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꾸눈의 남자는 카이로의 성벽을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걸으며 저 너머의 사막을 바라보았다. 여기저기 오랜 도시의 포위 흔적을 보여주는 투석기와 해자와 참호가 복잡하게 얽혀져 있었다. 성이 함락되고 3일째, 아직도 힘이 남았는지 일부 부대는 허락한 약탈의 기간의 마지막 순간까지 도심을 유린하며 재물과 보화를 모으고 여자들을 희롱하며 저항하는 자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가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들려온 여자의 단발마에 그는 조금 피곤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눈쌀을 찌푸렸고, 멈춰서서 뒤를 돌아 그의 전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슬슬 그만 중단을 명해라."
"자비로운 주인이시여, 아직 해가 지지 않았습니다만, 그런 명을 전하면 최초에 약속하신 함락 후 3일간의 약탈에 조금 못미치게 되어 반말이 예상되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이미 3년을 포위당하고 소진된 이곳에 더 뭘 짜낼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이 소음을 견딜수가 없구나. 어서 가서 총사령관의 명을 전해라. 이제 그만하고 각자 숙영지로 돌아가라고. 이미 지시한 다음 전선으로 부대는 이동해야 할것이다."
"모든 것은 주인님의 뜻대로… 가서 명을 전하겠습니다. 아, 마침 명을 받을 사람이 이곳으로 오고 있군요. 아드님이신 바라카 공자가 성벽에 올라오고 계십니다."
바라카의 아버지, 맘루크의 총사령관 바이바르스는 기분이 더 나빠지는 것을 느끼며 아들이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바라카는 뭔가 기세좋게 한마디 하겠다는 듯 성벽으로 올라와 총사령관인 자신의 부친과 장인인 칼라운에게 군례를 올린 뒤 용건을 말했다.
"위대하신 맘루크의 총사령관 바이바르스에게 알라의 은총이 있기를… 아버님, 저는 아버님이 명하신 군령을 듣고 제 귀를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전 병력 카이로 집결 후 키레나이카 서부 전선으로 이동이라니요? 이미 카이로가 함락된 마당에 왜 그런 무력행사가 서쪽을 향해야 하는 것입니까?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바라카는 바이바르스와 칼라운을 바라보며 격하게 항의했다. 바이바르스는 피곤한 표정을 보이며 칼라운을 한번 보고 빙긋이 웃는 그를 못마땅하다는 듯 한번 인상을 찡그린 뒤에 자신의 아들에게 말했다.
"카이로가 함락되었다고 해서 모든 아이유브의 영역이 우리 손에 들어온 것은 아니다. 서쪽에 있는 국경수비대의 아이유브를 지지하는 일부 토후들은 여전히 그들의 혈족들을 보호하며 우리에게 든 반기를 내리지 않고 있다. 카이로 함락의 여세를 몰아 그들을 정리하지 않는다면 다시 한번 코르도바에 탈출해 정권의 생명을 연장한 우마이야 왕조의 전례가 되풀이 되지 않는 다는 보장이 있겠느냐? 그들에게 알라가 선택하신 전사들의 압도적인 힘과 권위를 보여주어 그들이 다시 반항하지 못하도록 다잡는 것이 우리의 가장 시급한 일이 될것이다."
"하오나, 아버님… 그들에게 맘루크의 전군이 동원되어 무력시위를 하는 것은 과합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서쪽도 중요하지만 동쪽의 상황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이번 총사령관의 포고령에 대해 한발 물러나신 움직임을 보여주신 덕인지 성지의 이교도들이 그들의 수호자인 아이유브의 살라딘과 결탁한 더러운 프랑크족들의 공모로 대거 탈출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칙령에 의거하여 체포하고 노예로 삼아 그릇된 종교를 따른 것에 대한 속죄를 시키고, 부역으로 그 사함을 받게 하는 것 또한 시급한 일입니다."
바이바르스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아들을 바라보았다. 군부에서 젊은 장교들을 중심으로 세력을 집결시키고 있는 그의 의견을 무시하는 것은 아버지인 자신도 이제는 버거울 만큼 자식은 성장하였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이 젊은이들의 방향성은 빠르고 거침없으면서도 항상 방향이 미묘하게 어긋나 간혹 낭떠러지로 폭주하는 경향이 있다.
어린 시절 노예 생활을 톡톡히 경험하고 현재의 자리에 오른 자신과 칼라운과는 달리 차세대들은 그런 경험이 없이 아버지의 후광으로 장교부터 시작하여 세상이 그렇게 자기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쉽게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래서 맘루크의 원로들은 듣는 순간 엄청난 인플레를 예상한 이교도를 노예로 삼는다는 그 무지막지한 계획을 별 생각없이 신앙을 근거로 발의하고 그것을 자신의 천명인양 지껄이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다시 한숨을 쉬며 칼라운을 바라보았다. 얼마전에 있었던 제국의 사절과의 회담, 그는 변장을 하고 그 회담에 참석하여 의견을 수렴한 뒤 죽을뻔했고, 그런 상황에 능청스럽게 명령을 구하는 칼라운에게 못마땅한 표정으로 수용을 명했다. 어차피, 그게 어처구니 없는 근시안적인 발상임을 그는 알고 있었고, 결국 필요한 것은 계기였다. 못이기는 척 칙령을 철회할 계기를 바란 그에게 그 사절의 방문은 불쾌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나름 바라던 상황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어진 키레나이카 지역의 토후들의 협상 결렬은 그 의지를 추진하는 더 좋은 상황을 만들어줬다. 카이로 함락과 이어진 서부 원정으로 그 말도 안되는 짓거리를 방관하려는 그의 의사는 여전히 포기하지 못하는 아들의 저항을 만나게 된것이다. 바라카는 부친의 말이 없자, 준비해둔 회심의 수를 꺼냈다.
"설마 위대한 신앙의 수호자이신 아버님께서 알라에 복종하지 않고 선지자 무함마드의 가르침을 모독하는 그 이교도를 이대로 도망치도록 두고 보실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버님? 대답해주십시오."
바이바르스는 미묘하게 바라카의 발언이 그의 것이 아니라는 기분을 느꼈다. 누구지? 누군가 눈앞에 적을 잔인하게 난도질하고 계집들을 비명지르게 하고 미동들의 엉덩이에만 관심이 있는 한심한 아들놈을 부추긴게 누구일까? 그는 잠시 칼라운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다시 아들을 돌아보았다. 어차피, 누가 부추겼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결국, 문제는 그 의견이 청년 장교들의 주류 의견이라는 점이다. 이것을 무시하는 것은 앞으로의 행보에 걸림돌이 된다. 정권을 탈취하자 마자, 곧바로 파벌 싸움, 심하면 내전이 벌어질수도 있다. 결국... 방법은 이것뿐이겠지? 그는 마음을 굳히고 대답했다.
"서쪽에 위치한 튀니지의 후원을 받는 세력들의 준동은 그리 만만하게 볼것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정통 수니파의 수호자로서 이미 공표한 이교도에 대한 준엄한 심판을 행함에 있어서도 일을 미룰 생각은 없다. 바라카, 나의 장자이자 후계자여. 내게 성스러운 임무를 상기시켜준 너에게 감사를 표한다."
"오오… 아버님, 아버님에게 알라의 축복이 함께 하시길… 그렇다면 동쪽의 이교도를 벌하는 일 또한 허락하심으로 받아들이며 되겠나이까?"
"이미 말한대로… 칙령은 집행될 것이다. 하지만, 이미 말했듯이 서쪽의 세력들을 제압하는 것 또한 시간을 다투는 일이다. 나는 그래서, 동쪽의 전선을 너를 필두로 한 우리 맘루크의 젊은 장교들에게 맡겨보려고 한다. 해낼수 있겠느냐?"
"오오… 바라던 바입니다. 그 일은 저와 저의 동료들에게 맡겨주시길 바랍니다. 그 따위 이교도 비무장인 백성들을 잡아들이는 일에 아버님과 군의 고위 장교들이 나서시는 것은 닭을 잡기 위해 소잡는 칼을 가져가는 것과 마찬가지 일것입니다. 제가 그 일을 맡아서 해보겠나이다. 맘루크 총사령관의 적자로 부끄러움이 없이 완벽하게 그 작전을 수행하겠나이다. 믿고 맡겨주시옵소서."
"든든하구나. 그래, 그 일을 수행함에 있어 작전은 수립되었느냐?"
"모종의 루트를 통해 입수한 첩보에 의하면… 그들은 해안가도를 통해 이교도 난민들을 이동시키고 해상에서 우리 무슬림을 오랫동안 괴롭혀온 적수, 씨서펜트의 함대를 먼저 1차 집결지에 보내 보급과 구호를 담당하게 하는 듯 합니다. 그리고 그 씨서펜트의 함대는 이미 북상하여 1차 집결지인 티루스로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해상으로 병력을 보내 티루스의 해안 예상 합류 지점에 긴급하게 함대를 투입해서 해상에서의 구원을 차단하고, 해안도로로 신속하게 북상한 우리 부대가 그 모습을 보고 절망하는 난민들을 들이쳐 모조리 체포해 개선하도록 하겠습니다. 씨서펜트는 난민들과의 연계를 끊을수 없어 쉽게 도주할수 없을 것이고, 난민들은 그들의 눈앞에서 전멸되는 함대에 절망할 것입니다."
바이바르스는 무심한 표정으로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바라카를 보며 말했다.
"정석적인 포진이구나. 변수는 없겠느냐?"
"그 상황에서 무슨 변수가 더 있겠습니까? 그들이 설사 계략을 쓰려고 해도 백만의 백성을 두고 그들이 움직일수 있는 반경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설마 그들이 난민들을 해안 가도가 아닌 사막을 횡단시키는 미친 짓을 하지 않는 한 이 계획은 완벽합니다."
바이바르스는 못내 미심쩍은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 확실히 관련 보고를 감안해보면 바라카의 말은 정석적인 방식이고, 그렇기에 실패하기도 어려운 계획이다. 하지만, 전쟁터에서는 항상 정상적인 사고로 생각할수 없는 수많은 황당한 상황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정석이 과연 통할수 있을까? 하지만… 그걸 이유로 반대하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다. 그는 조용히 그를 바라보며 결단을 내리고 명령을 고했다.
"좋다. 바라카, 젊은 맘루크들의 알라에 대한 신앙의 싸움을 축복하며 부대의 이동을 허락한다. 너의 직속부대 7천과 아이유브에게서 인수한 해군 8천, 그리고 살라미슈의 부대 7천을 데리고 레반트 지역의 이교도 사냥 작전을 개시하라. "
바이바르스의 명에 순간 기뻐하던 바라카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는 그의 부친에게 물었다.
"살… 살라미슈도요? 이 정도의 작전이라면 제 부대와 해군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바이바르스는 자신의 동생이지만 가장 강력한 후계자 경쟁의 라이벌인 살라미슈의 참전에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흐렸다. 그러나 바이바르스는 강하게 말했다.
"이번 이교도 사냥은 젊은 장교들의 총의라고 하지 않았더냐? 네가 너의 아우를 질투심으로 인해 그를 배제하고 모든이의 의사를 반영한다 내게 고했다면 그것은 거짓을 말한 것이고, 그에 대해 알라께서 진노하시고 너를 심판하시리라. 이것은 이 맘루크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대한 일이며 너희 젊은 장교들만으로 진행되는 첫번째 작전이다. 설마, 이 상황에서 네가 네 아우를 배제한 다음 공을 독차지하려는 그런 옹졸한 행동을 하려는건 아니겠지? "
"아… 아닙니다. 다만 살라미슈는 좀 답답한 구석이 있고, 지휘계통상 저와 동급인지라 원활한 작전의 어려움을 미리 고민하여 그리 고했나이다. 같이 가겠습니다. 허나, 그들을 가장 많이 잡고, 가장 큰 공을 세워 아버님의 앞에 개선하는 것은 제가 될것이라 믿어 의심치 마시길 바랍니다."
"그래… 나의 후계자여… 네 뜻을 레반트에서 펼쳐라. 알라의 신도이자 바이바르스의 장자로서 부끄러움이 없는 싸움을 하고 오너라. 나 역시 그 사이 키레나이카의 토후들을 진압하고 돌아오겠다. 두 개선식이 한곳에서 동시에 진행되면 그 또한 알라의 축복이자 우리 가문의 흥복이 될것이다. 출정하라."
"명! 받들겠나이다."
바라카는 군례를 올리고 서둘러 자신의 측근들과 함께 성벽을 내려갔다. 그가 시가지 저편으로 사라지자 바이바르스는 광야를 다시 바라보았다. 이제 어느덧 해가 지려 하고 있었다. 조금전에 명을 전했지만 아직도 시가지 여기저기에서는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는 칼라운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자넨가?"
칼라운은 어께를 한번 으쓱해보이고선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주인이시여. 저는 주인의 명을 받드는 종일뿐 이런 일을 조장하는 협잡꾼이 아닙니다. 저에 대해 그런 오해를 하시면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래… 자네의 방법치고는 좀 그렇군. 좀더 장기간에 걸쳐서 포석들이 하나하나 회수되는게 자네의 방식이지. 이건 교묘하지만 좀더 다급함이 느껴져. 누구지? 대체 어떤 녀석이 저 한심한 녀석이 종교를 빌미로 여론을 형성해서 세력을 만들고, 그걸 우리 정책에 연결되도록 부추긴걸까"
"한번… 알아볼까요?"
"이미 알고 있는데 모르는 척 하는게 아니고? 뭐 일단은 내버려둬. 상황이 어찌되었건, 이번 기회에 이 일로 인해 소장파들의 기세가 한풀 꺽이는 것도 우리에게는 그리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이미 실패하리라고 예상하고 계시는 듯 하군요. 괜찮으시겠습니까? 그건 곧 후계자이자 제 사위의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는 것과도 연결됩니다만. 그런 결과에 대해서 말들이 많을텐데요."
"갑자기 사위 사랑이 넘치는 정많은 장인인양 굴지 말게. 나랑 몇 년을 같이 굴러먹고 아직도 내가 자네를 모른다고 생각하나? 아들이건, 사위건, 맘루크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이곳에서는 실력이 최우선이다. 강한자만이 이 힘의 주인이 될수 있다. 그 녀석도 이번 일을 발판으로 본격적으로 내 자리를 노리고 그 경쟁자인 동생을 제거하려는 속셈이겠지
하지만 이 일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 실패한다면 녀석은 이 일에 대해 소장파 장교들과 함께 책임을 져야만 하겠지. 성공한다 해도 녀석은 확보한 노예들을 구매할 대상을 찾을수 없어 낭패를 겪을 꺼야. 어느 쪽이 되었건 녀석이 가진 쓸데없는 야망을 잠시 죽이는게 적절한 수단이 될꺼야. 그리고 자네도 역시…"
"오오… 나의 주인이시여. 왜 저에게 그런 모함을 하시나이까? 저에게는 그런 야망이 없습니다. 오로지 주인을 성실히 섬기는 것을 알라께서 저에게 주신 의무라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아이유브의 칼리프에게도 했던말 그대로 써먹지 말게. 지난번 회담에서 내 모가지를 쥐는 행동의 주체가 케두스가 아닌 제국의 왕자였다면 그대로 꺽어버리는 걸 방치했을꺼라 판단한 내 생각이 과한건가?"
칼라운을 조금 날카로운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과하십니다. 제가 지금 어찌 감히 그런 생각을 품겠습니까."
"그래, 지금은 안되겠군. 내 멍청한 아들놈들이 제거되거나 정치적으로 거세되야 자네가 움직일 여건이 되겠지. 자네를 비난하거나 나무라지는 않겠네. 우리가 제거한 우리의 전대 총사령관처럼 추하게 발버둥칠 생각도 없어. 다만 이것만 명심하게. 자네가 나를 항상 노리고 있듯이 나 역시 자네를 항상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칼라운은 조용히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비정한 맘루크의 주종관계의 대화에도 바이바르스는 별 감흥이 없는지 그저 다시 한번 시가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앞으로 돌봐야 할 과부들이 늘어나겠군."
"그렇습니다. 창부로 연명할 선택을 할 기로에 몰린 불상한 여인들을 어떻게 율법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에서 구제할수 있는지가 우리 정권의 두번째 과제가 될 듯 하군요."
첫번째 과제를 수행하러 간 바라카와 무관하게 시가지의 비명소리를 들으며 백성들을 걱정하는 지금의 바이바르스와 칼라운의 모습은 잔혹하고 광신적인 맘루크의 군사지도자가 아닌 백성을 생각하고 움직일 의지와 지혜를 가진 왕의 모습을 닮아있었다. 그가 왠지 씁슬하게 말했다.
"흥, 동전 한닢으로 사람을 사고 파는 나라라고? 제법 예리하게 사람 흔들더군. 그렇지 않던가? 동전 열두닢?"
"정확하게 열두닢과 염소 한마리였습니다. 전 아랍어를 할줄 알았거든요. 동전 여섯닢 주인님…"
"그래… 그랬었지. 여섯닢이었지. 그리고 그런 세상은 오면 안되는 거겠지. 인간을 그렇게 푼돈에 사고 팔아서는 안되는 거였어. 그때도 지금도 앞으로도…"
그는 발걸음을 돌려 성벽을 내려가며 잠시 떠오른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을 뒤로 하고 앞으로의 일들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날씨 한번 죽이는 구만…"
안젤모는 갑판위에 키에 기대서서 저멀리 보이는 해변을 바라보며 빈정대듯 말했다. 그의 시야에는 멀리 수평선 너머로 보이는 해안선과 그곳으로 다가가는 그의 기함 씨서펜트호를 호위하듯이 둘러싸고 이동하는 11척의 직속 사략 함대가 들어왔다. 몇일전 자파에서 관련 밀봉된 화물을 급하게 선적한 이후 혹시 모를 아이유브 해군과의 조우를 피하기 위해 다소 먼바다로 항로를 잡은 다음 멀리 돌아서 다시 해안을 향해 돌아오는 항해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실제 항구에서 전달받은 접선 지역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해안가를 향하는 그의 항로에 불만을 가진 선원들도 다소 있었다. 약간 내륙으로 깊숙히 들어가는 만의 형태를 취한 곳에 배들을 접근시키는 것이 아이유브 해군과 조우할 가능성을 높인 다는 것이 그들의 반대 이유였다. 물론 반대는 그것만은 아니었다. 입밖에 내서 말하지는 못하지만 부하들은 이번 안젤모의 작전 참여에 대해 다소 불만스러운 입장인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가 흥겹게 날씨를 평하자 갑판장은 톡쏘듯이 그에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네 그렇죠. 아이유브의 프리게이트함에 포착되기 딱 좋은 날씨죠. 수평선 너머의 해안선이 이제 시야에 곧 들어올 듯 하군요."
"개길려면 논리와 숫자. 프로답게 가자."
"아, 네 그럼 이렇게 말씀드리죠. 덕분에 이번 분기 적자입니다. 그래서 함선 수리가 개판입니다. 배에 물새는 상황에서 꼭 이렇게까지 무리한 일을 하셔야 했습니까?"
"제국쪽이 우리 중요 클라이언트인거 대외적으로만 비밀이지 내부적으로는 뭣도 아니잖아. 업자들이 힘있냐? 클라이언트 요구대로 까라면 까는거지.."
"제국 아니잖아요. 오히려 제국에 방침에 저항하는 입장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체스마스터가 이 사실을 알게되면 노발대발 하실겁니다."
안젤모는 의뭉스러운 얼굴로 갑판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배에도 체스가 하나쯤 타고 있을꺼라고 생각했는데 혹시 너였냐?"
"제독님! 장난 계속 치실겁니까?"
"흥, 체스면 어떻고 체스가 아니면 또 어떠냐? 하도 마틸다 누님한테 굽신거리길래 무슨 상사 정도 되는 줄 알았네. 뭐 그렇다고 해도 상관없어. 약혼녀라는 년을 토막치고 미쳐 돌아온 나를 나름 해군사관학교 후배라고 안정된 미래 때려치고 따라와준 네가 설령 체스라고 해도 내가 뭐 어쩔 도리가 없잖아. 걍 그런가보다 해야지 뭐…
아무튼 원론으로 돌아와서… 너나 나나 제국의 입장을 무시할수 있는 건 아니잖아. 그런 관점에서 저 철부지들이 대책없이 떠맡아버린 황제 폐하의 계획은… 뭐랄까나 좀 냄새가 나. 얼핏 보기에는 논리적으로 큰 하자는 없는데… 그냥 감성이 충만한 얼라들의 돌출행동으로 보이는데… 그래도 뭔가 좀 이상해. 이게 왜 이렇게 대충 말이 되지? 너 혹시 그런거 안느껴졌냐?"
"제독이 관심가지는 냄새라면 돈 냄새랑 계집 냄새 밖에 없잖습니까? 이번에는 무슨 냄새인데요?"
"임마, 한가지 더 있잖아. 피 냄새… 여기서 나는 왠지 모르게 피냄새가 나는 것 같아. 왜일까? 그냥 어처구니 없는 이 헤프닝에 왜 이런 피냄새가 나는 걸까? 나는 그게 궁금해."
"아, 네 제독 감이 좋은거는 인정하지만… 그걸로 우리 함대를 죄다 만만치 않은 일에 밀어넣은 변명은 안될 것 같수. 젠장할… 아무튼 이미 배 떴으니 애들 분위기도 감안해서 나는 더 말안하고 입닥치고 있겠지만… 제독도 다른 두령들이랑 선원들 신경 좀 써야 할 것 같소. 이래저래 말들이 많소이다."
"함장이 아니라 두령이라고 부르는 걸 보니 너도 이제 해적 다됐구나. 얼마전까지 배에서 빨래라는 걸 하려는 네 놈을 봤을 때 걍 제국 해군에 돌려 보낼까 심각하게 고민했거든."
"옛날 일은 새삼스럽게… 이제 해안선이 시야에 들어오는 군요. 항로를 전환해서 해안을 따라 순항하도록 지시하죠. 저 해안가에… 어? 뭐야 이거…"
갑판장은 뭔가 당황한듯이 해안선을 바라보며 말했다. 안젤모는 갑판장의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고개를 쑥빼며 말했다.
"왜? 난민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벌어졌냐? 난 아직 잘 안보이지만 눈이 좋은 너라면 보이겠지. 해안선에서 뭔일 있냐? "
"그… 그게 좀 이상합니다. 해안가도에… 사람이 아무도 안보이는데요."
갑판장의 말에 안젤모는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럴리가 있나. 자세히 봐바. 아무리 난민들의 움직임이 느려도 이미 출발한지 한참이 지났는데 그 많은 인원이 해안가도에 한명도 없을리가 없잖아. 네가 뭔가 잘못본거겠지."
"아닙니다. 지금도 눈에 똑똑히 보이고 있는데… 가도위에는 사람이라고는 눈씻고 찾아볼래야 찾아 볼수가 없어요. 아니, 제독도 가도가 아니라 해안선을 잘 보라구요. 그 정도 인원이 이동하면 모래먼지가 제법 자욱해야 할텐데… 그런게 안보이잖아요."
안젤모도 눈을 가늘게 뜨고 해안을 바라보았다. 갑판장의 말처럼… 희마하게 보이는 해안선에는 그런 기척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당황했다.
"뭐야… 설마 우리가 너무 늦은거야? 아니면, 저들이 너무 늦고 있는거야? 아무리 그래도 이건 말이 안되는데… 수십만 인원이 오가는 성지의 순례길에 사람이 이렇게 없다는게 말이 안되잖아."
그리고 그때 누군가 갑판을 향해 달려왔다.
"제독! 제독! 큰일났습니다."
"화물주임, 무슨일인가?"
"그… 그게 뭔가 이상합니다. 자파에서 선적한 화물이 좀 이상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알아듣게 좀 말해봐."
"그… 그러니깐 화물들이 다들 봉해져서 도착한건 알고 계시죠? 상자의 외곽에 의약품이나 비상식량 같은 딱지가 붙어 있어서 뭐 워낙 중요한 비상 물자라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하고 선적했는데… 화물이 좀 이상합니다. 손버릇이 나쁜 사관 한놈이 몰래 상자에 손을 대다 걸렸는데, 그 녀석이 억울하다고 소리치더군요. 상자안에는 흙과 쓰레기 밖에 없다구요.
이 녀석이 미쳤나 싶어서… 한대 갈겨주고 그 녀석이 말한 화물들을 열어봤는데… 정말로 그 녀석이 연 상자 외에 다른 상자들도 다들 긴급 물자랑은 무관한 흙과 허접 쓰레기들이 가득차 있었습니다."
"뭐? 어째서… 그럴리가… 대체 이게 뭐가 어찌된거야?"
그리고 망연자실하는 안젤모에게 화물주임이 뭔가를 건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의약품을 담았다고 표시한 엄중하게 봉인된 상자에서 이걸 발견했습니다."
그가 건낸 것은 한장의 서신이었다. 안젤모는 당황한 얼굴로 손을 내밀어 그 편지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편지를 읽어나가며 그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사막 위에 지는 석양은 뭐랄까 형용하기 힘든 풍광을 선사해준다. 서서히 지는 해를 보며 나는 슬며시 눈을 떴다. 살짝 입속에서 모래가 씹히는 기분이 느껴진다. 뜨거운 햇살이 내려쬐는 낮의 시간이 끝나가자 서서히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일어서기 시작했다. 나는 깊은 잠을 자지 못해 조금 멍한 정신을 억지로 다그치며 일어나 동료들을 찾았다.
이미 나의 동료들은 먼저 일어나서 태양의 방향과 지도를 보며 열띤 논쟁을 하고 있었고, 여러명의 전령들을 통해 여기저기 흩어진 그룹들의 동향과 움직임들을 체크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다시 한번 그들에게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처음 겪는 행군길에 정신조차 차리기 힘든 상황인데, 내 동료들은 아무것도 안하는 나와는 달리 지금 이 거대한 피난의 세부적인 일정을 조율하면서도 푹쉬지도 못하고 계속 전념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방해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 조용히 내가 잠들어던 간이 텐트를 정리하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내가 오늘 낮에 잠든 곳은 아그네 공주를 따라온 그리스 정교의 순례자 노인들의 일행이 모여 있는 숙영지 근처였다. 연세가 지긋해 보이는 노인들은 이 거친 환경에서 겪는 고행이 마치 순례의 연장인양 큰 불편을 호소하지 않고 그들의 공주를 호위하듯이 그녀가 머무르며 이용하고 있는 마차의 주변을 둘러싸고 도란도란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리고 저 너머에 그나마 우리 그룹중에서 가장 화려해 보이는 천막이 장식된 바퀴가 여섯개가 달린 거대한 마차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마차를 호위하고 있는 병사들을 보았다. 저 마차가 바로 리엔의 손에 제압당해 우리와 강제 동행하게 된 살라딘공이 있는 곳이었다. 이제 거의 일주일… 비잔틴의 약학에 대해 새삼 감탄하게 되었다. 대체 얼마나 독한 약을 썼는지 살라딘 공은 아직까지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오늘쯤이면 깨지 않을까 하고 아그네 공주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했고, 잠시 돌아본 에스더의 도리도리에 조금 놀라, 오늘 저녁에서 내일 정도로 정정을 했다. 그녀의 모습을 본 살라딘의 집사와 병사들은 왠지 당장이라고 칼을 빼들 것 같은 표정으로 사납게 일어서서 그들의 주군에게 돌아갔다. 정말… 오늘을 일어나셔야 하는데…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깨어나기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그가 일어나서 나에게 할 추궁을 과연 감당할수 있을련지… 그때였다.
"놔라! 이 불충한 놈들!!!"
"진정하십시오! 주인님께서는 지금 일주일만에 깨어나셔서 몸상태가 정상이 아니십니다."
"일주일? 네놈들이 나를 죽이려 든것이냐? 살아난게 신기하구나!!! 이것 놔라! 지금 당장 그를 만나러 가야겠다."
아, 깨어났다. 난 뒷목이 땡기는 것을 느끼며 그 사실을 알리러 내 동료들이 열띤 일정 점검을 하는 임시 본부 막사로 발걸음을 향했다.
"살라딘공이 깨어났다."
"아, 그런가요? 마침 잘되었군요. 오늘까지도 안일어나면 다른 대안을 찾으려 했는데 마침 일어나 주셨다니 다행이군요."
멜리장드는 피로한 얼굴로 나에게 말했고, 리엔은 흠칫했다. 그리고 에라드는 뭔가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곧이어 저 너머의 살라딘의 막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몇분후… 일주일간 기절상태여서 근육이 마비되었는지 어기적거리는 걸음으로 그는 휘하의 병사들을 데리고 우리 막사로 난입해 들어왔다. 그리고 소리쳤다.
"이 막사 포위해!"
그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병사들은 훈련받은 듯 익숙한 동작으로 무기를 뽑아들고 우리 막사를 포위하였다. 그리고 십여명의 병사들도 무기를 들고 막사 안으로 살라딘과 같이 들어왔다. 우리는 잠시 숨을 죽일수 밖에 없었다. 그가 나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잠시후 그가 허리에 찬 시미터를 뽑아들어 발검의 동작 그대로 나에게 뻗어 그 검끝이 내 목젖에 닿게 겨누었다.
"어떻게…"
그가 뭔가 믿을수 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나는 그의 말에 조금 되도 않는 변명을 해야 했다.
"저어… 뭔가 배신당한 기분인건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건 전적으로 저기 눈치보며 어디론가 도망치려고 하고 있는 리엔의 행동이라서…"
"어떻게 그걸 알았죠. 대답하세요."
나는 순간 그가 말하는 포인트가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다른걸 알아챘다. 그는 자신의 비밀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를 설득하면서 보여준 나의 행동, 체스판 위에 킹을 다른 말로 프로모션 시키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 너무 심하게 그를 동요하게 만든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솔직히 분노한 그의 질문에 답하는게 우선인듯 했다. 나는 뭔가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에스더와 멜리장드, 아이샤, 케두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손짓한 다음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 전 그 장치를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만든 사람이 서방 출신이었나 보죠? 다소 방탕하게 놀던 시절에 광대들과 어울리며 이런저런 유흥을 즐긴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비슷한 물건을 본적이 있었습니다. 유랑극단에서는 배우들이 부족해서 남자 배우가 여자 역할을 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때 사용하는 물건이 바로 그 마스크입니다."
나는 체스판에서 킹과 바꾼 퀸을 떠올렸고, 지금도 그의 머리를 감싸고 있는 투구와 연결된 마스크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 포인트가 마스크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 장치의 포인트는 목의 잠금쇠입니다. 성대를 압박해서 여자들에게 저음을 내게 해서 남자 역할을 하는데 위화감이 없도록 하는 것이 목적인 장치죠. 투구와 안면마스크로 위장하고는 있었지만, 저는 우연히 유랑극단의 소도구 담당자를 통해서 그 비밀을 알게 되었고, 유사한 장치를 하고 계신 당신이 정체를 숨기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목젖에 닿은 칼의 느낌이 서늘하게 다가왔다. 찌르려는 것일까? 나는 용기를 내서 어리둥절하고 있는 나의 동료들에게 그의 비밀을 말했다.
"그렇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당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헉! 하는 소리를 내며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살라딘이 떨리는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지금… 그 말에 책임지실수 있나요? 당신의 목숨을 걸수 있습니까?"
그의… 아니, 그녀의 말은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하찮은 목숨입니다. 그 무엇을 걸든 당신이 여성의 몸으로 자신의 비밀을 숨기고서 까지 지켜왔던 소중한 가치에 비할 것은 아니겠지요. 이만 칼 내려 놓으세요."
"나는… 나는… 나에게는 의무가… 살라딘의 후계자로서… 성지를 지킬 의무가…"
"이미… 충분히 잘해오셨습니다. 성별과 무관하게 그분의 후손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선정을 펼치시고 평화의 도시를 지켜내셨습니다. 지금의 일은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니 당신이 책임져야 할 것도 아닙니다. 당신은 충분히 잘해왔습니다. 그러니깐, 이제 그만 무리하셔도 됩니다. 우리에게 아주 조금 의지해주셔도 됩니다."
"크흐윽…"
그녀는 칼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바닥에 주저앉아 서럽게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숨겨왔던 자신의 비밀이 드러난 것에 대한 수치심과 오랫동안 묵묵히 인내해야 했던 서러움이 한꺼번에 폭발한듯 했다. 그리고 잠시후… 여전히 무기를 우리에게 겨눈 그녀의 병사들이 그녀에게 뭐라 말을 하려 움직일 찰라… 그녀가 일어섰다.
그리고 소매로 얼굴을 닦았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목으로 가져가 목을 조여서 여성의 목소리가 나는 것을 막고 있던 답답한 투구의 조임쇠를 풀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머리를 감싸고 있던 뒷통수가 우그러진 투구를 벗고, 터번과 얼굴에 붙인 가짜 수염과 겉옷을 벗었다. 그리고 머리를 조금 흔들자 오랫동안 답답하게 갇혀있던 그녀의 머리가 어께를 타고 등으로 흘러내려 왔다.
"아…"
에라드가 무의식적으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해할만했다. 남장을 벗고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낸 그녀는 누가 봐도 감탄해 마지 않을 조금 창백한 피부의 훤칠한 쿠르드족 미인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에라드를 바라보고, 두 사람이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말없이 목례를 해보였다. 그리고 당황하는 그에게 시선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제 본래의 모습으로 다시 인사드립니다. 살라딘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오랫동안 저는 의무와 책임에 묶여 그것을 지키기 위해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키지 못한 저에게 남은 의미는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것은 성지의 수호라는 그 시작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위대한 살라딘께서는 맘루크의 독단으로 인해 손에 넣은 예루살렘을 지키기 위해 그 직위를 만드시어 일족에게 의무를 다할것을 명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의무에는 한가지 전제가 붙었습니다. 성지를 수호하는 책임을 지는 자는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이 땅의 정쟁에 끼어들수 없다는 일종의 정치적 거세였죠. 나의 아버지 알 아프달은 아이유브 왕조의 패권을 노리기 위해 그 책무를 자식들에게 넘기길 원하셨으나, 그 단서가 붙은 책무를 지려는 남자 후계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결국 고심하시던 아버지는 딸인 저를 남장시켜 세상을 속인 뒤 그 책무를 넘기셨습니다.
저에게 거절할 권리는 없었습니다. 오랜 시간 저는 성지의 수호자로서 일족의 남자로서 이곳에 걸린 주박처럼 그대로 세상과 자신을 속인채로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것은 이제 남은 모든 아이유브의 일족이 맘루크에게 도륙이 된 지금에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비밀은 저의 죽음으로 세상에 영원히 알려지지 않고 묻히기를 기원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것은 음유시인의 손에 세상에 알려지게 되어버렸군요."
나는 그녀의 오랜 시간 묻혀진 고백을 들으며 에라드를 한번 바라보았다. 그는 그녀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나는 그래서 말하지 않기로 했다. 에라드는 모르고 있지만, 사실 가장 의심스러운 것은 살라딘이 에라드를 보는 눈빛이 단순한 체스의 라이벌을 보는 눈빛이 아니란 점에서 의심이 시작되었다고는 말할수 없겠지. 나는 대신 다른 말을 꺼냈다.
"떠벌이 음유시인이 숨기고 싶은 비밀을 세상에 퍼트린 점은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당신을 그대로 내버려 둘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당신의 존재가 필요했습니다. 다시 한번 더 부탁드립니다. 우리와 함께 해주십시오. 성지의 백성을 위해 데네브 작전의 일원이 되어 주십시오. 성지는 잃었지만 백성들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아직, 당신께서 오랫동안 지켜온 사람들은 아직도 당신의 손길이 필요로 합니다. 도와주십시오. 우리의 힘이 되어 주십시오. "
그녀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후 칼을 양손으로 들고 한쪽 무릎을 꿇고 나에게 받치며 말했다.
"당신을 섬기겠습니다. 백성들을 지키는 검이 되겠습니다. 잃어버린 성지를 찾는 순례자가 되겠습니다. 생과 사는 오직 알라와 주군에게 달려있으니 당신께서 원하는 대로 쓰시옵소서."
나는 그녀의 말에 조금 당황했다.
"에… 에? 저기 저를 그렇게 섬기겠다고 하시면… 살라딘님 저희 어머니랑 동등하게 외교적으로 대담하시는 입장이신데 저같은거 한테 그렇게 하시면…"
그러나 당황하는 나에게 그녀는 말했다.
"조직의 서열은 확실하게 매듭짓는 것이 좋습니다. 수하로 받아주시지 않는다면 저는 떠날수 밖에 없습니다. 검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명하시길 바랍니다."
하아… 이게 무슬림들의 방식인가? 난 좀 난처해하며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그녀가 받친 검을 받아들었다. 묵직한 느낌…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를 베지 않도록 주의하며 검등을 그녀의 양 어께에 한번씩 두들기고 말했다.
"당신을 우리의 일원으로 받아들입니다. 부디, 성지는 잃었지만 백성들의 희망이 되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렇게 우리 데네브 작전의 멤버로 살라딘이 들어왔다. 잠시 그녀는 다시 우리 멤버들과 제대로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에라드는 그녀에게 다가가지 않고 멀리서 바라만 보았다. 많이 복잡한 심경이겠지. 하지만, 에라드도 어느 정도는 눈치채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기보만 보고도 상대의 심기를 읽는 에라드가 그녀의 기보에서 뭔가 이상한 기분을 느끼지 못했을리가 없다. 나는 잠시 그 두 사람을 내버려 두기로 했다. 인사를 마친 그녀가 말했다.
"일단… 제게 맡기시려는 일을 짐작해보건데… 아마도 추격해올 바라카와 맘루크 병력의 저지가 목적이시겠죠? 알겠습니다. 지금 즉시 방어 대책을 수립해야겠군요.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말에 멜리장드가 대답했다.
"하지만 저희 쪽에는 적임자가 없습니다. 오로지 당신만이 희망입니다. 군사 부문에 있어 경험을 가진 사람이라고는 케두스 왕자와 안젤모 제독 정도인데… 실질적으로 우리가 가진 병력의 대부분이 당신과 동행한 예루살렘 동원군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 지휘를 맡을 사람은 살라딘님 밖에 없으십니다. 이미, 헤브론의 광신도들의 반란을 유혈사태 없이 진압하시고, 맘루크의 일부 강경파의 무단 약탈을 제압하신 경력도 있지 않으십니까?"
그러나 멜리장드의 기대에도 살라딘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렇기는 해도… 우리 예루살렘 방어군은 고작 3천명… 맘루크의 추격 병력은 탈출계획에서 예상한 것처럼 바라카와 살라미슈의 지상군 1만 4천, 해군 8천이 될것입니다. 그 병력차를 백만여명의 난민들을 지키면서 막아내야 한다니… 하아, 이건 쉽지 않은 일이 될 것 같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최악의 상황을 감안해야 할수도 있을 듯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을 놓고만 있을수도 없으니… 일단은 기존 이동 경로를 감안해서 씨서펜트와 해상과 육상에서 연계한 방어전략을 짜도록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방법이 될 것 같군요. 이미 일주일이 지났다면… 우리가 있는 이곳은 아마도 티루스… 어라? 이거 뭔가 좀 이상한데요? 여기가 기존 계획대로 정해진 이동 경로라면… 아무리 먼 가도를 사용했어도 해안선이 보여야 할텐데… 지금 여긴 어디죠?"
나는 멜리장드를 한번 바라보았다. 멜리장드는 나의 시선을 받자, 고개를 돌려 아이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둘은 고개를 끄덕이고 합창하듯이 대답했다.
"여기는 티베리어스입니다."
안젤모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다 읽어내렸다. 그리고 다시 한번 여러 번 읽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용이 바뀌는 것은 없었다. 그는 의아해하는 갑판장에게 편지를 건내주었다. 갑판장은 편지를 읽으며 자기 눈을 의심했다.
'친애하는 고향 오빠 안젤모에게.
큰 가르침을 주신 당신에게 진심을 모아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당신 덕분에 우리가 아마추어이고 어설픈 동정심으로 일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닭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당신의 가르침을 존중하여 좀더 성숙한 모습으로 독하고 악착같이 프로가 되기로 결정하였고 그 일환으로 우리는 심사숙고 끝에 당신을 맘루크의 병력을 분산시키기 위한 미끼로 쓰기로 결정했습니다. 숫자와 논리로 논하는거 좋아하셨죠?
당신의 가르침대로 논리적으로 풀어보자면, 어차피 백만이 넘는 백성들을 이끌고 이동하는 길에 해상보급이 큰 의미가 없다면, 그 경로는 굳이 해안선을 따라갈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동 경로를 내륙의 사막을 통하는 길로 잡았습니다. 비상식적인 경로이기는 하지만, 그렇기에 적들도 우리의 경로가 해안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결정이 좀더 쉽도록 일부러 해상 경로에 대한 정보를 마구 맘루크에 누설하여 시선을 끌었습니다.
아마도, 지금쯤 우리가 내륙으로 북상하는 동안 정보를 입수한 맘루크의 부대가 해안선을 따라 예정된 접선 지점으로 공세를 가하기 위해 미친듯이 달려가고 있을 겁니다. 물론 길가에 백성들이 도통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조금 의아해하긴 하겠지만, 아마도 그들이 진상을 깨닭게 되는 건 접선 지점에서 멍때리고 있는 당신을 육상 해상 양면에서 두들겨 잡은 다음이 될꺼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이 우리는 당신이 벌어준 시간을 요긴하게 활용하여 안전하게 이동하겠습니다.
숫자로 말씀드리자면, 아마도 해상에서 몰려오는 병력은 함선 133척에 병력 8천, 육상에서 몰려오는 병력은 1만 4천 정도가 될것으로 예상되는 군요. 당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으니 133척을 상대로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살 혈전을 벌이길 기대해볼께요. 말씀해주신 대로 논리와 숫자로 표현하고 프로답게 아군도 동정심이나 의리따윈 개나 던져주고 결정을 했습니다. 어떠신가요? 칭찬받을만 하지 않은가요?
P.S 아이샤가 꼭 살아 돌아오라고 전해달래요. 다시 만나서 직접 싸대기 날려줘야 화가 풀린다나 뭐라나… 그.러.니. 깐! 티루스에서 즐거운 시간 보내고 나중에 다시 만나요! 바이바이!'
갑판장은 편지를 든 손을 부들부들 떨며 안젤모에게 말했다.
"제독님…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겁니까?"
"내가… 사자의 콧털을 건들였나 보다. 새끼 사자도 사자인데… 새끼고양이 취급을 해버렸어. 그래도 그렇지 이 미친 것들… 지금 제 정신이야? 백만여명의 백성을 데리고 광야와 사막밖에 없는 내륙길을 통해서 북상하겠다고? 이거 미친거 아냐? 아니 대체 보급은 어떻게 하려구…"
"그보다는… 지금 이 편지에 적힌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 걱정부터 하는게 우선일 듯 합니다만. 지금 아이유브 해군이 우리 접선 지점을 정확하게 알고 우리처럼 우회하지 않고 곧바로 달려왔다면 아마도 도착 시점은…"
그때 돛대위에 초병이 종을 요란하게 울리며 소리쳤다.
"함선 발견! 함선 발견! 남동쪽에서 맹렬한 속도로 북상중… 아니, 정정한다. 함선이 아니다. 함대다. 그것도 수많은… 으아아악! 거의 백여척에 달하는 함대가 미친듯이 달려오고 있다."
안젤모는 멍한 얼굴로 갑판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기… 우리 12척으로 133척을 상대로 이길 확률은?"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구요! 그건 바다의 신이 와도 불가능한 숫자라구요! 으악! 이제 우린 죽었어! 전원 전투 배치… 아니, 정정한다. 기동 배치로! 돛대들 전부 펼쳐! 전속력으로 도주 준비해!"
그러나 안젤모는 여전히 멍하게 저 너머로 급속하게 다가오는 함대를 보다, 드디어 열이 받은듯 이를 갈며 소리쳤다..
"이 망할 녀석들… 오냐! 두고보자. 살아돌아가주마. 그 대단한 싸대기 맞으러 저 뭣 같은 놈들 다 쓸어버리고 살아돌아갈 테니… 그때 두고 보자! 이 망할 계집애들 같으니!!!"
살라딘은 어이없는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결국, 씨서펜트를 그들에게 던져주고 왔다는 건가요? 기가 막히는군요. 아니 대체 어쩔려고 그런 무모한 짓을 저질렀습니까? 내륙으로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행군이 될줄 모르시나요?"
멜리장드는 조금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너무 나무라지 마십시오. 그가 말한 것 처럼 우리는 최대한 비정하게 대안을 수립한 것 뿐입니다. 그리고… 초안과는 달리 내륙 경로를 선택한 것은 나름 그쪽의 장점도 있기 때문입니다. 얼핏 보기에는 메마른 광야와 사막만 펼쳐진 황량한 지대라 그런 인구가 이동할 경우 물자와 식량이 부족해 고갈될것이라는 선입견이 있기는 하지만… 어차피 선박이 부족해 해상 보급이 대량으로 불가능한 경우 해안가도가 그리 좋은 조건이랄 것도 없습니다. 되려 적에게 포착되기 쉬운 단점까지 있지요.
그리고 내륙의 보급 문제에 대해서 우려하시는데, 그것은 적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장에서 보급을 많이 챙기는 건 군인보다는 민간인들이 더한 편이죠. 우리 쪽 백성들이 고통스러운 것 이상으로 경로가 바뀐걸 뒤늦게 알고 헛걸음을 한 뒤에 추격할 적의 보급 또한 쉽지 않을 것입니다. 거기다 미끼로 던진 씨서펜트가 어떤 형태로든 적의 보급의 중추를 담당할 적의 해군에 피해를 준다면… 그것도 상대의 보급에 나름 영향을 비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내륙의 이동이 성경에 나오는 것 처럼 하늘에서 메추리가 떨어지는 기적이 없으면 죽기 쉽상인 그런 곳이 아니더군요. 이미 오랜 시간 성지로 가는 길이 개척되며 가도에 마을과 숙식 시설이 들어서 있어서 중간 보급이 아예 불가능한것도 아니고, 식수의 문제에 있어서도 사막을 가로지르는 지하 수로인 카나트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우리의 경로를 거쳐가도록 되어 있죠. 사막의 열사와 복사열은, 이동 시간을 야간으로 정하고 낮에는 휴식을 취하는 일정으로 지시하여 더위와 적의 노출을 피하고 야음을 틈타 이동하는 방식으로 피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이동을 하게 된다면 좀 느리고 고통스러운건 사실이지만 적어도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아사하거나 기갈로 죽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처음에 황급하게 계획을 변경하겠다고 선언을 했을 때 다들 멜리장드를 어머니와 비슷한 시선으로 봤다. 하지만, 멜리장드는 나름 안젤모에게 데인 경험이 뼈에 사무쳤던지 정말로 호의를 보여준 상대를 가차없이 내다버리는 비정한 계획을 선언하며 사람들을 설득했다. 결국… 그녀의 도박은 지금까지는 성공했다. 우리의 경로는 예정된 티루스가 아닌 조금 더 내륙인 티베리어스로 진입하였다. 그리고 내일 정도면 아마 티베리어스 호수가 우리 시야에 들어올 것이다.
적들은 우리를 지나쳐서 티루스의 해안가도로 안젤모의 함대의 행방을 기준으로 우리를 제압하여 이동했고, 그 천금 같은 시간을 우리는 상당히 난민들을 북상시키는 데 활용할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물론 아직 일이 끝난건 아니다. 분명 안젤모를 털어버린 맘루크들은 기만당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분노해서 눈에 불을 켜고 우리를 찾아 내륙으로 말고삐를 돌릴 것이다. 여기서 그들의 공격을 1차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 멜리장드를 비롯한 멤버들의 의견이었다.
그래서 살라딘의 도움을 절실히 기다린 것인데… 눈을 뜨자마자 비밀을 들키고, 돌아가는 상황이 백만명을 가지고 블러핑을 친 이 황당한 상황에 그녀는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지 의문이었다. 다행히도 그녀는 어이없어 하기는 했지만 차분한 얼굴로 지도를 바라보며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뭐… 우여곡절이 많기는 하지만, 결론만 보자면… 결국 이 시점에서 기만 당하고 돌아올 적습을 1차로 방비해야 한다는 것이군요. 그리고 우리가 결전을 벌일 장소는 바로 이곳… 티베리어스가 되어야 할 상황이구요. 일단 알겠습니다."
나는 우려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딱히 우리에게 유리해진 상황이 더 있지는 않습니다. 결국 3천으로 최대 2만2천, 최소 1만4천의 병력을 상대해야 할 상황임은 변하지 않았습니다만…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는건 아닌지…"
그때 리엔이 조금 머뭇거리며 손을 들었다.
"최소가 더 줄어들 가능성은 있습니다. 체스의 현지 조사에 따르면… 맘루크 내부에서 후계자 경쟁이 있다고 합니다. 군대를 몰고 오는 바라카와 살라미슈는 형제이기는 하지만 둘은 바이바르스의 후계자 자리를 둔 경쟁자라고 합니다. 그 두사람이 티루스에서 허탕을 치고 경로를 바꾼다면, 그 두 사람이 공동작전을 펼칠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장은 7천명인가? 그래도 우리의 병력이 예루살렘 동원군 3천이 주력이라는 점에서 두배수가 넘는 상황이군요. 역시… 난민들 중에 예비병력을 동원해야 하지 않을까?"
나의 말에 살라딘은 난색을 표했다.
"그건 그만두시는 편이 좋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대략 만단위 징발이 될지는 몰라도… 훈련이 안되어 있고 군율과 언어가 다른 징집병을 동원할 경우 정예화된 맘루크와 조우해서 그 공포를 전염시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되려 우리의 발목을 잡을 겁니다. 그리고 저는 그렇게 수많은 다양한 병종을 한꺼번에 지휘할 자신이 없습니다.
익숙한 소수 정예가 난잡한 다수보다 유리한 것이 군사의 상식입니다. 그리고… 이곳, 티베리어스에서 라면 제게도 한가지 적들을 유리한 입장에서 유린하고 우리측에 승리를 가져올 방법이 한가지 있습니다."
그녀의 예상치 못한 말에 우리는 모두 놀라 그녀에게 물었다.
"그… 그런것이 있나요? 믿을 수가 없군요. 두배수의 병력을 상대로 어떻게…"
그녀는 조금 한숨을 쉬며 멜리장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것은… 오래전 나의 할아버지 살라딘께서 남긴 기록에서 발견한 전쟁 일지에 나온 작전 계획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방법입니다. 이 방법은 멜리장드, 당신과도 무관하지 않은 작전이예요."
"네? 저랑 무관하지 않다고요?"
"네, 정확히 말하자면 당신의 큰조부인 필립 카페와 관련이 있는 방법입니다. 당시 예루살렘 왕국이 멜리장드 여왕의 등극 이후 내분으로 반여왕파가 맘루크를 전쟁에 끌어들였을 때, 공식적으로 전쟁의 표면에서 대치한 것은 나의 조부 살라딘과 당신의 큰조부 당시 구호기사단장이자 예루살렘 왕국 재상이었던 필립 카페였습니다.
나의 조부께서는 시빌라를 중심으로 한 반여왕파의 사전에 맘루크와 협의된 아이유브에 대한 도발이 정황이 의심스럽기는 했지만 그대로 방치할수도 없어 그 대응을 위해 출격하였죠. 그리고 상대가 당시 명장으로 당대에 칭송을 받던 당신의 큰조부라는 사실에 한가지 책략을 써서 구호기사단을 방어하는 측에 유리한 위치에 끌어들여 물리칠 계획을 수립하셨지요.
하지만, 현명하신 당신의 큰조부는 그 계략에 넘어가지 않고 오히려 구호기사단에 유리한 위치인 클라크 데 슈발리에에 병력을 이동시켜 상대를 괴롭히는 방식으로 대처하였습니다. 덕분에 써보지도 못하고 폐기되기는 했지만, 할아버지의 그 작전은 방어하는 측이 대단히 유리한 작전입니다. 그 작전을 실행할수 있는 장소가 마침… 이곳 티베리어스, 정확하게 말하면 티베리어스 호수 근방에 위치한 이 언덕…"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테이블 위에 펼쳐진 지도의 한 지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일명 하틴의 뿔(Horn of Hattin)이라고 불리워진 두 언덕과 그 사이로 호수로 연결된 이 지점, 이곳에서 적들을 맞이하고 싸우도록 하겠습니다."
멜리장드 : 데네브 작전 무사히 성공! 모두들 수고 많으셨어요. 기념으로 단체 사진이나 찍을까요? 죤 : 그거 좋은 생각인데? 어... 근데 안젤모가 없는데 어쩌지? 아이샤 : 괜찮아요. 나중에 얼굴만 따로 찍어서 단체사진 모서리에 붙여넣으면 돼요. 안젤모 : 아직 안죽었다!!! 이 망할 기집애들아!!! 멜리장드 : 쳇, 아직 살아 있잖아? 그 정도면 충분히 퇴학당할줄 알았는데... 아이샤 : 그러게, 안젤모 선배 다른 학교로 전학가는 걸로 처리되는거 아니었나? 안젤모 : 갑자기 얼렁뚱땅 학원물로 변경하지도 마!!!
첫댓글 이번에도 1등이다!
하틴 전투에.... 살라딘 너어...!
매번 1착 감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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돗자리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안젠모가 서쪽의 이순신장군인가여 왜 12척 ㅋㅋㅋ
이순신 : 할만하지 않아? 일단 꼭 지켜야 할 너희 땅도 아니고... 나처럼 모함당해 쥐어터진것도 아니고...
안젤모 : 형님은 그래도 천자총통이라도 있었죠...ㅠㅠ
하틴의 뿔의 살라딘!! 멜리장드 통쾌하긴 한데 비정해져서 좀 무섭네요. 나중에는 군중들을 희생할것 같은게 ㄷㄷㄷㄷ
모든 군중이 한명도 안죽고 도달하기는 애초에 불가능한 미션이죠. 하지만... 의외로 비정한 선택은 멜리장드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주어질지도...
삭제된 댓글 입니다.
이번 작품의 큰 테마가 바로 통수입니다. 이 작품이 끝나갈때쯤에는 아마도 죤은 냉소 트레잇을 얻게 될지도 모릅니다.
@Peter Von Petersburk-Hoi 나중에 이런 장면이 나올지도...
멜리장드 : 데네브 작전 무사히 성공! 모두들 수고 많으셨어요. 기념으로 단체 사진이나 찍을까요?
죤 : 그거 좋은 생각인데? 어... 근데 안젤모가 없는데 어쩌지?
아이샤 : 괜찮아요. 나중에 얼굴만 따로 찍어서 단체사진 모서리에 붙여넣으면 돼요.
안젤모 : 아직 안죽었다!!! 이 망할 기집애들아!!!
멜리장드 : 쳇, 아직 살아 있잖아? 그 정도면 충분히 퇴학당할줄 알았는데...
아이샤 : 그러게, 안젤모 선배 다른 학교로 전학가는 걸로 처리되는거 아니었나?
안젤모 : 갑자기 얼렁뚱땅 학원물로 변경하지도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