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마니치 참역사 상편이 네마니치의 기원과 건국 초기의 패역질을 다뤘다면, 이 네마니치 참역사 중편은 네마니치 족속들이 어떻게 나라를 망치고 쇠락했는지를 다룬다. 또한 일부 몰지각한 무리들 사이에서 나도는 [네마니치 잔혹사]가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는지 그 배경도 설명한다.
스르비아의 왕 스테판 2세가 맏형 부칸을 처형하고 죽은 이후, 스테판 2세의 아들 라도슬라프가 스르비아의 왕으로 즉위했다. 라도슬라프 왕은 내전으로 피폐해진 자신의 나라를 생각하여 전쟁이나 모략질을 하지 않겠다고 포고했다.
한편 스르비아 왕은 지난 내전으로 인해 네마니치 왕가의 위상이 떨어진 것을 생각하여 음류시인들을 불러모아 네마니치를 찬양하는 이야기를 퍼뜨리게 했다. 그 시인들을 '네마니치의 어용시인'이라고 불렸는데, 그들 중 가장 유명한 이는 독일 바이에른에서 온 여시인 '크킹삼치' 였다. 그년은 네마니치의 후원에 힘입어 양피지에 네마니치의 역사를 기술하기에 이르렀다. 그 저술이 바로 현재 일부 몰지각한 이들 사이에서 떠도는 [네마니치 잔혹사]의 기원이었다.
크킹삼치는 스테판 2세 사후의 역사적 사실 일부에 자신의 망상을 잔뜩 쏟아부어 네마니치가 동유럽을 제패하는 허무맹랑한 시나리오를 짜냈다. 문제는 그 소설을 마치 역사적 사실인양 퍼뜨렸던 것이다. 그년의 소설이 양피지에 정리되기 전에 입을 타고 불가리아,헝가리,로마니아에 전파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화근이 되었다.
헝가리의 아스파드 왕가에는 스르비아의 라도슬라프 왕의 공주 즈덴카가 시집 온 상태였다. 그런데 스르비아가 헝가리를 쳐서 영토를 탈취하고 아스파드 왕가를 욕보인 내용의 [네마니치 잔혹사]가 전래되자, 아스파드 왕가는 격노했다. 그들은 즈덴카를 강제로 이혼시킨 뒤, 근본을 알 수 없는 하찮은 사내에게 재혼시켰다.
한편으로 아스파드 왕가는 부칸의 자식들을 선동하여 라도슬라프 왕에 대항하는 반란을 유도한 뒤, 스르비아의 내전이 격화되자 즈덴카를 옹립하는 전쟁을 선포했다. 2만이 넘는 헝가리-크로아티아 군이 스르비아로 진군하였고, 크게 상한 라도슬라프 왕과 부칸의 아들들의 군대를 쓸어버렸다. 그리고 라슈카를 포함한 스르비아 전역에서 분탕질을 벌였다.
결국 헝가리-크로아티아 군은 손쉽게 스르비아를 장악하고 즈텐카에게 왕위를 넘겨주었다. 라도슬라프 왕은 항복하여 왕위를 포기하기 전에 울화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항복하기 전에 부칸의 아들들을 잡아서 처형할 수 있었던 것이 행운이었을지, 불행이었을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즈텐카가 헝가리에 의해 옹립된 이후, 불가리아의 칼로얀 왕도 스르비아를 침공하였다. 이에 관한 불가리아의 연대기는 [네마니치 잔혹사]의 영향을 받아 불가리아를 극도로 미화한 역사소설로 구성되어 있기에, 사료로 받아들이기 곤란하다. 따라서 불가리아 연대기에 보이는 몇가지 역사적 사실들을 중심으로 불가리아의 스르비아 침공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네마니치가 내전을 일삼던 무렵, 불가리아의 칼로얀 왕은 '차르'를 자칭하며 그리스인들을 업신여겼고, 로마니아인들을 위협하였다. 그러나 로마니아의 위대한 보두앵 황제가 불가리아를 쳐서 그들의 오만함을 벌하였다. 수많은 병력을 잃고 수많은 성을 함락당한 칼로얀은 다뉴브강 이남의 영토를 할양하며 용서를 빌었고, 관대한 보두앵 황제는 그를 용서하였다.(따라서 동남부 유럽을 제패한 불가리아 대왕 미하일이 스르비아를 쳤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닌 것이다.) 이후 칼로얀 왕은 불가리아에서 나라를 재정비하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헝가리가 네마니치를 징벌하던 무렵, 칼로얀 왕은 크킹삼치의 연대기에서 불가리아 공주 토도르카가 스르비아 왕가사람들에게 농락당하는 이야기를 듣고 분노하였다. 그리고 헝가리군이 물러간 이후에 [네마니치 잔혹사]의 내용을 핑계로 스르비아를 침공하였다. 즉위한지 얼마 안 된 즈텐카 여왕에게 그들을 이길 힘이 있을 리 없었다.
1만명의 불가리아군은 라슈카를 순식간에 함락하였고, 즈텐카 부부는 달아났다. 네마니치를 위해 거짓 연대기를 퍼뜨리던 어용시인들은 달아나거나, 붙잡혀 죽임을 당하거나, 불가리아로 끌려갔다. 이때 어용시인 크킹삼치도 붙잡혀 끌려갔다.
불가리아 연대기의 서술과 달리, 불가리아군은 라슈카에서 여자를 겁탈한 뒤 잡아갔고 남자는 쳐죽였다. 하지만 그때문에 전후 스르비아에는 여자가 드물었고, 도망쳐서 목숨을 구한 남자들만 많았으므로, '남자를 겁탈하고 여자는 죽인다.'란 역설적인 표현이 생기게 되었다.
그런데 먼 동방에서 출몰한 타르타르 족속들이 불가리아 북방에 이르렀다는 소식이 퍼졌기 때문에, 불가리아인들은 네마니치를 끝장내지 못한 채, 전쟁을 끝내고 회군하였다. 그 사이 세력을 재정비한 라도슬라프 왕의 아들들이 즈덴카에게 반역을 저질렀다. 아무 기반이 없던 즈덴카는 결국 스르비아 왕을 포기하고 헝가리로 달아났다. 그렇게 해서 라도슬라프의 아들 브라니미르가 스르비아의 왕이 되었다.
브라니미르는 불가리아가 로마니아와 타르타르인들의 공세에 시달리는 것을 정세를 이용하였다. 그는 로마니아 황제에게 조공을 바치고 스스로 봉신임을 자청하여 로마니아의 호감을 샀다. 덕분에 그는 로마니아가 포악한 칼로얀왕을 징벌할 무렵에 함께 군대를 동원하여 라슈카를 탈환하고, 비딘과 니시를 공략하기에 이르렀다. 한때 스르비아군은 불가리아의 수도에 육박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불가리아와의 전쟁을 승리로 끝낸 마지막 전투에서 브라니미르는 전사했다.
그는 패역한 네마니치 왕가 사람들 중 그나마 왕같은 왕이었다. 어용시인 크킹삼치도 그의 활약 덕분에 해방되어 라슈카에서 저술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러나 스르비아와 네마니치의 짧은 번영은 브라니미르의 후계자이자 동생인 루카에 의해 끝장나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선조들과 마찬가지로 악랄한 악당의 피를 물려받았다. 그는 오랜 전쟁에 지친 백성들을 착취하여 그 고혈을 자기자신을 위해 써먹을 뿐 이었다. 또한 크킹삼치 등 어용시인들을 다시 불러모아 네마니치를 위한 거짓역사를 창작해냈다.
문제는 로마니아 황제 보두앵 2세께서 네마니치의 역사조작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었다. 황제는 일개 스르비아 귀족 나부랭이가 고귀한 황제를 참수했다는 내용에 진노하셨다. 그리하여 이탈리아,불가리아의 용병들과 기사들을 소집하여 네마니치를 징벌할 군대를 조직하고 스르비아로 진군하여 루카 왕에게 죄를 물었다.
무엄하게도 루카 왕은 황제를 영접하지 않고 흄으로 도망친 뒤, 자신을 호위할 무리들을 긁어모았다. 더 화가 난 황제는 스르비아 수도 라슈카를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인근의 네마니치 소유의 장원들과 열읍들을 짓밟아버리셨다.
황제의 1만 대군을 피해 스르비아 이곳저곳으로 도망쳐다니던 루카 왕은 마침내 흄의 페츠에서 황제의 군대에 따라잡히고 말았다. 루카 왕은 끝까지 용서를 구하지 않고, 고지에 진지를 구축하며 저항했다.
그러나 황제의 군대는 스르비아 왕이 이끄는 군대 전체보다 더 많은 기사들과 스르비아 군의 몇 갑절이나 되는 군세를 보유하고 있었다. 불가리아 궁수들과 경기병들을 앞세운 로마니아 군대가 스르비아 왕의 수비진을 공격하였다.
스르비아의 몇 안되는 기사들이 필사적으로 황제의 군대에 저항했으나, 이기적인 루카 왕은 전세의 불리함을 어느 누구보다 일찍 깨닫고는 지휘도 포기하고 줄행랑을 처버렸다. 덕분에 스르비아군의 중앙이 순식간에 무너졌고, 이에 그나마 버티고 있던 스르비아의 양익이 황제군의 협공에 무너져버렸다.
황제는 사로잡힌 스르비아 기사들에게 관용을 베풀어 석방시켰으나, 한편으로 루카 왕을 용서하지 않고 계속 추격하였다.
흄에서 참패하고 달아난 루카 왕은 성 안에 숨으려고 했으나, 어떤 성주도 이기적이면서 비겁한 루카 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루카 왕은 로마니아 황제에게 찾아가 용서를 빌어야 했다. 놀랍게도 황제는 관대하게도 루카 왕을 용서하시어 제타 백작령을 몰수하여 로마니아의 소속으로 삼는 수준에서 징벌을 끝내셨다!
그리하여 로마니아에게 멸망해도 마땅했던 네마니치 족속들은 스르비아의 왕 행세를 30년 넘게 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보두앵 2세의 군대가 스르비아에서 물러나자마자 루카 왕은 공손함을 벗어던지고 특유의 이기심을 들어냈다. 자신을 외면했던 귀족들을 숙청하고 백성들에게 막대한 세금과 노역을 강요하였다.
한편 스르비아에서 유일하게 바다를 접하던 제타가 로마니아의 영토가 되어, 스르비아인들은 생선을 비싼 값을 치르고 사먹게 되었지만, 루카 왕은 생선 장사도 독점하여 이익을 네마니치 왕가사람들과 나눠가졌다. 이에 스르비아 백성들의 원한이 쌓여갔다.
하지만 루카 왕은 로마니아 황제에게 아첨하거나 조공을 바치며 굽신거렸기 때문에 황제의 징벌을 면할 수 있었다. 로마니아의 보두앵 2세가 승하하고 그의 아우 앙리가 즉위한 뒤에도 루카 왕은 로마니아 황제에게 아첨하며 왕위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로마니아 황제 앙리가 나이가 들고, 조카들과 자식들에게 나눠줄 봉토가 부족해지자, 황제는 제국 외부의 사정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첩보부로부터 네마니치 족속들이 그 패역한 네마니치 연대기를 계속 창작하거나 유포하고 있으며, 생선장사를 독점하여 백성들을 착취한다는 정황도 알아냈다.
그리하여 로마니아 황제 앙리는 스르비아의 폭군 루카를 징벌하는 군대를 조직하여 다시 스르비아로 보냈다. 루카 왕은 저항을 포기하고 라슈카에 군대를 집결시켜 자기자신을 지킬 뿐이었다.
그래서 황제의 군대는 스르비아인들이 그나마 생선을 잡을 수 있는 비딘을 공략하였다. 그리고 비딘을 제국령으로 만들고 루카 왕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이에 루카 왕은 생선독점을 포기하고 백성들을 더 이상 수탈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한 뒤, 로마니아 황제의 용서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비딘은 돌려받지 못했다.
이후 스르비아인들은 갈라지기 시작했다. 하나는 로마니아 황제를 따르는 무리였고, 나머지 하나는 네마니치를 따르지 않는 무리였다.
첫댓글 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현실이니!
그러나 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게임에 중독된 폭력적인 사람들은 이러한 현실속에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가정이 황폐화되고 이러한 게임속에 빠져있으니 더욱 끔찍하지!
그리하여 쟁국은 여성가족부에 가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셧다운제를 찬성하며, 게임중독을 좀 더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여성가족부 소속 의원들이 쟁국을 불러 말했다.
"그럼 어떤 게임들부터 셧다운시키고 막아야 할까요?"
이에 쟁국이 말했다.
"한국에서 여성들에게 악의를 대놓고 드러내는 네티즌을 일베라고 하는데, 그것에 빗대어 불리는 사특한 족속들이 있습니다."
"그게 뭐요?"
"크루세이더 킹즈를 하는 족속들입지요. 그들을 '크베'라고 합니다. 중세의 잔재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들입지요."
이에 쟁국의 건의에 힘입어 크루세이더 킹즈를 비롯한 패러독스 게임들이 국내판매가 제한되니,유저들의 혈누가 그침없더라.
@독일육군 어...이제 어디선가 플롯 암살이 들어오면 되는건가요?
보두앵.... 보두앵.... 보두앵....
스릅은 정신건강에 나쁩니다. 간지 포텐터지는 북독일이나 바이에른하시져 독일하시져 두번 하시져
그래서 라틴제국으로 저 스르라미 같은 스릅인들을 발라버렸습니다. ㅋㅋ
왜 세르비아로 저러는지 이해 못하겠어 ㅇㅇ
역시 세르비아는 비잔틴 제국에 복속당해야 제맛이지!
세르비아는 비잔틴 제국에 복속당하고 비잔틴 제국은 라틴 제국에 복속당하면 제 맛입니다??
으잌 무슨 디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것은 삼치양에 의해 왜곡된 이야기를 바로잡는 것일 뿐입니다! 따라서 통장도 공정하게 기술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한다면 통장은 세절기에 넣은 통장 신세가 될지 모릅니다!
@독일육군 어디가 공정이란 말인가! 로오마 제국의 역사를 무시하는 게르만육군에게 천벌이 내릴 것이야!
@뉴늅뉴비 "말 다했나? 뉴비?"
독일군 장교가 영국군 장교 뉴비에게 말했다.
"말 다했다! 이 파시스트 머저뤼 새끼들, 니들은 힛을러에게 속구있는 거야."
"영국신사답지않게 거짓말만 늘어놓는군. 말 다했다면서..."
독일군 장교는 P-38 발터 권총을 꺼내 뉴비에게 겨눴다.
"군복이 아닌 민간인 복장을 하고 적대행위를 하다 잡혔으니 협약에 따라 스파이로 총살한다. 불만없겠지 뉴비?"
그러자 뉴비가 말했다.
"뉴...늅뉴비! 뉴늅뉴비!"
"미친놈! 이 새낀 지 불리하면 이 지X이야!"
독일군 장교는 욕을 내뱉으며 뉴비의 뒤통수를 찍어 기절시켰다. 그리고 병사들을 불러 말했다.
"지하감옥에 처넣어! 어디 중세식으로 얼마나 사는지 보자고!"
왜 때문에 째서 저는 안나오나요 ;ㅂ;
네마니치의 패역한 역사에 영향받은 연대기의 상당수가 '괴력난신' 같이 허무맹랑한 사실을 지나치게 삽입하여 사실을 왜곡했기 때문입니다!
불가리아 연대기에 의하면 요르문간드의 다섯 고양이는 불가리아 대왕 미하일(이 참역사에선 칼로얀)에게 사육되다가 천수를 누리고 죽었습니다. 이후 불가리아왕의 석상으로 새겨졌지요.
그런데 독일 출신 사제의 네마니치 연대기에 의하면 네마니치 일부 무뢰배가 불가리아 왕릉을 털러갔다가 토도르카에게 발각되어 청년막을 상실당하는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라틴 제국인이 서술하는 이 [네마니치 참역사]에선 바다뱀 냥이가 활약할 껀덕지가 없으니...,
@독일육군 도길유꾼이 나를 능멸한다 엉엉엉 미워 ㅜㅠ
삭제된 댓글 입니다.
삼치여제는 그저 댓글의 내용에만 반응할 정도로 참역사에 반박을 못하고 있군요! 하지만 아직 하편이 남아있습니다. 삼치양은 각오하세요!
아.. 크킹의 댓글에 약기운이 가득해...
네마니치 참역사가 알려딘 후, 삼치가 남긴 거짓역사는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비록 일부 삼치와 네마니치 추종자들이 반발을 했으나, 감정적 반박에 그칠 뿐이지 학술적 반론에 이르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네마니차 참역사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강연회가 열린다는 소문이 들리니 삼치와 네마니치 추종자들이 모여들었다. 그중에는 호기심에 참석한 세피아라는 작자도 있었다.
연사가 단상에 올라 말했다.
"여러분, 이 네마니치 참역사가 무엇입니까? 제국의 채찍이올씨다! 우리는 그 채찍에 맞는 사람이 되면 아니될 것이오!"
이에 네마니치와 삼치 족속들이 기뻐 박수했다. 연사는 말을 이었다.
"그럼 우리는 어찌해야 겠습니까? 채찍은 피해야 합니다! 우리가 채찍을 쥐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채찍으로 우리의 적을 쳐야합니다! 이렇게 말이지요!"
말을 마친 연사는 연설대 밑에 둔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외쳤다.
"제국의 적이자 백성의 적인 네마니치 족속들! 똥이나 처먹어!"
그러고는 상자의 대소변물을 뿌리니 네마니치와 삼치 족속들은 그걸 맞거나 서로 부대끼며 달아나려고 했다. 그러나 이미 매복해있던 제국군이 그들을 격살하였다.
세피아는 운없게도 대소변물을 직격으로 맞고 기절했다. 하지만 기절한 덕분에 격살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귀가 후 똥독이 올라 죽었다.
@독일육군 게르만의 륙꾼이 나를 능멸하다니 ㅂㄷㅂㄷ... 납치로 잡아다가 블로트 제물로 바쳐서 오딘 곁으로 보낼 것이라!
제가 이거 볼려고 아직도 탈퇴 안하고 카페 있었나 봅니다 ㅋㅋㅋㅋㅋ 키야- 크킹 가지고 약 타고 약 먹이고 연대기 쓰고 댓글 달고 했던 때가 오늘 낮 같은데 다들 어디가고 나놈은 닉변을 하고 이러고 있나 모르게끈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