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3846]井不及泉(정불급천)
-우물을 파는데 물이 나오는 곳에 이르지 못했다
정불급천(井不及泉)
(井: 우물 정. 不: 아닐 불. 及: 미칠 급. 泉: 샘 천)
우물을 파는데 물이 나오는 곳에 이르지 못했다는 뜻으로,
계획을 세워 실천을 하다가 중도 그만 두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의미.
[인용] 《이언적(李彦迪)의 회재집(晦齋集) 제6권
잠(箴) 원조오잠(元朝五箴)》
井不及泉 九仞奚益 學不希聖 是謂自畫
(정불급천 구인해익 학불희성 시위자획)
井=우물 정. 不= 아닐 불. 及= 미칠 급. 泉= 샘 천
九=아홉구.仞=길 인.奚=어찌 해.益=더할 익.
學=배울 학.不=아니 불.希=바랄 희.聖=성인 성.
是=이 시.謂=이를 위.自=스스로 자.畫=그을 획.
우물을 파는데 샘에 이르지 못하면
아홉 길을 판들 무슨 쓸모가 있으랴.
배움의 길에 성인의 경지를 바라지 않음은
스스로를 한정 짓는 것이리라.
[내용] 이 성어는 조선 중기의 학자 이언적(李彦迪)이 쓴
원조오잠(元朝五箴)의 다섯 번째 독지잠(其五 篤志箴)에 나오는 말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원조 오잠서문을 덧붙이다. 〔元朝五箴 幷序〕
이언적이 27세이던 1517년(중종12) 설날에 지은 다섯 편의 잠(箴)이다.
듣건대 옛 성현은 그 덕을 향상시키는 데에 하루도 새로워지지 않는 날이 없고 한 해도 달라지지 않는 해가 없이 하여, 오직 날로 부지런히 노력하여 죽고 나야만 그만두었다고 한다. 이것은 대개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다하여 하늘이 부여한 바를 저버리지 않고자 함이었다. 내 나이가 이제 스물일곱인데, 행동은 규범에 맞지 않고 말은 법도에 위배됨이 많다. 학문에 많은 힘을 쏟았지만 도를 이루지 못하고 나이를 많이 먹었지만 덕이 향상되지 않으니, 성현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고 끝내 보통 사람으로 귀결되고 말 것이 자명하다. 아! 오늘은 또 설날이다. 해가 또 흘러갔는데 나만 유독 이전과 다름없이 지내며 스스로 새로워지지 않을 것인가? 다섯 편의 잠을 지어 평생의 근심거리로 삼으려 한다.
다섯 번째 독지잠〔其五 篤志箴〕
사람의 성품이란(人有厥性)
천리에 근본을 두는 것이다(本乎天理).
애초에는 선하지 않은 이 없어(初無不善)
어리석고 지혜로운 구별 있는가(孰愚孰智)?
이를 통해 알 수 있네 성현이라도(乃知聖賢)
우리들과 동일한 사람이란 걸(與我同類).
선한 성품 구하면 얻고(求之則得),
구하지 않을 때는 잃고 마네(不求則失).
①관건이 전적으로 내게 있으니(其機在我),
어찌 감히 노력하지 않을 수 있나(敢不自勖)
성탕은 날로 덕을 새롭게 했고(成湯日新)
②공자는 발분(發憤)하여 먹길 잊었네(仲尼忘食).
③문왕은 쉬지 않고 노력하였고(文王亹亹)
④백우는 부지런히 힘을 썼도다(伯禹孜孜).
더구나 이 몸은 후학으로서(矧余後學)
뜻은 크나 힘은 매우 미미하지 않나(志大力微)?
느긋한 마음 한 번 먹게 되면(一墮悠悠)
도에 이를 기약을 할 수 없네(造道可期).
우물 파되 샘의 근원 찾지 못하면(井不及泉)
아홉 길을 팠더라도 소용이 있겠나( 九仞奚益)?
학문하되 성인되길 추구 않으면(學不希聖)
스스로 선을 긋는 행위라 하네(是謂自畫).
⑤그만두려 하여도 할 수 없음은(欲罷不能)
안연이 있는 힘을 다함이었네(顔氏之竭).
⑥짐 무겁고 갈 길은 멀다고 한 건(任重道遠)
증자의 독실한 자세였어라(曾氏之篤).
나는 예전 성인을 스승 삼아서(我師古人)
죽음에 이르도록 노력하겠네(死而後已).
저분들은 대체 어떤 사람이었나(彼何人哉)?
노력하면 그 경지에 도달하리라(爲之則是)
[주-1] 성탕(成湯)은 …… 했고 : 은(殷)나라 탕 임금의 목욕 그릇에 새긴 명(銘)에
“진실로 어느 날에 새로워졌거든 날로 날로 새롭게 하고 또 새롭게 하라.
〔苟日新, 日日新, 又日新.〕”라고 하였다. 《大學章句 傳2章》
[주-2] 중니(仲尼)는 …… 잊었고 :
공자가 스스로를 두고 “터득하지 못하면 발분하여 끼니도 잊고 터득하면
즐거움에 근심을 잊어 늙음이 다가오고 있는 줄도 모른다.
〔發憤忘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라고 하였다. 《論語 述而》
[주-3] 문왕(文王)은 …… 노력하였고 :
《시경》 〈문왕(文王)〉에 “힘쓰고 힘쓰신 문왕께서는, 아름다운 명예가 그치지 않았도다.
주나라에 베풀어 주시기를, 문왕의 자손들에게 하셨도다.
〔亹亹文王, 令聞不已. 陳錫哉周, 侯文王孫子.〕”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주-4] 백우(伯禹)는 …… 썼도다 :
백우는 하(夏)나라 우(禹)로, 순(舜) 임금 때 작위(爵位)가 백(伯)이었다.
순 임금이 좋은 말을 아뢰라고 하자,
우가 “저는 날마다 부지런히 힘쓸 것만을 생각합니다.
〔予思日孜孜〕”라고 하였기 때문에 한 말이다. 《書經 益稷》
[주-5] 그만두려 …… 다함이었고 :
안연이 공자의 높은 학문적 경지를 존경하여 자신의 힘을 다해 노력한 것을 가리킨다.
안연이 “선생님께서는 차근차근 사람을 잘 이끌어, 나를 문으로써 넓혀 주시고
나를 예로써 단속해 주신다. 그만두고자 해도 그만둘 수가 없어서
나의 재능을 다하고 나니, 마치 우뚝 서 있는 바가 있는 듯하다.
비록 따르고자 하지만 따를 길이 없다.
〔夫子循循然善誘人, 博我以文, 約我以禮. 欲罷不能, 旣竭吾才,
如有所立卓爾. 雖欲從之, 末由也已.〕”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論語 子罕》
[주-6] 짐 …… 자세였어라 :
증자가 “선비는 넓고 굳세지 않아서는 안 되니, 짐이 무겁고 갈 길은 멀기 때문이다.
인으로 자기의 짐을 삼으니 또한 무겁지 않겠는가.
죽고 나야 그치니 또한 멀지 않겠는가.
〔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 仁以爲己任, 不亦重乎? 死而後已, 不亦遠乎?〕”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泰伯》
ⓒ 한국고전번역원 | 조순희 (역) | 2013
이하[문화일보] 박석 교수의 古典名句 ‘井不及泉’의 글.
井不及泉 九仞奚益 學不希聖 是謂自畫
(정불급천 구인해익 학불희성 시위자획)
우물을 파는데 샘에 이르지 못하면
아홉 길을 판들 무슨 쓸모가 있으랴.
배움의 길에 성인의 경지를 바라지 않음은
스스로를 한정 짓는 것이리라.
조선 중기의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이 27세 새해 아침에 지은 원조오잠(元朝五箴)의 끝부분에 나오는 구절이다. 원조오잠은 그리 길지 않지만 방대한 주자학의 핵심을 잘 간추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구구절절 조선 선비의 드높은 기상과 굳센 의지를 잘 드러내고 있는 명문이다. 특히 우물을 파기 시작했으니 반드시 샘이 솟아날 때까지 파겠다는 결연한 의지와, 공부를 시작했으니 성현의 경지에 오르겠다는 원대한 포부는 숙연함을 자아낸다. 이언적은 벼슬의 길과 학문의 길을 병행하는 삶을 택했는데,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올곧은 충언 때문에 많은 고초를 겪다가 결국 북녘의 귀양지인 평안도 강계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춥고 외로운 귀양살이 중에서도 쉬지 않고 학문에 전념하여 큰 업적을 남겼고, 그의 사상은 퇴계 이황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후대에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황과 더불어 사림오현(士林五賢)에 추앙되었으니 성현의 반열에 들겠다는 젊은 날의 포부를 성취한 셈이다.
해가 바뀌면 많은 사람이 원대한 포부를 품고 야심 찬 계획을 세운다. 젊은 날에는 비록 작심삼일에 그칠지라도 무언가 꿈을 꾸고 계획을 세우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대충 사는 쪽으로 기울어지기 쉽다. 꿈을 잃어버린 삶은 슬프다. 거창하거나 원대한 꿈이 아니어도 좋으니 새해를 맞이하여 나이와 처지에 맞게 자신만의 꿈을 가져 보자. 그리고 우물을 파기로 했으면 반드시 샘물에 닿을 때까지 파겠다는 선현의 굳센 의지를 귀감으로 삼아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작은 걸음이라도 꾸준히 나아가 보자.
상명대 교수
[출처] 우물 파되 샘의 근원 찾지 못하면(井不及泉)|작성자 몽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