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 철학의 현대 사회,문화적 영향력
일본의 비평가이자 사상가인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은 일본 문화를 모든 문화가 저수지의 물처럼 밀려와 고인다는 의미로 ‘저수지 문화’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일본은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인다. 그래서 하나도 안 받아들인다.’ 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일본 문화의 특징은 개념적으로 ‘수용성’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 ‘수용성’에 대한 다양한 학문적 분석 (지리학적으로는 섬 나라라는 특징, 역사학적으로는 위로부터 아래로 외래사상을 수용한 특징) 이 가능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 역시 다른 나라와는 구별되는 고유한 문화적 특징과 성격을 갖고 있다. 이러한 특징들을 개념화하고 분석함으로써 그 기원과 기반을 알아보고자 한다. 이는 단순히 철학사적 주요 개념 분석을 넘어서 사회학적, 문화사적으로 현재를 이해하는데 커다란 단초를 제공 할 것이다. 또한 현재 한국의 문화적, 사회적 특징의 뿌리를 추적하다 보면 그 근본이 되는 철학적 사상과 맞닿게 된다.
다른 나라와 구별되는 한국 문화의 특징은 첫번째로 관계주의이다. 서양과 동양간의 문화적 차이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개인주의 대 집단주의'이다. 이는 서양 문화권에서는 개인의 자아실현을 궁극의 가치로 보며, 개인의 자유, 권리, 선호 등을 중시하는데 반해 동양 문화권에서는 집단 속의 조화, 화합을 궁극적인 가치로 여기며, 개인의 의무와 책임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이는 비교문화를 통해 다른 문화간의 차이점을 설명하는 좋은 예이지만 당시에 서구 심리학자의 외국인 제자들 중 상당수가 일본인 유학생이었고 연구자료를 수집하기에 가장 용이한 나라가 일본이었다는 점 때문에(당시 중국은 공상화되어 미국은 접근하기 힘들었으며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 국가들은 유학생의 수가 현저히 부족했다.)동양의 범주를 너무 좁게 설정하였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일본과 미국을 비교한 결과로 얻어진 집단주의의 개념은 일본 사람들을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개념이다. 때문에 집단주의라는 특징이 동양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정확하게 한국을 설명할 수 없다. 오히려 한국은 집단주의 보다는 관계주의의 성격을 띈다. 관계주의에서는 조직과 집단, 공동체보다 가까이에 있는 동료와 친구, 선배, 후배와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 나아가서 식당이나 가게에서도 타인에게 가족이나 친척에게 사용되는 호칭인 아저씨, 아주머니, 이모, 삼촌, 언니, 오빠가 사용된다. 가족 개념의 사회적 확장이 일어난다.
'우리'라는 범주도 굉장히 가변적이고 유동적이며 대부분의 관계를 다 포괄 가능하다. 그리고 이런 관계성이 조직의 운영 원리로 귀착된다. 이것의 뿌리는 592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사화의 문화적 바탕이 유교, 특히 주자학적 유교에 있다.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 가정에서의 역할과 책임이 국가를 운영하는 책임으로까지 확장된다. 혈연 중심의 친족주의를 확장시켜서 사회 운영 원리로까지 확장시킨다. 왕은 아버지가 자식을 대하듯 덕으로서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는 생각은 친족 관계 약화와 도시화,개인화 등으로 과거 사회가 붕괴되어 감에도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
두번째로는 현세주의이다. 막스 베버(Max Weber)는 비교종교론을 통해 사후세계가 아니라 현세에서 행복과 부귀를 누린다는 현세주의적 가치관이 비서구 문화권을 풍미해 왔음을 밝혔다. 이 같은 현세주의는 현실 종교 또는 사회윤리 체계로 간주되는 유교가 오랜 기간 삶의 원리로 운영되어 온 동북아 지역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이러한 까닭은 타 종교와 구별되는 유교가 가지는 독특한 세계관에 있다.
유교는 불교나 기독교와는 다른 현세관을 가지고 있다 불교에서는 현세는 고통이며 현세를 초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독교에서는 현세는 구원을 위한 발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유교에서는 내세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현세에만 관심을 둔다. 현세가 중요하며 특히 현세의 실천적 행동 규범을 중요시 여긴다. 따라서 조상을 섬기는 것도 오로지 조상만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기보다는 조상을 위로하지 않으면 자손에게 어떤 화가 끼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또 복을 받기 위해서라도 조상의 영혼을 위로하는 것이 효의 연장이자 자손의 도리라고 생각하는 현실주의적 사고에 입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유교가 가르치는 윤리적 행위의 목표는 종교적인 구원이 아니라 장수, 건강, 부 등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조화적 혼합주의이다. 앞서 집단주의를 설명하면서 동양이 서양보다 조화를 중시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서양의 사고는 분석적인 반면 동양의 사고는 종합적이다. 특히 한국 문화는 매우 조화적이다. 비교종교학자 유동식은 이러한 한국 문화를 가리켜 비빔밥 문화라고 부른다. 다양한 재료들을 함께 섞어서 독특한 하나의 음식을 만들듯이 한국문화는 다양한 요소들을 한데 섞어 조화를 이루어내는 성향이 매우 강하다. 이처럼 만물의 조화와 균형을 강조하는 것은 유교적 세계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유교적 세계관에서는 하늘과 땅의 질서, 인간과 자연의 질서가 균형을 이루고 조화로운 사회(주나라의 질서)를 이루고자 하기 때문이다. 또한 주역의 기본 원리인 불역(不易), 간이(簡易), 번역(變易) 역시 세상이 변화하고 순환하고 조화롭게 공존한다는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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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철학적 사상이 어떠한 역사성을 갖고 현재의 사회,문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러한 부분을 비판하고 또 옹호하는 다양한 입장이 있지만 나는 이번 레포트를 통해서 당위에 대한 물음보다는 이러한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한국 철학사를 넘어서 현재 한국의 정체성과 성격에 대해서 알아볼 수 있었던 과제였다. 다만 다양한 자료를 검토하지 못하고 논거와 논증이 미흡하여 아쉬움 또한 남는다.
첫댓글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공화국은 association. 곧 국민국가에서 벗어난 '공적 시민의 연합'으로 상상됩니다. 한국문화의 특징으로 손꼽은 관계주의, 현세주의, 조화적 혼합주의는 가라타니 고진의 어소시에이션을 연상하게 합니다. 물론 한국문화의 특징을 이렇게 정의하는 것은 대한제국 이후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재이해된 점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일제강점기의 일본인 관학자들이 주장했듯이, 그런 것들은 예전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며, 사실상 한국문화, 사상이라고 하는 것은 중국의 아류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비판에 맞서 국학자들은 어렵사리 현상학과 해석학을 활용하여 "이해된 것"을 고유의 의미
안에 포섭하였고, 그래서 동아시아 삼국에서 가장 포괄적이면서도 독특한 하나의 사유체계를 구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움직임의 긍정적인 부분을 바탕으로 하되, 오늘날처럼 세계공화국을 지향하는 시대에 순혈주의적인 국수주의에서 벗어나 좀 더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세계시민, 세계공화국 움직임에 동참하되, 그러한 실천이 <세계화> 또는 그것에 맞서는 <로컬리티> 일방향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