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톳길이 걷고픈 지네
◇ 나무에서 황톳길로 뛰어내린 지네
지난달 27일 아침, 밤까지 비가 내려 황톳길이 미끄러워 보였다. 자칫 미끄러질 위험도 있고 발에 물을 묻히기도 싫어 대천공원 장산산림욕장 황톳길 옆으로 걷던 중 황톳길을 걷던 주민이 기겁을 하며 “지네다”라고 소리쳤다.
바로 옆 황톳길 위 나무에서 황톳길로 지네가 뛰어내린 것이다. 황톳길을 걸어 더 건강해지려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지네는 발이 많아서 질퍽한 황톳길에서 스텝이 꼬여 잘 움직이지를 못했다. 주변 주민들이 “지네는 독이 있어 물리면 큰일나”라고 말하며 이런저런 경험담을 늘어놓았다. 어떤 주민은 “저거 빨리 치워야 하는데”라며 애만 태웠다.
이때 등장한 이가 바로 한마당음악세상동호회 김시몬 작곡가다. 어디선가 나무막대기를 들고 와서 지네 몸통을 들더니 장산사 돌담 쪽 풀숲으로 ‘휙’ 던져 버렸다. 그러자 지켜보던 주민들이 “지네가 다시 황톳길로 들오면 어쩌냐”며 걱정 섞인 말을 주고받았다. 대천공원 황톳길이 숲속에 있어 황톳길을 걷는 주민들이 초여름 왕성한 활동을 하는 지네를 주의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 사랑방에서 지네와의 합숙
지네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주 재미있는 동물이다. 많은 발이 스르르 움직이며 앞으로 나가는 폼이 예술인데 특히 발 동작이 그려내는 묘한 곡선은 아주 우아하다. 어찌 저 많은 발을 다 통제하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지네 하면 옛날 대밭 앞에 있던 후배 집의 사랑방 추억이 떠오른다. 여름이라 방문을 열고 자다 뭔가 팔 위를 기어다니는 느낌에 본능적으로 한 손을 가져가 슬쩍 문대니 잠결이었지만 물컹한 감촉이 느껴졌다. 아침이 되어 그 기억을 더듬어 잠자리 주변을 살펴보니 지네 한 마리가 꽈배기가 되어 죽어 있었다.
놀란 가슴에 후배에게 지네를 보여주며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더니 후배 놈은 지네를 획 쳐다보고는 “그리 크지 않네요”라며 아주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지네와 지네보다 더 쿨한 후배 반응 덕에 아침부터 서늘한 여름을 맞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