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
-극지에서
-연인아, 우리는 얼어붙은 문가에 서 있구나.1)
형이 무쇠솥에 마크탁2)을 삶는다. 창밖에 붉은 눈 내리고 있다. 풍경 칭칭 소리 내어 흔들린다. 익어가는 살갗의 냄새 맡는다. 우리는
겨우내 광야를 떠도는 한철 사냥꾼들. 털모자 그늘에 낯을 감춘 여행객들. 현지인식 별채에서 사냥한 고래 물범의 뼈를 들어내고. 겨우살이를 짜 만든 가구 틈에서의 생활. 수조 속, 가지런히 담긴 짐승이 짖는다. 그것은 올해 가장 추운 날
형이 호수 둘레에서 주워온 알 속에서 태어난 것. 짐승은 겨우내 펄펄 검고 찬 영혼을 뱉다가. 이듬해 봄이 오면 늙은 몸을 토한 뒤 죽는다고 한다. 짐승의 인간만 한 깃털이. 가슴지느러미가. 네 쌍 팔다리와 수만 개 겹눈이 햇빛을 받아 찬란 반짝이고 있다. 모두 형과
내가 길러낸 것들이다.
간밤에
쌓인 눈처럼. 붉고 깨끗한 꿈을 보았다고 형은 말했다. 우리는 내려다보고 있었고. 우리의 발밑에 피투성이 짐승이 있었다고. 그것이 모든 이빨을 허물고 꺼낸 몸을. 색색 괴괴한 모형을 우리가 다 봐버렸다고.
「꿈이라서 다행이야」 짐승에게 귀한 것을 먹이며 형은 중얼거렸고.
「꿈같은 거 영원히 꾸지 않았으면 좋겠어」 덧붙였는데
꿈속에서 우리는
생면부지 타인이었고
기록되는 여백이었고
모국의 음식을 먹었고
모국의 뜻대로 살았다
고 한다.
넓디넓은 꿈의 차양
반투명
유리로 이루어진
수조 속에 담긴 물이 얼어가고 있다. 사각사각. 호수의 얼음과 얼음 둥둥 조우하고 서로를 그루밍하는 소리. 파편과 잔여. 날마다
호수의 수위는 차오르고. 짐승은 꿈의 성조로 짖고. 형과 나는 때때로 흘러가는 것을. 고정되는 것을. 그러한 모양과 동작을 이해한다.
보이지 않아도
안다. 창밖에 붉은 눈 내리고 있다. 벽난로의 잉걸불 깨끗이 흩날린다. 사각사각. 무언가 타들어 가는 것이 있고. 한철의 성교 끝나고. 다 벗은 우리는 그 앞에 앉아 몸을 녹여보려고. 보려고 한다.
Low fidelity
보인다.
1) 제오르제 바코비아, 「겨울 풍경Tablou de iarnă」 변용
2) 고래의 껍질과 지방으로 만드는 이누이트의 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