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인터넷 각종 게시판을 '도배'하다시피하며 여론을 들끓게 했던 '옥정중 서지혜양 사건'.
열다섯 살 소녀가 또래 친구들에게 폭행을 당해 그 휴유증으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학교폭력의 위험수위가 어디만큼 왔는가를 알려주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난 지금, 아직도 사건은 해결되지 않고 있고 이 일을 처음 인터넷에 올린 주인공 지혜양의 어머니는 국회로부터 뜻밖의 상을 받았다.
취재ㅣ양소영기자 사진ㅣ한정수 디자인ㅣ송희정기자
인터넷공간 뜨겁게 달구었던 '옥정중 서지혜양 사건'
- 딸의 억울한 죽음 인터넷에 직접 올려 네티즌 힘 모으고 국회상까지 받은 엄마 신연주시의 애끓는 심정 -
난생처음 인터넷 배워 억울한 심정 글로 올려
지난 12월 29일 오후 2시, 국회 의원회관 대강당에서는 국회대중문화&미디어연구회(회장 김덕룡)가 주최하는 시상식이 열렸다.
2000년 한해 대중문화와 미디어의 각 분야에서 특별한 공을 인정받은 인물과 단체에게 상을 주는 자리, 그런 만큼 영화 부문에서는 '공동경비구역 JSA'가, 대중음악 부문은 조성모가, 방송 부문은 드라마 '허준'팀이 수상하는 등 각 분야에서 한 해 최고의 인기를 부렸던 사람들이 차례로 단상에 올라 커다란 상패와 꽃다발을 받고 있었다.
환한 웃음과 함께 박수 세례를 받는 그들 틈에서 낯선 얼굴이 보였다. 인터넷 부문의 수상자로 이름이 불린 신연주씨, 시상을 맡은 김근태의원은 '이 상이 어떤 위로가 될지 모르겠다'며 말문을 열었다.
상을 받게 된 신연주씨는 지난 연말 인터넷 토론장을 뜨겁게 달구었던 '옥정중학교 서지혜양 사망사건'의 피해 당사자인 지혜양의 어머니였다.
수상자 선정 이유에는 학교 폭력으로 숨진 딸을 잃은 애틋한 심정을 인터넷에 띄움으로써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사회에 알린' 때문이라고 적혀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단상에 오른 신연주씨는 솟구치는 눈물 탓인지 '지혜의 일을 잊지 말길 바란다'며 짧은 인사말을 대신했다.
인터넷을 통해 얼만큼 빠르게 여론이 만들어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 좋은 본보기였다고는 하지만, 딸을 잃은 일로 상을 타게된 지금 그의 심정이 어떠할지 짐작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시상식이 있은지 일주일이 지난 후 그이의 집을 찾았다. 국회에서 받은 커다란 상패는 지혜가 쓰던 책상 아래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상을 돌려드리고 싶은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학교 폭력의 심각성을 알리고 다시는 지혜와 같은 억울한 희생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어렵게 수상을 허락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습니다."
딸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부터 쏟는 그이가 상패를 만지작거리며 털어놓는 심정속에는, 아직도 해결이 나지 않은 이번 사건에 대한 답답함과 서운함이 들어있었다. 딸이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난생처음 인터넷이라는 것을 배우고 한 자 한자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올리던 그날 이후로 그이는 하루도 인터넷 사용을 걸러본 적이 없다.
딸의 억울한 사연을 가장 먼저 알린 것도 인터넷을 통해서였고, 싸울 힘을 얻은 것도, 위로를 받는 것도 인터넷 게시판에 오르는 글들 덕분이었다.
"지혜 학교 인터넷 홈페이지의 게시판은 사고 이후 한동안 소란스럽더니 결국 폐지된 상태더군요. 대신 다른 인터넷 공간에 지혜의 죽음을 애도한다는 의미로 만들어진 모임이 있어요,
회원이 천5백명까지 늘기도 했습니다. 매일같이 인터넷에 접속해 새로운 글을 읽어보며 우리 지혜를 생각해요"
그이가 인터넷에 처음 글을 올린 것은 지난해 10월말, 순식간에 사연이 퍼지며 네티즌들을 들끓게 하고 결국 신문, 방송 등이 취재에 나서게 만든 '옥정중 서지혜양 사건'의 내용은 이렇다.
이제 겨우 열 다섯 살인 지혜가 같은 학교 친구를 비롯한 다섯 명의 여학생들에게 집단구타를 당해 고통속에 숨을 거두었다는 것.
"지혜가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너무 고통스러워했어요. 지혜 동생이 '우리 언니 살려달라'며 먼저 인터넷에 글을 썼지요. 청와대와 검찰청, 청소년단체 등에 글을 올린 것이 시작이었어요. 그리고 저도 딸에게 배워가며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눈물로 범벅이 된 채 어머니와 딸이 인터넷에 올려놓은 글은 마침 직전에 벌어진 '성수여중 사건'과 맞물리며 큰 관심을 모으에 되었다. 게다가 '성수여중 사건'의 피해학생과 달리, 지혜양이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마는 비극으로 이어지자 인터넷 공간은 거의 폭발할 지경으로 들썩이게 되었다.
"방송보다, 신문보다, 인터넷의 힘이 더 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혜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 인터넷에 뜬 바로 그 날 기자들이 한꺼번에 오십 명이나 영안실에 찾아왔어요.
그런 후로 방송에서도 지혜의 죽음에 대해 다루기 시작했구요."
부검, 경찰 조사 아직 진행 중 "다시는 이런 일 없어야"
사건이 벌어진 지 3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딸의 사건에 대한 결론은 내려지지 않은 상태다. 10월 30일 사망 이후 11월 2일 실시한 부검의 결과도 나오지 않았고 경찰의 조사 진행동 더디게만 느껴진다.
사건의 쟁점은 가해학생들의 폭력이 과연 지혜양을 죽음에까지 이르게 할 만큼 심한 폭행이었냐는 것. 가해학생들은 "한 시간 동안 실랑이를 벌이다가 지혜의 빰을 여섯 차례 때렸지만 배는 때린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폭행을 당한 뒤 사흘째 되던 날에야 동네 의원에 데려갔습니다. 지혜가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계속 토하기만 하더니 축 늘어지더라구요. 의원에서는 얼른 큰 병원에 데리고 가라고 했고 동부시립병원을 거쳐 다시 서울대 병원까지 계속 옮겨다녀야 했습니다. 상태가 너무 안 좋다는 거예요.
서울대 병원에 와서야 의사 선생님 말씀이 '애가 어떻게 맞았길래 간이 이렇게 부었냐?'고 해요. 그때서야 지혜가 폭행당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중환자실이 없어 다시 중앙병원으로 간 뒤 지혜의 고통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장기 중 많은 부분이 손상되어 있고 특히 간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는 청천병력같은 소리도 들었다.
간이식 수술을 하면 살 수 있다는 말에 어머니는 자신의 간을 떼어줄 준비까지 하고 있었다.
세상을 떠나기 겨우 나흘 전에야 지혜는 처음으로 자신이 폭행을 당했다고 털어놓았다. 고통 속에 몸부림치다 까무러치기를 반복하던 지혜가 겨우 잠깐 의식을 찾았을 때 아빠를 보고 한 말은 '억울해 죽겠어'였다고. 그리고 나흘 뒤 지혜는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사망원인 전격성 간염이라는 것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보통 그 병은 폭행과는 연관을 짓기가어렵다고 해요.
흔치 않은 경우 외부로부터의 가격이 간염을 악화시켜 전격성 간염이 되고 사망에 이른다고는 하지만 지혜는 이제껏 병원 한 번 가보지 않을 만큼 건강한 아이였습니다."
지혜의 부모는 딸의 억울한 죽음을 세상에 더욱 알리고 학교 폭력의 심각성을 고발한다는 생각에 지금 모든 일손을 놓고 이 일에만 매달리고 있다.
아직 한 번도 이들 가족을 찾지 않은 가해학생이나 그들의 부모에 대한 서운한 마음도 감출 수 없다. 경찰 조사도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이고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아직 진술 한번 받으러 오지 않았다고 한다.
가해학생의 부모 중 현직 경찰이 있다는 사실을 두고 '축소수사'나 '사건은폐'의 의혹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점도 아직 인터넷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의문이다.
"아침마다 컴퓨터를 켜고 지혜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 인터넷공간으로 들어갑니다. 지혜의 친구들이 올린 편지, 우리처럼 자녀의 학교폭력 피해로 힘들어하는 부모의 호소, 끝까지 사건을 지켜보겠다는 기자분들의 글에서 위로를 얻습니다. 지혜는 떠났지만 다시는 지혜같은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