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
체하면
바늘로 손톱 밑 질러서 피 내고
감기 들면
바쁜 듯이 들 안을 왔다 갔다
상처 나면
소독하고 밴드 하나 붙이고
.
중략
속박과 가난의 세월
그렇게도 많은 눈물 흘렸건만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p.13
마음
마음 바르게 서면
세상이 다 보인다
빨아서 풀 먹인 모시 적삼같이
사물이 싱그럽다
마음이 욕망으로 일그러졌을 때
진실은 눈멀고
해와 달이 없는 벌판
세상은 캄캄해질 것이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욕망
무간지옥이 따로 있는가
권세와 명리와 재물을 쫓는 자
세상은 그래서 피비린내가 난다
-p.122
여행
나는 거의 여행을 하지 않았다
피치 못할 일로 외출해야 할 때도
그 전날부터 어수선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나도 남 못지 않은 나그네였다
내 방식대로 진종일 대부분의 시간
혼자서 여행을 했다
꿈속에서도 여행을 했고
서산 바라보면서도 여행을 했고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혹은 배를 타고
그런 여행은 아니었지만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는
보다 은밀하게 내면으로 내면으로
촘촘하고 섬세했으며
다양하고 풍성했다
다만 내 글 모두가
정처 없던 그 여행기
여행의 기록일 것이다
-p.23
출처: 아굴라와 브리스가 원문보기 글쓴이: 아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