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생은 사정상 그동안 17 산악회에 따라 다니지 못하다가 모처럼 휴가를 내어 김 자환 동문과 지리산과 땅끝을 다녀 왔읍니다.
우리집 홈 페이지에 아이들에게 들려주려고 쓴 것을 다시 올립니다.
서울 상대 17회 사진반에서도 해남 땅끝에 다녀 갔다는 이야기를 김자환 사장에게 들었는데 제가 찍은 땅끝에서의 SUN SET 사진은 몇 점쯤 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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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박 5일의 전라도 여행 계획은 전적으로 미국서 다니러 온 큰 이모부 내외 때문에 계획 된 것이었다.
큰 이모부는 히말라야 트랙킹을 몇번씩 한 경력이 있고, 금년에는 실크로드 여행계획을 꾸며 추진하다가 일부가 이탈하는 바람에 계획자체가 무산되어 한국의 산하를 보기로 한것이었다고 한다.
아빠도 평소 때는 어렵지만 이번에는 4 ,5일 간은 시간을 낼 수 있는 처지이고 , 마침 전라도 해남에 사는 아빠 친구 김자환 사장도 그 아들이 미국 톨리도 이모부가 사는 동네에 살고 있어 왕래가 있었을 뿐 아니라 역시 히말라야 트랙킹을 세번이나 다녀온 경력이 있어 세 부부가 지리산 등반을 하고 전라도 해남의 땅끝을 다녀오는 계획을 짜게 된 것이다.
여행은 언제나 추억을 남기게 마련인데 이번 여행은 두가지 잊지못할 추억을 남겼으니 하나는 지리산에서 119 구조대 의 도움을 받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땅끝을 다녀 오면서 전라도 지역의 정말 맛있는 먹거리를 여러가지 맛 보았다는 것이다.
작년 미국의 쌍둥이 빌딩 테러가 미국의 긴급구조번호 911을 연상시키는 9월 11일이었는데 올해의 지리산 사건은 한국의 긴급구조번호119 를 연상시키는 11월9일의 하루전인 11월 8일이었으니 날짜 까지도 잊어 버리기 어렵게 되었다.
1.지리산 당일치기 코스
원래 지리산은 거대한 산이기 때문에 종주를 하려면 2박 3일이 필요한 산이지만 이번에는 부부가 함께 하는 산행이었으므로 당일 치기로 5~6 시간에 끝 낼 수 있는 코스를 잡았는데 그 것이 자동차로 1300m 고지의 성산재 휴게소 까지 가서 노고단-임걸령-피아골 산장-직전마을 의 비교적 짧은 코스 였다.
첫 날, 11월 7일 오후 미리 예약한 송원리조트에서 만난 우리 일행은 내일의 산행을 위하여 가벼운 산책을 하기로 하여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화엄사에 들렀는데 도착하자 마자 우리를 압도한 것은 화려한 단풍이었다.
( 단풍 사진-화엄사 입구)
11월 8일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지만 성산재 휴게소에서 산행을 시작한 것은 9시 30분.
앞으로 5~6시간 후 즉 오후 3~4시면 하산을 끝 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첫 발을 내 딛었는데 이것이 결국은 저녁 늦게 깜깜한 7시 반에야 돌아 올 수 있었으니 ,산행이야 말로 언제나 예기치 않았던 일이 벌어 질 수 있다는 교훈을 다시한번 뼈저리게 느끼게 된 산행이 되었다.
출발 할 당시 꾸물대던 날씨는 노고단을 지나면서 눈이 내리기 시작하여 모처럼의 산행에서 눈까지 맞는다고 즐거워 하며 일행이 콧노래를 부르며 산행을 즐겼고 아빠는 그 "흐이야호오오"도 하고 엄마는 눈꽃이나 눈이 소복히 쌓인 대나무 잎사귀들을 디지털 카메라에 담으면서 임걸령으로 향했다.
(눈 꽃 사진)
그러나 예기치 않았던 일은 피아골 산장을 향하여 임걸령 에서 부터 바위 투성이의 계곡을 내려 오면서 일어나기 시작하였는데 지금까지 잘 걸어 오던 큰이모가 왼쪽 무릅에 이상이 생겨 내려오는 걸음이 차츰 차츰 늦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오후 3시경 피아골 산장에 겨우 도착한 큰 이모는 오른쪽 무릅까지 아프게 되어 아빠가 임시로 만들어 준 두개의 지팽이도 도움이 안되고 더 이상 걷기가 힘든 상항까지 진전되고 말았다.
산장에는 흰 턱수염을 한 할아버지가 지킴이로 있어 업고 내려갈 사람을 구하든가 어떻게 구원 해 줄 것을 부탁 해 보았으나 연락할 수단도 없고 도와줄 방법도 없다는 짤막한 대답뿐이어서 큰 이모부와 엄마가 큰 이모를 부축하여 한 걸음씩 떼는 것을 도와 주는 한 편 나와 김사장님 부부는 날이 어둡기 전에 구조요원을 불러 올리려고 서둘러 내려가기로 하였다.
(눈오는 피아골)
평지를 걸을 때는 정겹게 느껴졌던 그 눈이 험한 산길을 내려오는 사이 더욱 더 기승을 부려 이제는 가뜩이나 발 디딛기가 어려운 바위 투성이의 길을 더욱 미끄럽게 까지 하니 과연 어둡기 전에 구조할 사람을 데리고 올라와 모두가 하산을 할 수 있을가 걱정을 하였다.
아빠가 발걸음을 재촉하여 약 1km정도 내려오다 보니 긴급구조 번호 안내판이 있어 휴대전화로 전화를 거니까 산장에서는 안 되던 전화가 연결되어 겨우 순천소방서 산악구조반에 구조요청을 할 수 있었고 그 시각이 오후 4시반 .앞으로 한시간 후면 어둠이 깔려 오도 가도 못할 시각이 될 것인데 어둡기 전에 구조반이 도착할지 걱정이 태산 .
그 지점에서 목적지까지는 약 2km 정도 남은 것 같은데 혼자서 전전긍긍하면서 구조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1시간이 더 지나서 먼저 내려가던 김사장 부부로부터 올라오는 구조대를 만났다는 전화 연락을 받고, 나는 큰 이모 일행이 내려오고 있는 피아골 산장 방향으로 되 돌아 올라가서 구조대가 올것이라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전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예상한 것 보다 훨씬 덜 올라가서 이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큰 이모 일행이 고생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본 어느 젊은 등산객들이 서로 번가라 가며 큰이모를 업고 내려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너무나 고마운 일행 젊은이들에게 사례를 하려고 해도 막무가내로 사양하는 이들은 알고 보니 경남 마산 소방서에 근무하는 사람들이라 나중에 서울가서 편지라도 하기로 하고 헤어졌는데, 반면 한 시간 여 전에 매몰차게 몰라라 하던 그 산장 지키는 할아버지와 비교해 볼 때 얼마나 고마운 청년인지 모를 일이었다.
그 자리에서 다시 기다기리를 4,50분 .드디어 어둠이 깔린 다음에야 후라시를 들고 도착한 우리 순천소방서 산악구조반 일행 5명은 큰 이모를 처음에는 당가에 싣고 내려가 보기도 하였으나 워낙 길이 좁고 경사가 급하여 결국 돌아가면서 업고 내려 갈 수 밖에 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직전 마을에 도착하니 엠부런스차까지 대기하고 있었지만 의사인 큰 이모부의 말을 듣고 병원행은 취소하고 우리 일행이 타고 온 마이크로 버스에 지친 몸을 실으니 그 때가 밤 7시 반 .
오늘 아침 출발하고나서 부터 10시간 후이었다.
역시 사례를 절대로 마다하는 순천소방서 구례 산악구조반 일행에게 나중에 따로 연락하기로하고 순천역 앞 흥덕식당에 도착하니 거의 9시 .
저녁을 먹으며 오늘 고생한 이야기를 하는데 큰 이모부도 하마트면 큰 일날 뻔 했다고 한다. 즉 그 도와주던 청년 일행을 만나기 전 ,큰이모를 부축하며 내려오다가 발을 잘 못 딛어 20m 나 되는 낭떨어지에서 굴렀는데 다행히 큰 상처는
없었고 잃어 버린 안경도 찾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
아무튼 이번 지리산 산행은 주인공인 큰 이모부 내외에게 크나큰 시련이 될 뻔 하였지만 무사히 잘 견디어 내어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게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2.전라도 먹거리 여행
이번 여행은 지리산 등반과 땅끝 탐방이 주 목적이었는데 이여행을 안내하는 김사장이 고향이 전라도 여수 이고 현재 살고 있는 곳이 해남 이라 가는 곳 마다 맛있는 전라도 음식을 맛 볼 수가 있었다.
남원에 도착하던 날 11월 7일에도 광한루 구경을 한 다음 서울에서도 유명한 남원 추어탕 을 먹었는데 큰이모부는 처음 먹는 "숙회" 라는 미꾸라지 요리를 상당히 좋아 하였고 등산 하던 날 아침도 가까운 섬진강에서 잡은 "재첩"으로 끓인 재첩국이 입맛을 돋구었다.
11월 8일 저녁 ,끔직했던 지리산 산행 이야기를 안주 삼아 저녁을 먹은 곳은 순천 역 앞의 "흥덕식당" .바로 우리가 이 지역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을 알고 기획한 것 같은 11월 6일자 조선일보의 순천만 갈대숲 특집에서 소개된 식당이었는데 과연 신문에 난 대로 게장, 가오리회, 꽁치구이 그리고 고들빼기 김치등 모두가 입맛을 돋구는 반찬이 열 대여섯 가지나 되었다.
흥덕식당 바로 앞에 있는 모텔에서 잠을 자고 다음 날 아침도 흥덕식당에서 아침을 먹고나서 신문에 난 순천만 갈대슾을 보러 갔다.
(순천만 갈대 숲 사진)
갈대 숲에서 사진을 몇장 찍고 해남으로 가는 길에 들른 곳은 벌교읍.
벌교에서 주먹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제두 등 주먹 센 사람이 만히 배출되었다는 곳인데 낙양읍성이라는 민속촌을 잘 보존하고 있어 한번 쯤 둘러 볼만 하였다.
(낙안 읍성 사진)
낙양읍성 다음 가는 길에는 차(茶) 로 유명한 보성군이 있어 전망 좋은 다원에 들러 차도 마시고 차밭 구경도 한 다음 유명한 보성 차 해수탕은 시간상 생략하고 해남으로 가다가 점심 때가 조금 지나 들른 곳이강진읍.
돼지고기 양념 불고기로 유명하다는 설성식당에서 점심을 맛있게 먹고 해남으로 향하였다.
( 보성 차 밭 사진)
우리가 해남 땅끝에 도착하여 새로 생긴 전망대에 오른 시각은 5시 반경.마침 아름다운 다도해의 낙조를 감상 할 수 있는 시각이었는데 아쉽게도 아직 무릅이 아픈 큰이모는 아름다운 낙조를 감상 할 수 없었는데 이 사진이 어느 정도나 도움이 될른지?
(땅끝에서의 SUN SET 사진)
저녁식사는 호텔의 일식당에서 싱싱한 도미회를 먹었는데 진짜 자연산 도미의 맛이 과연 일품이었고 중국산이나 양식 도미에 비해 월등히 비싼 자연산 도미회 저녁식사를 김사장이 내는 바람에 가뜩이나 마이크로 버스를 며칠씩 대절한 것도 고마운데 보통 미안한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니어서 큰이모부 내외는 김사장 부부가 아들을 보러 미국 톨리도에 올 때 원수를 갚을 생각을 한 듯하였다.
아빠는 별로 원수 갚을 길이 없어서 그날 저녁 식사후 들른 노래방에서 노래와 춤으로 김사장 내외를 좀 즐겁게 해 줬지.
다음날은 일요일.
(완도의 SUN RISE 사진)
오전중에는 김사장 내외가 교회를 다녀 오기로 되어 있어 아침식사를 호텔에서 콩나물 해장국으로 시원하게 먹고 나서 우리끼리 부둣가에서 학꽁치 낚시하는 것을 구경하기도 하고 건어물 시장에서 아주 싼 멸치도 사고 했는데 큰이모는 마침 서울에서는 구하기 힘든 제리장사를 만나 또 한 보따리씩 사기도 했다.
시간이 남아서 택시를 타고 1시간 가량 완도를 일주 했는데 가는 곳마다 전망(VIEW ) 이 좋아서 아빠는 완도를 VIEWTIFUL ISLAND 라는 별명을 붙였는데 VIEWTIFUL 이란 신조어가 옥스포드 사전에 올를른지?
김사장 일행과 다시 만난 우리는 완도를 떠나 해남 당진으로 나와 유명한 다산초당을 구경했는데 다산초당의 누각에서 굽어 보는 바다와 섬 그리고 멀리 보이는 산들의 풍경은 그야말로 가슴이 팍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광주로 향하면서 도중에 점심을 먹으러 들른 식당은 영암군청 앞 장땡이 식당.
인근 월출산을 등반하는 등산객 여러명이 득실대는 것으로 보아 유명한 식당인듯 한데 아빠도 처음 먹어보는 장땡이 국 (장땡이는 갯벌에서 뛰는 듯, 나는 듯하는 망둥이 처럼생긴 물고기) 도 별미였고 살아 꿈틀대는 갯벌 낙지는 술안주로 즐기는 아빠는 그만이지만 미국서 온 큰 이모부도 맛있게 먹어서 다행이었다.
영암 도기문화센타를 구경하고 광주시에 도착 ,여장을 푼곳은 광주 시의 서북방향 외곽. 내일 마지막으로 우리가 갈 무등산 입구 와 소쇄원등 가사문화권과는 정 반대지역이었다.
11월9일 여행의 마지막 날 .
김사장 일행과 떨어진 우리 두 부부는 느지막하게 일어났다.
어제 하루 7만원으로 빌린 렌트카 SM5를 아빠가 운전하고 무등산 입구에 도착하니 원효사 입구에 "절로 가는 집"이란 카페형 식당이 있었는데 지붕을 초가로 하고 내부 장식도 멋지게 한 아주 고즈넉한 분위기가 잘 어울리는 집이었다 .
( 절로 가는 집-원효사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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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에서 오래간 만에 간단하게 국수로 아침을 하고, 몇 년 전 승희와 승희 친구를 데리고 땅끝에 다녀오면서 구경 갔었던 가사문화권으로 향하였다.
도중에 뜻하지 않게 괴상하게 생기고 오래된 나무를 만나 사진을 찍기도 했는데 이 나무는 수령이 400년이 넘으니 미국이 건국되기 200년 전에 심어진 나무 이리라.
(왕버들 나무사진)
(소쇄원 사진)
소쇄원등을 들러 보고 점심을 먹은 것은 떡갈비와 재첩 수제비 .
이집의 된장국은 유별나게 맛이 있었는데 역시 손님들이 그 된장을 팔라고 해도 팔지는 않는다는 그런 식당이었다.
이번 먹거리 여행의 대미를 떡갈비와 재첩 수제비로 장식하면서 왜 전라도 사람들이 음식을 맛갈스럽게 잘 하느냐를 두고 우리들 끼리 설왕 설래 했는데 큰 이모부의 의견은 옛날 부터 서울서 잘 먹던 고관들이 귀양을 이지방으로 많이 와서 음식의 수준이 높아졌을 거라는 것이었는데 일리가 있는 듯 하였다.
오후 5시에 광주역을 떠난 기차가 서울력에 도착한 것은 오후 8시 55분.
이번 여행은 고맙게도 같이 갈 수 없었던 작은 이모가 스폰서를 해주어 새마을호 특실로 왕복을 했는데 영등포의 밤을 지나가는 새마을 호 특실 유리창에는 4박 5일 동안의 갖가지 일들과 풍경들이 파노라마처럼 흘러 갔다.
그 중에서 아마도 지리산 피아골 계곡에서의 악몽과 혀 끝을 통해 입력된 전라도 음식의 맛에 대한 기억은 오래 오래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