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자의 ‘문장과 인품만 남는다’*
문헌공 최충은 두 아들을 두었는데 항상 아들을 훈계하며 이렇게 말했다.
“선비가 권세를 얻어 출세하면 유종의 미를 거두기가 어렵지만, 글을 닦아 학문을 쌓으면 경사스러운 일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나는 다행히 글로써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고, 밝고도 밝은 처신으로 조심하여 살면서 한 평생을 마치게 되었다. 너희들도 이것을 본 받아서 삼가고 삼가라.”
그리고 최충은 자손을 훈계하는 글을 지어 후세에 전했는데, 중간에 그 책은 잃어버렸고 오직 시 두 편만 남아 있다.
그 하나는 이러하다.
집에는 대대로 전하는 물건이 없으나
오직 지극한 보물 하나 간직해 왔네
문장을 비단으로 삼고
덕행을 규장(奎章-귀한 옥, 귀한 인품을 뜻한다.) 으로 아는 것이네
오늘 내 간곡히 일러두니
후일에 길이 잊지 말아라
나라의 동량으로 잘 쓰인다면
대대로 더욱 번창하리라.
문헌공의 손자인 중서령(고려 종일품 벼슬) 사추는 훈검문(검소한 생활을 훈계한 글)을 지어서 아들 진에게 주었고, 진의 손자인 지는 그 훈검문을 내게 보여주기까지 했는데 벌써 30년이 흘러서 그 내용은 모두 잊어버렸다. 오직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께서 는 항상 목기만 쓰셨다. 라는 구절 뿐이다.
그 책이 지금 누구에게 전해졌는지 알 수 없다.
* 최자(1188-1260)
고려 문인, 호는 동산수, 문과 급제하여 국학학유에 이름
이규보가 그를 인정하고 자신의 문필 후계자로 추천한 바 있다. 저서에 가집(歌集)은 전하지 않고 보한집(補閑集)만 전한다.
문학비평사에는 이인로와 함께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 1170년에 무신의 난이 일어나서 최충헌 최씨 정권이 끝나는 1260년까지 지속한다.
고려 문인들이 처음에는 무신정권을 회피하였으나, 이규보를 위시한 문인들이 최씨 정권을
도와서, 공헌한다. 이규보가 대표적 인물이다. 최자의 보한집이 유명하다.
첫댓글 이상으로 현실을 극복해야 하는데 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