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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유유자적 등산여행클럽 원문보기 글쓴이: 무념무상
부에노스아이레스 오월광장의 모습. |
아르헨티나의 독립을 선언한 5월 혁명(1810년 5월 25일)을 기념한 5월의 탑과 그 광장에서 군부 독재의 인권 탄압으로 실종된 사람들의 안부를 기다리는 ‘5월 광장의 어머니들’이 농성하고 있는 가설 천막을 지나, 5월의 거리를 산책하다가 만난 카페.
그 카페는 벽면에 걸려 있는 빛바랜 사진들, 오래된 신문과 낡은 책 속에서만 보았던 낯익은 얼굴들 그리고 구석자리에 앉아서 춤을 추거나 담소를 나누는 낯선 얼굴의 밀랍인형들로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재촉하고 있었다.
■세기의 전환 꿈꾼 장소는 카페였다
오랜 역사와 많은 사연을 간직한 카페 토르토니의 내부. |
프랑스 이민자 토안(Touan)이 1858년 파리의 ‘이탈리아 대로’에 있었던, 세기말 문화엘리트들이 만나던 곳 이름을 그대로 빌려온 이 카페의 시간은 19세기 말로 돌아가 있는 듯했다.
세기말 파리가 상류층에게는 대량 소비로 부의 능력을 과시하는 가장 행복하고 좋은 시기였듯이 부에노스아이레스도 대초원을 소유한 소수의 대농장주들에게는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최고의 시기였다. 당시 이민자들이 소수 대농장주의 절대 권력 속에서 억압받고 살았듯 그렇게 살아가면서 토안은 문화엘리트들이 세기의 전환을 일으켜주기를 바라며 파리의 카페 이름을 빌려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 희망은 프랑스 이민자 티노커칫(C.Curutchet, 1828~1925년)이 이 카페를 사들이고, 건축가 A.크리스토퍼슨(Christophersen, 1866~1946년)이 디자인하여 1898년 현재 자리로 옮겼을 때부터 피어난다.
카페 토르토니의 지하에 몰려든 예술가들은 프랑스 파리의 그 카페에서 세기말을 세기의 전환기로 바꾼 문화운동이 있었음을 이미 알고 있기나 한 듯 ‘예술과 문학 그룹(Agrupacion de Gente de Artes y Letras)’을 결성한다. 이어서 1926년 5월 라 페냐(La Pena, 슬픔이라는 뜻)도 결성하지만 1943년 해체되었다.
■‘광복동 다방’을 떠올렸다
카페 토르토니 바로 뒷길에서 만난 인상 깊은 그라피티. |
카페 토르토니에서 과거로 가는 시간여행을 하며 보았던 예술가들의 카페는 바다를 가로질러 내 고향 부산의 광복동 거리로 날아간다. 1970, 80년대 그 거리는 다방들- 돌 다방, 백조다방, 심지 다방, 에덴 다방, 왕 다방, 중앙 다방과 음악실들- 무아, 미화당, 아카데미, 오아시스, 전원, 칸타빌레, 클래식, 필하모니 그리고 주점 ‘별들의 고향’과 양산박 등이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그 거리에서 7080세대(대략 1950~1970년 사이에 출생하여 1970~80년대에 20대를 보낸 사람들)들은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부 독재 속에서 생존하기 위하여 뭔가에 미쳐갔다. 다방에서 시화전이나 그림 전시회를 둘러보거나 고전음악이나 대중음악을 감상하거나 술을 마시면서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거나 하면서 그 세대는 그렇게 미쳐갔다.
12·12사태로 군사반란을 일으킨 신군부세력이 1980년 11월 14일 ‘건전언론 육성과 창달’을 위한 언론 통폐합으로 정기간행물 238종의 발간을 취소하여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자 ‘멍청(문학청년을 줄인 문청을 뜻하는 말)이’들은 하나둘 깨어나기 시작했다. 무크지(잡지 Magazine와 단행본 Book의 합성어) ‘지평’(1983년 4월 창간)이 세상에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제 어디서 꿈꾸고 춤출까
그로부터 36년이 지나 마시던 커피잔을 내려놓을 때, 카페 토르토니는 여전히 160년 전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 카페는 예술가들이 세기의 전환을 이루진 못했지만 회원들, 작가, 화가, 음악가, 기자들 등이 모이는 지역의 사랑방에서 문화예술가와 사상가들이 세계의 전환을 이루는 대화의 장소로 바뀌었다.
스페인 철학사상가로 널리 알려진 오르테가 이 가세트(Ortega y Gasset, Jose, 1883년 5월 9일~1955년 10월 18일)도 조국의 내전(1936~1939년)을 피하려고 아르헨티나로 망명하여 되돌아갈 때까지 이 카페에서 저술 작업을 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물리학자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년 3월 14일~1955년 04월 18일), 소설가 보르헤스(J.L.Borges, 1899년 8월 24일~1986년 6월 14일), 피아니스트 루빈스타인 (Arthur Rubinstein, 1887년 1월 28일~1982년 12월 20일) 등 유명 인사들이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방문하면 반드시 거쳐 가는 카페로 널리 알려진다.
카페와 다방, 문화예술가들은 서로 다른 이름의 비슷한 공간을 만남의 장소로 삼아 일상의 반란을 꿈꾼다. 카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문화예술과 사상의 변환을 꿈꾸는 공간에서 지금은 그 꿈을 향한 휴식의 공간으로 남아 있다. 다방은 부산에서는 문화의 불모지를 옥토로 변화시키려는 모임의 공간에서 지금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160년 세월을 간직한 카페 토르토니에서는 커피를 마시며 그 역사의 흔적을 되돌아볼 수 있지만 40년이 채 되지 않은 다방에서는 기억의 자취마저 사라져 버린다. 왜 우리는 역사의 흔적을 애써 지우려고 몸부림치는 것일까?
민병욱·부산대 국어교육과 교수 bmw@pusa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