管鮑之交 관포지교
[대롱 관/절인고기 포/어조사 지/사귈 교]
관중(管仲)과 포숙(鮑叔)의 어릴 적부터 절친한 친구사이 |
자신이 역경(逆境)에 처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친구를 두고 있다면 그러한 친구야 말로 진정한 친구라고 할 것입니다. 교우 관계가 자신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은 재론(再論)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조선조의 실학자 담헌 홍대용(洪大容)은 교분이 있는 중국 교우(交友)에게 보낸 편지에서 친구라는 것은 서로가 책선(責善: 선행을 하도록 권하는 것)과 보인(輔仁: 서로 도와 인(仁)을 권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렸고, 《논어(論語)》에서 공자(孔子)는 '한 해가 추워진 연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듯이 진정한 친구도 역시 어려운 역경에서 그 진가가 발휘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자신을 이해해주고 어려움을 감싸준 우정어린 인물로는 단연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의 제(齊)나라 명재상인 관중(管仲)과 포숙(鮑叔)의 관계를 꼽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조선조 명종대(明宗代)의 오성과 한음 역시 관중과 포숙에 비교할 수 있는 교분이 두터운 우정어린 인물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나를 나아 준 분은 부모님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라는 관중의 표현대로 포숙은 관중을 진정으로 이해해 준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사기(史記)》〈관안열전(管晏列傳)〉이나 《열자(列子)》〈역명편(力命篇)〉에서 출전을 찾을 수 있는 관포지교 고사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중국 춘추시대 제(齊)나라에 관중(管仲)과 포숙(鮑叔)은 어릴 적부터 절친한 친구사이었습니다. 후에 관중은 명재상(名宰相)으로 명성을 얻게 되는데, 그가 명재상이 되기까지는 친구였던 포숙의 공이 지대했습니다. 관중이 말년에 포숙에 대한 칭송의 말을 남겼는데, 그 표현은 다음과 같습니다. " 내가 어릴 적 곤궁할 적에 포숙과 함께 장사를 할 때, 이익의 분배를 내가 포숙보다 더 많이 가져갔는데 포숙은 나를 탐욕스럽다고 여기지 않은 것은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알아주었기 때문이었고, 벼슬 길에 올라 많은 실수로 사람들은 나를 어리석다고 했지만 포숙은 나를 무능하다 하지 않고 때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알아주었다. 또한 내가 포숙아와 함께 전쟁터에 나갔을 때, 내가 세 번이나 도망을 치자 사람들은 나를 비겁하다고 질책했지만 포숙아는 내가 집에 연로한 어머님이 게시기 때문이라고 알아 주었고, 또 나와 포숙아가 제나라의 두 공자인 규(糾)와 소백(小伯)의 사부가 되었다가 내란에서 공자 규를 모시던 내가 공자 소백에게 패하여 참수형의 위기에서 포숙아의 설득으로 목숨을 구하고 오히려 재상의 자리까지 나에게 물려주어 내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도록 나를 알아주었다. 결국 나를 나아주신 분은 부모님이지만 나를 진정으로 알아준 이는 포숙아이다."
{ 管仲 曰 吾始困時 嘗與鮑叔賈 分財利 多自與, 鮑叔 不以我爲貪 知我貧也. 吾嘗爲鮑叔 謨事 而更窮困, 鮑叔 不以我爲愚 知時有利不利也. 吾嘗三仕 三見逐於君, 鮑叔 不以我爲不肖 知我不遭時也. 吾嘗三戰三走, 鮑叔 不以我爲怯 知我有老母也. 公子糾敗 召忽 死之 吾幽囚受辱, 鮑叔 不以我爲無恥 知我不羞小節 而恥功名 不顯於天下也. 生我者父母 知我者鮑子也. 《史記, 管晏列傳》} |
이기적인 우리 사회의 병폐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 중에 어릴 적 우정어린 교우관계를 성장해서까지 이어갈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 어른들이 어린 후손들에게 제시해 주어야 할 값진 교훈이 아닐까 합니다.
한자(漢字)의 활용(活用) |
한자 |
독음 |
한 자 어(漢字語) 예 시(例示) |
管 |
(관) |
1) 대롱 - 管中之天(관중지천), 管見(관견), 2) 주관하다 - 管理(관리) |
鮑 |
(포) |
저린 어물 - 鮑俎(포조) |
交 |
(교) |
1) 사귀다 - 交友以信(교우이신), 斷金之交(단금지교), 交際(교제), 2) 섞이다 - 交流(교류), 交通(교통), 3) 번갈아 - 交代(교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