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식을 찾아서 - 청화선사 법문 대작불사 잇는 무주선원 본연스님
헛헛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아미타불 염불도량 무주선원을 찾았다.
청화선사을 은사로 출가한 본연 스님이 수행하고 계신다는 소식과,
스님을 통해 청화선사를 만날 수 있겠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청화선사의 높은 수행의 경지를 다 알 수는 없지만,
제주 신풍리 자성원에 계실 때 단 한 번 친견했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이 남아 있어서다.
2008년 전해진 선사의 열반 소식은 큰 아픔이었고, 동시에 아쉬움이었다.
우리나라 불교계의 큰 별 하나가 또 스러져 갔다는 사실은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남겼다. 어둠을 밝혀줄 등불이 또 하나 줄어든 듯한 느낌,
마치 밝은 태양이 서산 너머로 사라져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듯한
허전함이었다. 본연스님을 통해 다시 큰스님의 법음을 찾고자 했던
기대를 품게 되었다.
고성리 항파두리 인근에 자리한 무주선원은 소박하고 다정한 인상을 주었다.
일행과 함께 법당에 들어서니 사시 예불 시간이었다.
스님은 홀로 ‘아미타불’을 일심으로 염하며 삼매에 들어 있는 듯 보였다.
인기척을 알아차렸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같이 간 일행들도 스님과 함께 아미타불 염불을 했다.
아미타불을 함께 부르니 더 큰 울림이 되어 법당을 가득 채우는 것 같았다.
스님은 하루 세 번 예불을 통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아미타불 염불을
통해 마음을 부처님의 자리에서 떠나지 않게 한다고 했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꽃과 나무를 가꾸고 풀을 뽑고 도량을 청정히 하는
데 쓴다. 그래서 그러한 날마다의 수행을 담은 스님의 실천행이
‘미타행자의 편지’를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제주도에서 수행을 하지만 서울에 사는 사람도 미국에 사는 사람도
독일에 사는 사람도 스님의 수행을 전해 듣고 무주선원에 등을 밝히고
있다고 일행들은 전해주었다.
이렇게 무주선원 법당에서 염불소리를 들으니 생전에 청화선사께서
강조하셨던 염불 수행의 가르침이 떠올랐다. 큰스님은 불자들에게
늘 염불 정진을 통해 스스로가 자성을 찾으라고 사무치도록 당부하셨다고 한다.
사시 예불을 마치고 본연스님은 우리에게 차 한잔 마시고 가라신다.
조촐하면서도 단정한 스님의 거처에는 스님이 집필한 책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이곳이 5만7천 권의 책이 태어난 산실입니다.”하고 스님은
책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차를 음미하며 둘러보니 수많은 책 가운데서도
유독 『육조단경』과 『금강심론』이 눈에 들어왔다.
『육조단경』은 육조 혜능의 어록을 집대성한 경전으로, 청화선사께서
자성원에 계실 때 번역한 책이어서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금강심론』에
대해 묻자 스님은 “청화선사께서 운문암에서 정진할 때 이미 열반한
금타화상이 쓴 『금강심론』을 보고 도인임을 아시고 그분의 법제자가
되어 세상에 널리 알리는 데 힘쓰셨다”며 “그때 청화스님이 한문으로
된 『금강심론』을 번역해서 펴내시고 무주선원에 와서 다시 『금강심론』시리즈를
본연스님이 정리해서 펴낸 뒤 공부하려는 불자들을 위해 법공양을 폈다고 하신다.
작은 방은 그저 작은 방이 아니라 금타화상의 큰 가르침이 청화선사에
이르게 되고 또한 청화선사의 가르침이 본연스님에게로 이어지는 청정한
흐름을 느낄 수밖에 없는 우주를 품은 듯한 큰 공간처럼 압도했다.
육조 혜능이 말한 자성 찾기는 단순한 정심을 넘어선 금강심을 가리킨다.
다이아몬드처럼 어떤 조건에서도 부서지지 않는 마음, 흔들림조차 일어나지
않는 경계다. 『금강심론』은 청화선사의 스승이었던 금타화상께서
육조단경을 바탕으로 해서 쓴 책이라고 한다.
심명통을 얻어 수능엄삼매에 들었다고 알려진 금타화상께서는
우주와 마음의 이치를 꿰뚫는 통찰을 경문에 담아냈다고 한다.
다만 그 내용이 난해하여 일반 수행자들이 쉽게 접근하기는 어려워
한글로 번역해 나오기도 하고 주석을 달아서 『금강심론』에 대한
이해를 돕는 『금강심론 읽기』 등도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청화선사께서 수행자의 눈높이에 맞게 주석하고 해설하여
새롭게 정리했다면 본연 스님이 다시 책을 다듬어서 편집해 내놓은
것이 지금의 『금강심론』 1·2·3권이다.
본연 스님은 금강심에 대해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다. 다만 차를 따르며
『금강심론』 3권을 건네주며 “가져가서 공부해 보라”고 했다. 머리로 아는
것은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스님의 책상 앞에는 최근에 나온 청화선사의 법어집 『마음의 고향』
시리즈 7권이 놓여있었다. 청화스님께서 멀리는 미국에 까지 포교를 하시며
법문하셨던 내용들을 풀어서 책으로 만든 것이다. 글로 옮겨놓았지만
큰스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담겨있는 듯이 느껴진다. 본연스님은
“『마음의 고향』 시리즈 7권은 지난 한 해 동안 매달린 작업의 성과”라고
말씀하셨지만 문득 모르는 사이에 스승에 대한 존경과
그리움이 사무치게 전해진다.
돌아오는 길에 ‘무주선원’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남았다. 『금강심론』을 넘기다
청화선사의 당호가 ‘무주’임을 알게 되었다. 머무는 바 없음의 삶을 몸소
실천하고자 했던 선사의 뜻이 선원 이름에 담겨 있는 것이다.
부처님의 참 가르침은 무엇일까. 적어도 그 물음 앞에서 스스로 공부하지
않는다면 참된 불자라 할 수 없지 않을까. 본질을 안다는 것은 사물의
겉모습이 아닌 그 이치를 꿰뚫어 보는 일이다. 그 능력이 없으면 우리는
헛바퀴를 도는 듯 공허할 뿐이다.
지혜는 책장을 넘겨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체험을 통해 가슴으로 알아차릴
수 있을 때 비로소 참지혜가 된다. 그 체험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사소한
일상 속에서도 가능하다. 우주의 이치는 크고 작은 것을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고루 들어있기 때문이다.
머무는 바 없는 마음, 무주의 삶. 그 길 위에서 다시 질문을 붙들어 본다.
나는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을까.
본연스님 1만일기도중 7천일 회향법회 기념촬영
출처 : 제주불교신문(http://www.jejubulgyo.com)
김보균 편집위원
첫댓글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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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