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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임진왜란을 연구하는 모임. 원문보기 글쓴이: 고구려
(M-51 슈퍼 셔먼 이스라엘 탱크)
이스라엘이 개발(사실은 개조)한 최초의 탱크라고 한다면 슈퍼 셔먼 시리즈가 바로 그 장본인입니다. 플라모델업체들도 타미야는 물론이고 아카데미와 드래곤 모두 슈퍼셔먼의 1/35 키트는 빠트리지 않고 출시하고 있을 정도로 모델러들에게도 사랑받는 모델입니다.
(타미야제 이스라엘 M51 탱크 1/35 키트)
(아카데미제 슈퍼셔먼 M51 1/35 키트)
(드래곤은 이스라엘 보병부대 피규어를 끼워 파는 M50 탱크 1/35 키트를 출시했습니다.)
후에 소개해드릴 제3차 중동전쟁 (일명 "6일 전쟁")은 수에즈 운하를 둘러싼 이집트와 영-프-이스라엘군의 전쟁이었던 1956년에서 또다시 11년이 흐른 1967년에 발발하였습니다. 앞으로는 통칭 "6일 전쟁"이라고 부를 이 전쟁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일단 이 전쟁은 마치 제1차 중동전쟁처럼 이스라엘 혼자서 이집트,시리아, 요르단,이라크 이렇게 4개국들과 "맞짱"을 떠서 또 다시 이 4개국들은 이스라엘에게 엄청나게 두둘겨맞고 애초에 전쟁을 시작하지 않은 만 못하게 엄청난 피해를 입은 또 하나의 "이스라엘만의 승리"였던 전쟁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전쟁에서 1956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주력 탱크였던 프랑스제 AMX-13에 추가로 오늘 소개할 슈퍼셔먼 시리즈의 2형제 M50과 M51 탱크, 그리고 미국제 M48A3 패튼 탱크와 영국제 센츄리언 탱크까지 무려 5가지 종류의 탱크들을 운용하면서 이집트,시리아,이라크의 소련제 탱크들(T-34, T-54, T-55, PT-76, SU-100/152)과 요르단의 미제 탱크(M-48 패튼 탱크)를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탱크 개발 역사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간에 전쟁의 배경과 결과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으면 실감나는 설명을 즐길 수 없다는 생각에 일단 1차,2차 중동전쟁의 설명을 마쳤던 것이고 이정도 이해의 기반에서는 "이스라엘 탱크 개발사"를 이제 시작해도 되겠다는 생각에서 슈퍼 셔먼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프랑스제 AMX-13의 구입
이미 설명했듯이 1948년~1949년 이스라엘 개국 직후 발발했던 제1차 중동전쟁에서는 이스라엘이나 상대 아랍 국가들이나 2차대전 당시에 영국군,프랑스군,미군은 물론 심지어 독일군이나 이태리군이 사용했던 탱크들을 구입하거나 인수받아서 전쟁에 사용하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이 자신들만의 탱크를 독자적으로 개발하거나 하다 못해 자신들의 환경에 맞게 개조한다는 것조차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AMX-13, 빈약한 장갑으로 절대 우수한 탱크라고는 할 수 없지만 M50/M51 슈퍼 셔먼 시리즈의
탄생에 있어서 큰 공헌을 한 프랑스의 경전차입니다.)
세월은 흘러 1956년 제2차 중동전쟁에서도 이스라엘은 기존의 M4 셔먼 탱크나 막 프랑스로부터 구입한 AMX-13 탱크를 운용하여 전쟁을 수용하였습니다. 자! 여기서 바로 AMX-13이라는 프랑스제 탱크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때는 1953년, 제2차 중동전쟁 발발 3년 전에 이스라엘은 프랑스의 새로운 경전차(Light Tank) AMX-13을 구매하기 앞서서 조사하기 위해 전문팀을 파견합니다. 그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 탱크는 강력한 75mm 주포인 CN 75-50가 장착되어있었는데 이 주포는 2차대전 판터 탱크에 장착된 75mm KwK 42 L/70 포를 개선한 버전이었습니다. 조사팀은 이 주포의 화력과 성능에는 만족을 하였습니다. 반면에 이 신형 경전차의 차체의 장갑에는 회의적인 의견이었는데 프랑스가 기본적으로 경전차 개념으로 개발한 기종이다보니 장갑이 못마땅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나치 독일의 판터 전차의 주포를 개선한 75mm 주포가 AMX-13에 장착되었는데
이스라엘은 그 주포의 화력에 대만족하여 결국 M50 적용 주포로 결정하게 됩니다.
나치 독일의 탱크의 우수성은 2차대전 후에까지 그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는 예입니다.)
사실 "경전차"란 개념은 2차대전 당시 킹 타이거 정도의 덩치 큰 헤비급을 重전차, 타이거1이나 셔먼 정도를 中전차, 2호 전차나 M1 스튜어트 정도를 經전차로 분리했던 개념에서 만들어진 신형 탱크입니다. 하지만 냉전 시대로 돌입하면서는 이런 3분법이 아니라 MBT(Main Battle Tank)라는 개념이 도입되게 되면서 AMX-13은 과거 기준에 의해서 기획되고 개발된 탱크인 탓에 이스라엘의 경우 이놈 저놈 끌어모아 구성한 기갑부대를 한두개의 똘똘한 신형 탱크들로 일원화하여 운용하려면 차체 장갑의 빈약함은 치명적인 문제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당장 이집트와의 전쟁을 앞두고 찬밥 더운 밥 가릴 여유가 없었고,사실 이집트 정도의 상대는 AMX-13과 그때까지 남아있던 2차대전 고물 전차들을 운용해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일단은 AMX-13을 구입하여 전선에 배치하게 됩니다. 하지만 동시에 AMX-13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주포 부분과 그동안 이스라엘이 보유했던 탱크들 중에서 가장 안정적인 성능과 요구에 맞는 장갑 두께를 가졌던 M4 셔먼과의 장점만을 취한 결합을 결정하게 됩니다.(1950년대 초반부터 이스라엘 육군의 주력 전차가 되어온 M4 셔먼 탱크는 2차대전 기간 동안 엄청난 숫자가 생산된 탓에 장갑의 견고함은 물론 차체의 성능적인 안정성이 이스라엘에게 가장 큰 만족을 준 탱크였습니다.)
(1951년 한국 전쟁 중에 M4 셔먼 탱크의 주포 개선형인 "이지 에잇", 2차대전 중에 영국군이 운용한 "파이어플라이"와
유사한 개념의 셔먼 탱크 후기 모델입니다.)
사실 이런 아이디어는 2차대전 중에 영국군이 안정적인 셔먼의 차체와 포탑을 그대로 사용하되 보다 긴 길이의 75mm 주포를 장착하여 사용하여 개발한 "파이어플라이"(훗날 한국 전쟁까지 사용되었습니다.)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첫번째 50대 시작품은 M4A4 차체를 사용하여 제작됩니다. 콘티넨탈 R-975 개솔린 엔진과 VVSS서스펜션을 사용하였는데 결과는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차체의 무게가 증가한 탓에 기존의 좁은 트랙으로 비포장 지면에서 이동성에 큰 문제가 발생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엔진에 너무 부담을 준 나머지 엔진에서 기계적인 결함이 빈발하게 됩니다.
결국 유명한 엔진 제조 회사인 쿠민스社의 V-8 460마력 디젤 엔진으로 교체되어 두번째 시작품이 제작됩니다. 디젤 엔진이 선호된 이유중에는 2차대전때 약간의 피탄에도 곧바로 불구덩이로 변하던 셔먼 탱크들이 주로 개솔린 엔진을 사용한 탓도 컸기 때문에 일단 점화 성질이 덜 한 디젤 엔진을 사용하면서 이런 문제점에 어느 정도 개선이 가능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때 개조된 탱크들을 M-50이라고 불렀는데 1964년에 약 300대의 M-50 탱크가 제작됩니다.
1960년대에 들어서서 이스라엘은 프랑스로부터 과거 AMX-13에 적용된 75mm 주포보다 훨씬 더 강력한 화력을 가진 프랑스제 105mm 주포를 공급 받게됩니다. 이 포를 적용한 셔먼 차체의 탱크는 M51로 불리게 되는데 M4A1 차체와 새로운 디자인의 포탑이 사용되었습니다. 여전히 쿠민스 디젤 엔진과 HVSS 서스펜션이 적용되었고 1965년 독립기념일 최초로 이스라엘 국민들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통상 M50은 슈퍼 셔먼이라 불리면서 최초의 콘티넨탈 개솔린 엔진이 적용된 버젼을 마크 1, 쿠민스 디젤 엔진이 적용된 버전을 마크 2로 구별하여 부르게 됩니다. M-51 역시 슈퍼 셔먼으로 불리거나 Isherman (Israeli Sherman의 합성어)으로 불리는데 이런 명칭은 이스라엘 내에서는 전혀 사용되지 않고 주로 외국에서 이들 개조 탱크들을 부를 때 사용됩니다. 이스라엘 군 내부에서 "슈퍼 셔먼"이라고 부르는 경우는 M4A1 차체에 76mm M1 주포를 장착한 버전을 아예 "슈퍼 셔먼 M-1" 한가지 경우입니다.
왜 이스라엘은 탱크 독자 개발 라인업이 필요했던 것인가?
비록 M50/M51까지는 M4 셔먼 탱크 차체에 포탑과 주포를 서로 다르게 적용하여 만든 "개조" 수준의 탱크였지만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이스라엘은 일찍부터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탱크를 개발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집트 육군의 소련제 T-55 탱크, 아랍 열국들은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소련으로부터
최신 탱크들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경우는 소련이나 미국 눈치를
안보고 선뜻 이스라엘에게 탱크를 판매해줄 강대국들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영국과 프랑스 정도가 제한적인 지원을 해줄 수 있는 우방이었습니다.)
그런 배경에는 아랍 여러 나라들의 경우 소련이나 서방 강대국들이 당시 아랍 국가들에 대해서 잠재적으로 자신의 적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지 않은 탓에 신형 무기들을 판매하는데 부담감이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아랍 국가들의 경우 가뜩이나 게으른 근성에 굳이 고생해가면서 무기에 있어서 독자적인 개발을 할 필요성을 못느꼈던 것입니다. (이집트의 경우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M4 차체에 AMX-13 포탑을 적용한 개조 버전을 운용하기도 하였지만 훗날 독자적 탱크 개발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이집트가 셔먼 탱크 차체에 AMX-13 포탑을 그대로 올려서 개조한 탱크, 이스라엘의 경우 지속적인 연구 개발로
독자적인 탱크 개발 라인업을 갖게 된 반면 이집트는 소련 탱크들을 본격적으로 공급받게 되자 자체 개발은 생각
안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경우에 소련측의 지원은 기대할 수 없는 입장이고 (이집트의 친소외교 전략의 목적 중에 하나도 바로 이런 견제였던 셈이지요.) 미국의 경우 마음 놓고 이스라엘에 무기를 지원해주다 자칫 아랍 국가들의 항의를 받는 경우를 의식해서 마음대로 지원해줄 수 없는 껄끄러운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탓에 결국 독자 개발 노선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슈퍼 셔먼 시리즈의 전투 역사
25대의 최초의 M50 탱크가 1956년 시나이 반도 국경에서 이집트 군과 대치하고 있던 전선에 도착하였을 때 이집트 군 역시 M4 차체에 AMX-13 포탑을 적용하여 사실상 M50과 화력이나 성능 면에서 똑같다고 할 수 있는 개조 탱크들로 구성된 기갑부대를 배치해놓은 상태였습니다.
(이스라엘 육군의 M51 탱크)
1964년에 이스라엘은 농경수를 위해서 갈릴리해에 물을 네게브 사막으로 끌어오는 공사를 진행합니다. 이에 인접 아랍 열국들은 분노하였고 시리아가 이를 저지하기 위해 물길을 요르단 쪽으로 돌려서 이스라엘의 계획을 방해하였습니다. 사실 이 농경수를 놓고 벌어진 국가간 긴장과 갈등은 몇년 후에 3차 중동전쟁의 중요한 원인들 중에 하나가 됩니다. 어쨌든 이런 긴장 상황에서 시리아군이 무반동포를 사용하여 트렉터를 운전하던 이스라엘 민간인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즉각적으로 이스라엘 M50 탱크는 시리아 무반동포 사수를 향해 포격을 가했고 무려 1,500m 밖에서 포격이었음에도 명중시켜버립니다.
(현대전에서 무반동포의 예)
며칠 후에 이스라엘의 M50 탱크와 센츄리온 마크3 탱크는 시리아의 수로 변경 작업 공사장을 기습할 기회를 노리게 되는데 마침 시리아 국경 순찰대가 발견하고 이스라엘 탱크들에게 먼저 사격을 가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2,000m 전방에서 작업중인 시리아의 8대의 트랙터들에 포격을 가해서 파괴해버립니다. 이는 불과 2분 동안 단 10발의 사격으로 이룬 성과입니다. (이를 보면 이스라엘 기갑 부대의 원거리 사격 훈련이 얼마나 철저했던가를 알 수 있습니다.) 특히 파괴된 트랙터들 중에 5대는 M50의 포격에 의해 파괴된 것입니다.
이런 긴장과 갈등의 연장선에서 3년 후에 발발한 6일 전쟁 중에 M50 탱크와 M51 탱크 모두 시나이 반도 서안 지역인 골란 고원에서 아랍 탱크들과 진검 승부를 겨루게 됩니다. 재미있는 것은 2차대전이 끝나고 무려 20년이 넘게 지난 1967년에 2차대전 당시 같은 연합군으로 한편이 되어 싸웠던 M4 셔먼과 소련의 T-34 탱크는 엉뚱하게 중동 시나이 반도에서 서로 개조된 모습으로 적이 되어 이스라엘의 M50/M51과 아랍의 T-54/55라는 이름으로 만나서 격전을 벌이게 됩니다.
(HEAT탄(성형작약탄)의 단면, 이 특수한 대전차 포탄은 발사 속도와 상관없이 일정 두께의 장갑을
관통하도록 설계된 특수 포탄입니다. 이 포탄 덕분에 M51 탱크는 소련제 탱크들과의 전차전에서
화력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6일 전쟁 이후에 아랍 탱크들은 소련의 최신형T-62와 같은 탱크 탱크들을 구입하여 다시 이스라엘과 전차전을 갖게 되는데 1970년 초반까지 주력 전차로 사용되던 M51의 경우 이런 소련의 신형 탱크들과의 전투에서 전혀 밀리지 않는 뛰어난 화력과 기동성을 보였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기갑부대 지휘관들의 뛰어난 전략이나 기갑병들의 강도 높은 훈련도 원인이겠지만...) 특히 이스라엘군은 HEAT(High Explosive Anti-Tank)탄(우리말로 "성형작약탄")를 사용하였는데 이런 새로운 포탄의 파괴력이 주포 성능에서 당연히 소련의 신형 탱크들에게 뒤떨어졌떤 M51이 소련제 탱크들의 장갑을 거뜬히 관통시키는 화력을 가능케 해줍니다.
M50이나 M51처럼 무려 20년이 넘는 과거에 사용했던 골동품 M4 셔먼 시리즈를 개조하여 이렇게 뛰어난 전공을 세웠다는 점에서 세계 탱크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질긴 수명과 경쟁력의 예가 되겠습니다. M50의 경우 1972년에 퇴역하게 되었고, M50 마크 2(쿠민스 엔진 적용)과 M51은 1970년대말에서 일부는 1980년대 초까지 꾸준히 사용되다 점차 퇴역하게 됩니다.
워낙에 우월한 이미지 덕에 보통 이들을 마지막 셔먼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칠레의 M60 HVMS가 셔먼의 끝입니다. .
칠레는 페루가 소련제 무기를 야금야금 들여오고, 아르헨티나와 국경분쟁이 생기자 국방력 강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
그러나 칠레는 돈이 없었고, 구세대 전차를 개량할 계획을 세우는데, 딱 마침 이스라엘의 셔먼 재고가 풀린 것죠.
즉 이스라엘이 이 셔먼전차들을 1980년대 초반까지 예비물자로 보관했지만, 결국 써먹을데가 없어서 퇴역 결정이 내렸습니다. 마침, 그 소식이 칠레군부의 귓에 들어가서 결국 이스라엘은 칠레로 전량 전부다 셔먼을 수출을 합니다.
웃긴 것은 이스라엘이 더 돈을 받기 위해서 개조한 슈먼 셔먼과 아이 셔먼에 또 칼을 들이대서
일명. M60 HVMS 로 재창조했습니다.
정말 이스라엘 놈들 징한 놈들이죠. 셔먼들은 또 어떻게 개조햇는지 아래에 설명이 있습니다.
M60 HVMS – [1980년대 초중반에 등장한 셔먼 마개조물의 마개조판(...). M50/51의 칠레 육군 개량형으로, 노인 학대 전문가인 이스라엘의 협조가 있었습니다.. 셔먼의 차체에 비해 지나치게 크고 무겁던 CN-105-F1 105mm 전차포 대신 이스라엘이 개발한 60mm HVMS(Hyper Velocity Medium Support)와 자동장전장치를 탑재한 버전이죠 . 메르카바 MK1의 M111 APFSDS탄을 개량한 60mm APFSDS탄을 사용하여 2km에서 240mm RHA를 관통할 수 있죠. 또한 포방패의 형상이 변했으며 현대적인 사격통제장비가 도입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커밍스 VT8-460 디젤 엔진과 자동변속기가 장착되었지만 이후 미국의 스팅레이 경전차와 동일한 파워팩으로 교체하였습니다.]
나중에 칠레가 레오파르트1V과 AMX-30B2같은 전차들을 도입하면서 2선으로 물러났고 2000년대 들어서 드디어 퇴역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에 의해서 셔먼이라는 전차의 생명력이 참으로 끈질기죠
그래서 매니아들은 이스라엘이 (셔먼이라는 전차에게 가하는) 노인 학대가 다양하다고 우스운 소리를 해대고 있죠. 이스라엘의 험난한 여건상 셔먼은 쓸 수 없어질 때까지(…) 골수까지 빨아먹으며 아껴 써야 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노인 학대 방법도 참 다양합니다.
마개조....개조 대상의 원형을 알아보기 힘들정도로 개조하는 행위를 뜻하는 일본식 조어(造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