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나무의 교훈
창조주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식물 중에서 생명나무와 선악과나무를 구별하였다.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나무는 무화과나무, 올리브나무, 포도나무 등이다. 그러면 선악과나무는 어떤 나무일까? 흔히 선악과나무의 열매를 빨간 사과처럼 나타내는 데서 사과나무라는 설이 있는데 낭설에 불과하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고 알몸인 것이 부끄러움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다.(창세 3, 7) 무화과나무가 상징하는 의미는 여러 가지이다. 그중에서 마르코 복음 11장과 루카 복음 19장에 나오는 무화과나무의 의미를 되짚어본다.
무화과나무는 율법(하느님의 말씀)을 상징하고 있다. 마르코 복음 11장(마태오 복음 21장)에서 예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자 말라 죽고 말았다고 한다.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며 왜 말라 죽게 했을까?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죽은 무화과나무와 같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와 예루살렘 성전을 대비하고 있다. 말라 죽은 무화과나무는 부패와 타락의 소굴로 구원의 기능을 잃어버린 예루살렘 성전을 상징하고 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성전입니다.”(2코린 6, 16)라고 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복음)을 세상에 전하여 신앙의 열매를 맺는 거룩한 성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역할을 하지 못하면 죽은 무화과나무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루카 복음 19장에는 자캐오와 무화과나무를 등장시키고 있다. 자캐오는 당시에 세관장이었다. 당시에 세리는 천대받는 하찮은 직종이었다. 자캐오는 키가 작아서 보이지 않아 나무에 올랐다고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으리라. 사람들이 죄인처럼 여기는지라 사람의 눈을 피해서 예수님을 보기 위해 무화과나무에 올라갔다고 보는 신학자도 있다.
무화과나무 잎에 가려 세인들의 이목을 피하면서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여기서 무화과나무는 역시 율법을 상징하고 있다. 나뭇잎에 가렸다는 것은 율법을 거스른 죄인임을 자처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나무 위에 숨어 있는 자캐오를 부르시자 나무 아래에 내려왔다는 것은 율법 아래에 놓였다는 것이며 구원의 대상이 됐다는 것이다.
우리가 거룩한 성전을 이루지 못하면은 잎만 무성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일 수도 있다. 그러면 열매를 맺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성전이 물건을 팔고 사는 시장이나 환전하는 거래소가 아니라 말씀을 선포하는 거룩한 장소가 되어야 하는 것처럼 자신을 복음화하여 성령께서 깃들게 하며 성령의 감화로 열매 맺는 무화과나무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