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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의 땅(2)
조 정 래
형은 아버지와 앙숙이었다. 그 정도는 상상으로 가능하지 않을 만큼 심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형은 아버지를 거미만큼도 못한 존재로 취급했다. 미물인 거미는 제 새끼가 자립을 할 때까지 키우기 위해 새끼를 등에 업고 자기의 몸을 파먹히며 죽어간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인간인 아버지는 그 반대로 자식의 인생을 파먹고 들어 산산조각을 낸 위인이라는 것이었다.
‘아버지’라는 엄연한 존재를 거미만도 못한 존재로 취급하는 자식이라면 그건 틀림없이 정신이상이거나, 그게 아니면 사람 노릇 하기에는 아예 글러먹은 볼장 다 본 놈일 것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객관적인 평가 기준에 지나지 않았다. 형은 미치기는커녕 공과대학을 꽤는 괜찮은 성적으로 졸업한 이력의 소유자이며, 그 사건이 있기 전인 대학 4학년 말기까지 이웃에 자자하게 소문난 효자였다.
아버지에 대한 형의 가치 평가는 어쩌면 정확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여기에 우리 집안의 슬픔이 있고 비극이 있었다.
형은 앙숙의 사이답게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전보를 친 당일로 집에 온 것이 아니라 하릇밤을 지나고 다음 날, 그것도 밤이 어둑어둑해서야 들어섰다. 형은 몸을 가누지 못할 지경으로 취해 있었고, 훅훅 내뿜는 숨결에서는 썩은 술 냄새가 는적는적 묻어났다. 그 는적거리는 타액의 질감을 느끼게 하는 지독스러운 술 냄새는 형이 얼마나 긴 시간에 걸쳐 술을 들어부었는지를 보의주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새벽 5시쯤 운명했고, 전보는 8시쯤 중앙우체국을 통해서 전화로 처리되었다. 전보가 아무리 굼벵이 걸음으로 갔을지라도 형은 점심때쯤엔 아버지의 임종을 만났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늑장을 부렸더라도 오후 6시경에는 집에 도착할 수밖에 없는 거리에 있었다. 그런데 형은 하릇밤을 버티고, 다음 날 온 낮을 어디서 용케도 견디고는 어두워서야 술 취한 박쥐가 되어 나타난 것이디.
형은 아마 전보를 받고부터 줄곧 술을 마셔댔을 것이다. 술을 마시면서 아버지의 죽음을 축하했을지 애도했을지 그건 확실히 알 수가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형은 그 둘 중 어느 한쪽을 택했을 것이고, 그것이 어느 쪽이든 간에 형은 술을 안 마시고는 못 배겼을 것이라는 점이다.
형은 곧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불안한 자세로 흔들리며 아버지의 영정을 노려보고 서 있었다. 그런 형의 표정은 비웃는 것도 슬퍼하는 것도 아닌 기묘한 것이었다. 나는 서너 걸음 옆에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서 있었다. 형이 느닷없이 영정을 내동댕이치거나 촛불과 향로가 놓인 상을 걷어차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형은 지루할 만큼 긴 시간을 그러고 서 있다가 그 자리에 그대로 철퍼덕 주저앉았다.
“야, 술!”
아버지의 영정을 노려본 채로 형이 소리쳤다.
절 올려야죠. 목구멍까지 기어 나온 말을 나는 꿀꺽 삼켜버렸다. 형의 기분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면서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술도 그만 마시게 하고 싶었지만 그것도 마음뿐이었다. 나는 서둘러 부엌으로 갔고, 조객을 위해서 미리 손봐 둔 세 개의 술상 중에서 아무거나 하나를 들고 돌아섰다.
형의 잔에 소주를 따랐다. 반만 따를까 하다가 또 신경을 거스를까 봐 찰랑찰랑하게 잔을 가득 채웠다. 형은 한숨인지 심호흡인지 모를 긴 숨을 내쉬고는 잔을 들었다.
“저어…… 과로에 의한 심장마비 증상이라더군요. 어저께 새벽 5시…….”
“자, 자, 술 받어!”
그따위 것 아나 마나라는 투로 말허리를 자르며 잔을 내코앞에 불쑥 디밀었다. 그런 형의 얼굴은 험상궂게 일그러져 있었다. 분명 술잔을 거절해야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두 손은 술잔을 받쳐 잡고 있었다.
술병이 떨렸고, 술은 비틀거리며 술잔으로 흘러들었다. 형의 손마저 심하게 취해 있는 것이었다. 형을 탓하지 말자는 생각을 나는 벌써 여섯 번째 하고 있었다. 비록 형이 아버지의 죽음을 축하하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술잔을 단숨에 비우고 형에게 내밀었다.
“난 그만 하겠어요.”
상주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형과 마주 보고 앉아 있기가 싫어서 였다
눈을 힘주어 감으면 금방 눈꼬리로 술이 번져 나올 것처럼 술기에 완전히 젖어버린 눈으로 아버지의 영정을 바라보고 앉아 자작 술을 마시며 형은 밤을 꼬박 밝혔다. 나는 우선 형의 주량에 놀랐고, 그리고 그 예전과 다름없는 독기에 몸서리가 쳐졌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자신의 인생 설계도를 만들어놓고 그것의 성취를 위해서 형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7년간을 고학으로 일관한 독종이었다. 전혀 퐁족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버지가 학비를 마련하지 못할 만큼 무능하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형의 고학을 만류했지만 형은 듣지 않았고, 아버지는 학기마다 형의 등록금을 애써 장만했지만 형은 단 한번도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래서 형은 아버지에게 더욱 믿음직스럽고 대견한 장남이었고, 이웃들은 부러움과 동경의 눈으로 그런 부자(父子)를 바라보며 형에게 효자 칭호를 붙여주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형에게 있어서나 아버지에게 있어서나 그 시절이 행복의 절정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형은 발인제를 올릴 때도 개개풀린 핏발 어린 눈으로 아버지의 영정을 쏘아본 채 전혀 절을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형, 절을 올려야죠. 떠날 시간입니다.”
나는 형이 절하기를 기다리다 못해 입을 열고 말았디.
“가자…….”
형은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리고 비틀비틀 걸어서 장의차로 올라갔다.
“맏상주가 저러는 법 이 어딨어요.”
아내가 제법 큰 소리로 불만을 표시했다.
“입 다물어!”
나는 놀라움 반, 역정 반이 섞인 더러운 기분으로 아내에게 쏘아붙였다. 아내가 갑자기 형을 비판하는 것에 놀랐고, 감히 그 버르장머리 없음에 역정이 솟은 것이다.
물론 어젯밤부터 계속된 형의 행동은 턱이 내려앉을 정도로 따귀를 얻어맞아도 좋을 만큼 막되어먹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 역시 객관적인 눈에 한정된 것이었다. 아무 물정도 모르고 아내가 입을 놀리는 것은 시건방진 소치거나 싸가지 없는 짓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물론 아내의 심중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맏상주의 그런 정신 나간 것 같은 행동이 주위 사람들에게 민망하고 열없을 게 분명했다.
형은 주머니에 소주병을 넣고 차를 탔었는지 장지에 다다를 때까지 술을 찔끔찔끔 마셔대고 있었다. 나는 줄곧 형을 외면하고 있었다. 형을 탓하지 말자는 생각을 벌써 서른 번이 넘게 하면서.
관이 옮겨졌을 때는 인부들에 의해서 이미 하관할 수 있는 준비가 다 끝나 있었다.
“저건 뭐냐?”
무심한 듯 하관 자리를 내려다보던 형이 불쑥 물었다. 형이 무엇을 묻는 것인지 나는 금방 알아차렸다
“어머니를 합장할 자립니다.”
나는 아버지의 그 애절하던 유언을 생생히 떠올리며 대답했다.
“어머니?”
“네, 어머니요.”
나는 형을 쳐다보지 않은 채 분명한 어조로 대꾸했다. 그리고 옆볼에 꽂혀오는 형의 시선을 느꼈다. 그러나 나는 형에게로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형은 무슨 뜻인지를 알았는지 몰랐는지 더 묻지를 않았다. 아래만 내려다보고 있는 나의 시야속에서 형의 두 발이 돌려세워졌다 발이 움직이고, 흙가루가 좌르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 무심하게 떨어져 내리는 한줌 정도의 흙가루가 이상하게도 내 가슴에 뭉클한 서러움의 파문을 일구었다. 저승길로 떠나는 아버지에게 형이 베풀 수 있는 것은 바로 저 흙가루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하관이 되고, 친족의 하직 인사를 겸한 매장을 허락하는 말을 대신하는 흙 떠 넣는 순서가 되었을 때 형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형 어디 가셨니, 형?”
친구가 두리번거리며 말했고, 나는 그에게 찾지 말라는 고갯짓을 해보였다. 형은 아까 돌아서는 길로 이 자리를 떠난 모양이었다.
묏자리를 다지는 발길들에 따라 회색빛 선소리가 구슬프게 휘어져 감기우며 퍼져나가고, 그 서럽고도 음울한 가락을 타고 아버지의 서리서리 한 맺힌 이승의 혼이 저승으로 떠나고 있음을 나는 망연히 보고 있었다.
일을 다 마치고 장의차로 돌아왔지만 형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술기운을 못 이겨 어디 쓰러져 잠이 들었나 싶어 사람들이 흩어져 찾아나섰다. 30분 이상을 샅샅이 뒤졌지만 넓은 공원 묘지 안에서 형의 흔적은 찾아낼 수 없었다.
“출발합시디. 먼저 집으로 갔을 겁니다.”
무슨 확신을 가지고 한 말이 아니었다. 나는 행동을 결정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었고, 형이 제발 무사하게 집에 가 있기를 바라면서 한 말이었다
결국 형은 아버지의 장례에서 눈물은 고사하고 형식적이나마 절 한 번 올리지 않고 말았다. 형은 죽음 앞에서까지 아버지를 용서하지 않은 것이다. 내 마음의 8할은 그런 형을 이미 욕하고 혐오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머지 2할로 형을 이해해야 한다고, 용서해야 한다고 애써서 마음을 다독이고 있었다.
장의차가 시내 변두리로 진입할 즈음이 되었을 때 아내는 더 못 견디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시아주버님은 너무하세요. 생전에 사이가 나빴다고 해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아내는 목소리를 아주 낮추고 있었지만 어감은 힐난했다.
“입 다물어. 당신이 떠들 일이 아냐!”
나는 눈까지 부라리며 쥐어박듯이 내지르고 말았다
그 시한폭탄 같은 사건은 형이 대학 4학년 때 학생 대표로 일본 과학계를 견학하는 여행을 앞두고 터졌다. 그 사건은 생선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토막치듯 형의 인생을 첫 번째로 좌절시킨 날벼락이었다. 그 꿈에 부풀었던 여행이 신원 조회로 좌절되었다. 아버지 때문이었다.
“그때 무슨 일을 하셨던 거예요?”
형의 떨리는 목소리가 낮게 들려 나왔다.
“말씀을 하세요. 이유를 알아얄 것 아닙니까”
아버지의 음성은 들리지 않은 채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게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 아세요? 2년 동안 기대했던 꿈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돼버린 거예요. 말씀 좀 해보세요.”
형의 음성은 격하게 들렸다. 아버지는 죄인이고 형의 말은 고문이 되고 있었다. 나는 전혀 몰랐던 아버지의 과거에 대해 뇰라는 한편, 형의 입장을 충분히 아파하면서도 아버지를 대하는 그 태도에는 동조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 !”
“……그래, 다 이 못난 애비 죄다. 다시 곱씹어 어디 쓸 것이냐. 늦었으니 건너가 자거라.”
아버지의 음성이 이때처럼 절망적인 탄식으로 들린 때는 전에 없었다.
형은 전혀 말이 없는 사람으로 변했고, 아버지는 척추뻐 한 마디가 빠져나간 것처럼 어깨가 축 처지고 말았다.
형의 좌절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무슨 과학 연구소에 첫 번째 이력서를 냈는데 시험에 합격을 하고는 신원 조회에서 탈락이 되고 말았다. 형은 다시 아버지를 다그치듯 하며 그때 무슨 일을 했는지 말하라고 고문했고, 아버지는 역시 그 고문을 침묵으로 견뎌 냈다.
형은 핏발이 선 눈으로 하늘을 웅시하며 이빨을 뿌드득뿌드득 가는 나날을 보냈고, 아버지는 척추뼈 마디가 두 개쯤 더 빠져버린 것 같은 후줄근한 꼴이 되었다.
형은 어찌어찌 기운을 차렸는지 세 번째의 도전을 시도했다. 그러나 역시 좌절이었다. 그의 불행은 그가 공대 출신이기 때문에 더 끈덕지게 그를 괴롭히게 되는 모양이었다. 형은 세 번째의 좌절을 당하고 나서는 아버지를 괴롭히지 않았다.
형의 네 번째의 도전은 마침내 형을 침몰시키고 말았다. 형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세웠던 과학자로서의 인생 설계를 포기하고만 것이다. 형은 아버지에게 단 한마디의 의논도 없이 친구 아버지가 유산으로 남겨놓고 간 목장의 관리인으로 집을 떠나버린 것이다. 그리고 형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까지 6년 동안 한 번도 집에 오지 않은 것이다.
형이 집을 떠나버린 다음부터 아버지는 삶의 의욕을 거의 상실해 버린 것 같았다. 얼굴에서는 웃음이 완전히 사라져버렸고, 죄의식이 분명한 우울한 그늘만이 짙게 얼굴을 덮고 있었다. 아버지는 나에게까지도 죄의식을 느끼는 게 여실했다. 아버지로서의 언행이 완전히 없어져 버렸고, 어쩌다 무슨 말을 할 때도 시선을 마주치는 일이 절대 없었다.
아버지는 처음 이삼 년 동안에는 명절만 되면 몹시도 초조하게 형을 기다리고는 했다. 그러나 형이 끝내 나타나지 않자 4년째 되는 설부터는 옷가지며 일용품 등속을 사가지고 와 내 앞에 내밀기 시작했다.
“형 한테 댕겨오거라”
형과는 만 3년 만의 대면이었다. 그런데 형은 전혀 모르는 사람을 대하듯 무표정했다. 형은 그동안 폐인이 된 것 같기도 했고, 어찌 보면 모든 욕망을 초월해 버린 도인(道人)이 된 것 같기도 했다.
“한 마리 거미만도 못해.”
아버지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생각을 좀 고쳐먹으라는 내 말에 형은 이렇게 일갈하고 말았다.
형을 만나고 온 나는 아버지를 대하기가 너무나 민망하고 미안했다. 아버지는 말 대신 눈으로 많은 것을 물었다. 그러나 나는 그 안타깝고 애절한 물음에 흡족할 만큼의 대답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었다 “건강하게 잘 있더군요.” 나는 고작 이 한마디를 겨우 했을 뿐이다. 그리고 한껏 지어낸 거짓말이라는 것이 “아버지 건강하시라고 전하더군요.”였다.
내 거짓말을 들은 아버지는 눈물이 핑그르르 도는 것 같았고, 그것을 감추려는 듯 얼른 담배에 불을 붙여 물었다. 그런 아버지의 희끗희끗한 머리칼이 유독 두드러져 보였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형과는 상당히 다른 체질이었다. 형처럼 점수를 탐하는 식의 공부에 흥미가 없었고,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거창한 인생 설계를 세우는 식의 심각함도 마땅찮았다.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돈을 벌고, 적당히 재미 보고 사는 것이 인생이 아니겠느냐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형은 마음 놓고 나를 한심한 놈으로 무시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고, 나는 나대로 편안하게 형은 공부밖에 모르는 좀벌레로 외면해 버렸다. 물론 형은 학기마다 좋은 성적표로 아버지를 즐겁게 해드릴 수 있었지만 나는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다. 그 대신 나는 어머니 없이 홀로 사는 아버지의 친근한 말벗이었고, 아버지가 하는 조그만 사업의 충실한 내조자였다. 한글만 겨우 깨쳤을 뿐인 아버지가 수공업적인 그 사업이나마 무난하게 이끌어갈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나의 조력 때문이었다. 그러나 형은 아버지의 사업에는 철저하게 무관심했다. 학비까지 손수 마련하는 독기를 부리고 있는 형은 어쩌면 아버지의 영향권에서 완전하게 벗어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그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느껴지기도 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다는 말을 접어두고라도 아버지에게 있어서 단둘뿐인 자식인 형과 나는 어느 쪽도 없어서는 안 될 실한 기둥이었던 것이다.
형이 첫 번째 좌절을 했을 때 나는 시시한 대학의 상대 1학년이었다. 그 시한 폭탄 같은 사건은 나에게도 꽤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나는 곧 그 충격에서 회복되었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전혀 새로움 사실이 아니었고, 다만 예기치 않게 우리 집안의 문제로 폭발했다는 것 때문에 새삼스러워지는 사건일 뿐이었다.
형한테는 대단히 미안한 이야기지만 내가 충격을 받은 다른 일면은 전혀 엉뚱한 데에 있었다. 죄 될 이야기가 분명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아버지는 무식하기 이를 데 없는 보잘 것 없는 남자였다. 더듬거리던 한글을 내가 국민학교에 들어가게 되면서 나와 함께 완전히 깨쳤다 그리고 내가 4학년 때까지 아버지는 지게 품팔이였다. 아버지에게 남다른 데가 있다면 찰고무처럼 질긴 생활의 성실성뿐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25년 후에 문제가 될 만큼 한 시대를 치열하고 적극적으로 살아냈다는 사실…… 그것이 법에 저촉된다는 사실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로 나를 경이에 떨게 했다. 나의 경이감은 왜, 어떻게, 무슨 일을…… 하는 식으로 호기심에 찬 의문들을 유발시켰지만 그대로 덮을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그 일이 있고 나서 나는 아버지를 새롭게 보게 되었다
나는 형과는 다른 방법을 택해서 편안하게 대학을 졸업하고, 편안하게 사병으로 입대하고 편안하게 이력서 같은 것은 쓸 생각도 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장사를 시작했다. 극복할 수 없는 장애가 나타나면 우회를 해서 가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을 곱씹으며 자기 학대를 계속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형을 상하게 한 그 사건의 당위성을 인정하는 것은 물론 아니었다.
나는 결혼할 필요를 느꼈다 아버지에게 그 뜻을 밝혔을 때 아버지는 복잡한 기분을 드러내 보였다.
“하긴 해야지…….”
아버지의 이 말과 깊은 한숨은 형 때문인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아버지로서는 속수무책 인 일이었다.
나는 형을 찾아갔다.
“멍청한 자식, 미친 병만 유전인 줄 아냐?”
내가 결혼하겠다는 말을 꺼내자마자 형이 내뱉은 말이었다.
나는 참으로 어리석고도 둔하게도 그 말을 새기느라 한참이나 눈을 껌벅거리고 앉아 있었다. 나는 그 말뜻을 깨닫고 나서, 세상 사는 방법은 가지가지라는 말을 할까 하다가 단념하고 말았다. 또 한 번 멍청한 자식이 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형은 내 결혼식에 오지 않았다. 아버지도 체념을 하고 있었는지 전혀 내색을 하지 않았다
형은 집에도 와 있지 않았다.
“어쩐 일일까요? 무슨 사고가 난 건 아닐까요?”
아내가 완연히 당황하는 얼굴이었다.
“아마 목장으로 내려갔을 거야.”
나는 공원 묘지에서와는 달리 확신을 가지고 말았다.
“그러기라도 했음 좋겠네요. 조마조마해서 원·…….”
시집와서 처음 대면한 형에 대해서 아내가 어떤 인상을 가졌을지는 물으나 마나 뻔한 노릇이었다. 조마조마하다는 말은 어른이 필요로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아내에게 형은 곧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를 비정상인으로 보인 게 분명했다.
아내는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이내 잠자리에 쓰러졌다. 친척붙이 하나 없는 장례 뒷바라지하느라고 어지간히 지쳤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방으로 건너갔다 방 안에는 아버지의 체취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 아버지는 깨끗하게 돌아가셨다. 자정이 가까워 활명수를 사오라고 했고, 서너 시간을 괴로워하다가 짧은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그런 깨끗한 죽음은 어쩌면 아버지가 평소부터 원해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아버지의 유품들을 차근차근 정리하기 시작했다. 유품이라고 해야 별것이 없었다. 서랍 세 개가 붙은 헐어빠진 옷가지들과 머리맡에 놓인 조그만 앉은뱅이 책상에 있는 자질구레한 일용품이 전부였다
나는 낡은 옷들을 하나하나 꺼내 어루만지듯 해가며 새로 접었다. 더 입을 수가 없을 정도로 낡은 옷들은 생전의 근면 뿐이던 아버지의 생활을 여실히 보의주고 있었다.
아버지의 단 한 벌뿐인 양복이 두 번째 서랍 중간쯤에서 나왔다. 아버지는 그 양복을 형의 대학 입학식에 입고 가기위해서 맞춘 것이었다.
그 양복을 입던 날 아버지는 하루 종일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고 눈에는 물기가 번져 있었다.
“한 장 더 박자, 한 장 더 박어.”
카메라 사진도 아닌 사진관 사진을 아버지는 굳이 한 장 더 찍기를 원했다.
“한 장이면 됐지 돈만 버린단 말예요.”
형이 말했고, 나도 형과 같은 생각이었다.
“아니다, 아녀. 돈은 어디 쓸라고 버는 것이냐.”
아버지는 막무가내였다. 그래서 나와 형은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모델 노릇을 해야 했다. 아버지가 가운데 앉고 형과 내가 그 뒤로 나란히 서서 찍었던 처음의 사진과는 반대로 두 번째에는 형과 내가 나란히 앉고 아버지가 우리들 뒤에 선 것이었다. 아버지의 그런 연출 솜씨는 얼핏 보기에는 단순한 자리바꿈에 지나지 않은 것 같았지만 신중히 생각해 보면 아주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처음의 것이 ‘뒤로 거느리고’라면 나중의 것은 ‘앞으로 내세워서’였던 것이다. 물론 이건 나 혼자만의 의미 부여였지 아버지에게 물어본 것
도, 형에게 귀띔한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의 연출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병호의 대학 입학식 날에. 1972년 3월 2일’을 사진에 명기(明記)할 것을 사진사에게 지시한 것이다.
“아버지, 그건 옛날에나 하던 촌스런 짓예요.”
형이 민망할 지경으로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래요, 그건 옛날식이에요.”
나도 부드럽게 말하며 아버지의 뜻을 돌리려 했다.
“아니다. 오늘이 어떤 날인데. 사진에다 꼭꼭 박아 써서 떠억 걸어놓고 평생 잊지 않도록 해야 쓴다.”
아버지는 역시 막무가내였고, 사진사는 연상 빙글거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 후로 설날이나 추석 같은 때를 골라 너덧 차례 양복을 입었을 뿐이다.
생각보다는 촌스럽지 않게 글씨가 박힌 사진을 찾아와 보고 또 보며 아버지는 그 얼마나 즐거워했던가.
나는 아버지의 유언을 전할 겸 해서 다음 날 형을 만나러 떠났다. 형은 역시 짐작했던 대로 앓아누워 있었다.
“나는 도무지 형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형이 아버지한테 남긴 한이 얼마나 큰지 한번 냉정하게 생각해 본 일이 있어요?”
형은 아무 대꾸 없이 담배만 빨아대고 있었다.
“아버지는 형이 당신을 용서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유언으로 남겼어요.”
형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는 내 마음속에서 아직 돌아가시지 않았다.”
형은 중얼거리듯 말했고, 나는 그 말뜻을 얼른 파악할 수가 없었다.
“원망이 아직도 남아서 말인가요?”
나는 비웃으며 말했고, 형은 갑자기 눈에 힘을 모아 나를 노려보았다.
“…… 넌 모른다. 그만 떠나라”
“알겠어요. 나도 길게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여기 온 건 다른 게 아니라 아버지 유언에 따라 어머니 산소를 이장하는데 같이 가야겠다는 말을 전하려는 거였어요.”
“정학리에 말이냐?”
형의 얼굴은 갑자기 일그러졌다. 나는 멈칫 놀랐다. 형은 어떻게 정학리를 알고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내 납득이 갔다. 그 사건이 터졌을 때 정학리쯤은 으레 드러난 이름이었을 것이다. 뒤늦게 안 게 나 자신일 뿐이었다.
“날짜가 확정되는 대로 전보를 치겠어요. 며칠 안에 가게될 겁니다.”
나는 서둘러 방을 나왔다 형은 따라 나오는 기척이 없었다.
나는 집을 출발하며 형을 설득해서 목장에서 끌어내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막상 형을 대하고 보니 그 생각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나는 형한테서 너무나 큰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니 형이 날 용서할지 모르겠구나…… 니 어무니 산소…… 이장해서 합장을…… 합장을 해다오. 정학리서 싸전 하는…… 박 서방 박 서방 찾아가면 다…… 저어기, 저어기…….”
아버지는 머리맡의 책상을 가리키다가 숨이 끊어졌다. 그 조그만 책상 서랍에는 벌써 몇 년 전에 구입해 놓은 합장 묘지 증서가 들어 있었다. 아버지는 평소에 성실하고 철저했던 생활 태도 그대로 죽음을 맞을 준비도 완벽하게 해놓은 것이었다.
아버지가 종업원을 서너 명 거느린 비닐 커버 공장의 사장 노릇을 하게 된 것도 순전히 성실과 근면을 철저하게 실행한 생활의 결과였다. 아버지는 어느 비닐 커버 공장의 제품을 거래처에 옮겨다 주는 지게 품팔이였다. 그런데 아버지는 지게품을 파는 것보다는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그 공장의 직공으로 취직을 했고, 5년 만에 기계 한 대를 장만하면서 독립을 하게 되었다 그 업종은 아버지의 체질에 꼭 어울리는 성질의 것이었다. 많은 자본이 필요치 않은데다 주문 하청이었으므로 위험 부담률이 적었다. 당장 큰돈을 벌 수는 없지만 꾸준히 하면 그만큼 목돈을 만들 수 있는 사업이었다. 아버지는 개미처럼 일했고, 나는 경리를 도맡아 처리했다. 경리래야 구구법으로 족한 장부 정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내 밥벌이를 톡톡히 해낸 셈이었다.
나는 난생처음 내 발로 점쟁이를 찾아갔다. 이장하는 망령을 위해 길일(吉 日)을 택하기 위해서였다.
날짜가 정해지자 아버지 친구인 박 서방에게 자세한 내용을 적은 편지를 등기로 부쳤다. 형에게는 예고한 대로 전보를 쳤다.
“오실까요?”
아내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와 틀림없이.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충격이 큰 것 같았어.”
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나에게는 말로 표현 안 되는 어떤 확신 같은 것이 있었다.
역시 형은 지정한 날에 나타났다. 옷도 제법 말끔한 것으로 골라 입은 눈치였다.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동안 형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멍하니 앉아 있는 모습이 그림자나 허깨비 같았다. 옛날의 그 끈질긴 독기라곤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형과 나는 꼭 거짓말처럼 고속 버스에 나란히 앉았다. 어머니 얼굴을 기억하느냐고 형한테 물으려다가 그만두었다. 형이 네 살 때, 내가 두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던 아버지의 말이 얼핏 떠올랐기 때문이다.
형이 아무리 머리가 좋다고 해도 어머니 얼굴을 기억할 재주는 없을 것 같았다. 사진이라도 한 장 있었다면 또 모른다.
어머니에 관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거기다가 아버지는 이상하리만큼 어머니에 대해선 말이 없었다.
아빠 울 엄마는 언제 죽었어? 니가 두 살 적에. 왜애…… 아파서? 응 어디가 아파서? …… 어디가 아파서, 아빠. 이눔아, 죽은 사람 자꾸 물어쌓면 밤에 도깨비가 잡아가는 법이야.
나는 그만 겁에 질려 입을 다물고 말았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었다.
아버지는 형과 나에게 아버지뿐만이 아니라 충실한 어머니기도 했다. 지게 품을 팔면서도 한 번도 아침밥을 굶겨 학교에 보낸 일이 없었다. 손수 빨래도 했고, 김장도 했다.
자네 언제까지 요런 꼴로 살겠다는 겐가? 자네도 자네지만 새끼들 꼬라지를 좀 보게. 글쎄, 염려 놓으세요. 이제 어려운 고빈 다 넘긴 참입니다. 아니, 이 사람아 인생살이라는 게……. 글쎄, 됐으니 그만 돌아가세요. 어허 이 사람 인심 야박허구먼. 다 자넬 위해 허는 일인데. 혹시 자네 고자 아닌가? 뭐요? 아,아, 그래요. 난 고잡니다. 고자.
아버지가 지게 품팔이를 면하고 두 평짜리 공장 사장이 되고부터 장가를 들라는 성화가 끊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어느 정도까지는 잘 참아내다가 마침내 벌컥 역정을 내는 것으로 중매쟁이를 쫓고는 했다. 나는 국민학교 6학년 때 고자라는 말을 처음 들었고, 그 말뜻을 몰라 형에게 물었다가 알밤만 호되게 쥐어질리고 말았다.
나는 아버지의 삶을 더듬으며 새삼스럽게 콧날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어렴풋한 의문의 꼬리가 잡혔다. 어머니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 한 것과, 한사코 새장가 들기를 꺼려하며 평생을 혼자 살아낸 것과는 무슨 연관이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미 가고 없었다.
정학리에 도착한 것은 12시쯤이었다.
“자네들이 바로 천길이 아들이란 말이지? 그러고 보니 엄니, 아부지 얼굴이 반반씩이구먼 그래. 자네들을 보니 천길이도 헛세상 산 것은 아니었구먼.”
싸전을 하는 박 영감은 피붙이라도 대하듯 눈물을 글썽이며 형과 나를 반겨주었다
“어허, 천길이가 세상을 뜨다니…… 험한 세상 그리 모질게 살아내더니만…… 원 없이 한평생 살다 간 거지.”
박 영감은 회한이 사무치는지 혼잣말을 한숨처럼 토해내고 있었다.
“그래, 운명은 편히 하셨다고?”
박 영감은 벌겋게 물든 눈자위를 훔치며 물었다. 편지에 적은 내용을 인사 겸해 확인하는 것이었다.
“네, 유언하시기까지 몇 시간 앓으신 거지요.”
나는 ‘유언’이란 말을 함으로써 박 영감의 임무를 다짐하고자 했다.
“그랬을 것이여. 원체 곧고 강한 성격이었으니 죽음도 성질대로 한 것이지. 자네들 엄니 제삿날 찾아 1년에 한차례 내려올 때마다 내가 권했었지. 그만 고향에 내려와 늘그막 살다가 뼈는 고향 땅에 묻으라고 말야. 옛 성질 그대로 고집을 부리더니만 타향 죽음 하면서 마누라 혼까지 타향으로 데려갈 유언을 했구먼 그랴.”
아버지가 1년에 한차례씩, 여기로 내려왔다니·……. 그러고 보니 여태껏 어머니 제사를 한 번도 지낸 일이 없었던 게 아닌가. 나는 이 어처구니없는 깨달음과 동시에 재빨리 형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그때 형도 내게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고, 형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허긴 자네들 부친 심정도 능히 이해는 혀. 이 한 맺힌 땅에 꿈에라도 눕고 싶지 않았을겨. 오적이나 한이 컸으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마누라 제삿날 찾아 천릿길을 꼬박꼬박 오는 사람이 다 큰 아들자식들은 안 데려왔을 것인가. 내가 그러면 못쓰는 법이라고 말렸지. 세상이 달라졌다고도 해봤지. 헌데 그놈의 고집이 자식들한테는 절대 이 땅을 밟게 하지 않겠다는 거였어.”
형과 나는 그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참, 내가 자네들한톄 꼭 한 가지 물어볼 말이 있네. 그게 다른 것이 아니라 자네들 엄니, 아부지한테 얽힌 사연을 알고 있는가?”
“아무것도 모릅니다. 이번 기회에 여쭤보려고 했던 겁니다.”
형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재빨리 말했다.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형이 순순히 여기까지 온 또 다른 목적을 알 것 같았다.
“제삿날에도 안 데려왔으니 그 기막힌 사연을 알려줬을 리가 있나. 저승에서 자네들 부친은 펄펄 뛸지 모르지만, 자네들도 다 컸으니 알 건 알아야지. 오늘 이장을 해 떠나면 다시는 여기 오지 않을 테니 말야. 자아 시간이 다 돼가니 산소로 가면서 얘기하세.”
박 영감은 시계를 보며 일어섰다.
형은 민첩한 동작으로 자리를 차고 일어났는데 그 얼굴에는 몇 년 사이에 볼 수 없었던 생기가 넘치고 있었다.
“나나 자네들 아부지나 송아지 한 마리 값도 못 되는 대를 물리는 소작농 자식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지…….”
아버지는 어쩌다가 김씨 문중의 어느 집 딸과 정을 통하게 되었다.
그 염문은 발 없는 말 천리 간다는 식으로 마을에 퍼졌고, 김씨 문중의 살벌한 징계가 아버지에게 떨어졌다. 김씨네의 장정들에게 붙들려간 아버지는 덕석 몰이를 당해 온몸이 피걸레가 되도록 두들겨 맞았다 아버지는 한 달 가까이 앓다가 일어났는데, 문제는 그때부터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시퍼런 낫을 꼬나 잡고 자기에게 폭행을 가한 김씨네 젊은 이들을 잡으러 다녔다. 다 잡아 죽이고 자기도 죽겠다는 것이었다. 마을이 뒤집혔고, 김씨네 젊은이들은 그림자도 볼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아버지는 자다가 김씨네 장정들한테 습격을 당했다. 이번에는 당산나무에 묶여 살점이 뚝뚝 떨어져나가도록 두들겨맞고 반죽음이 되어 개천가에 내다 버려졌다. 그 누구도 살아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고, 소작인들은 어느 사람 하나 김씨네의 짓을 입 밖으로 욕하지 못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끈질기게 목숨이 이어져나갔고, 누구의 입에서인지 모르게 김씨네의 그 딸이 아버지의 자식을 임신했다는 소문이 퍼져나갔다.
“자네들 부친보다 더 독한 양반이 바로 모친이었다네. 임신 소문은 사실이었고, 집안에서는 가문 망신시켰다고, 차라리 죽으라고 배춧잎에 양잿물을 싸서 디미는 판인데, 어느 날·밤 집을 도망쳐 나와 자네들 아버지 집으로 오지 않았겠나. 김씨 문중에서도 더 어쩌는 도리가 없었지. 그리 어렵게 태어난 목숨이 바로 자네가 아닌가.”
박 영감은 걸음을 멈추며 감개 어린 눈으로 형을 쳐다보았다. 형은 창백하게 굳어진 얼굴을 떨구었다.
“자네들 부친은 천하라도 얻은 듯이 황소처럼 미련하게 일을 했지. 생활도 그만하면 뜨뜻했고, 무엇보다 부러운 게 부부 사이였지. 원앙이 따로 없고, 양반 상놈 피가 다르다는 말도 다 헛소리였던 거야. 둘째 아들까지 낳고 잘사는데 그놈의 난리가 터진 거야.”
아버지는 변신을 했다. 지게 대신 완장을 찬 것이다. 물 만난 고기처럼 아버지는 생기가 펄펄하게 살아났다. 김씨 문중 사람들이 피해를 입은 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나마 아버지가 사람들을 죽이지 않은 분별력을 가졌던 것은 어머니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아니었어도 김씨 문중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손에 의해 많이 사라져갔다. 서너 달이 그렇게 지난 어느 날 새벽 그동안 자취를 감추었던 김씨네 젊은이들이 문을 박차고 뛰어들었고, 아버지는 포박을 당해 끌려가면서야 세상이 뒤바뀐 것을 알았다. 뿌연 어둠이 자욱이 깔린 국민학교 운동장의 플라타너스에 아버지는 친친 묶여졌다. 그리고 철컥 쇳소리가 어둠 속에 차갑게 흩어졌다 그때 외마디소리를 지르며 아버지 앞에 쓰러진 여자가 있었다. 김씨네 젊은이들이 몰려들었다. 어머니 가슴에는 칼이 박혀 있었고, 옷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내가 대신 죽게 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어머니는 숨을 거두었다. 젊은이들은 아버지의 포승을 풀었다.
“그것이 다 한바탕 한풀이 굿이었어. 대대로 물려온 한이 장작개비였다면 그 난리는 불쏘시개 같은 것이었지. 자네들 둘을 양쪽에 끼고 여길 떠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자네들은 이렇게 장성하고, 그 사람은 저 세상 사람이 됐구먼. 저기가 자네들 엄니 산소네.”
박 영감은 인부 서너 명이 서 있는 묘를 가리켰다.
간단하게 제를 올렸다. 절을 하는데 얼핏 울음 추스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차마 형 쪽을 볼 수는 없었다.
절을 끝내고 힐끔 쳐다보니 형의 눈자위가 벌겋게 변해 있었다.
제가 끝나자 인부들은 금방 작업을 시작했다.
박 영감은 뼈를 담을 상자와 뼈를 쌀 한지를 간추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관 있는 부분이 드러났다. 뼈들은 하얀 모습으로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명당이었구먼. 자네들 번창한 게 다 엄니 덕이었던 모양이야.”
박 영감이 인부한테서 뼈를 받아 한지에 조심스럽게 싸며 말했다.
머리에서부터 순서대로 뼈를 싸서 상자에 담는 일은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한 많던 사람들 영혼이 이제야 한자리에 편안히 눕게 되는구먼.”
박 영감은 상자를 들어 형에게 건네주며 중얼거리듯 말했디. 상자를 받아 드는 형의 눈에는 눈물이 어려 있었는데, 형은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 것 같다가 그만두었다.
“자네들 엄니나 아부지 가슴에 맺힌 한은 아마도 백설 위에 떨어진 노루 핏빛 같은 색깔일 거구먼. 그 한은 합장을 한다고 풀리는 것이 아니라 자네들이 번성하게 잘살아야 풀리는 거네.”
박 영감은 당부하듯 말하고는 앞서 걷기 시작했다.
형은 상자를 받쳐 든 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멍하니 서 있었다.
“갑시다.”
나는 형을 일깨웠다
“내가…… 출세를 하려 했던 일방적인 계획은 우리 집안이 너무 보잘것없어서였다. 근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나보다 아버지가 먼저 시도한 일이었어. 난 결국 아버지 속에 있는 놈일뿐이다…….”
형은 중얼거리듯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형이 아버지의 장례 때 했던 행동과 자기 마음속에는 아직 아버지가 살아 있다고 했던 의미가 일직선으로 연결되는 걸 느꼈다.
“그래 가지.”
나는 형이 들고 있는 어머니의 유골 상자를 맞들었다.
〈198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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