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서 여기에 얼마나 투자했데요.”
“20억 쯤 되는 모양이예요.”
“그럼, 임대료도 꽤 되겠네요.”
“그래서, 임대료 결정을 못하고 이번 년말 까지 임시로 해보고 그때 가서 결정하재요.”
“아무리 싸게 한다해도 연리 2프로만 잡아도 한 달에 400만원인데, 만만치 않네요”
나의 질문에 사회자는 곤혹스러워했다.
아무리 시에서 좋은 의도로 투자를 하고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마을 사람들을 위한 일이라지만 투자금에 대한 회수는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재정 회계는 미루어서는 않되기 때문이다.
개떡 같은 시의회도 있으니 어쩌지 못할 것이다.
년 초에 아파트 게시판에 ‘논골담길 협동조합 조합원’ 모집이 있어서 전화했더니, 며칠 후 조합원 발기대회를 한다고 기다리고 했는데 그때는 아무 소식도 없다가,
몇 달이 지나 묵호항 주변 곳곳에 프랭카드가 걸렸고, 또 다시 조합원 모집을 한다는 거 였다.
뭐지, 하고 의아심을 품고 다시 한번 연락을 했더니 설명회를 한다기에 그 날 가서 내가 한 질문들이었다.
석연치 않은 것은 그거 뿐만 아니었다. 벌써 몇 사람이 모여 발기인이 되고 조합장과 사무장 인선을 마친 뒤였다.
‘그럼, 지들 끼리 해먹으면 되지 왜 또 조합원 모집인가.’
꿍꿍이 속도 있는 것 같이 보였고, 도무지 될 거 같이 보이지 않았다.
시에서 팬션 방 네 개와 식당과 카페를 지어서 지원하고 마을 사람들끼리 협동조합을 만들어 마을 소득 사업으로 하라는데 도무지 답이 나올 거 같지 않았다.
묵호항 산동네를 위해 시에서 대대적인 예산을 들여 보수작업과 환경미화 작업을 한 것은 고마운 일인데 아무래도 이번 일 만큼은 헛수고 한 거 같기도 하다.
내가 협동조합 모집에 전화를 한 이유는, 단 하나이다. 내 스스로 자칭 아나키스트라고 자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정부,국가,자본)의 간섭으로는 이 사회 또는 생산 단위는 절대로 건강한 조직이 될 수 없다고 믿는다.
현대 국가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정부와 야합한 자본의 막강한 권한이 인민들을 괴롭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스스로 인민들을 위한다고 하는 법과 제도 역시 사실은 인민들을 위한다기 보다 정치적 산물인 경우가 크다.
의회정치는 정당간의 야합과 타협의 場이다. 아니 의회정치의 탄생지 영국에서 보더라도, 왕과 귀족과 교회와 자본가와의 이해관계로 인해 발달한 것이 우리가 철석같이 믿고 있는 민주주의 의회인 것이다.
나중에 선거권을 노동자와 여성들에게 양보는 했고 노동자당이 만들어졌다고는 하지만, 그것 역시 타협이고 야합인 것이다.
우리나라에 지방자치가 들어오고 지방의회 의원들과 자치단체 장을 뽑는 일이 몇 년 마다 벌어지는데, 한 마디로 하면 동네 양아치들의 향연이고 전과자들을 만들어내는 산실이 되고 만다.
농수협 조합장 선거는 썩어도 너무 썩었다.
한마디로 선거로 대변되는 민주주의는 이미 수명을 다한 늙은 개에 불과하다.
차라리 독재 시대로 돌아가서 국회의원이건 단체장이건 대통령이 다 임명하고 형식상으로 민주주의를 만들어 놓는 것이, 효율성에서는 나을 것이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거의 완성 되었으나, 그것이 더 인민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자본이 들어 설 자리를 더욱 넓혔을 뿐이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국가와 자본의 로맨스 시대가 열린 것이다.
수출 만이 우리의 살길이라 여기고 비약적으로 발전했으나 인민들의 삶은 겉으로 보기에는 나아진 것 처럼 보이나 더욱 피폐해졌다.
법과 제도가 누구의 편인가를 현대국가는 너무나 선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현대국가의 이런 딜레마를 분배로 해결 했는데, 그것 역시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
분배의 재원 조차 세계 무역을 통한 제 3 세계에 대한 착취에 다름 아닌 것이다.
과거 식민지 시대의 착취와는 합법적인 것 처럼 위장을 하기는 했으나 근본적인 것에서는 변함이 없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정부로 부터의 법과 제도가 아닌, 인민들 스스로 결정하는 자치와 스스로의 경제적 시스템을 갖춘 자립이다.
그런 의미에서 협동조합은 거기에 충족하는 조건인 셈이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 희망적인 협동조합이 존재하고 잘 운영되고 있다.
부탄이라는 나라는 왕이 통치하는 나라이지만, 동네에 전봇대 하나 세워도 마을 사람들의 동의가 없으면 절대 불가하다.
왕이 민주주의 하자고 해도 인민들이 왕은 절대 물러나서는 안된다고 하는 나라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되었다는 우리나라에서는 밀양 사람들이 그렇게 반대하는 송전탑을 세우고야 말았다.
그것도 반대하는 마을 사람들을 범죄자로 말들고 서 말이다.
애국심을 앞세우는 나라치고 올바른 국가는 없다. 그놈의 실체도 없는 애국심이 도대체 뭔데, 오히려 애국심은 순 기능 보다 역기능이 많다.
못된 독재자가 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기도 한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애국심으로 인민들을 바보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웃기는 일은, 국경일에 국기 계양을 일 주일 동안 한다는 거다.
아버지 박정희의 통치 기반을 확고하게 하기 위해 수 도 없는 애국자와 빨갱이를 만들었듯이, 딸 역시 아버지를 본 받고 싶으나, 이미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된 나라에서는 국기 계양으로 그 한을 풀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번 논골담길 협동조합을 보고 실망하고 말았다.
운영은 스스로 한다고 해도 지방정부의 자본과 감시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도 없고, 운영 또한 일부 세력들의 사익에 대해 의심을 해 봐야 했다.
내가 썼던, ‘명덕호 이면수 값의 의미’ 와 ‘마른 오징어 값의 비밀’에서 묵호항 수산물 값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는지 밝혔다.
올바른 공동체의 의미는 바로 여기에 숨어 있다. 자발적인 공동체는 스스로의 경제 시스템에 의해 스스로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묵호항 어판장 경매장에서 벌어지는 수산물 값의 의미와 묵호항 산동네에서 말려졌던 오징어 값에서 무엇이 진정한 민주주의 인지 어떤 경제적 시스템이 우리들 스스로를 돕는 것인지 알 수 있다.
유럽 국가들이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을 약탈하면서 유럽인들은 그곳에 존재했던 아름다운 공동체와 경제 시스템을 완벽하게 파괴했다.
그것이 오늘날 제 3세계가 굶주리고 혼란스런 이유다.
최초로 사회주의 국가를 완성한 소련 조차도, 농민들에게 토지를 무상으로 나누어 준다고 거짓말을 하고 그들을 전부 협동농장으로 몰아넣었다.
그것 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러시아 농민들의 농업 공동체 ‘미르’ 를 철저히 때려 부셨다는 것이다.
공산주의 조직을 위해서는 인민들의 자발적인 조직은 방해가 되었다. ‘미르’는 지금은 러시아 우주기지의 이름으로 쓰이고 있다는 것이 기가 막힐 노릇이다.
공동체 파괴는 좌우가 공범인 셈이다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 박정희 정부의 경제 성장 시대에 수 많은 한국형 프로레타리아가 탄생되었다고 다른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다.
비록,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먹고 살기 위해 이곳 묵호항으로 왔지만, 아름다운 그들만의 경제공동체를 완성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