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강 대장님으로 부터 문자를 받았다.
두발로님과 도미니카님이 운영 하시는 정자동 만리장성에서 느림보 송년모임이 있다고 꼬옥 참석해 달라고 하신다.
오라는 데는 없고 추운 날씨에 배는 출출한 하던 차 횡재를 한 기분, 아니 길을 가다가 양코배기놈 지갑을 줏어 든 기분이다.
2010년 3월 말 우연히 인터넷을 검색하다 만난 느림보와는 사량도 지리망산에서 첫 인연을 맺었으니 어바삐 흘러 간 시간이
어마나 발써 만 4년이 다 되어 간다. 참으로
품격 높은 분들과 조선 팔도를 유람하며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을 갖게 된다.
새삼 감사를 드릴 뿐이다.
고다꾜를 졸업 할 무렵 서울에 있는 명문 이화여대에서 발간하는 교지에서 우연히 읽었던 어느 꿈 많았던 여대생 누나의 글이
지금도 연말이면 몹시도 생각 난다.
여대 졸업을 앞 두고 허망한 마음에 캠퍼스 내를 이 구석 저 구석 헤집고 다녀 본다.
강의실을 비롯하여 요즘 아이들이 말하는 동아리방(우리 때는 써클 룸이라고 했던 가?) 같은 곳도 기웃 거려 보지만 며칠 후면
가슴 왼편에서 떼어 낼 배꽃 무늬 이대 뺏지를 생각하면 허전한 마음을 주체 하기가 어렵다.
가슴에 뺏지를 달고 다니는 한은 금값 신세이지만 그 뺏지를 떼는 순간 부터는 놋쇠로 만든 요강 단지 신세가 된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그 누나의 참담한 심정을 아무런 가감 없이 그려 냈던 그 글이 내 평생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학교,군바리,직장 그리고 여러 친목 모임에 적을 두고 늘상 조직의 일원으로서 조직의 암묵적인 보호를 받으며 외로움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내 인생줄에서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뜨고 보니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적이 없는 무적자 신세가 되어
있다.
탑골 공원이나 종묘 앞을 서성이는 노인네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머리와 가슴에 재향군인회 마크를 자랑스레 달고 다니는
심사를 이제서야 어렴풋이 알게 된다.
아무리 용맹한 숫사자나 하이에나 일지라도 무리를 벗어 나면 그 순간 부터는 찬밥 신세가 된다.
난 그 흔한 재수 한번 한 적이 없이 학교를 졸업 하였고 졸업과 동시에 군바리 신세가 되었다가 제대하고 일주일 만에 취직을
하여 엠티를 받기 바쁘게 정신 없는 시간을 보냈다.
꼬옥 갈려고 마음을 먹으면 갈 데가 없는 건 물론 아니다.
향우회다 동창회 모임이다 머다 하는 게 숱하게 있지만 갔다 온 그날 부터 한 사나 흘은 배알이 꼴려서 잠을 잘 수가 없으니
도무지 갈 수가 없다.
동창회 모임엘 가면 에누리 없이 자리를 꿰 차고 입에 개거품을 물면서 좌중을 휘어 잡는 놈이 꼬옥 있게 마련이다. 속된 말로
숫개 좆자랑 하는 식이다.
가진 건 돈 밖에 없다 미나리깡에 용 났다 메롱 메롱 하면서 약을 올리기 시작하면 아무리 승질 좋은 놈도 부화가 치밀기
마련이다. 재수가 옴 붙은 날은 동부인을 해서 가는 날이다.
집꾸석에 돌아 와서도 예팬네 한티 시달린다. 너라는
인간은 여태껏 머 하면서 살았냐고 밤새도록 다그친다.
오리역에서 처음으로 강 대장님과 인사를 나누고 당시 최 기사님이 운전 하시던 느림보 리무진에 탑승을 하고 나니
간식 공급과 등산 일정 안내 등등이 끝나 갈 무렵 신입 회원들의 인사가 있고 나니 강 대장님께서 거북이가 그려 진 느림보
등산 꼬리표를 한장 내게 건네 준다.
베낭 뒤에 부착하고 다니란 것인데 암행어사 마패를 받아 든 기분이였다.
숫개 좆자랑 하면 가장 먼저 떠 오르는 작자가 바로 도올 김 용옥이란 인물이다.
티비에선 그래도 자기 자랑이 아주 양반 수준이다. 이 작자가 쓴 책을 함 읽어 보셔요.
집안 내력 부터 해서 예팬네 자랑, 자신의 학벌 자랑 까지 해서 밑도 끝도 없다. 헌데
이 작자의 말 중에서 마음에 드는 말이 딱 한가지 있다. 자신의 특수 용어라고 함부로 도용하지 말라고 했던 꼴림이란 말이다.
인생을 살아 감엔 이 꼴림 작용이 없으면 다시 말해서 매사에 의욕을 잃으면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여성이 나이를 먹었다고 미모에 대한 꼴림 작용이 없어서 화장도 아니 하고 몸빼 바지에 쓰래빠 질질 끌고 다니기 시작하면
그날로 인생 끝장 이듯이 사내놈도 대가리 허옇게 해서 면도도 아니 하고 낮술이나 퍼 마시고 동네 헤집고 다니면 그날로
인생 아작 난다고 한다. 나 처럼
신선도가 한물이 간 동태같은 인간에게 느림보와 같은 산악회 모임은 고목나무에 꽃을 피우는 회춘제라고 할 수가 있다.
우선 적은 비용으로 심신이 건강해 지고, 젊어서도 만나 보지 못했던 쮹빵 산미인들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하루 쥔종일을
함께 보낼 수가 있을 뿐 아니라 남 보기 쬭 팔려서라도 튀어 나온 아랫배 집어 넣고 대가리에 무쓰라도 한번 더 뿌리게 된다.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고 했던가 등에 지는 박 속에 꿀을 넣으면 꿀단지가 되고...
생선을 담았던 종이는 비린내가 나고 향을 담았던 종이는 향내가 진동을 한다고 한다.
품성 좋은 느림보 회원님들의 무리 속에 끼여서 느림보 꼬리표를 베낭에 달고 오래 오래 천하를 주유하고 싶은 게 2014년
새해의 소망입니다. 벗님들도
지나 가는 해는 말끔히 잘 정리 하시고 다가 오는 새해는 벅찬 꼴림으로 맞이 하시길 간절히 빌어 봅니다.
12월 13일 정자동 만리장성에는 증말 많은 느림보님들이 오셔서 성황을 이루어 주시겠죠?
분당 탄천변의 외로운 승냥이 돌삐 인사 드립니다.
첫댓글 돌삐님의 느림보 사랑이 지극하십니다.
자주 뵙지는 못해도 마음속엔 언제나 느림보 가족들이 살아있지요?
저도 그렇답니다.
생업에 종사하는 가장으로서 매주 참석이 어려운거 잘 압니다.
돌삐님 만난지 벌써 4년이 되었군요.
올해는 좀더 자주 뵙게되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