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나그네 시인 jung sik kim / 소년의 빛 바랜 노트... (실 화)
지긋 지긋한 부대생활이 지나가고 봄이 찾아올 무렵
부대에서 아끼고 아낀
돈으로 나는 광주에 있는 조선대학교 부속고등학교
야간에 합격하여 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광주 지산동 골짜기에 일 년에 3만원하는
나무판자로 된
1평 남짓 된 방 한 칸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아는 지인의 소개로 쥬리아 화장품 외판원
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아모레 화장품과 쥬리아 화장품
한국화장품이 대표적이였습니다.
나는 교복차림으로 쥬리아 화장품 영업소에 첫날
출근을 하였습니다...
나는 아가씨들 틈바구니에서 교복을 입고 있는
것부터 어색하였고
영업소에서 나 혼자 남자였기 때문에 창피하여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그 당시에는 화장품 외판원들과 미용사들이 한조가 되어
나란히 집집을 방문하여,
화장품을 팔고 고객들에게 미용 맛사지를 해주던
때였습니다...
미용사 아가씨들은 대부분 20살에서 24살 정도되는
아가씨들이였습니다.
그때는 화장품 미용사 직업이 상당히 경쟁의 직업
이였습니다.
남자 학생이 화장품 외판원이라는
사실은 순식간에
광주시내에 입소문으로 퍼져나가 수근거림니다.
나는 뜨거운 띄약 빛이 내리 쬐이는 여름 땀을
뻘뻘 흘리며 미용사원과
함께 짝을 이루어 가방에 화장품 기초화장품
5단계부터
영양크림 칼라메이크업
샴프까지 한 가방 가득 채우고 시내 지정된 구역
으로 나갔습니다.
당시엔 대부분 화장품이 유리용기로 되어 무거웠습니다.
가방 가득 채우면
아마 15킬로 쯤은 되는 것 같았습니다...
첫방문에 대문을 열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좀처럼
들어갈 용기가 나질 안았습니다.
교복차림에 무거운 화장품 가방은 한 쪽 어깨가
기우뚱 한 모습이였습니다...
마치 집 대문이 동물원의 사자 우리 앞처럼
느껴졌습니다.
미용사 아가씨가 용기를 내라고 다그칩니다.
미용사 아가씨는
학생
그냥 눈감고 벨을 눌러봐...
첨에는 다 그런 거야 용기를 내서 벨을
눌러 보라고 합니다...
나는 아가씨의 다그침에 엉겁결에 벨을 눌렀습니다.
그러자
조금 있으니 덩치가 큰 우람하게 생긴
40대 중년 남자가 나옵니다.
그 남자는 퉁명스럽게
뭐야~ 너
왜~
이렇게 말을 던집니다.
순간 얼굴은 홍당무가 되어 화끈거리고
입은 그대로 굳어져 버립니다.
그러자
미용사 아가씨가
아~네
쥬리아 화장품이에요
선생님~
그러자 그 남자는 얼굴색이 금방 스마일
미소로 변하면서
어서 집으로 들어오라고 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화장품 외판원의 시작은
학생이라는 동정을 등에 업고
선한 아주머니들이 이거 저거 많이들
사주셨습니다...
그래서 1년 동안 비록 야간 학교지만
밤에는 열심히 공부하며 낮에는 화장품을 팔며
돈을 벌어 야간 학교에 그런대로
다닐 수 있었습니다...
책도 사고 옷도 사고 라면도 사서 끓여
먹을 수 있었습니다.
라면은 나의 아주 친한 친구였습니다.
반찬이 필요 없으니 친구로 늘 곁에
있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화장품 외판원 생활은 제법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무렵
하루는 지점장이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자신이 쥬리아 화장품 대리점장을 그만 두고
불로동 하천 옆에
이름도 생소한 흑룡 보드래 화장품 광주 총판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리를 옮겨 자기를 따라 오라는
것입니다...
저는 지인의 소개를 받은 터라 결코 지점장 청을
거절할 처지가 못 되었습니다.
나는 화장품 가방을 쥬리아에서 흑룡 보드래 가방으로
바꿔 거래처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지정된 구역은 광주 사창가 밀집 지역인
대인동 이였나 봅니다.
나는 대인동이 사창가인지 주택가 인지도
모르고
미용사원과 집집을 방문하였습니다....
단칸방 자취방이 밀집된 대인동은
한집에
많게는 방이 12개까지 있었고
아가씨들이 대 낮인데도 요염스런 속이 훤히 보이는
잠 옷 바람으로
눈을 비비며 문을 열어 줍니다...
미용사 아가씨와 방안으로 들어가면
아가씨들은 공짜 맛사지에 더 환장합니다.
그리고
아가씨들은
어머머~~
학생이 뭔 일이여~
학생이 화장품 파는 건 첨보네..
신기한 듯 내 얼굴을 힐긋 힐긋
보며
아이 귀여워~
간지럽게 말을 건냅니다.
나는 너무 창피하여 얼굴이 벌게집니다.
그러면서 아가씨는
학생이니까 화장품을 앞으로는 학생 걸
사주겠다는 것 이였습니다..
눈물나게 고마웠습니다...
당시에는 화장품 방문판매가 대부분
외상이였고
한 달 뒤 수금을 조금씩 하러 다님니다.
한 달 동안 대인동 아가씨들은 학생이라며
내 화장품을 원 없이 구매 해주었고
나는 총판 대리점에서 판매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모두 외상 판매 왕이였던 셈입니다...
그런 기쁨은 몇 달 뒤에 절망의 수렁에
빠져 들게 되었습니다...
한 달이 지나고 수금을 하러 가보았습니다.
방문을 꼭꼭 감궈 있었고
신발이 있는 것으로 봐 서 사람은 분명
있는 것 같은데 인기척은 없습니다...
대부분 이러다 아가씨들은 종적을 감추고
이사를 가고 없었습니다.
10집이면 8집은 도망치고 없었습니다.
집주인 아주머니 한테 이집 아가씨가 언제 이사
갔느냐고 물어 봅니다....
아~
문간방 그 아가씨
20일 전에 이사를 갔는데~
어디로 혹시 간지 아세요?
어디 지방으로 간다던데...
절망에 그 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습니다...
눈물이 어찌나 나오는지
모름니다...
그렇게도 이쁜 얼굴에 상냥했던 아가씨가
도망치고
없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현실이였습니다.
보드래 화장품으로 옮기고 대인동 사창가 구역으로
지정된 것이
절망의 낭떠러지 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난~
빚더미에 앉아 결국 보증을 서준 고모한테
변제 화살이 가게되었습니다..
나는 망연자실하여 고등학교 2학년
1학기가 시작된
4월에 중순경 학업을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내손에 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손에든 돈을 모두 화장품 대리점에 입금하였기
때문입니다.
내 주머니에는 잔돈으로 남은 1000원이 전부
입니다.
나는 광주 시외 버스 터미널에서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은
그냥 버스에 올라 탓습니다...
그런데 그 버스는 나주 버스 터미널이 종점
이였습니다...
나주 버스터미널에 손님들은 내리고 각자
발걸음을
재촉하며 터미널을 빠져 나갑니다.
그런데 나는 갈 곳이 없습니다.
왜 내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름니다.
기다리는 사람도
찾아갈 사람도 없는 내 모습이 큰 거울에
애처롭게 보입니다.
해가 저물어 가고 밤은 깊어져 막차손님이
발걸음을 재촉하며 떠나갑니다..
아직까지는 대합실 안은 밤에는 춥습니다.
12시가 넘고
새벽으로 접어듭니다...
대합실 안은 텅비어가고 나만 홀로 딱딱한
벤치에 애처롭게
갈 곳 없이 멍하니 앉아 떨고있습니다.
배는 너무 고픈대 호주머니속 손바닥엔
동전 몇 잎만이
잡힌 채로 땀에 젖어 있습니다...
화장실에서 수돗물로 또 배를 채워 갑니다.
밤이 깊어지고 대합실 안은 더 추워졌고
나는
신문지 몇 장을 주어다 덮고 새우잠을 청합니다.
나주에 아는 사람이 없으니 시골 읍내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질 않았습니다...
꼬박 이틀을 쫄쫄 굶고 화장실 물만 들이 마시고
대합실에서
거친 세상 바람을 피하고 있었습니다.
이틀을 맹물만 먹고 비틀거리며 마지막 손에 남은
동전을 가지고 대합실 매점으로
가서 비교적 양이 많이 든 튀겨 만든 과자
한 봉지를 사려는데
100원이 부족하였습니다...
그런데 선하게도
매점 아주머니는 내 모습이 안되 보였는지
그냥 가져가라고 하십니다...
세상에서 그렇게 맛있는 과자는 지금까지 먹어본
일이 없습니다.
과자를 다 먹고 나서 나는 우연히 과자
봉지에 쓰여진
부영과자라는 이름을 발견합니다.
전화번호가 쓰여 있는데 전화를 걸 돈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한테 공장의 위치가
어딧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공장은 대합실과 그리 멀지 않은
10분 거리에 다행이 있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그런 곳을 찾아갈 생각을 했는지
정확하게는 기억에 없지만
과자공장을 찾아 갔습니다
과자공장은 밀가루를 반죽하여 카라멜
색깔을 넣어 소팅으로 튀겨
과자를 만드는 공장이였는데 굉장히 허름였습니다.
공장장을 만나고 나는 그 자리에서 얼마를 받는다는
계약도 없이
그냥 일을 할 것을 승낙 받고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공장은 판자로 만든 아주 오래된 창고처럼
생긴 것으로
방이라고 할 수 없는 베니다 판자 바닥에서
잠을 자야 했습니다.
밤에는 엄청 많은 쥐들이 지 세상을 만난 듯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이불속에 파고듭니다...
어느 날 밤에는 뭔가 발구락이 따끔해서 깜짝놀라
일어나보니
쥐가 내 엄지 발구락을 물어 뜯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는 그곳에서 아침 5시부터 일어나
저녁 12시까지 고된 공장생활을 하였습니다.
허드렛일부터 젤 힘든 일은 내 몫 이였습니다.
겨우 겨우 밥만 먹여주고 나는 하루 19시간을
쉬는 날 하루 없이 힘들게 일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1년 6개월이 지날 무렵 겨울을
재촉하는 찬 바람이
마직막 낙엽들을 쓸어 어디론가 사라져 감니다...
그런데 사장님은
나에게 급여를 준다는 이야기를 단 한번도
안하십니다...
그래서 나는 하루는 용기를 내어
사장님께 밀린
급여를 좀 달라고 말했습니다.
새엄마 아래서 학교에 다니는 두 동생들을
찾아가려고
돈을 달라고 했습니다.
시골에 동생들은 어느 정도 성장해서 초등학교
에 다니고 있어서
새엄마에 대항하는 요령도
있었던 때입니다...
몇 년 동안 찾아가지 못한 시골 동생들
생각에 또 눈물이 납니다.
사장님
저 이제 서울로 갈려고 합니다.
그러니
그동안 저축한 돈을 좀 해주십시오.
그랬더니 사장님은
야 임마 ~
너 지금 무슨 소리야~
너 여기서 기술 배운 것 만도 나한테 고맙게 생각해야 되
임마...
내가 과자 공장 차릴 것도 아닌데 기술을 배우다니
나는 잔 심부름
허드렛일만 밤늦게 까지 했을 뿐입니다...
너 그동안 밥 먹여 주고 재워준 것이 얼마인데,
퉁명스럽게 나를 향해 내 뱉습니다.
넌 밥만 먹여 준 것 만해도 다행인줄 알아야 지~
하시며 화를 내십니다.
눈물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분노가 가슴에 밀려 왔습니다...
무엇이 이토록 나를 벼랑으로 내 몰고 있는 것인지
사람들은 왜 나를 이토록
괴롭히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나는 또 다른 목적지를 향해 나주 버스 터미널로
걸어서 갔습니다...
그러나 손에는 동전 100원짜리 몇 개만 손에
쥐여져 있습니다.
그리고 2시간동안 터미널 화장실 속에서
소리 없이 울며 여러 가지 생각에 빠집니다.
죽음은 그리고 점점 더 가까이
또 나를 마중 나와 내 앞에서 기다리는데....
나그네시인 (jung sik kim/저작권 있음)
(사진 출처) 구글, 네이버,
그동안 8편까지 소년의 아픔을 보듬어 주시고
위로와 격려해 주심에 깊이 마음에 세깁니다.
다시 깊이 감사 드림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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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편 / 야간고등학교에 진학
주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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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19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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