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이었던 한 사람이 유명을 달리했다는 뉴스를 대하며 아내와 나는 오래전의 일을 밥상머리에서 꺼내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은 이미 40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국군이 제나라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던 참혹했던 사건이다.
그러나 당시에 태어나지도 않았던 딸아이는 실감 나지 않는 일을, 더구나 식탁에서 꺼내는 아비의 오랜 기억이 그렇게 달갑지는 않을테니 직간접으로 부모의 삶에 영향을 끼쳤던 시대의 사건이 겨우 30년의 한세대 차이일 뿐인 딸아이가 바라보는 시선과는 경중이 있을 것이다.
- 1980년 겨울 광주를 방문한 적이 있다. 전년도 뉴욕 취항으로 미주노선의 여객들이 급속도로 증가하여 전국의 주요 도시 지점에는 여객 예약 시스템의 확충이 시급할 때였는데 항공예약 시스템의 교육지원 일원으로 단말기 설치 직원들과 함께했던 출장으로 신입직원이었던 나에게는 광주 출장이 배정되었다.
폭도로 몰렸던 민간인이 자국 군대의 총에 처참히 살해된 지가 반년이 채 되지 않았으니 어수선할 때였다. 궁동의 문화방송국은 시꺼멓게 불탄 체였고 지점이 위치했던 금남로 주변은 처참하리만큼 황폐했다.
종일 어두운 얼굴을 펴지 못하던 광주가 고향인 지점장은 모든 일을 하루 만에 마무리 짓도록 재촉했으며 관습적으로 하루를 묵으며 술대접을 받던 관례는 아예 꺼내지도 못하게 했고 서둘러 일을 마친 우리에게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며 밤기차를 타고 귀경토록 했다. 지역민들과 마주치지 않게 점심과 저녁은 모두 배달된 도시락으로 해결했었다.
- 40년이 지났으니 오래되었지만 생생하도록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국민 여러분~ 으로 시작하는 호전적인 인상에 억센 경상도 말투의 대머리인 보안 사령관은 세상을 모두 움켜쥔 듯 득의만만했고 뉴스는 반복적으로 총으로 무장한 트럭 위의 시민들을 무장 폭도라 했었며 국군은- 자국민을, 도망가는 시민들을 대검으로 무장한 총구로 사정없이 마구 내려 찍었다.
푸른 비님의 서울의 봄을 읽고 그동안 제가 썼던 글들이 생각나 그 글들 에서 언급했던 몇몇 문장을 가져왔습니다.
몇 분께서 역사가 1212를 어떻게 다룰까 라는 댓글을 주셨더군요 그러나 제 생각은 1212는 대한민국의 법원에서 군사반란으로 직시하고 판결했으니 이미 역사는 정확하게 기술되었다고 봅니다. 같은 선상의 광주 민주화 운동도 마찬가지이지요.
그렇지만 용서 받을수 없는 행위는 초법률적인 대통령의 사면권과 엄중한 역사의 판결이 제대로 집행되지 못하게 동조를 했던 이후의 정치입니다.
반란세력과의 야합으로 대통령이 된 YS 집권 세력인 노태우 대통령과의 막대한 비자금으로 얽힌 DJ 이 두 사람으로 대표되는 허울뿐인 문민정부의 교만이 정의롭게 판결되고 기술된 역사의 정의를 모독하고 훼손한 범인들일 겁니다.
군사반란과 광주 학살의 원흉인 우두머리와 그 잔당들이 끌어 모아서 축적했던 富가 그들의 3세로 富의 이전이 이미 끝났다고 하니 부끄러운 일입니다.
후후 밑줄 여러군데 쳤는데 모두 날리고 두군데만 남겼어요 저도 영화 안봤습니다 아니 제가 있는 곳에서는 볼수가 없어요 동시대 그것도 한창 시절에 겪었던 사건이니 생생하게 기억하지요 이후 단죄라는 확실한 마무리를 끝맸지도 못한체 허구한날 '통장에 10원뿐' 이라는 가십성 기사만 입에 올리는 우리 자신들이 부끄럽지요. 누구 잘못도 아닌 꺼벙한 우리 모두의 잘못입니다
그당시 병장으로 광주로 보내진 사촌오빠가 시민군에게 구타 당하여 피투성일 때 숨겨주고 치료해 준 광주시민이 있어서 살았다고 해요.. 그 도움의 손길을 준 광주시민은 일개사병이 무슨 힘이 있겠느냐고. 위에서 명령하니 왔겠지.라고. 광주시민이 지금은 많이 화가 났으나 너도 힘없는 우리 국민이라고. 하며.
@단풍들것네맞아요. 반란군 휘하부대 중위였던 분이 그 영화보고는 억울한 심경을 인터뷰한 기사 봤습니다. 출동하라니 출동했고 무슨 일인지? 왜 그래야하는지 도무지 알수 없는 상태였다고. 정작 별들은 문 걸고 나오지도 않고 보고만 받고, 부하들만 앞세워서 명령만 했는데, 끝나고나니 푸짐히 음식으로 잘 먹여준게 다였고, 대령이상은 다 진급했더라고. 세월이 가도 죄인 같고 억울하더라고.
보이소 향적님 단풍글이 아나 항공에 시스팀 설치한거랑 뭔 관련이 있슴까? 에효~ 손가락만 보겠다고 미리 이야기를 하니 뭐라칼수도 없고 공연히 신군부 이야기에 열받아서 나름 글 하나 올렸는데 독자들 응답이 매우 실망스러워 긴 동면에 들어갑니다 ~ 다음 뵐때까지 바이~~ 그리고 저는 이제 잘 시간 이기도 하고 ~~ 그리고 글에 추천 눌르는건 이자뿠소 ?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밑줄 쫙 ~~ 글들.
아들이 영화를 보고와서
엄마는 안보시냐고?
심장이 티질까봐 안볼란다.했더니
그럼 보지마세요,
엄마 힘들거야.
대한민국 법정에서 그들은 죄인.
친일파도 청산하지 못한 역사가 다시 되풀이 되고
후후 밑줄 여러군데 쳤는데 모두 날리고 두군데만 남겼어요
저도 영화 안봤습니다 아니 제가 있는 곳에서는 볼수가 없어요
동시대 그것도 한창 시절에 겪었던 사건이니 생생하게 기억하지요
이후 단죄라는 확실한 마무리를 끝맸지도 못한체
허구한날 '통장에 10원뿐' 이라는 가십성 기사만 입에 올리는 우리 자신들이 부끄럽지요.
누구 잘못도 아닌 꺼벙한 우리 모두의 잘못입니다
그동안 대한민국 현대사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ᆢ내가 우리 후손들에게 부끄럽습니다.
정말 정의는 사라진 것일까요?
단풍님. RE글 감사합니다
사족을 게의치 않으니 고맙습니다
화려한 휴가
택시운전사
5.18을 다룬 두 영화를 봤었는데
숨이 쉬어지질 않더군요.
여고때 교사들은 우리에게
입단속을 많이 시켰어요
떠도는 소문은 다 유언비어이고
말 잘못하면 큰일나는 무서운 세상이라고.
권력에 눈 먼 몇 사람의 야망 때문에
평생을 가슴앓이 하며 사는 많은 사람들ㅜ
개가 개를 통치하나
인간이 인간을 통치하나 똑같은 이치같습니다.
누가 권력을 잡든 도찐개찐요.
그렇지요
두목 부두목 모두 대통령을 지내고 한참 후에야
겨우 기소되고 판결을 받았으니 오랫동안 유언비어라며 입조심들 했었지요
아무튼 문민정부 사람들이 사면 처리를 했어니 가장 큰 잘못을 저질렀지요
대통령의 사면권 없어져야 될 독소조항입니다
허울뿐인 문민정부 그 구절에 눈이 가네요.
세상은 정의롭게 흘러가지는 않아 실망스럽지만
가끔은 정의로운 사람들이 빛을 내니 그럭저럭
살아갈 만 합니다. ㅎ
연말 연시 잘 보내고 내년 봅시다.
이번 한국가면 신군부 관련 책도 구해볼까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가 인기 있다니 너무 많은 픽션이 가미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괜한 걱정도 ~
네 연말연시 잘 보내시고 이제 갈날 얼마 안남았어요 ~
영화는 영화로 볼 뿐입니다.
시대가 변하면 역사도 바뀌는 것을 봅니다.
변화의 시절을 겪었지만,
아무 말도 하기 싫습니다.
그 때는 광주에 사업상 간 사람이
식당에서 쫓겨났단 말도 있었어요.
책이나, 영화를 보면서 각자 아는 듯이
말하는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지요.
분쟁만 말고, 민주주의가 지켜지도록
서로가 노력하는 것입니다.
누가 누구를 탓 하리오.
예상치 못한 매우 의외의 답글이라 조금 당혹스럽습니다.
책이나 영화를 보고 아는 듯이 말한것은 아니구요
영화를 소개하는 글을 읽고
제 경험과 그 사건을 바라보는 개인적인 의견을 말한것입니다
그리고 영화나 그 사건을 소재로 한 픽션이 가미된 소설이나 책이 차라리 허구가 가미 되었겠지만
저는 제 경험과 습득한 정보에 근거하여 그 당시를 조명하고 판단하지요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라고 해도
당시를 바라보는 판단과 시각이 제각기 다르다는 것으로 답글을 이해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단풍들것네 그리고 덧붙이면
저는 직접 총칼을 들지 않았고
반대로 그들로 부터 직접적인 피해를 전혀 당하지 않은 서울에 거주했던 소시민 이었습니다
아, 이제 딘픙님의 연이어 쓴 댓글을 보았습니다.
요즘 정치 문제 탓인지, 시끄럽게 대립되는 사회 현상으로
잠시 헷갈렸네요.
요즘, 대립되는 현상에 진저리가 날 정도였습니다.
단풍님이 쓴 Re 를 잘 못 이해 했습니다.ㅎ
@콩꽃 아고오 죄송합니다~
전혀 의도치 않았는데 제글이 수선스럽게 했습니다
근신 기간을 가지겠습니다
그당시 병장으로 광주로 보내진 사촌오빠가 시민군에게 구타 당하여 피투성일 때 숨겨주고 치료해 준 광주시민이 있어서 살았다고 해요..
그 도움의 손길을 준 광주시민은 일개사병이 무슨 힘이 있겠느냐고.
위에서 명령하니 왔겠지.라고. 광주시민이 지금은 많이 화가 났으나 너도 힘없는 우리 국민이라고. 하며.
콩꽃님의 뎃글을 읽으니 오빠 생각이 나서요.
보통 사람들에게는
네편 내편 가릴수 없는 그냥 졸지에 당했던 비극이었습니다
총을 들었던 자도
총칼에 희생을 당했던 측에게도
권력으로 부터 강요되었던 어쩔수 없이 선택 당해야만 했던 그당시 그자리에 있었던 민중의 희생이며 비극이라고 봅니다
@단풍들것네 맞아요.
반란군 휘하부대 중위였던 분이 그 영화보고는 억울한 심경을 인터뷰한 기사 봤습니다.
출동하라니 출동했고
무슨 일인지?
왜 그래야하는지 도무지 알수 없는 상태였다고.
정작 별들은 문 걸고 나오지도 않고 보고만 받고, 부하들만 앞세워서 명령만 했는데,
끝나고나니
푸짐히 음식으로 잘 먹여준게 다였고,
대령이상은 다 진급했더라고.
세월이 가도 죄인 같고 억울하더라고.
@리진 ㅎ 그분의 생각에 공감합니다 ~ 땡큐~~
@리진 리진님
대령이상만이
아니고,
영관급이상은
다 출세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무기도 안든 민간인앞에서
용감했던 군.
지금도 거품
흘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군을 미워하진
않습니다..
단 정치군인은
좋아하진 않습니다.)
달 보라고 손으로 가리키니
손가락만 본다
80년대 초 신입 때
서울시청 광장
센터빌딩에 ANA항공사
서울지점 개설공사 하러,
시스템 장착하러 다닌 기억이 납니다
보이소 향적님
단풍글이 아나 항공에 시스팀 설치한거랑 뭔 관련이 있슴까?
에효~ 손가락만 보겠다고 미리 이야기를 하니 뭐라칼수도 없고
공연히 신군부 이야기에 열받아서 나름 글 하나 올렸는데
독자들 응답이 매우 실망스러워 긴 동면에 들어갑니다 ~ 다음 뵐때까지 바이~~ 그리고 저는 이제 잘 시간 이기도 하고 ~~ 그리고 글에 추천 눌르는건 이자뿠소 ?
할 말이 많아도 할 말이 없고
할 말이 없어도 할 말이 없는
광주사태가
바로
말문을 막히게 하는 비극이었죠ㆍ
저는 서울에서
아파트 단칸방을 얻어 자취하며
직장 다니면서 재수를 했던 때인데
그 집주인 친정엄마가 오셔서
하는 말
ㅡ그 쪽 사람들 다 죽게 아무것도
주지 말고 도로를 차단해 버렸으면ㅡ
한다는 말을 듣고
그 집에서 바로 이사해 나와버렸죠
하여
정말
진짜로
발도 딛기 싫은 지역이고
거기서 나온 사과도 안 먹습니다 ㅎㅎㅎ
그런 경험을 직접 하셨군요
아마 그래서 광주의 문화방송국이 불타기도 했을 겁니다
뉴스가 계엄군의 명령에만 따랐으니까요
당시 뉴스들은 폭도들이 장악한 지역을
군인들이 차단하고 봉쇄해야 한다고 대중을 선동하기도 했지요
ㅎ 사과는 죄없어니 이제는 맛있게 드세요 ~
10.26:
12.12:
5.18
현장에 있지는
않았지만
나는 어디에
있었는지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건들이었고,
존재하지 말았어야 할
정치군인들의
행패라고
보아야 하겠지요.
적의 침략으로 부터
국민을 보호하라고
준 총인데,...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건과
존재하지 말았어야 할 정치군인들
동의합니다, 간결하고 명확하게 정리를 하시니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