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雞林歷史紀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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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역사기행 후기방 고창 모양성 한바퀴
浮雲 추천 0 조회 7 26.07.05 04:12 댓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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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6.07.05 04:37

    첫댓글 고창읍성(高敞邑城)은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평산성(平山城, 평지와 산지를 이어 쌓은 성)으로, 당시의 성곽 문화와 국방 시스템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사적 제145호)이다.​'모양성(牟陽城)'이라는 별칭으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읍성 중 하나로 꼽힌다.

  • 작성자 26.07.05 04:39

    고창읍성은 조선 단종 원년(1453년)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전라도 연해지역의 19개 현의 백성들이 힘을 모아 축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과 동학농민혁명 등을 거치며 성내 건물이 많이 소실되었으나, 성곽 자체는 거의 파손되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 현재까지 옛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다.

  • 작성자 26.07.05 04:42

    고창읍성은 자연 지형을 최대한 살려 거칠게 다듬은 자연석으로 튼튼하게 쌓아 올렸다.
    성벽 둘레 약 1,684m, 높이는 4~6m에 이른다.
    ​방어시설로는 동·서·북쪽에 3개의 성문이 있는데,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앞을 둥글게 감싸 안듯 쌓은 옹성(甕城)이 설치되어 있다.
    또한, 성벽 곳곳에 적을 측면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튀어나오게 만든 치성(雉城)이 6곳 마련되어 있어 군사학적으로 짜임새 있는 구조를 자랑한다.

  • 작성자 26.07.05 04:44

    고창읍성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여인들의 민속놀이인 답성놀이(성밟기 놀이)이다.
    머리에 돌을 하나 얹고 성을 한 바퀴 돌면 다릿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며, 세 바퀴 돌면 극락왕생한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성을 다 돈 후에는 머리에 이고 있던 돌을 성문 입구에 쌓아 두는데, 이는 유사시에 석전(石戰, 돌을 던져 싸우는 전투)용 무기로 쓰기 위한 지혜였다.

  • 작성자 26.07.05 04:45

    ​이 풍습은 단순한 기원을 넘어 겨울철 얼어붙었던 성벽이 봄에 녹으면서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수많은 사람의 발길로 성벽을 밟아 단단하게 다지기 위한 국방의 지혜가 담긴 민속놀이이다. 매년 가을 열리는 '고창모양성제' 때 이 답성놀이가 대대적으로 재연된다.

  • 작성자 26.07.05 05:34

    북문은 읍성의 정문 역할을 하는 대표적인 성문으로, 공식 명칭은 ‘공북루(拱北樓)’이다.
    '공북(拱北)'이라는 이름은 ‘공손하게 손을 모아 북쪽의 임금(천자)을 향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조선 시대 지방관들이 북쪽에 있는 한양의 왕을 향해 충성을 다짐하고 예의를 표하던 유교적 가치관이 성문의 이름에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 작성자 26.07.05 05:35

    공북루는 조선 시대의 일반적인 성문들과 비교했을 때 매우 독특한 건축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대다수 읍성의 정문은 돌을 무지개 모양으로 둥글게 쌓은 '홍예문' 형태를 띠지만, 공북루는 거칠게 다듬은 자연석 위에 수평 부재(돌이나 나무)를 가로질러 사각형 형태로 통로를 만든 '평거식(平巨式)' 구조를 취하고 있다.

  • 작성자 26.07.05 05:36

    2층 구조의 문루(누각)를 지탱하는 기둥 전면(바깥쪽)에는 자연석 주춧돌을 썼지만 배면(안쪽)은 높다란 화강석 돌기둥(석주)을 세우고 그 위에 둥근 나무 기둥을 얹었다. 안쪽에서 보면 누각 아래가 탁 트여 있어, 성문이라기보다는 일반적인 정자나 누각 같은 개방감과 편안함을 준다.

  • 작성자 26.07.05 05:37

    성문 자체는 두터운 성벽 없이 누각과 여닫이문으로만 이루어져 있어 방어에는 다소 불리해 보이지만, 평상시 백성들이나 마차가 드나들기에는 그지없이 편리한 구조였다.

  • 작성자 26.07.05 05:38

    ​성문 자체의 방어적 취약함을 보완하기 위해 북문 바깥쪽에는 반원형태로 성벽을 한 겹 더 둘러쌓은 옹성(甕城)이 단단하게 버티고 있다.
    ​적으로부터 성문을 직접적으로 보호하는 역할을 하며, 적이 성문 안으로 진입하려면 반드시 이 좁은 옹성 내부를 거쳐야 하므로 옹성 위(여장)에 숨은 군사들이 위에서 아래로 적을 포위해 공격(성가퀴의 총안 활용)하기에 매우 유리한 구조이다.

  • 작성자 26.07.05 05:39

    ​조선 인조 24년(1646년)에 대대적으로 세워졌으며, 이후 기록에 따르면 세 차례에 걸쳐 중수(보수)되었다는 사적기와 상량문이 남아 있다. 세월이 흐르며 일부 유실되거나 붕괴하였던 옹성 등은 1990년대에 철저한 고증을 거쳐 해체·보수 및 복원되어 지금의 완전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 작성자 26.07.05 05:40

    ​고창읍성의 대표 민속놀이인 '답성놀이(성밟기)'를 시작할 때도 보통 이 북문(공북루) 앞을 기점으로 삼아 성벽을 돌기 시작한다. 옛 선조들의 국방 지혜와 건축 미학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고창읍성의 핵심 요충지이다.

  • 작성자 26.07.05 05:41

    고창읍성의 동문은 공식 명칭으로 ‘등양루(登陽樓)’라고 부른다.
    ​북문(공북루)이 관아와 가까운 행정·정치적인 정문 역할을 했다면, 동문인 등양루는 고창읍성에서 가장 지형이 높고 전망이 트인 동쪽 능선에 위치하여 군사적 요충지이자 고창읍성 문화의 핵심 공간으로 기능해 왔다.

  • 작성자 26.07.05 05:42

    ​'등양(登陽)'이라는 이름은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하는 누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동쪽에서 떠오르는 붉은 해의 기운을 가장 먼저 받아들이는 성문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어, 이름 자체로도 매우 활기차고 희망적인 느낌을 준다.

  • 작성자 26.07.05 05:43

    정문인 북문이 평지에 가까운 곳에 평거식(네모난 통로)으로 지어진 것과 달리, 동문 등양루는 지형이 위로 경사지기 시작하는 동쪽 산기슭 능선에 맞추어 축조되었다.
    ​북문과 마찬가지로 등양루 바깥쪽에도 반원형의 옹성(甕城)이 튼튼하게 둘러싸고 있어, 성문을 향해 접근하는 적을 사방에서 포위하여 격퇴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 작성자 26.07.05 05:44

    동문 바로 옆에는 성벽을 앞으로 돌출시켜 만든 '치성'이 위치해 있다. 이곳은 고창읍성 성곽길 전체를 통틀어 가장 시야가 넓게 트이는 조망 명소로, 성곽의 아름다운 곡선미와 고창 읍내 풍경, 그리고 저 멀리 노동저수지까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 작성자 26.07.05 05:46

    등양루는 답성놀이(성밟기)를 할 때 매우 중요한 의식이 치러지는 장소이다.
    ​여인들이 북문에서 출발해 머리에 돌을 이고 성곽길을 따라 동쪽 언덕을 올라오면 등양루에 다다르게 된다. 이때 등양루 문루(누각)에 올라 창문을 세 번 열었다 닫았다 하는 의식을 행하는데, 이는 한 해의 재앙과 질병을 쫓고 무병장수와 극락왕생을 비는 간절한 기원의 몸짓이었다.

  • 작성자 26.07.05 05:47

    고창읍성의 서문은 ‘진서루(鎭西樓)’라고 부른다.
    ​북문(공북루), 동문(등양루)과 함께 고창읍성을 이루는 3대 성문 중 하나로, 읍성의 서쪽 방어와 통행을 담당하던 중요한 관문이다.

  • 작성자 26.07.05 05:48

    '진서(鎭西)'라는 이름은 ‘서쪽의 왜구와 군사적 위협을 진압하고 평화를 지킨다’는 강력한 호국 의지를 담고 있다. 고창읍성이 호남 내륙으로 진입하려는 왜구를 막기 위한 전초 기지였음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명칭이다.

  • 작성자 26.07.05 05:49

    일부 고지도에는 서문 자리에 '고서문(古西門, 옛 서문)'이라 표기되어 있고 문루(누각)가 그려지지 않은 경우가 있다. 이를 통해 조선 중기~후기(18세기 경)의 어느 시점에 화재나 전란 등으로 문루가 소실되어 한동안 문틀만 남은 채 방치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성곽 전체를 체계적으로 정비하면서 고증을 거쳐 1976~1977년에 이르러서야 지금의 웅장한 ‘진서루’ 문루와 성벽의 제 모습을 완전하게 복원할 수 있었다.

  • 작성자 26.07.05 05:50

    진서루 역시 북문, 동문과 마찬가지로 문 바깥쪽에 반원형으로 성벽을 한 겹 더 두른 옹성이 설치되어 있다. 성문을 공격하려는 적의 진입 속도를 늦추고 사방에서 집중 사격할 수 있도록 설계된 조선 시대 성곽의 전형적인 방어 구조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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