락식당을 찾은 6월은 목포에서도 갈치가 귀하디귀할 때, 일전에 목포에 왔을 때도 찾은 식당인지라 사장님의 손맛은 확신하고 있는 터. 이래저래 황송한 갈치조림을 맛보게 되었다. 카메라의 셔터를 언제 눌러야 하나, 사장님의 요리 솜씨가 일사불란하며 빠르고 정확하다.
미락식당 사장님은 금손이랍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무엇을 먹어도 맛있단 말이에요.
냄비에 무와 감자를 자박하게 깔고 익으면 삼삼해질 시래기와 갈치를 큼지막이 썰어 올린다. 보글보글, 바글바글 국물이 어느 정도 졸아들면 기다림은 끝났다. 숟가락에 따뜻한 밥 가득 올리고 발라낼 필요도 없이 넉넉한 갈치 살을 올린다. 이대로 입으로 직행? 아니다. 졸아든 국물을 갈치 살과 밥 위에 듬뿍 끼얹어 한 입 가득 음미한다. “맛있어요?” 주방에 선 사장님께 본능적으로 엄지를 세워드린다. “너무 맛있어요!” 마치 잘 익은 햇밤을 쪄낸 것처럼 고소하고 담백한 갈치 맛이라니. 사장님의 조언대로 그냥 살을 먹는 것보다 국물, 채소와 함께 곁들여 먹을 때 훨씬 풍미가 살아난다. 아직 먹어야 할 9미가 남아 있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갈치조림, 이 밥도 둑에 한 공기를 잃었다.
꽃게무침
미식 여행의 새로운 목표가 생겼어요. 목포의 이름난 식당에서 꽃게무침을 다 먹어보려고요. 해빔의 꽃게살 해초비빔밥도 그중 빼놓을 수 없고요.
유달산, 목포근대역사관이 있는 목포 원도심에서 약 6km 거리에 평화광장이 있다. 천연기념물 제500호 목포 갓바위를 볼 수 있으며, 밤이면 바다 분수가 펼쳐지는 매력적인 곳이다. 목포9미 중 4미에 해당하는 꽃게무침을 찾아 도착한 평화광장에서 잠시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원도심과는 또 다른 항구도시의 멋이 바람결에 묻어난다. 식당에서 한정식을 주문하면 꽃게무침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맛있는 것은 알지만 살을 발라내며 먹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제대로 먹으려면 손톱 끝에 빨간 양념 물드는 것쯤은 각오해야 한다.
그런데 목포에서는 이 꽃게 살을 정성스럽게 발라내 한 입 먹으면 멈출 수 없는 오리지널 밥도둑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는 양념과 함께 버무려준다. 상 위에 대접 한 그릇, 밥, 꽃게 살이 있을 뿐인데 이토록 호사스러운 한 끼가 아닐 수 없다. 손님 입장에서는 너무도 감사하고 편리한 한 상이지만 만드는 입장에서는 여간 손이 가는 일이 아닐 것이다.
평화광장의 해빔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셨다면 산책은 필수입니다. 아름다운 항구도시 목포를 제대로 맛보세요.
해빔에서는 그날그날 쓸 꽃게 물량을 해동하여 꽃게 살을 만든다. 생물과 달리 냉동 보관을 위해 이미 내장을 제거한 꽃게를 깨끗한 물에 씻어 몸통과 집게를 분리한다. 아시다시피 집게의 살은 발라내기 어렵지만 미묘한 맛의 차이가 있으므로 몸통의 살과 함께 양념으로 버무려진다. 양념은 손님이 주문하면 그때마다 새롭게 만든다.
해빔은 해초비빔밥으로 잘 알려진 식당으로 꽃게비빔밥에도 미역, 다시마, 미역줄기, 고시래기 등의 해초를 듬뿍 넣어준다. 식당마다 꽃게비빔밥을 내어주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니 참고하시길. 혹시 꽃게 고유의 맛을 해초가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 염려했는데 은근히 씹는 맛도 있고, 해초 자체에도 비린내가 나지 않아 별미로 즐기기 좋았다. 고소한 참기름에 김, 매콤달콤 꽃게무침과 갓 지은 밥 비벼 한 입 뜨고, 맑은 된장국으로 입가심하니 용왕님 부럽지 않다.
목포9미 으뜸 맛집
목포시에서는 목포의 맛을 지키고 더욱 널리 알리고자 ‘2019 목포으뜸맛집’을 선정했다. 맛, 서비스, 분위기, 향토성, 청결(위생), 운영자 철학 등 6개 항목으로 구분하고 점수를 매겼다. 이번 편에서는 준치 무침, 갈치조림, 꽃게무침 전문식당을 간추려 넣었다. 목포 현지인들은 우스갯소리로 “목포에 와서 맛없는 음식을 먹었다면 정말 재수가 없었던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어디를 가든 우수한 식재료로 좋은 맛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돌다리는 두드려야 맛이니 ‘목포맛길’ 여행 시 참고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