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의 「날개」를 읽고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자꾸나.
한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이상의 「날개」 마지막 3줄이다.
나는 이 소설을 다 읽어 갈때 쯤 무서웠다.
그리고 위의 3줄이 나왔다.
날자고, 한번만, 한번만 더 날아보자고.
간절하게 부탁한다.
이상의 「날개」는 주인공의 독백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전개된다.
이런 주인공의 내면의 세계를 중심으로 밖을 바라보면서 한 인간이 현실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채 살아가는 모습을 매우 섬세하게 그려낸다.
작품 속 주인공은 자신의 삶은 스스로 선택하지 못한다. 그는 아내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며, 자신의 방 안에 갇혀 무기력한 하루를 반복한다.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단순하게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자아를 잃어버린 한 인간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상황을 바꾸려고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현실을 담담히 받아드린다. 주인공은 어색한 아내의 행동에 의문을 품고 그녀가 자신에게 숨기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후 집을 나와 거리를 돌아다니며 세상과 마주하지만,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아내에게로 돌아선다. 그는 다시 집을 나와 백화점 옥상에 올라가 하늘을 바라보며 소설이 끝난다.
‘날개’ 이 소설에서는 일반적으로 자유와 희망,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 날개는 잃어버렸거나. 아직 펼치지 못한 가능성으로 비유한다. 그는 현실에서는 아무런 힘도 가지지 못했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자유를 갈망하고 새로운 삶을 가지고 있는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자꾸나.
한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이런 주인공의 외침은 단순히 현실을 극복했다기 보다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지로 들렸다. 비록 실제로 하늘을 날지는 못하지만, 다시 날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만으로도 인간은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그가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라는 생각이든다.
이상이 만들어 낸 문장은 낯설고도 아름답다. 그의 문체는 직선으로 흘러가지 않고, 의식의 흐름을 따라 굽이치며 독자를 끝없는 사유의 길로 이끈다.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들이 이어지지만, 그 모호함 속에는 오히려 인간의 복잡한 감정이 더욱 선명하게 살아난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은 명확한 언어보다 흐릿한 이미지 속에서 더 진실하게 드러난다는 사실을 이 작품은 보여 준다. 「날개」를 읽는다 라고 하기엔 너무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느끼는 쪽이 이상의 「날개」를 읽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작품 속에서 반복되는 무기력과 방황은 시대를 넘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남긴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살아가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는 쉽게 돌아보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주인공의 방황은 결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순간,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허함에 잠식되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날개」를 읽으면서 수없이 전 문장을 되돌아 봤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 어려웠다. 이상은 이야기의 결말을 명확하게 제시하기보다는 나를, 나의 내면을 돌아보게 만든다.
책을 덮고 난 뒤에도 작품 속의 침묵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침묵은 오래된 잔향처럼 마음속에 머물며 삶과 존재에 대한 질문을 남겼다. 우리는 모두 보이지 않는 방 안에서 살아가기도 하고, 때로는 세상을 향해 날아오르고 싶다는 열망을 품기도 한다. 「날개」는 그 모순된 인간의 모습을 가장 아름답고도 처연한 언어로 그려 낸 작품이며, 시대를 넘어 지금도 독자의 마음속에서 조용히 날개를 펼치고 있는 깊은 울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주인공에게 한마디만 전해주고 싶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자꾸나.
한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진짜 마지막으로 한번만, 한번만 더 날아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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