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의 자리, 나의 자리〉
가끔 조상의 묘지를 찾는다.
명절이나 제삿날 말고, 불쑥 마음이 동할 때 간다. 풀벌레 소리가 깔린 조용한 낮, 아무도 없는 산비탈,
묘비 앞에 앉아 있노라면 ‘조상의 자리’라는 말이 왜 이렇게도 무거운지 알 수 있다. 무거우면서도 이상
하게 따뜻하다. 그 자리는 단지 땅 위에 세워진 돌무덤이 아니다. 나를 있게 한 흐름이 시작된, 말 없는
기원이다.
우리 남씨 가문에는 한 가지 풍수 이야기가 내려온다.
조선의 개국기에 태조 이성계와 함께했던 조상이 어느 날 태조와 함께 산책을 하다가 서로의 사후 묏자리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조상은 이미 명당을 하나 점찍어 두었다고 했고, 그 말을 들은 태조는 그 자리를
자신에게 양보해 달라고 했다. 감히 거절할 수 없는 자리였다. 하지만 조상은 말했다.
“그 자리는 후일 역적이 날 자리입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후손을 사면한다는 문서를 써 주십시오.”
태조는 그 약속을 했고, 자리를 바꾸었다.
훗날 그 조상의 후손, 남이 장군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역적’으로 처형되었다.
그 ‘사면 문서’는 역사 속에 남지 않았지만, 우리 가문은 그 이야기를 잊지 않는다.
그 묘자리는 지금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 자리가 좋았는지 나빴는지, 그 땅의 기운이 진짜로 어떤 작용을 했는지
—사실 아무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있다. 조상은 그 자리를 ‘보았다’는 것이다. 풍수란 단지 산세를 보는
기술이 아니라, 후손까지 내다보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묘지라는 것은 단순히 죽은 이를 묻는 곳이 아니다.
조상의 혼이 깃든 땅이며, 후손의 운명이 시작되는 자리다. ‘산소’라는 말처럼, 거긴 살아있는 기운이 흐른다. 그래서
예부터 사람들은 명당을 찾아 삼천리를 돌아다녔고, 묘를 이장하기 위해 목숨을 걸기도 했다. 누군가는 그것을 미신
이라 했지만, 나는 그 간절함을 이해한다. 그건 땅을 향한 예의이자, 시간에 대한 책임감이다.
한동안 나도 내 자리를 잊고 살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산소에 발길을 끊고, 집안 구석구석엔 무심함이 쌓여갔다. 문을 열면 맞닿는 풍경이 어떤지, 하루의
시작이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알아차리지 못한 채 흘러가는 날들이 많았다. 그러다 문득, 그 조상의 ‘자리’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의 지금 이 자리는, 과연 바른 자리인가?
그날 이후 나는 방의 배치를 바꾸었다. 머리맡엔 창문이 없게 하고, 햇살이 드는 동쪽에 책상을 두었다. 조상의 묘지를
돌보고, 물건을 하나씩 정리하며 낡은 기운을 걷어냈다. 마치 무너져가던 기와지붕을 손보듯, 내 삶도 다시 조금씩 고쳐졌다.
조상의 자리를 돌아본다는 것은 곧 나의 자리를 다시 세운다는 뜻이다. 그들의 묘가 있는 땅에 무릎 꿇어본 사람은 안다.
뿌리 없이 선 나무는 오래 가지 못하고, 자리를 모른 채 사는 사람은 방향을 잃기 쉽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그 뜻을 안다.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 때, 비로소 어디로 가야 할지도 알게 된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