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이소룡 흉내 내다가.... -
권다품(영철)
군대를 갔다와서 검정고시 공부를 할 때였다.
생각했던 만큼 공부가 안 돼서, 서면에서 술을 마시다가 같이 검정고시 준비를 하던 친구가 보고 싶었다.
버스를 타고 옛날 남부 경찰서에서 내려서, 옆길로 들어가고 있는데, 좀 어둡긴 했지만, 언뜻 비치는 불빛에 나랑 비슷해 보이는 세 명이 길가에 앉아서 담배 피우고 있었다.
괜히 싸움이라도 한 판 하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릴 것 같고, 또, 나 혼자 세 명 정도는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할 때였다.
"야, 일마, 담배 하나 줘봐."
밑도 끝도 없이, 처음 보는 놈이 말을 그렇게 하자, 세 명은 놀래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 새끼들아, 내 말 못 들었나? 담배 하나 달라 안 카나."
"야, 씨발넘아, 니 뭔데? 어이, 너거 일로 와 봐라. 하~아, 여기 웃기는 넘 하나 있다."
뒤를 돌아봤더니, 옆 골목에서 언뜻 봐도 칠팔 명의 또래들이 우루루 몰려와서 나왔다.
아차 싶었다.
이소룡의 기합소리를 내며, 그동안 연습해온 현란한 발놀림과 손기술을 내보이며 겁을 줬다.
하도 흉내를 내고 다니다 보니, 기합 소리는 오히려 이소룡보다 더 죽인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주먹이나 발놀림의 위력은 없었나 보다.
세 명이라면 어떻게 해보겠다 싶은데, 열 명이 넘는 친구들을 상대한다는 건, 애초부터 무리였다.
엄청나게 맞았다.
비록 많이 취하긴 했지만, 본능적으로 아랫배에다 힘을 주고, 옆구리와 명치는 팔끝으로 보호했으나, 여러 명의 힘을 버틸 수는 없었다.
맞고, 차이고, 밟히고....
그런데, 그렇게 맞았는데도 술이 취해서 그런지 생각보다는 덜 아픈 것 같았다.
그렇게 몰매를 맞아보긴 또 처음이었다.
때리던 애들이 봐도 내 모습이 심했던지, "야 야 그만해라. 시발넘 해나 죽을라. 토껴라." 하면서 순간적으로 사라져 버렸다.
한참을 늘어져 누워 있다가 숨을 몇 번 크게 쉬어보고, 팔다리를 움직여 봤더니, 숨도 잘 돌아가고 맞은 것보다는 상처가 크지않다 싶었다.
그러나 얼굴은 피 범벅이었다.
찢어진 런닝으로 얼굴의 피를 닦고 100m 남짓 떨어진 친구 집으로 가서, 친구가 있는 2층 인터폰을 눌렀다.
당시는 집에 전화 있는 집이 귀해서 공중전화를 사용할 때였는데, 그 친구의 집은 누나가 국내 유명 대기업 회장의 사모님이어서, 그 당시에도 마당에 잔디 정원이 있고, 집도 대궐 같았고, 대문 인터폰도 1,2 층이 따로 있는 엄청난 집이었다.
"박초, 권초요. 잠시만 나오소. 가까이 온 김에 얼굴이나 보고 갑시다."
친구가 나와서 나를 보고는 너무 놀란다.
"권초, 와 이렇는교?"
"요 앞에 세 명이 있길래, 이길 줄 알고 괜히 시비 걸었다가, 하~ 씨바, 뒤에서 칠팔 명이 더 나오더라꼬. 겁도 없이 싸우다가 오라지게 맞아봤네요."
"이 새끼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하네! 권초, 병원 갔다가 경찰서 갑시다."
"경찰서 가도 글마들 다 토껴뿠어요. 그라고 또 병원은 무슨...."
친구는 병원을 싫어하는 내 고집을 이기지 못하고, 나를 부모님 몰래 2층 자기 방으로 데리고 가서, 화장실에서 씻겨주면서 더 놀랬다.
"권초, 거울 함 보소. 진짜 병원 가야 되겠다."
거울 속의 얼굴에는 내 모습은 하나도 없었다.
눈 코 입 등 울룩 불룩한 형태는 하나도 없고, 그냥 둥그스럼한 호박덩어리였다.
소문은 이튿날 바로 났다.
친구들에게 났으니 학원에도 금방 퍼졌다.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이 병문안이랍시고 우리 집에 와서는, "어이, 권소룡이 괜찮나? 에라이.... 권초 니 죽을라꼬 완전히 스텝을 밟았네!" 하며 놀렸다.
자만심에 까불다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렇게 한 번 맞아 봤다.
그렇게 맞기 전까지는 나는 내가 대단한 놈인 줄 알았다.
나 혼자 세 명 정도는 자신있다 싶어서 건드렸다가, 여남은 명에게 몰매를 맞고서야, 내가 참 단순 무식한 놈이란 것도 깨달았다.
또, 싸울 때 여러 사람 앞에 잘난 척 하다가는 죽도록 몰매 맞는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 이후부터는 이소룡 흉내는 절대 내지 않았다.
이소룡 흉내 내다가 얼굴이 호박 덩어리 되도록 맞았으이끼네, 젊은 기분에 얼마나 쪽팔렸겠노?
젊을 때는 하도하도 쪽 팔리는 얘기라서 숨기고 살았는데, 말해뿌고 나이끼네, 좀 부끄럽기는 해도 속은 좀 편하네!
내게도 젊을 때는 그런 갖잖은 자만도 있었고, 눈빛도 반짝반짝 했었는데....
어느 듯 내 거울 속에는 머리 희끗한 사람이 나를 내다 본다.
차~암, 세월도 빠른 기라.
2023년 2월 16일 오전 11시 13분,
권다품(영철)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