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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급 |
지역계급 | |||
임금노동자 |
자영업자 |
주부 |
어르신 | |
규모 |
1천 5백만명 |
630만명 |
500만명 |
400만명 |
합계 |
1천 5백만명 |
1천 5백 30만명 |
자영업자 630만 명, 주부 500만 명, 어르신 중 비경제활동인구 400만 명, 모두 1천5백30만 명이 지역정치라는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은 1천 5백만 명이 거주하는 계급투쟁의 ‘중간지대’
통계청 기준으로 한국의 노동계급은 약 1천5백만 명 규모이다. 그런데, 자영업자, 주부, 비경제활동 어르신들로 구성된 지역계급의 규모 역시 1천 5백만 명을 상회한다. 이것이 우리에게 함의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한국은 총노동과 총자본이 계급투쟁을 전개하고 있는데, 그 한가운데 ‘지역계급’이라는 1천5백만 명 규모의 거대한 ‘중간지대’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이 같은 지역계급들에 대해 보수정당이 독점적 정치활동을 펼쳐왔다는 것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진보정당은 지역적 기반 없이, ‘계급(노동자-농민)적으로 조직된 단위(민주노총, 전농 등)’에만 의지했던 협소한 계급정당이었다. 이에 반해 보수정당의 경우 지역적 기반을 갖추고 있는 계급정당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진보정당의 지지율이 10% 내외를 뛰어넘지 못하는 것은 지역정치에 소홀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특히 한국의 진보운동은 노동조합, 학생회, 농민회 등의 직능을 중심으로 발달해왔다. 역사적으로 볼 때, 지역은 한마디로 ‘진보의 무풍지대(無風地帶)’였으며, 보수정당의 독점적 공간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볼 때, 복지국가를 위한 진보정치세력의 정치 전략은 보다 분명해진다. 20세기 초반 노동자-농민의 정치동맹이 성공한 계급동맹론이었다면, 21세기 초 대한민국의 경우 노동자계급-지역계급의 정치동맹을 성사시키는 것이 계급 동맹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지역계급’이 보수정당의 핵심 지지기반임과 동시에 ‘약한 고리’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구(舊)민주노동당 시절 이른바 ‘떴던’ 이슈들은 항상 지역계급과 관련된 이슈들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2001년 상가임대차보호법의 제정(자영업자 이슈), 2004년 학교급식 조례제정 운동(주부 이슈), 2007년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 운동(자영업자 이슈) 등이다. 이 세 가지 운동은 여론의 반응과 당내 조직의 호응이 가장 뜨거웠던 대중적 이슈들이기도 하다. 또한, 이러한 지역계급 친화적 이슈들은 보수정당의 ‘지역적 기반’을 위협하는 측면이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보수정당의 국회의원들이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명실상부하게 ‘거대한 소수’ 전략이 관철된 영역이기도 하다.
아파트(APT)는 지역에 존재하는 ‘대공장 노조’ 같은 곳
1980년대 수많은 활동가들이 노동현장에 투신했지만 실제로 노조가 건설된 곳은 주로 대공장이었다. 중소영세기업의 경우 노조를 건설하는 것보다 유지하는 것이 너무도 어려웠기 때문에 결국 하나둘씩 소멸해갔다. 이것은 대공장 노조만 ‘조직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규모의 경제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일한 문제의식을 ‘지역’에도 적용할 수 있다. 지역을 진보적으로 재편하는 사업에서 ‘조직자원’의 동원이 용이한 ‘공간적 거점’은 어디일까. 바로 아파트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새로 짓는 집의 10채 중 9채는 아파트이다. 또한 현재 대한민국 전체 거주형태의 50% 이상이 아파트이며, 서울의 경우도 50~60% 가까이가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진보세력이 특히 주목해야 할 아파트는 재개발과 뉴타운이 이뤄진 이후에 새로 입주한 아파트이다. 이곳들은 공간적 거점인 동시에 고학력 386세대가 입주하는 ‘세대적 거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지역’에서 진보의 공간적 거점으로서의 아파트는, 노동운동에서 대기업노조와 똑같은 딜레마가 존재한다. 대기업 노조가 임금인상에만 적극적이며 비정규직 문제에 무관심하다면, 아파트 주민들은 집값 상승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 차있다. 그러나 대기업 노조가 그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진보진영의 소중한 자산인 것처럼, 아파트라는 거점 역시 같은 관점에서 균형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이명박의 ‘뉴타운’ 정책은 어떻게 호남과 386 유권자를 ‘공중분해’ 시켰는가.
우리는 앞의 논의를 통해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 및 그 규모와 계층적 실체, 그리고 아파트의 중요성에 대해 살펴봤다. 그런데 이상의 논의는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객관적 환경’을 살펴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객관적 환경은 우리가 좋든 싫든 일단 정직하게 인정해야 하는 그런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지역을 진보진영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새롭게 재편’할 수는 없는 것일까? 물론 그렇게 할 수 있다. 실제로 이명박의 뉴타운 정책이 ‘정치사회학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해보면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이에 대해 좀 더 살펴보기로 하자.
2006년 지방선거와 2007년 대선, 그리고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서울 지역 및 수도권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쏠림 현상이 극심한 지방선거는 그렇다 치더라도, 견제론이 위력을 발휘하는 2008년 총선에서조차 한나라당은 압승했고 민주당은 초토화되었다. 서울의 경우 민주당의 당선율은 48명중 7명으로 14.5%에 불과했다. 이는 48년 정부수립 이후 민주당 족보를 가진 정당의 역사상 가장 처참한 패배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러한 결과는 이명박의 뉴타운 정책이 구(舊)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이었던 ‘호남표’와 ‘개혁적 386표’를 효과적으로 무력화시킨 것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본래 서울의 강북지역에서 김대중이 이끌던 구(舊)민주당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1970년대 박정희에 의해 추진된 탈농(脫農) 산업화 정책의 결과물이었다. 남한 최대의 곡창지대였던 호남 인구는 박정희 정권의 탈농정책으로 인해 고향을 떠나야 했고 이들은 서울로 이사와 서울 강북 지역 곳곳에 ‘집단 호남촌’을 형성했다. 서울 강북 지역의 ‘올드타운(Old Town)’은 사실상 ‘호남타운’이었던 셈이다. 김대중은 이러한 서울의 특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중대선거구제를 반대하고 본인에게 유리한 소선거구제를 관철시켰다. 이후 김대중의 일관된 선거 전략 및 득표 전략은 ‘호남+386’으로 요약된다. 그리고 이러한 선거 전략은 1985년 신민당 돌풍, 1988년 평민당 돌풍부터 2000년 총선에 이르기까지 20여년간 실제로 강력한 위력을 떨쳤다.
<표-2> 전체 인구 대비 호남, 영남, 서울의 인구 변동 비율
호남 (%) |
영남 (%) |
서울 (%) | |
1970년 |
20.4% |
30.3% |
17.6% |
2000년 |
11.3% |
27.8% |
21.4% |
증감분 |
- 9.1% |
- 2.5% |
+ 3.8% |
그러나 이처럼 구(舊)민주당의 공간적 거점이었던 서울 강북지역의 호남타운과 386표는 이명박의 뉴타운 정책에 의해 공중분해의 길을 걷게 된다. 뉴타운으로 인해 호남인들은 뿔뿔히 흩어진다. 당연히 호남향우회 세력은 약화되었다. 뉴타운의 원주민 재입주율이 20%에 불과하니 호남타운이 얼마나 심각하게 해체되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뉴타운은 또한 386 유권자 집단 역시 성공적으로 분리 해체했다. 80년대 학생운동은 소위 ‘SKY대’로 상징되는 ‘메이저 캠퍼스’를 중심으로 벌어졌다. 이들은 학생운동의 ‘지도집단’이었고, 마이너 캠퍼스 출신들은 ‘지지집단’이었다. 뉴타운은 이들 중 학생운동의 지도집단이자 동시에 학벌과 소득이 좋았던 ‘상층 386’ 세대를 확실히 분리 견인하는 효과를 내었다. 중층 386세대 또는 서민형 386세대로 불릴 수 있는 이들은 자신의 소득은 뉴타운에 진입할 수 없고, 주변에서 전해 듣는 정보는 아무개 친구가 집값이 얼마 뛰어서 얼마의 시세차익을 벌었다는 소식을 집중적으로 들었기 때문에 어정쩡한 위치에서 마음만 더욱 심난한 처지에 내몰렸다.
이렇듯 이명박의 뉴타운 정책은 단순한 주택정책의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의 양 날개에 해당하는 호남타운과 상층386 모두를 효과적으로 무력화시켰다. 특히나 ‘상층 386’에게는 집값 상승이라는 유물론적 공약과 자립형 사립고를 통해 자식들도 좋은 대학에 보내주겠다는 역시나 유물론적 공약을 곁들이면서 말이다.
올드타운과 뉴타운을 둘러싼 김대중 호남세력과 이명박 세력의 흥망성쇠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소선거구제가 지배적인 선거제도인 대한민국에서 주거공간의 지역적 배치는 단순한 주택정책의 차원을 넘어 ‘유권자의 집단적 재편 전략’과 밀접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진보의 공간적 거점 만들기 - ‘공공전세 정책’의 정치적 파괴력
그렇다면, ‘진보적 지역 재편 전략’을 위한 주거 공간 재편 전략은 가능할까? 필자는 그러한 방편의 일환으로 ‘공공전세 정책의 획기적 확대’를 주목하고자 한다.
한국의 경우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을 정도로 자가 소유 비중이 높다. 전체가구의 50%가 자가 소유이며, 이중 17%가 1가구 2주택, 약 7%가 1가구 3주택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 자가 소유 비중이 이렇게 높다보니 그간 주택정책을 둘러싼 담론도 이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분양원가 공개, 선분양제, 환매조건부 분양 등에 관한 정책담론은 주로 진보개혁진영에서 제기한 것들로 시공사의 거품을 빼고 ‘공정한’ 가격으로 아파트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소유 직후부터 이들은 아파트값이 뛰기를 기대하는 욕망의 대열에 동참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이외에도 종합부동산세, 1가구 2주택 중과세 등의 논의 역시 자가 소유자를 대상으로 하는 정책담론들이다. 보수진영은 자가 소유자를 ‘옹호’하는 조세감면 정책을 주장하고, 진보개혁진영은 자가 소유자를 ‘공격’하는 조세증세 정책을 주장하고 있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주택정책과 관련하여 진보진영이 그간 적극적으로 포섭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전세 세입자’와 관련된 부분이다. 현재 전국 가구의 약 21%(약 1천만명), 그리고 서울 전체 가구의 약 32%(약 300만명)이 전세에 살고 있다. 전세에 대한 욕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소득 수준과 학력 수준에 비추어 볼 때 80년대에 2년제 전문대 및 지방대 이상을 졸업한 ‘중층 386’(서민형 386)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략 1억원 미만의 전세에 살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이들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진보정당’에 대한 가장 두텁고 헌신적인 지지층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진보정당은 이들의 주거안정을 위해 20평~30평대 규모의 ‘대규모 공공전세 단지’를 조성하고 추진할 필요가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공공주택정책은 ‘월세형’ 공공임대정책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정책의 주요 대상자는 하위 10%~20% 미만에 해당하는 사람들로 사실상 ‘빈곤 정책’의 일환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월세보다 전세가 일반적임에도 불구하고 ‘유럽 정책’이 교조적으로 이식되어서인지 전세형 공공임대정책이 아닌 월세형 공공임대정책이 보급되었다. 그러나 ‘복지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빈곤정책 수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중산층도 그 혜택을 누려야 한다. 그래야 ‘다수자 정치연합’에 기초한 복지동맹을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볼 때, 대규모 공공 전세 단지의 조성은 다음과 같은 정치적, 정책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첫째, 서울 전체 가구에서 30%에 해당하는 전세 세입자에게 안정적 주택공급을 통해 투기적 수요를 억제하여 주택시장의 안정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둘째, 중간수준의 소득을 가진 계층에게 ‘복지동맹’의 경험적 혜택을 줌으로서 복지정책의 정치적 지지층을 견고하게 할 수 있다.
셋째, 소선거구제가 작동하는 대한민국의 정치현실에서 ‘뉴타운’에 대항하는 ‘진보타운’의 공간적 거점을 확보할 수 있다. 현재 전세 세입자가 약 30%인데, 이들 모두에게 공공전세주택을 공급한다고 가정하면, 동네마다 30%에 해당하는 ‘강력한 진보 유권자층’이 공간적으로 결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필자는 앞서 아파트를 지역에 존재하는 대공장노조에 비유했는데, 공공전세 단지 조성 정책은 서울지역 선거구마다 ‘현대자동차 노조’가 하나씩 생기는 것과 유사한 정치적 파괴력이 형성된다고 비유해볼 수 있다.
1980년대~1990년대 서울 강북 지역의 호남타운이 구(舊)민주당 지지기반의 공간적 거점역할을 했고, 2000년대 이후에는 뉴타운이 서울강북지역에서 한나라당 지지기반의 공간적 거점 역할을 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진보정당이 세대적으로는 ‘중층 386’에 해당하고, 계층적으로는 중위소득에 해당하는 서민형 386 집단을 겨냥한 대규모 공공전세 단지를 조성한다면 동네마다 ‘진보타운’이 형성되는 효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글을 맺으며 - 한국 민주주의의 성패는 ‘계급동맹’에 달려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와 복지국가의 성패는 지역계급이라는 1,500만 명의 ‘중간지대’를 보수와 진보 중 누가 계급동맹의 파트너로 편입시키느냐에 의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럽의 경우 중산층은 복지동맹의 형태로 노동계급과 연대하였고, 미국의 경우 백인 중산층은 ‘인종문제’로 인해 납세거부 운동의 형태로 부자들과 연대하였다. 그 결과 북유럽의 경우 세계에서 가장 높은 조세율에도 불구하고 두터운 ‘복지(계급)동맹’에 기초하여 감세론에 대한 정치적 지지는 낮은 편이며, 미국의 경우 조세율이 상대적으로 낮음에도 불구하고 백인 중산층의 입장에서 세금은 자신들이 내고 복지혜택은 서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유색 인종들이 받기 때문에 ‘조세 거부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국의 진보운동은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을 중심으로 성장해왔다. 이제 시야를 넓혀 한국사회의 전체적인 계급 지형을 조망하고, 그 일환으로 지역과 아파트의 중요성 그리고 ‘토종’ 복지국가론을 위한 한국판 계급동맹의 수단으로 공공전세 정책 등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