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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토의 혼(1)
조 정 래
1
어머니의 위급 전보는 집을 에워싸고 있는 얼음덩이 같은 이른 아침 추위를 가르며 날아들었다.
“여보, 여보…….”
아내의 음성이 다시 방문을 비집고 들었고, 동명은 반사적으로 이불을 뒤집어썼다. 아침마다 대충 10분 간격으로 다섯 차례쯤 되풀이되는 기상 독촉 나팔인 ‘여보’ 소리만큼 지긋지긋한 소리가 없었고, 그때처럼 아내가 미운 때도 없었다. 그 소리는 다른 때의 ‘여보’ 와는 표정이며 색깔이 영 딴판이었다. 아침의 ‘여보’ 는 평소의 호칭이 아니라 구령이나 호령으로 바뀌어 있곤 했다. ‘여보, 여보’ 가 영락없이 ‘이랴, 이랴 낄낄’ 로 들리는 것이다. 이놈의 말, 게으름피우지 말고 어서 일어나 달려라, 이랴 낄낄……. 그래서 아내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문을 비집고 들 때마다 동명은 진저리를 치며 이불을 뒤집어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간밤에 사랑놀이라도 치르고 난 아침 같은 때는 그 정도가 한층 심해져서, 행동에 전혀 변화가 없는 아내한테 배신감 같은 것을 느끼는 동시에 살아간다는 것에 증오심이 끓어오를 지경이었다. 간밤에 품에 안겨 부르던 ‘여보’ 와 몇 시간 간격을 두고 아침에 부엌에서 부르는 ‘여보’ 는 어쩌면 그렇게 다를 수 있단 말인가. 몰인정한 여편네 같으니라구…….
이불을 뒤집어쓴 동명은 아슴아슴한 잠의 여울로 잠겨들며 아직 두 번은 더 부를 것이라는 걸 어렴풋하게 계산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방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여보, 여보’ 가 귓전에서 다급하게 울렸고 거의 동시에 이불이 확 걷혀 나갔다. 아내가 재빨리 다음 말을 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을 것이다. 아내는 아침마다 충실한 마부 노릇을 했을망정 이불을 걷어붙이는 식의 무례는 범하지 않고 있었다.
“이 전보 좀 보세요, 어머님 이…….”
싸한 추위를 온몸에 묻히고 있는 아내의 손에 종이 한 장이 위태롭게 들려 있었다.
“어머니가?”
동명은 잠자리를 차고 일어나는 것과 아내의 손에서 전보를 바꿔 채는 것과를 한 동작으로 해냈다.
一모친 위독 얼렁 와라 외숙.
무슨 벌레들처럼 한 줄로 흩어져 있는 자모들을 조립한 전보 내용이었다. 모친 위독까지는 해독이 쉬웠는데 ‘얼렁’ 에서 막혀 잠시 짜증이 일어났다. 그러나 ‘얼렁 와라’ 가 ‘급래(急來)’ 라는 상투적인 전보 용어를 대신하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 동명의 가슴은 차갑게 얼어붙었다. 평소에도 네 자로 된 한문 문자 쓰기를 즐기는 외숙이 ‘急來’ 라는 한자어를 모를 리가 없었다. ‘얼렁 와라’ , 이건 다급한 외숙의 육성이었다. 얼마나 상황이 급박했으면 소리쳐 부르듯이 ‘얼렁 와라’ 를 전보용지에 적었을까.
갑자기 전보용지에서는 죽음의 냄새가 짙게 묻어났다. 그 냄새를 느끼는 순간 동명의 의식은 충돌 사고를 일으킨 자동차의 앞 유리창처럼 산산조각으로 부서져나갔다. 캄캄해져 오는 시야 속에서 전보용지의 ‘위독’ 이 ‘사망’ 으로 바뀌는 것만은 불빛처럼 확실하게 보였다.
“여보, 왜 그래요. 정신 차리세요.”
아내의 차가운 손이 동명의 이마를 짚으면서 흩어지려는 그의 의식을 부축했다.
“마음 단단히 잡으세요. 위독이라고만 했잖아요.”
그러나 아내의 말은 위로의 능력을 이미 상실하고 있었다. 그 심하게 떨리는 목소리에는 동명 자신이 느끼는 것과 동질의 어두운 예감이 서려 있었다. 아내의 그런 반응은 어머니에 대한 깊은 이해로부터 비롯되는 것이었다. 아내는 어느 면에서는 동명 자신보다도 어머니를 더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건 시어머니와 며느리라는 상식적인 가족 관계만으로는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어머니와 아내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생기기 십상인 옹색한 거리감이나 난감한 갈등 같은 것이 거의 없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같은 여자로서의 감정 통로가 마련되어 있었다. 아내는 어머니가 겪 낸 세월의 상처를 진정으로 아파할 줄 알았고, 어머니의 찢긴 지난 세월을 자신의 손으로나마 기워야 되겠다는 듯 성심을 다하려 했다. 물론 아내의 그런 마음씀은 전적으로 어머니의 마음 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어머니는 아내한테 흔한 시어머니 노릇 하기를 원하지 않았고, 며느리를 친혈육 아끼듯 감쌌다.
아내가 전보의 ‘위급’ 에서 어두운 예감을 직감하는 것은 어머니의 자기 학대에 가까운 인내를 알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며칠씩 앓아눕는 경우에도 결코 연락하는 일이 없었다. 어쩌다 다니러 갔을 때 외숙의 입을 통해서 알게 되었고, 어머니는 그런 말을 하는 것마저 마땅찮아했다.
“상섭이는 뭘 하고 있어?"
동명은 방바닥에 떨어져 있는 전보를 얼른 집어 들며 큰아들을 챙겼다.
“아직 자고 있어요.”
“빨리 깨워야지, 빨리.”
동명은 장롱을 열어젖히며 다급해지고 있었다.
“어떻게 하시게요?"
“상섭이 데리고 먼저 떠날 테니까 당신은 집 누구한테 맡기고 애들 데리고 뒤따라와.”
말을 하면서도 동명의 손은 넥타이를 매기에 바빴다.
“아니…….”
남편의 넥타이를 본 그녀는 너무 놀랐고, 하려던 말을 순간적으로 삼켜버렸다. 남편은 의식적인지 무의식적인지는 모르지만 검정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아, 빨리 서두르잖고 뭘 그렇게 보고 있어?"
남편은 약간 역정이 섞인 투로 말했고, 장롱으로 돌아서더니 여덟 벌의 양복 중에서 정확하게 검정 양복에 손을 뻗쳤다. 그 순간 그녀는 전신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남편은 어머니의 마지막을 기정 사실처럼 받아들이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녀는 쫓기듯 방을 나왔다.
부리나케 아이들을 깨워 일으키고, 부엌으로 드나들고 하면서도 그녀의 의식은 질정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검정 양복을 입어야 하는 남편의 심정은 어떠할까. 그 어머니가 어떤 어머닌데, 어쩌면 말 한마디 없이 검정 양복 입기를 결정할 수 있을까. 자신에게 세 아이를 낳게 한 남편으로서가 아니라 냉정한 판단을 내리는 남자로서의 박동명이란 사람이 저만치 우뚝 서 있었다. 남편의 그런 변신은 가끔 나타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저만치의 거리감은 그녀에게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인식하게 했다. 그건 여자로서의 열등감인 동시에 남편에 대한 신뢰감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신뢰감은 이제 무서움으로 바뀌어 있었다. 남편은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어떻게 어머니의 마지막을 판단 내릴 수 있었
을까. 남편이 나타낸 감정 변화라는 건 눈을 꼭 내려감은 채 전보 용지를 방바닥에 떨어뜨린 것이 전부였다. 그때 남편은 어떤 확실한 예감이라도 잡은 것일까. 이 세상 모든 자식들은 부모에 대하여 그들 나름의 애틋함이나 시린 정의 끈이 연결되어 있게 마련이지만 남편의 경우에 있어서는 그 정도가 상상 외로 아프고 절실한 데가 있었다. 시어머니의 등 전체를 뒤덮고 있는 끔찍한 화상의 흉터는 바로 남편의 생명을 지켜낸 증거였다. “아가, 요런 숭악허게 생긴 등짝을 너헌테 까보이는 건 이 에미가 헌 일 공치사허잔 것이 아니여. 느그 남편은 인자 내 자식에서 니 사람으로 자리바꿈을 혔다. 내 한 몸 불타 죽어도 자석은 살려내자 허는 맘 하나로 이날 이때꺼정 살아왔니라. 인자 니 사람 되았은께 너도 이 에미 맘묵디끼 남편 섬기라고 요 등짝 까 보이는겨. 니 몸 위허디끼 니 남편 심기기만 험사 나는 씨엄씨(시어머니) 노릇 눈꼽쟁이만큼도 헐 생각 옰는 사람이다.” 시어머니는 당신 몸으로 불길을 막아 목숨을 건져내 키운 아들을 거짓 없는 마음으로 한 여자의 지아비 자리에 놓아 주었고, 며느리를 딸 대하듯 훈훈한 마음의 이불을 마련함으로써 그녀에게 한 약속을 어김없이 지켜나갔다. 시어머니가 살아낸 거친 세월의 물굽이는 상상만으로도 가위가 늘릴 지경이었고, 아무리 노력을 해보아도 현실감이 생겨나지 않았다. 그런 세월을 살아낸 시어머니가 장한 것인지 아니면 장하기 때문에 그런 세월을 살아낼 수 있었던 것인지, 그녀로서는 구분할 수가 없었다. ‘‘장하다는 한마디로 말하기도 좀 이상하지. 뭐랄까, 어머니를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사람 같지가 않아. 그렇
다고 신(神)이라는 뜻은 전혀 아니고, 사람이 그렇게 무섭고 질길 수 있는가 하는·…. 어머니는 참 기막힌 한(恨)이 많은 분이시지.” 결혼 15년이 되도록 남편은 어머니 이야기만 나오면 금세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했다. 항시 새롭기만 한 그 아픔과 슬픔을 보면서, 사무치는 사람의 정처럼 순수한 금(金)보 없다는 사실을 삶의 경험으로 깨달았다.
그러나 그런 이해를 뒤따르는 불안을 그녀는 떼칠 수가 없었다. 언젠가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되면 그때 남편은 어찌될 것인가…….
“상섭이 빨리 나오너라.”
남편은 현관에 나서 있었다. 그녀는 남편을 살필 겨를도 없이 아들의 방으로 들어갔다.
“세수도 못 하고…….”
중학교 1학년인 큰아들은 윗도리의 마지막 단추를 꿰며 불만스럽게 말했다.
“후딱후딱 하지 못하고 무슨 잔소리냐. 할머니가 위독하신데 세수 한 번 안 하면 어때. 내려가는 동안 아빠 기분 상하지 않게 조심해.”
그녀는 아들의 손에 장갑을 들려주며 등을 밀었다.
“엄마, 학교에 연락해야 퇘요.”
아들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 목소리만큼이나 무뚝뚝한 저항이 아들의 등을 밀고 있는 그녀의 손에 전해져 왔다. 그녀는 순간 이런 못된 녀석이 다 있나 하는 생각과 함께 한마디 야단을 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현관에 기다리고 선 남편 때문이기도 했고, 어쩔 수 없는 세대 차이라는 단절감이 그녀의 말을 막았던 것이다.
아이들은 할머니와 함께 살지 않기 때문에 깊은 정이 없었고, 어쩌다 할머니와 함께 지내는 며칠 동안도 할머니를 별로 필요로 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들려주고 싶어하는 옛날이야기를 아이들은 한마디로 거절했다. “그런 6·25 때 얘기는 텔레비에 얼마든지 나온다구요.” 할머니는 머쓱해질 수밖에 없었고, 할머니가 온 정성 다해 만들어가지고 온 강정이나 약과 같은 것보다는 아이들 입에는 초콜릿이나 아이스크림이 더 맛있을 뿐이었다. 그런 현상은 설득을 시키거나 야단을 친다고 해결될 성질의 문제가 아니었다. 할머니는 손주들 사이에 자신의 자리를 마련할 수 없었고, 그녀가 민망해서 무슨 말인가를 하려 하면 시어머니는 서운한 기색 말끔히 감추고 말하곤 했다. “시상이 달라졌응께 응당 그래야 하는겨. 요새 시상에 촌이고 서울이고가 워디 따로 있다냐. 우리 고향 아그덜도 다 똑같니라.” 그분은 몸집의 몇십 배가 넘는 마음을 지닌 분이었다. 그 넓은 마음속에 이 세상 살아가며 닥치는 온갖 서러움, 고통, 어려움, 분함 같은 것들을 끌어들여 삭이고 묻고 하는 것 같았다.
“가자.”
남편은 큰아들을 앞세웠다. 남편의 짧은 한마디와 무표정과 큰아들만을 먼저 데리고 가는 의미와·…. 이것이 살아가는 것인가 하는 절절한 생각이 슬픔처럼 가슴 자욱이 차오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서둘러 신발을 꿰신었다. 눈물이 현관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내가 죽게 되면 상섭이 저것이 제 아들을 앞세워 오겠지. 순간적으로 스친 생각을 눈물을 훔치며 함께 지웠다.
“회사에 연락하구요, 집은 이모한테 맡기고 금방 뒤따라갈게요.”
그녀는 대문을 따며 두서 없는 기분으로 말했다.
대문을 나선 남편이 그녀를 보았다. 눈이 마주쳤고, 남편의 눈자위가 바람 끝처럼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눈 가득 물기가 번졌다. 그 눈을 보자 그녀는 새로운 눈물이 울컥 솟았다. 남편은 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아들 상섭이의 검정 교복과 남편의 검정 양복이 골목을 결어가고 있었다. 추위가 꽁꽁 얼어붙은 골목에 두 검정 옷은 섬뜩한 느낌으로 두드러져 보였다. 지금쯤 어머니는 숨을 거두신 게 아닐까……. 그녀는 빠르게 고개를 저어 불길한 생각을 떨치려고 했다. 그리고 전보를 받은 후 처음으로 어머니가 아무 일 없기를 빌고 있었다. “내가 너헌테 꼭 바라는 소원 한 가지가 있다. 고것이 먼고 허니, 아들은 적어도 셋은 놓아달라는 것이다.” 어머니는 당신이 살아온 긴 이야기를 끝내고 등의 화상 흉터를 보여준 다음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아직 잠자리도 서먹서먹
한 새댁의 입장에서 그 말은 너무 부끄러운 것이어서 그녀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고개만 깊게 숙였다. “시상이 개명혀서 쪼깨 낳고 잘 키우자고 나라에서 축대기는 모양인디, 고것은 가당치도 않은 소리여. 워디 그때적 난리가 다 끝났간디? 아 지끔도 서로 총구녕 맞대고 응등그리고 있는 판인디, 원제 또 총질해댐스로 난리판굿 꾸밀지 알 것이냐. 그런께 암 소리 말고 아들 셋은 낳야 쓴다. 내 나이 서른셋에, 정순이 낳고 9년이나 지내놓고 느그 남편이 들어서지 않았겠냐. 참말로 영 남새시럽기도 허고 나이 묵어 젖 뽈릴 일이 한심시럽기도 혔는디, 그때 느그 남편이 들어서지 않았드라먼 워찌됐을 것이냐 금메. 다아, 다 하늘이 알아서 헌 일이여. 자석 쪼깨 낳자는 것은 키우기 힘든께로 허는 소
린가분디. 이 에미가 힘 보탤 팅께 니는 낳기만 혀.” 경제 원조까지 다짐하며 시어머니가 ‘바라는 소원 꼭 한 가지’ 는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실로 절실한 것이었다. 시어머니의 한평생을 갈기갈기 찢어놓은 그 전쟁은 다 끝난 것이 아니라 아직도 휴식의 잠을 다만 길게 자고 있을 뿐이었다. 그 잠을 언제 깨게 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에 사로잡혀 ‘적어도 손자 셋’ 얻기를 유일한 소원으로 삼고 있는 시어머니 앞에서, 산아제한의 근본 취지는 키우는 게 힘드는 것은 둘째 문제이고 우선 인구팽창으로 미래에 빚어질 인류의 비극을 막자는 것이라고 유식한 체 입을 놀린다면 그것처럼 부질없고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었다. 만약 그랬다면, 너 당장 짐 싸갖고 친정으로 가그라, 막말이 터져나왔을지도 모른다. 아들 셋을 낳자면 애를 전부 몇이나 낳아야 할 것인가……. 그녀는 겁 질리긴 했지만 시어머니의 소원이 결코 무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검정 옷을 입은 남편과 아들은 골목 어귀를 막 돌아서고 있었다. 그들은 두 개의 크고 작은 산이었다. 두 개의 산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뒤도 한 번 돌아보는 일 없이 골목 밖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들이 헤치고 간 골목의 추위 속에 뱃길처럼 두 개의 자국이 선명하게 그어져 있었다. 그 길을 따라 그들 산의 무게가 달려와 그녀의 가슴에 실렸다.
그 무게 위에 그녀는 다시 시어머니의 무사를 기원했다. 그러면서 아들 하나를 더 낳지 못하고 있음이 죄로 느껴져왔다.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고 세 번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친구들은 하나같이 의아해했고, 어떤 입빠른 아이는 지워버리라는 권유를 하기도 했다. 시어머니의 기뻐하고 고마워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그녀는 그저 웃기만 했다. 산아 제한을 곧 여권 신장으로 확대 해석하는 그들에게 아무런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들이 세 번째 임신의 이유를 알게 되면 시어머니보다도 그런 시어머니 뜻에 동조하고 있는 자신이 더 혹독하게 매도당할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녀는 첫아이를 낳고 그리고 키워가면서 시어머니가 겪어낸 아픔의 마디마디를 절실하게 상기시킬 수 있었고, 모성(母性)이라는 것이 얼마나 질기고 질긴 생명의 끈인가를 인식했고, 남편은 시어머니에게 아들로서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존재인가를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식을 낳아봄으로써 비로소 시어머니의 소원을 풀어드려야 되겠다는 결심을 확실하게 할 수 있었고 또 그럴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겨나는 것을 느꼈다.
2
고속버스는 맹수처럼 추위 속을 달려가고 있었다. 유리창마다 서리고 있는 성에는 밖의 추위를 세련된 추상화로 그려내고 있었다. 아들 상섭이는 아까부터 그 추상화 위에다가 자신의 무료를 손가락 끝으로 그리고 있었다. 아들이 그리는 무료의 그림은 손가락 끝의 체온으로 성에를 녹여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작은 유리 공간을 만들고 있을 뿐 어떤 형체도 조형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아들의 손가락 끝에서는 아들의 어린 나이에 비례해서 그만큼 많이 배당된 아들의 시간이 무료라는 죄명으로 압사당해 가고 있었다. 동명은 아들의 무료가 신경에 거슬렸다. 할머니의 위독 때문에 이처럼 황망한 길을 가고 있는데……. 그는 말을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만류했다. 아이들에게 할머니는 다만 아빠의 엄마라는 의미뿐이었고, 어쩌다 만나면 설도 아닌데 꼭꼭 큰절을 해야 하는 존재 정도일 것이었다. 아이들은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는 고사하고 아빠의 어릴 적 이야기도 쉰내 나 했다. 큰놈이 국민학교 2학년 때였던가, 대여섯 가지 반찬이 놓인 밥상머리에서 반찬 투정을 했다. 그 하는 짓이 하도 철없이 보이고 한심스러워서 애비로서 훈계를 하기로 작정했다. 아빠가 네 나이 적에는…… 이렇게 시작해서, 점심은 매일 굶어야 했던 일, 김치에 보리밥도 제대로 먹을 수 없었던 것, 10리 길을 넘게 걸어 나무를 해 날라야 했던 것 등등, 가난의 수기라도 쓰듯 줄줄이 엮어댔던 것이다. 그런데 뿌루퉁한 표정으로 다 듣고 난 놈은, 치이 아빤 가난했던 게 창피하지도 않아요? 하며 눈을 똑바로 뜨고 있었는데 그 얼굴이, 아빠가 그런 창피한 사람인 줄은 몰랐다 하는 표정이었다. 그는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고 화가 치밀어오르기도 해서 버럭 소리를 지르려는 찰나에 아내가 허벅지를 꾹꾹 찔렀다. 그래서 겨우 한숨 돌려가지고 왜 아빠가 그런 말을 했는지에 대해서 쓴 입맛 다셔가며 교육적(?)인 설명을 덧붙여 끝냈다. 소비가 미덕이라고 찬양되는 시대와 굶주림이 상식이던 전후와는 천당과 지옥의 차이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천당의 시대에서 자라고 있는 아홉 살짜리예게는 가난만큼 큰 창피가 없을지도 모른다. 착오를 범하고 있는 쪽은 오히려 동명 자신이었다. 큰놈만이 아니라 딸애 상희가 커나고, 셋째 상준이에 이르면서는 그의 어릴 적 이야기는 더욱 퇴색해졌을 뿐이다. 쌍둥이도 서로 세대 차이를 느낀다는 되바라진 익살을 던져가며 저희들끼리도 간섭의 냄새가 묻은 말 듣기를 꺼리는 아이들이 할머니의 옛날이야기에 귀 기울일리 만무였다.
큰아들 상섭이는 할머니가 위독하신 게 아니라 돌아가셔서 고향엘 가는 길이라 하더라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무료해할 것 같았다. 그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할머니와 정이 깊어지려면 함께 살았어야 한다.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텔레비전의 수사극이나 대본 가게의 만화보다 재미없어하는 것이 정이라는 것과는 별개의 것이었다. 정이라는 것은 몸과 마음이 가깝게 살면 살수록 그 농도가 짙어지는 영혼의 분비물인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할머니와 멀리 떨어져 살면서 1년에 서너 번 만나는 게 고작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할머니의 늙은 얼굴은 대할 때마다 항시 서툴고 서먹한 것이었다. 아이들은 골목 어귀에 있는 구멍가게의 노파에게는 예사롭게 할머니라는 호칭을 쓰면서도 정작 친할머니에게는 그 호칭 쓰기를 어색 해하고 머뭇거리는 눈치였다.
어머니는 함께 사는 것을 한사코 사양했다. 그건 어머니가 치르고 있는 또 하나의 고통스런 인내였다. 동명은 결혼을 하게 되면서 어머니에게 고향을 떠나 함께 살 것을 본격적으로 권했다. 그건 의례적인 자식된 도리로서가 아니었다. 동명에게는 이 세상에서 어머니만큼 슬픈 이름이 없었고, 어머니만큼 서러운 대상이 없었다. 언제 어느 때고 어머니만 생각하면 목이 메이고 가슴이 저렸다. 어머니의 일생을 그렇듯 모질게 찢어버린 그 지긋지긋한 땅에서 어머니를 빼내오고 싶었다. 그래서, 어머니 목숨으로 불길을 막으며 품에 품고 살려낸 하나 남은 자식 옆에 사시며 지난 세월의 아픔이 한 매듭씩 시나브로 풀릴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어머니의 태도는 완강했다. “니 맘 내가 다 알어, 하먼 알고말고. 그 맘 하나로 이 에미는 족혀. 에미도 그 징헌 놈에 땅이 좋아서 사는 것흔 아녀. 느그 아부지 억울헌 혼백이, 장개도 못 가고 죽은 느그 두 성님들 망령이, 그리고 원통허고 기맥히게 목숨 끊은 느그 누님 혼이, 그라고…….” 어머니는 여기서 말읔 뚝 끊었다. 어머니가 무슨 말을 삼켜버렸는지 동명은 잘 알고 있었다. 강춘복에 대해서였다. 어머니의 마디 굵은 거친 두 손은 돌덩이처럼 단단하게 말아쥐어져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고, 씰룩씰룩 경련이 일어니는 볼에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핏발 성성한 어머니 눈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눈물은 눈물이 아니라 증오의 독물이었다. 긴 꼬리를 늘이며 흘러간 세월과는 상관없이 어머니의 아픔은 그때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었다. “내 숨길 끊길 때꺼정 거그서 발붙이고 살아야 써. 두 눈 똑똑허니 뜨고 살아야 써.” 어머니는 허공을 응시한 채 남편과 자식들의 혼백에 맹세라도 하듯 힘주어 말하는 것이었다. 첫아들을 낳고 행여나 싶어 아내와 함께 다시 권유를 했지만 어머니 마음에는 변화가 없었다. “손지 새끼 기저구 갈아 채움시로 잠지 맨져보는 재미 싫은 할매가 워디 있겄냐. 그려도 고건 그냥 재민 것이고, 고런 재미는 참아내자 허면 참을 수 있는 재민께로…….” 말끝을 흐리는 어머니의 주름 깊은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잠시 머물렀다 사라졌다. 그건 어머니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슬픈 갈등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끝내 고향의 인력(引力)에 빨려들고 만 것이다. “어머니가 정 그러신다면 저희가 여기 살림 다 정리해서 시골로 내려가야겠어요.” 동명이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어머니가 느닷없이 소리쳤다. “그것도 말이라고 허는겨?” 어머니는 정말 무섭게 화를 내고 있었다. “에미 말 똑똑허니 들어. 인자 니넌 내 자석만이 아니여. 남편이고 아부지가 된 거여. 앞으로는 이 에미보담도 니 처자석 배 뜨시게 챙기는 것이 니가 헐 일인 것인디, 그 일 열심히 허니라고 이 에미 생각 멀리혀도 이 에미는 암시랑토 안 혀. 이 에미가 고 숭악헌 꼴 당험스롱도 팍 죽어뿌지 못허고 이빨 응등물고 산 것이 왜 그런지나 아냐? 다 니 하나 땀새, 니 하나 오늘맹키로 되기 바래서였어. 니는 인자 느그 새끼덜 잘 키워냄스로 한평생 사는겨. 고것이 이 시상 사는 순리여. 물줄기가 아래로 아래로만 흐르디끼 내리사랑 험시로 사는 것이 사람 한평생이여. 내가 고 징헌 고향 땅 못 버리고 사는 것도 다 그 이치 소관이여. 나라고 여잔디 이 시상에 나옴서부터 삼줄맹키로 칡넝쿨맹키로 질겼을라드냐. 눈 번히 뜨고 그 숭악헌 꼴 다 당허고 난 다음부터 사람이
변헌겨. 누가 갤차줘서, 누구헌테 배와갖고 맘이 그리되는 게 아닌 거여. 그냥 그리, 저절로 그리되는 게 새끼 가진 부모 맘인 것이여. 헌디 니넌 한시상 다 살아뿐 이 쪼그랑 망태기 에미헌테 효도허겄다고 아래로 흐르는 물줄기를 꺼꿀로 돌리겄다는 것이냐? 가당찮은 소리 허덜 말어. 말 새끼는 낳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 새끼는 서울로 보내라고 혔는디, 서울 살림 싸 짊어지고 촌구석으로 내려온다니 고것이 무신 넋 빠진 소리여.” 이런 어머니 앞에 아내는 진정으로 머리를 숙였다. 어쩔 수 없이 독자일 수밖에 없는 하들 하나를 거느린 홀시어머니 아내의 상식적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가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철 따라 지은 농사를 보따리 보따리 싸가지고 천릿길을 멀다 않고
오셨다가는 미처 사흘도 머물지 않고 바람결처럼 떠나시곤 했다. 어머니의 마음은 서울과 고향 사이를 서성 이는 방황의 그림자였다.
동명의 사십 평생을 통해서 그때의 기억만큼 선명한 채색으로 남아 있는 게 없었다. 그건 기억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건 살아 있는 마법이었다. 그리고 그 마력은 동명의 그 후 30년을 줄기차게 지배해 왔다. 아내와 사귀는 동안 좋은 추억거리가 될 만한 중요한 대목을 까맣게 잊어버려 아내를 실망시키기 일쑤인 동명의 기억력이었다. 그런데 그때의 일만큼은 어쩌면 그리도 선명하게 피 묻은 지푸라기 하나, 햇빛 속에 그어지던 한 줄기 비명, 식별해 낼 수 없던 아른아른한 냄새까지도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장막 연극이었다. 아니, 이렇게 말하는 것도 정확하지 못했다. 관객의 입장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은 언제나 그 연극의 조역으로 출연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실의 나이를 먹어가는 것과 상관없이 그 연극 속에서 자신은 언제나 아홉 살짜리였다.
자신이 이러할 때 그 연극의 주역이었던 어머니가 어떠할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어머니가 죽을 때까지 고향을 떠날 수 없음이, 어머니가 고향을 지키며 보낸 30년이란 세월이 하루와 다를 바 없음을 동명은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3
농업학교를 다닌 큰형 동일은 얼핏 보면 아버지와 혼동하기 쉬었다. 얼굴 생김새 말고도 큰 키가 그랬고, 목소리가 그랬다.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고샅을 돌아나오거나, 희뿌연 새벽 어스름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큰형은 영락없이 아버지였다. 동명은 “아부지이” 하고 부르는 실수를 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큰형은 능청맞게도 “오오냐, 동명이냐” 하는 아버지와 똑같은 대꾸를 하는 것이었다. 큰형한테 속은 것을 뒤늦게 안 동명은 코를 씩씩 불며 주먹을 휘둘렀지만 큰형은 끄덕도 하지 않았다. “오오냐, 내 새끼. 어디 보자, 우리 막둥이.” 아버지를 흉내내며 큰형은 동명을 번쩍 안아올렸다. 자신의 양쪽 겨드랑이를 받쳐 올리고 있는 큰형의 팔 힘은 어쩌면 아버지보다 셀지도 모른다고 동명은 생각하곤 했다. 사실 큰형의 양쪽 팔에는 거짓말을 하나도 보태지 않고 계란 세 개보다 큰 알통이 들어 있었다. 큰형이 팔을 반으로 꺾으며 힘을 쓰면 그 알통은 불쑥 솟아나곤 했는데, 동명은 그 알통을 만지는 일이 언제나 기분 좋았다. 그 알통 위에 두 손을 깍지 끼면 큰형은 금방 알아차리고 씨익 웃었다. 그 큰 알통을 두 손에 감싼 채 큰형의 실한 팔에 매달려 마당을 두어 바퀴 도는 것만큼 신명 나는 놀이가 없었다. 물론 아버지 팔에도 알통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큰형 것만큼 단단해 보이지가 않았고, 아버지는 마당을 돌면서도 큰형만큼 신바람 나게 얼러 주지를 않았다.
한번은 아버지와 팔씨름을 하면 누가 이길 수 있느냐고 큰형한테 물었다. 거야 혀봐야 알 일인디 하며 큰형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똑같은 말을 아버지한테 물었다. 느그 성이 이겨야제, 하먼 느그 성이 이긴다. 아버지는 서슴지 않고 대답했다. 그렇게 말하는 아버지는 빙그레 웃고 있었는데, 그 웃음이 큰형 같은 것은 문제없이 이길 것 같았고, 만약 팔씨름이 붙으면 아버지가 거짓말로 져줄 것만 같았다. 왠지 그런 느낌을 큰형한테 말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동명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 큰형은 몸집도 아버지와 비슷했지만 잠지도 아버지 것만큼이나 컸다. 그리고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털도 겁나게 나 있었다. 동명이 아버지 그것을 처음 본 것이 여섯 살 땐가 저수지에 미역을 감으러 가서였는데, 물가에 앉아 올려다본 아버지의 그것이 어찌나 무지무지하게 큰지 그만 숨이 흑 막힐 것만 같았다. 동명은 기가 질려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그런데 눈앞에 또 그 큰 것이 보였다. 동명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그건 그대로 있었다. 자세히 보니 아버지의 알몸이 물에 비친 것이었다. 그 후로 아버지만 보면 그 큰 것이 떠오르며 목이 움츠러드는 것 같고는 했는데, 미역을 감으면서 보니까 큰형 것도 또 그렇게 숨막히게 컸던 것이다.
큰형과 세 살 차이인 작은형 동현은 알통이 별로 보잘것이 없었다. 몸집도 큰 편이 아닌 데다가 운동 같은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항상 무슨 생각을 혼자 하는 것 같았고, 집에 있어도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였다. 동명으로서는 그런 작은형보다 큰형이 좋았고, 마음속으로는 자기도 다음에 커서 큰형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감춰져 있었다. 그러나 동명이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 두 형보다는 바로 손위인 정순이 누나와 제일 친했다. 바로 손위라고는 했지만 나이 차이는 아홉 살이나 되었고, 그런 이유로 하여 둘 사이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비밀이 마당 가 똘감나무의 똘감처럼 많았다.
특히 동명이 누나를 좋아하는 것은 자신이 알고 싶어하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가리지 않고 속속들이 가르쳐준다는 점이었다. 동명의 소원들 중에서 제일 다급한 것은 어서 커서 어른이 되는 것이었는데, 그런 만큼 어른들의 일에는 궁금한 것도 많았고, 알고 싶은 것도 많았다. 어른들이 쉬쉬하는 눈치의 일일수록 동명의 눈과 귀는 간지럼을 타는 것처럼 근질거리게 마련이었다. 이런 때면 누나는 동명을 꼭 끼고 누운 밤 깊은 시간에 가만가만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었다. 누나는 호기심으로 간지럼 타는 동명의 눈과 귀를 제때제때 긁어주었고, 나이에 비해 숙성하고 똑똑하다는 말을 듣는 것은 다 그런 누나의 덕이었다. 누나의 소원은 사범학교에 들어가 국민학교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는데 여자라는 것 때문에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집에 갇히게 되었다. 여자는 소학교 나와 살림하는 것 배워 시집 잘 가면 그만이라는 아버지의 엄한 말로 누나의 소원은 깨어지고 말았다. 누나가 제일 불쌍할 때는 여자로 태어난 것을 비관하며 남몰래 흐느껴 우는 때였다. 오줌이 마려워 일어나거나, 무서운 꿈에 쫓기다 잠이 깰 때면 누나는 엎드려 울고 있고는 했다. 그때처럼 누나가 불쌍할 때가 없었고, 그때처럼 아버지가 미운 때가 없었다. 잠들기 전에는 그렇게도 방싯방싯 웃으며 이야기를 찰떡 씹듯 잘하던 누나가 어쩌면 저렇게도 슬픈 얼굴로 울 수 있는지 동명은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누나는 동명이 말고는 식구들과 거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누나와 그런 사이가 계속될 수 있었던 것은 동명이 누나와 한 비밀 약속은 꼭 지켰기 때문이다.
큰형이 공산주의 운동에 가담해 있다는 것을 안 것도 누나를 통해서였다. 다른 때와는 달리 마른침을 삼켜가며 어느 대목에서는 더듬거리는 누나의 설명을 들으며 국민학교 1학년인 동명은 공산주의라는 것을 알 듯 말 듯했다. 큰형은 농업학교를 다니면서 공산주의에 물듣기 시작했고, 졸업하고 나서 아버지를 도와 과수원 일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그 운동을 펼쳤고, 아무 눈치도 모르고 있던 아버지는 형 대신 경찰서에 끌려가서야 모든 것을 알았고, 형은 미리 눈치를 채고 어디론가 몸을 숨겨버렸다는 것 등이 동명의 머리에 남은 이야기였다. 누나는 어느 때없이 겁먹은 얼굴로 비밀을 지킬 것을 몇 번씩이나 다짐받았다. “공산주의 허는 것이 도둑질이 아닌디 어째 순경이 잡아간당가?” “나라에서는 도둑질보담 더 나쁘게 생각허는 거여.” “워메, 고런 나쁜 짓을 큰성은 워찌혔을까? 모르고 혔을까?” “아녀, 다 암스롱도 혔겄지.” “큰성은 삼스로 지 멋에 겨워 저질르는 일일껴.” “아무리 지 멋에 좋다고 순경헌테 잽혀갈 일도 혀?” “금메 나도 그 맘은 잘 모른다니께.” “누나가 모르는 일이 워딨어. 안 갤차줄라고 거짓말허는 것이제.” “아녀, 아녀, 내가 큰성 맘 짐작혀 보기로는, 큰성이 그 일 시작헌 맘이 내가 학교 선상님 되고 잡은 맘이나 얼추 같을껴.” “워메, 그렇크름 미치는 맘으로 큰성은 그 일을 혔다고?" 동명은 그제야 큰형이 그 일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도대체 공산주의라는 것이 무엇이길래 큰형을 그렇게 미치게 만들었을까. 여자인 누나가 선생님이 되고 싶어 미치는 마음은 차마 옆에서 볼 수 없을 지경으로 딱한 것이었다. 그런데 남자인 큰형, 알통이 그리도 크고, 아버지 것만큼이나 큰 잠지도 가진 큰형이 그렇게 미칠 수 있었던 공산주의라는 것은 선생님보다 얼마나 더 좋은 것일까. 그런데 왜 또 그건 도둑질보다 나쁜 것일까. 아무리 되작거려 생각해보아도 등줄기에 오소소 무섬증만 일어날 뿐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큰성은 워디로 도망을 갔을꼬?” “금메…….” “밥은 묵었을랑가?” “금메 말이여.” 누나의 목소리가 이상했다. “밥 굶으면 배고플 틴디.” “동명아, 얼렁 자그라.” 누나가 와락 끌어안았는데 구 목소리는 완연히 울고 있었다. 동명도 울컥 울음이 솟구쳤다. 큰형이 못 견디게 보고 싶었다.
아버지는 집안 망할 일 터졌다고 장탄식을 하며 매일같이 술을 마셨고, 집안에는 어디에고 서늘한 바람이 가득 차 있었다. 어디서 바람이 부는 것도 아닌데 그 서늘한 바람은 집안 구석구석에 차 있었다. 상여움막에서나 느낄 수 있는 그 섬뜩하고도 으스스한 바람은 몇 날 며칠이 지나도 없어질 줄을 몰랐다. 큰형 한테서는 아무 소식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형이 경찰서에 붙들려갔다. 작은형은 고개를 푹 수그리고 걸었는데 그 뒤를 동네 아이들이 줄줄이 따라붙고 있었다. 어머니는 과수원으로 아버지를 부르러 미친 듯이 내달았고, 동명은 누나에게 손목을 잡혀 대문 앞에서 바들바들 떨었다. 작은형도 큰형과 같은 잘못을 저지른 거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도무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과수원에서 바로 경찰서로 달려갔다는 아버지는 밤늦게 돌아왔고, 집 안에는 그 서늘한 바람이 한결 궈게 끼었다. “워쩝디여?” 어머니가 아버지 눈치를 살피며 다급하게 물었고, “조사혀 보곤 내보내겄다고 혔응께 하룻밤 기둘려봐야 알겼네.” “근디, 개 패듯 허먼 어찔깨라?” 어머니가 얼떨결에 말했고, “어허!” 아버지가 소리쳤는데 그 순간 아버지의 눈길이 동명이와 마주쳤다. 동명은 말없이 일어나 방을 나왔다. 누나가 설거지를 끝내고 돌아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작은성도 공산주의 헌 거여?” 누나가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물은 말이었다. “하녀, 작은성은 아닐껴.” 누나는 근심스런 얼굴로 고개까지 저어 보였다. “근디 워째서 순경이 잡아가!” “행여 물들었나 볼라고 그러는 모냥인디, 순경들이 헛일 허는겨. 큰성허고 작은성은 애시당초 사상이 달랐응께.” “사상? 고것이 먼디?" 금메, 고것을 뭐라고 혀야 쓰겼다냐……. 긍께 고것이, 그려 생각, 맘묵은 생각이라고 허먼 되겼다.“ ”큰성하고 작은성은 애시당초 맘묵은 생각이 달랐다는 것이 무신 말이여? “큰성은 공산주의로 이 시상을 바꿔야 헌다는 생각이었고, 작은성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반대를 헌 거여.” “고것이 참말이여?" “허먼 참말이제.” “그라먼 누나가 경찰서에 가서 얼렁 그 말을 혀. 그래야 작은성이 후딱 풀려나제.” “워메, 웨메, 사람 잡을 소리 허덜 말어. 인자 와서 고
런 소리 혔다가는 큰성이 공산주의 허는 것 다 알아놓고도 경찰에 미리 알리지 않았다고 되갱겨 죄만 커진단 말이여.” 누나는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말을 듣고 보니 누나는 이미 큰형이 공산주의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워치케 된겨. 누나는 큰성 허는 일 다 알고 있었제? 아부지도 엄니도 알고 나만 모르는 일이제?” “아녀, 동명아, 그런 것이 아녀. 아부지 엄니는 암것도 모르고, 작은성은 큰성이 공산주의 사상만 가졌지 숨어서 사람을 모집하는 일꺼정 허는 줄은 모른 겨. 나는 큰성허고 작으성이 즈그덜 방에서 공산주의가 조니 나쁘니 하는 소리만 귓등으로 들은 것뿐이고 말이여. 요것은 눈꼽쟁이만치도 거짓말이 아닌께 이 누나를 믿어야 써.” 누나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고, 동명은 그 눈물에 마음이 약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는 그 사실을 입 밖에 절대로 내지 말 것을 다짐했고, 그래서 비밀은 또 하나 더 늘어났다.
작은형은 이틀 만에 후줄근하게 변해 돌아왔다. 어머니는 눈물을 질금거리며 작은형의 몸 여기저기를 살피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엄니, 암시랑토 않단께요.” 작은형은 퉁명스럽게 말하며 어머니의 손을 뿌리쳤다. 그런데 작은형은 일주일이 가깝도록 방에 누워만 있었고, 어머니와 누나는 한약을 달인다, 닭죽을 끊인다, 부산하게 움직였다.
집 안을 뒤덮고 있는 서늘한 바람이 가시지 않은 채 한 해가 지났고, 큰형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설이 되어도 아무 소식 이 없었다. 어머니는 큰형 걱정으로 걸핏하면 눈물을 짰다. 그러면 아버지는 버럭 역정을 내며 성냥을 득 그어 담배에 불을 붙였다.
큰형이 느닷없이 나타난 것은 여순반란사건의 소식과 때를 같이 해서였다. 큰형의 손에는 총이 들려 있었다. 큰형이 변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눈이 이상한 빛으로 이글거렸고, 얼굴도 전과는 달리 딱딱한 돌껍질처럼 보였다. 그런 큰형 이 반갑기 보다는 겁부터 났다.
“아부님, 절 받으시씨요.”
우악스럽게 생긴 목 긴 구두를 벗고 마루로 올라서며 큰형이 말했다.
“너 이놈, 그 총 당정 칙간에 처박고 오너라. 그리 못 헐 바에는 애비라고 절할 것이 웂어!”
아버지는 무섭게 호령 했는데 정작 식구들아 놀란 것은 큰형 한테였다.
큰형은 태연하게 서서 빙긋이 웃고 있었다.
“아, 썩 물러스라니께!”
“아부님 고정허시씨요. 인자 기엉코 우리덜 시상이 되았구만요. 순천·여수가 눈 깜짝헐 새에 우리 것이 되야불고, 여그 경찰서도 우리가 차지혔구만이라. 못 믿으시겼으먼 가 확인해 보시씨요. 내 부하덜 배치시켜 놓고 오는 길잉께요. 아부님도 인자 인민 혁명 전선에……”
“주당이 닥쳐라 이눔아!”
아버지가 소리를 지름과 동시에 놋쇠 재떨이를 집어던졌다. 큰형은 기막히게 빠른 동작으로 마루를 뛰어내렸고, 재떨이는 맞은편 벽에 부딪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결국 형은 아버지에게 절을 하지 못하고 집을 나갔다. 어머니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부엌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어두워질 때까지 울었다. 큰형은 돌아왔지만 집 안을 뒤덮은 서늘한 바람은 더 두꺼워진 것 같았다.
밤이 되자 어둠 그 어디에선지 비명 같은 총소리가 길게 울리고는 했다. 동명은 누나의 가슴에 바짝 붙어 누워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누나의 큰 젖가슴도 다른 때와는 달리 심하게 벌떡거리고 있었다. 누나도 겁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저 총, 누가 누구헌테 쏘는 것이까?” 동명은 견디다 못해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물었다. “모르겼어, 나도 모르겄어.” 누나가 겁이 실린 조그만 목소리로 대답했다. “큰성이 쏘는 것이까?” “모르겄어, 얼렁 자, 얼렁.” 어찌어찌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누나치마가 다 젖어버리도록 오줌을 싸고 말았다. 다른 때 같았으면 동네방네 다 소문내고 말겠다며 동명의 애가 닳도록 놀렸을 텐데 누나는 시무룩한 표정인 채 말없이 팬티만 내주었다.
큰형 말마따나 밤사이에 세상은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순경 대신 젊은 사람들이 붉은 완장을 두르고 완장 색깔만큼 기세 좋게 활개를 쳤다. 그들이 모두 큰형의 부하라는 것을 동네 아이들이 입을 모아 떠들어댔다. 그러나 동명은 그 사실이 하나도 즐겁거나 자랑스럽지가 않았다. 아버지가 싫어하는 짓을 하는 큰형이었다. 간밤에 순경이 둘인가 죽었다는 소문이었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잡아들인다고도 했다. 큰형은 해거름에 집에 들렀는데 곧장 작은형 방으로 갔다.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 같더니 금방 큰소리가 터져나왔다. 큰형의 목소리였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과수원에 일 나가고 없었고, 누나는 문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큰형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졌고, 작은형의 목소리도 따라서 커지고 있었다. 공산주의, 민주주의, 자유, 혁명, 살인, 파괴, 이런 말들이 엇갈리는 그들의 말다툼은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묻는디, 니 참말로 내 말 못 듣겄어?”
“죽었으면 죽었지 못 들어.”
“니 참말이여?"
“나도 남자여.”
“에라 잡것!”
철퍽 하는 소리와 어쿠 하는 비명이 동시에 터졌다.
누나가 벌컥 방문을 열어젖혔다.
“큰오빠, 그라먼 안 되야!”
누나가 울부짖었다.
“니가 동생만 아니라먼 한 방에 쏴 쥑여야 허는 악질 반동이여!”
큰형은 방바닥에 놓인 총을 들어 작은형을 겨누었고, 작은형은 코피를 질질 흘리면서 큰형을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누나가 총을 잡고 매달리며 소리 쳤다.
“큰오빠, 안 되야, 안 되야.”
총으로 작은형을 겨누던 큰형의 얼굴은 큰형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것이 동명이 마지막으로 본 큰형의 모습이었다. 동명은 그 일을 어머니, 아버지한테 절대 말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고, 그래서 누나와의 비밀은 또 하나가 더 늘어났다.
밤사이에 작은형이 자취를 감춘 사건이 벌어졌다. 동명은 큰형이 끌어다가 죽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다. 그러나 누나의 귓속말을 듣고는 안심했다. 큰형을 피해 어딘가로 몸을 숨겼을 것이라고 했다. 애달아하는 아버지와 어머니한테 모든 것을 말해주고 싶었지만 누나의 매서운 눈초리가 말을 막고는 했다. 누나의 말로는, 큰형이 한 짓을 다 알리고, 작은형이 큰형 때문에 집을 나간 걸 알게 되면 아버지가 큰형한테 쫓아갈 것이고, 그러면 무슨 일이 또 벌어질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동명은 이제 큰형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누나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큰형은 꼭 엿새 동안 대장 노릇을 하다가 순경들에게 쫓겨 또 어디인가로 도망가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큰형만 도망간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순경들이 집으로 들이닥쳤고, 아버지는 손을 뒤로 묶여 잡혀갔다.
아버지는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어느 아이가 아버지는 큰형이 자수를 해야 풀려날 것이라고 했다. 동명은 그 말을 꼭 믿지는 않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동명은 밤마다 잠을 자지 못했다. 큰형은 자기 때문에 아버지가 붙들려간 것을 모르고 있을 것이고, 안다고 하더라도 아버지를 풀려나게 하기 위해 자수를 할 큰형이 아닐 것 같은 생각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날마다 울면서 경찰서를 오갔고, 아버지는 열흘 만에야 돌아왔다. 그러나 아버지는 과수원에 일을 나가지 못했다. 집 안에 가득찬 서늘한 바람은 더욱 두꺼워졌다.
4
큰아들 동일은 한사코 농업학교를 가지 않으려고 했다. 그건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 과수원 주인 이시하라의 뜻이기 때문에 왜놈이 시키는 대로 따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 어른스런 생각을 품고 있는 아들을 바라보는 새터댁의 마음에는 대견함과 조바심이 엇갈리고 있었다. 등에 업혀 사과나무 새순을 뜯어 입에 넣던 것이 어느새 저리 컸을까 싶었고, 끝까지 고집을 세우다가는 무뚝뚝한 제 아버지한테 불벼락을 맞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아직까지는 심하게 다그치지 않고 있었다. “안즉 여유가 있응께 자네가 살살 달개서 맘 고쳐묵게 맹글소. 고놈 생각도 영 틀려묵은 것이 아닝께.” 남편도 일단은 큰아들을 대견해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무한정 그러고 있을 남편이 아니었다.
남편은 바위 덩어리 같은 사람이었다. 한번 마음 정하면 소 여물 되새김질하듯 지칠 줄 모르고 밀고 가는 뚝심이 있었다. 과수원도 남편의 그 뚝심 하나로 이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과수원 주인 이시하라도 남편의 끈질긴 뚝심을 누구 앞에서나 칭찬했다. 박상은 조선 사람 같지 않은 조선 사람이다. 박상 같은 조선 사람만 있었다면 우리 일본이 조선을 도와주려고 이렇게 애쓸 필요가 없다. 이시하라가 인부들을 나무라며 곧잘 쓰는 말이었다. 이시하라가 동일을 농업학교에 보내주려고 하는 것도 다 남편의 헌신 때문이었다. 그리고 남편도 그것을 바라고 있었다.
“엄니는 몰라서 그러요, 농사 짓는 기술 공부혀셔 결국 누구 존 일시킬지는 뻔헌 일 아니겄소? 이시하라는 지놈 배불리자고 날 농업학교에 보낼라는 것이 랑께요.”.
“금메 고것을 누가 모른다냐? 아무 핵교도 못 가고 바로 과수원 일꾼으로 처백히는 것보담야 낫덜 않겼냐. 농업핵교에서도 인문핵교서 갤치는 것 다 갤친다는디. 도회지 물도 묵어보고, 이 엄씨 말대로 혀라, 존 일 헌다고.”
“엄니는 몰라서 그런디, 젊은 놈덜이 농사 짓는 공부나 혀갖고는 이나라는… ….”
큰아들 동일은 더 말을 하지 않고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참말로 요상허네웨. 저것이, 저것이 다 큰 남정네맹키로 나라 걱정을 다 허네웨. 저놈이 속이 워찌 생겨묵었으까이. 자식도 겉을 날제 속을 못 낳는다드니 꼭 저놈 두고 헌 말잉갑구만. 참말로 사람 애간장 녹이네. 새터댁은 대문을 나가는 큰아들 동일을 멍하니 바라보며 어이가 없었다.
동일은 끝내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려, 니 말도 틀린 것은 아녀. 허나 그렇크름 말허는 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치여. 워찌 고것이 일본놈 과수원이겼냐. 너는 일본놈덜이 세세만년 이 땅에서 살아질 것 같으냐? 결국은 망혀서 즈그덜 땅으로 찢겨가게 되는겨. 고것이 시상 이치여. 고것들이 찢겨감스로 우리 땅뗑이꺼정 떠메고 갈 것이냐. 고것만은 안 되야, 고것만은 안 되는 것이여. 고때 과수원은 누구 것이냐. 우리나라 것잉 거여. 일본놈 쪽발이 샅 밑구녕에 빈대맹키로 붙어묵고 사는 놈이라고 사람덜이 날 욕허는 거 모르는지 아냐? 내 다 알어. 다 암스롱도 내 귀먹었니라 허고 수원 일 쌔뺘지게 헌겨. 무식헌 농꾼이 농사 짓는 일 말고 머를 또 헐끄나? 니가 차마 말 못 허고 뼈대는 독립운동을 헐끄나? 사람은 다
지 헐 일을 타고나는 벱이여. 이 애비가 무식허긴 혀도 쪼깨 생각은 있는 사람이여. 나라 잃은 설움도 알고, 나라 찾자고 싸우다 죽는 사람덜 장헌지도 다 알어. 근디 이 애비가 헐 일은 농새 짓는 일이었단 말이여. 과수원 일 쌔 빠지게 험시로, 요건 우리나라 것이여, 요건 우리나라 것이여 허는 생각을 중 염불 외우대끼 헌 애비 맘 니가 알기나 혀?”
남편은 역시 남자였다. 그리고 남자는 남자가 다루어야 되는 모양이었다. 큰아들은 대꾸 한마디 못하고 농업학교를 가겠다고 뜻을 굽혔다. 큰소리 한 번 치지 않고 아들의 뜻을 돌려버리는 남편이 그렇게 장해 보일 수가 없었다. 남편이 말을 그리도 청산유수로 잘하는지도 몰랐던 일이고, 생각이 그렇게 깊은 줄은 더구나 몰랐던 일이었다. 함께 살을 섞고 살면서도 다 알 수 없는 것이 사람 속이라 싶었다.
과수원 주인은 이시하라였지만 과수원은 남편의 몸이나 다름이 없었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남편의 손가락이고 발가락이고 머리카락이고 핏줄이었다. 과수원의 나무는 어느 것 하나 남편의 손길이 안 닿은 것이 없었다. 남편은 그 많은 나무들 하나하나를 다 기억했고, 먼발치에서도 어느 것이 아픈지를 금방 알아차렸다. “워치케 나무가 다 아프당가요?’ “백날 말로 혀서 되는 일이 아녀. 내 몸 돌보대끼 허다 보먼 나무가 아프다고 말을 허제.” 나무가 말을 혀라?“ ”하면, 나무도 사람허고 다 똑같어. 자네도 세월 보내다 보면 시나브로 깨치게 될 것이구만.” 꼭 무당의 주문 같은 소리였다. 그러나 남편 따라 15년 남짓 나무들을 보살피면서 새터댁은 그런 것들을 환하게 터득할 수 있었다.
과수원은 남편의 몸만이 아니었다. 새터댁 자신의 몸이기도 했다. 그 땅에 땀 뿌리고 나무들을 자식 키우듯 해서가 아니었다. 여자로서의 굴욕과 눈물을 죄의식과 함께 아무도 모르게 묻은 땅이었기 때문이다.
열여덟에 시집을 왔을 때는 남편은 이미 과수원에서 일을 하는 몸이었다. 시집은 겨우 밥을 끓일 수 있는 정도의 살림이었다. 3개월 남짓 비단 치마저고리 입고 새댁 노릇을 하고는 거친 일에 나서야 했다. 남편을 따라 과수원에 나다니는 일이었다. 남편은 밤이면 그리도 뜨거운 불덩어리가 되면서도 날만 밝으면 언제 그랬느냐 싶게 무뚝뚝하게 변했다. 과수원에서도 나무 사이에 단둘이 있을 때가 많은 데도 눈길 한 번 주는 일 없이 일에만 정신을 쏟고 있었다. 무슨 말은 안 하더라도 한 번이라도 쳐다보아 주기만 해도 지루함을 덜 것 같은데 남편은 야속할 정도로 무신경했다. 그런 사람이 밤만 되면 어찌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밤 광경이 떠올라 얼른 눈길을 돌렸다. 얼굴이 확확 달아오르고 아랫배 거기가 찌르르 울렸다. 남편은 밤마다 그녀를 알몸으로 만들었다. 그녀는 속저고리만큼은 그대로 입고 있으려 했지만 남편은 기어이 알몸을 만들고는 했다. 남편은 한 번만이 아니었다. 서너 번씩 불덩어리가 되어 그녀의 전신을 덥혀왔고 그리고 그녀의 속 깊은 곳에다 한 움큼의 불덩어리를 옮겨 심는 것이었다. 그곳의 알키한 통증이 미처 가시기도 전에 그녀는 다시 불덩어리를 받아들여야 하곤 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밤마다 거듭되는 그 통증이 싫지 않은 것은 무슨 까닭인가. 싫기는커녕 벌건 대낮에 남편이 밤에 했던 그런 느낌의 눈으로 보아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남편은 일을 열심히 하는 만큼 일본인 주인의 신임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인접한 도시로 돈 심부름을 가기도 했고, 비료 같은 것을 인수하러 이삼 일씩 과수원을 비우기도 했다.
접붙일 나무를 구하러 남편이 떠난 날이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창고에서 혼자 사과나무 사이에다 심을 씨받이 콩을 고르고 있었다. 빗소리 사이에 섞이는 인기척을 느끼고 무심히 고개를 들었다. 주인 이시하라가 다가서고 있었다. 그런데 그 눈빛이 비린내를 풍기고 있었다. 그녀는 위기를 직감하고 몸을 사렸다. 그러나 이시하라가 그녀의 팔을 낚아챘다. “가만히 내 말 들어. 목욕해 버리면 깨끗해져. 말 안 들으면 니 남편을 당장 쫓아내고 말거다.” 바들바들 떨고 있는 그녀의 귀에다 대고 이시하라는 소곤거렸다. 그녀는 이시하라가 미는 대로 뒷걸음질쳤고, 짚덤불 뒤에까지 밀려가서 쓰러졌다. 그가 하는 대로 그녀는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남편이 쫓겨나서는 안 된다는 소리만 환청처럼 들으며.
그녀는 그날 밤 목욕물을 두 동이나 데워 거기를 열 번도 더 씻었다. 그래도 이시하라의 비린내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 그녀의 간절한 바람과는 상관없이 남편은 또 그녀를 알몸으로 만들었다. 남편의 불덩어리가 자신을 속살 깊이보로무너져 들어왔을 때 그녀는 그만 엉엉 소리쳐 울고 싶었다.
이시하라는 그후로도 열 차례 남짓 그녀를 괴롭혔다.
남편의 쫓겨남을 막기 위해 그 괴로움을 견디어낸 것이 잘한 일인지 잘못한 일인지 구분할 수 없는 채로 남편에 대한 죄의식은 그녀의 몸을 누에의 고치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목숨의 구차함에 서러워하며 사과나무 사이에서 남모를 눈물도 많이 흘렸다.
큰아들 동일이 농업학교 졸업을 반년 남겨놓고 해방이 되었다. 미루나무 잎새 위에 부서지는 햇살의 무수한 반짝임도, 푸르른 들녘을 부드럽게 빗칠하며 흐르는 바람결도 어제의 것이 아닌 듯싶게 해방은 새로움과 술렁임의 얼굴로 왔다. 새터댁은 표현 못하는 속에서 그 누구보다 해방을 고마워하고 눈물겨워했다. 이시하라, 그 남자를 대면하지 않고 살게 된 것이었다.
이시하라가 새터댁 내외를 밤중에 부른 것은 해방 소식이 전해진 이틀 후였다.
“조선이 해방되었는데 자네 기분은 어떤가?”
이시하라가 입꼬리 돌아가는 웃음을 웃으며 물었고, 남편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물론 기쁘겠지. 이건 자네 명의르 바꾼 과수원 문서야.”
남편 앞에 봉투가 툭 떨어졌다. 고개를 약간 숙인 채인 남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큰아들을 농업학교에 보내며 남편이 했던 말이 퍼뜩 스쳐 갔다.
“자네 명의로 돼 있지만 영원히 자네 건 아냐. 20년 있다가 다시 살러 올 테니까 그동안 잘 가꾸라는 거야. 20년 그거 별로 긴 세월 아냐. 자네가 내 밑에서 일한 게 24년이야. 그런데 엊그제 같지 않아?"
쉰이 넘은 이시하라는 20년을 강조하고 있었고, 남편은 바위 덩어리로 앉아 있기만 했다.
입술에 발린 말이라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남편은 이시하라 집을 나왔다.
“어허, 사람 환장허겼네웨!”
대문을 나와 몇 걸음을 옮기던 남편은 걸음을 우뚝 멈춰서며 하늘을 향해 이런 소리를 황소 울음 토하듯 했다. 너무 뇰란 새터댁은 왜 그러느냐고 물으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20년 후에 다시 오겠다는 말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그녀는 했다.
남편 뒤를 조심스럽게 따라 걸으며 생각해 보니 자신이 과수원에 바친 세월이 19년이었다. 그건 곧 결혼 생활의 햇수이기도 했다. 그동안 아들 셋, 딸 하나를 낳고 서른일곱의 나이가 되어 있었다. 그때 심은 어린 나무가 한창 열매를 많이 매다는 청년으로 자라나 있었다. 무심하긴 했지만 허망한 생활은 아니었다. 고생의 연속이긴 했지만 불행하지는 않은 생활이었다.
“지가 살아날 구녕 챙기니라고 잘헌 짓이제. 딴 짓 혔었드라먼 지놈이 고이 살아 돌아가지 못혔지. 고런 것 하나 쥑여도 시상은 끄떡도 안 혀.”
과수원이 우리 것이 되었다고 기뻐하는 딸 정순이한테 큰아들이 쏴붙인 말이었다.
“음마, 큰오빠는 꼭 불한당맹키로 말허네잉.”
정순이는 무색하고도 겁나는 표정을 지었고, 큰아들은 가래 돋우는 소리를 내며 자리를 떠나버렸다.
큰아들은 농업학교에 다니면서도 마음은 콩밭에 빼앗긴 꿩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과수원에 열심이었던 것도 결국은 눈속임에 지나지 않았다. 일본놈 미워하고 몰아낼 궁리하는 것까지야 얼마나 기특하고 장한 일인가. 그러나 그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그런 생각 다 털어버리고 세상 살아갈 일에 정신 쏟아야 옳은 일일 것이었다. 그런데 어쩌자고 공산당 운동으로 빠져들었단 말인가. 일본놈 몰아내는 일하고 공산당하고가 무슨 상관이 있는 일인가. 새터댁은 큰아들을 없는 자식 취급할 수 없는 안타까운 모성의 아픔을 느낌과 동시에 큰아들이 일으키는 바람 때문에 집안이 무너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예감을 떼칠 수가 없었다. 그런데 1년 가까이 자취를 감추었던 큰아들은 총을 들고 난데없이 나타나 온 읍내를 진창 밟듯 해놓고는 엿새만에 다시 쫓기는 꼴이 되고 말았다. 피해를 당한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큰아들이 저지른 잘못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이 큰 것이었다. 이틀 동안에 사람을 열서너 명이나 죽였는데, 거기에는 순경과 그 가족도 들어 있었다. 남편은 팔을 묶여가며, 기둘리지 마소 했던 것이다. 남편은 아들 대신 죽을 작정을 한 것이었다. “내 자식이 진 죄 다 아는디, 근디 부몬들 워찔 것이요. 다 커뿌러 말 안 듣는디 부몬들 워쩔 것이요. 부모가 무신 죄가 있겄소, 살려주씨요.” 새터댁은 매일 경찰서로 쫓아가 온몸의 피를 태워가며 몸부림쳤다. 유일하게 아는 얼굴인 강춘복을 보기만 하면 바짓가랑이를 잡고 땅에 무릎을 꿇어 애원했다. “어이웨 춘복이, 자네는 동일이허고 동무였잖은가. 동일이 그놈 나쁜 거 내 다 알어. 그놈헌테 즈그 아부지가 을매나 말린지 아는가? 그놈 귀가 벽창호였단 말이시. 힘 잠 써주소, 힘 잠 써주소. “아짐씨가 이래싼다고 일이 풀리는 것이 아니어라. 그라고 동일이는 인자 우리 심장에 총구녕 겨눈 원수가 되야분 것 아니요.” 이 말에 대꾸할 말이 없어 새터댁은 춘복의 바짓가랑이를 놓으며 땅바닥에 엎드려 오열했다.
남편이 풀려난 것만으로 새터댁은 고마워했다. 남편은 작은아들 때문에 더 의심받고 고초를 겪은 모양이었다. 왜 작은아들이 밤사이에 없어졌는지, 어디로 갔는지 전혀 알 길이 없는 상태에서 경찰의 의심을 풀어줄 방법이 없었다. 경찰은 작은아들이 큰아들과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의심했는데 그로서는 아니라는 말밖에 할 것이 없었다.
나흘째 되는 날 강춘복이 찾아왔다. 새터댁은 가슴이 덜컹 내려 앉았다. 반란군들과 지리산 쪽으로 도주했던 동일이 이삼 일 전에 백아산에 진을 쳤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동일을 죽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수를 시키는 것이 목적이니까 아버지가 함께 가서 자수 설득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안즉 기동도 불편헌디·…….” 새터댁은 기어드는 소리로 말했고, “우리 차가 있응께 고건 염려 마씨요.” 강춘복이 앞을 가로막듯 말하고는 일어섰다. 남편은 강춘복이 사라진 그쪽 허공에 눈을 박은 채 숨도 쉬지 않는 것처럼 앉아 있었다. 남편의 기에 눌려 그녀도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남편은 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 것이고, 가보았자 동일이 말을 듣지 않을 것을 알 것이고,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을까.
“찬물 한 사발 떠오소.”
남편은 깊은 한숨으로 말했다.
남편은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찬물 한 사발을 다 마셨다. 남편은 물을 마신 것이 아니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기막힌 자신을 신세를 마시는 것 같았다.
“요놈은 자석이 아니라 웬수여. 전생에 무신 웬수 짓고 태어났길래 요리도 험헌 꼴 당허게 허는지 몰라. 참말로 나가 죽고 말지, 못헐 노릇이네.”
새터댁은 걷잡을 수 없이 흐르는 눈물만 훔쳤다. 고생만 하고 살아온 남편이었다. 과수원 주인이 되고 나서 3년 남짓 허리 펴고 살았을 뿐이다. 이만하면 지난 고생 잊어가며 남은 평생 웃으며 살 수 있으리라 했다.
남편은 활달하지 못한 걸음걸이로 강춘복을 따라나가며 아무 말이 없었다. 차에 오르면서도 새터댁을 이윽히 쳐다보았을 뿐 입을 열지 않았다. 그 얼굴이 섬뜩하도록 추워 보였다.
새터댁은 벽에 기대앉은 채 밤을 새웠다. 닭이 홰를 쳐서야 뜬눈으로 밤을 새운 것을 알았는데, 밤새도록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는 하나도 잡히지 않았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것 같기도 했고, 끝도 없이 많은 생각을 한 것 같기도 했다.
장지 문에 묻었던 어둠이 서서히 묽어지고 있을 무렵 이었다.
“새터댁 , 새터대액―.”
외치는 소리와 함께 거칠게 대문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새터댁은 문을 박차고 나갔고, 맨발로 마당을 가로질렀다. 무슨 힘이 대문에서 끌어당기는 것만 같았다. 빗장을 빼고 대문을 쥐어뜯듯이 열었다.
“박샌이 죽었구만요.”
새터댁은 돌덩어리가 머리를 치는 것을 느꼈고, 땅바닥에 펄쳐진 거적을 보았다.
“아, 안돼애…….”
하늘이 새터댁에게로 무너져 왔다.
“낭떠러지서 굴러갖고…….”
빙글빙글 도는 새터댁의 의식에 부딪힌 그 말들은 조각조각 깨어져 나가고 있었다. 새터댁은 거적 끝을 움켜잡으며 정신을 잃었다.
5
어머니의 얼굴은 언제나 화석(化石)이었다. 단순한 느낌의 조각일 수도 없었다. 그 어떤 조상(彫像)이든 그것을 만든 사람의 체온을 담은 표정이 있게 마련이었다. 그런데 어머니의 얼굴에는 불가사의할 만큼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인공이 가해지지 않은 하나의 돌이 제 나름의 형태와 색깔을 가진 것처럼 어머니의 얼굴은 사람으로서 필요한 모양과 구조물을 갖추고 있을 뿐이었다. 모든 감정이 배제되어 버린 그 얼굴, 어떠한 감정도 표출되는 일이 없는 그 얼굴에도 피가 돌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살아 있는 사람의 얼굴이라는 것을 전제로 해서 굳이 무슨 표정인가를 찾아내려고 애쓴다면 어머니의 얼굴에는 추위를 느끼게 하는 우울이 안개처럼 자욱하게 덮여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분위기일 뿐 표정이 아니었다.
방학이 되어 집에 돌아오면 동명은 언제나 어머니를 과수원 나무 사이에서 대면하곤 했다. “왔냐, 몸은 성허고.” 어머니는 이 한마디 뿐이었다. 그땐 어머니의 얼굴에는 얼핏 무슨 표정이 스치곤 했는데, 그건 항시 어머니의 얼굴을 덮고 있는 우울의 안개를 잠시 걷어내는 적막한 바람일 뿐이었다.
어머니는 단 하루도 거르는 날이 없이 과수원에서 살았다. 어머니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조차도 그대로 한 그루 나무였다. “이 과수원은 그냥 흔헌 과실밭이 아니여. 느그 아부지 몸이여.” 아버지의 묘는 비탈진 과수원 그 위쪽 양지바른 곳에 있었다. 아버지의 생전에 그랬던 것처럼 어머니는 매일 과수원에서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이었다. 어머니에게 만약 과수원이 없었더라면 그 허허로운 긴 날들을 결코 살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아버지, 큰형, 작은형, 누나까지 차례로 잃어버린 어머니는 더는 견딜 수 없었는지 실성을 해버렸고, 3년 만에 가까스로 정신을 붙들어 잡은 어머니는 얼굴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얼굴만 잃어버린 게 아니라 어머니는 눈물도 잃어버렸다. 난리 중에 너무나 많이 울어야 했던 어머니의 몸에는 더 이상 흘릴 눈물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런 어머니가 눈물을 보인 것은 20년 만이었다. 하나뿐인 며느리를 얻어 큰절을 받고 나서였다. 어머니는 20년 동안 한 번도 입에 올린 적이 없는 난리 때의 이야기를 며느리에게 들려주며 눈물을 홀린 것이다. 어머니는 이야기의 결론을 내리듯 아들을 최소한 셋은 낳아달라고 했다. 어머니의 그 긴 이야기는 최소한 아들 셋이 필요한 데 대한 이유 설명이었던 것이다.
전혀 예고 없었던 어머니의 말을 듣고 동명은 적 이 당황했다. 결혼하기 전에 집안 이야기를 대충 들려주긴 했지만 애 낳는 문제에 대해서는 신혼여행 동안에도 고려해 본 사항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절실한 필요성이 아내에게 얼마만한 실감으로 받아들여질지가 걱정이었다. 그런데 아내는 의외로 차분한 태도로 어머니의 말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부끄러움으로 감싸인 아내의 쪼그려앉은 자세가 그것을 확실하게 느끼게 했다. 고개를 보일 듯 말 듯 끄덕이고 있는 어머니도 같은 느낌을 받은 것이 분명 했다.
어머니 옆에 이틀을 머무는 동안 아내도 동명도 그 이야기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런데, 동명은 아내의 늪 속으로 잠입하는 그 순간 아들이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고, 활활 타오르고 있는 모닥불에 한 줄기 물을 끼얹는 것 같은 감정의 굴절에서 벗어나려고 곤욕을 치렀다.
그런데 이야기를 먼저 꺼낸 건 아내였다. 열차가 속력을 내기 시작하자 자리를 편안하게 고쳐 앉은 아내가 입을 열었다.
“너무 옹색해하지 마세요.”
동명은 담배에 막 불을 붙이려다가 이 말을 들었는데 직감적으로 그 말이 그 이야기를 가리킴을 알았다. 그러나 반갑고 고마운 마음과는 생판 다르게 동명의 입에서 흘러나간 소리는 어늘하기 짝이 없는 한마디 였다.
“머 얼…….”
“아이 몰라요.”
눈흘김과 함께 아내의 귓불은 환한 꽃빛으로 물들었고, 아내는 동명의 팔을 끼며 어깨에 이마를 묻어왔다. 둘이는 그러고 한참을 있었다. 동명의 귀에는 열차 바퀴 굴러가는 소리만 가득 차오고 있었다. 레일의 이음 자리를 건너는 소리가 강음으로 일정하게 섞이는 그 금속성이 그렇게 경쾌한 음악일 수가 없었다. 그건 자신이 마련한 한쪽 레일이 앞으로 시작해야 될 삶의 여정(旅程)을 무난히 치러낼 수 있을 것 같은 충족감의 반응이었다.
“그런데…· 아들 셋을 가지려면 애들을 전부 몇이나 낳아야 할지 걱정이네 요.”
아내가 그의 어깨에 이마를 묻은 채 가만가만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런 사람, 너무 걱정하지 말어. 그건 다만 어머니의 소망일 뿐이야. 당신이 그런 어머니 마음을 이해하면 되는 거고, 그리고…… 하늘이 어머니의 한을 조금이라도 풀어주려고 한다면 당신이 줄줄이 아들 셋을 낳게 해줄 거야.”
동명은 아내의 손을 찾아 잡았다. 아내의 손이 말하고 있었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동명이 한 말은 아내에게만이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한 말이었다. 자식을 기르는 것은 또 몰라도 낳는 것만은 인력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는 문제였다. 아들을 딱 하나만 바라다가 딸만 대여섯씩 쏟아내고 마는 희극이 얼마든지 있었다. 동명은 어머니의 말을 무슨 불문율처럼 생각해서 압박감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아내의 입장은 그 점을 더욱 필요로 할 것이었다.
아내와 깊은 체온을 나누면서도 그녀가 얼마만큼 어머니를 이해하고 있는지 동명은 궁금했다. 왜냐하면 아내가 전쟁을 통해서 알고 있는 것은 혹독한 추위와 쓰린 배고픔뿐이었다. 살인을 목격하지도 못했고, 인민군의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건 더없는 다행이고 행운이었지만 어머니를 이해하기에는 많은 결격 사유를 가진 셈이었다.˙
동명은 아내에게 필히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었다. DMZ라고 이름붙여진 휴전선이였다. 중부전선 최전방 오피에 배속되어 처음 휴전선을 보았을 때 예리한 무엇이 찡 가슴을 관통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알 수 없는 비애가 콧등을 맵게 울리고 지나갔다. 휴전선으로 금 그어진 땅은 껍질이 벗기어져 속살이 벌겋게 드러나 있었다. 나무는 고사하고 풀 한 포기 없는 그 줄 그어진 땅은 이쪽과 저쪽의 푸른 피부를 가진 땅 사이에 끼어 그 모습이 더욱 처연하게 드러나 보이고 있었다. 그건 흉터가 아니라 핏방울 뚝뚝 떨구고 있는 상처였다. 생살 찢겨 껍질을 벗기운 땅의 신음이 들리고 있었다. 속살 벌겋게 드러낸 땅의 울음이 울리고 있었다. 상처는 좌로 끝도 없이, 우로 끝도 없이 이어져 나가고 있었다. 구렁이가 꿈틀대며 기어가고 있는 것처럼 구불구불 한정도 없이 이어지고 있는 상처에서는 그만큼 긴 땅의 신음이, 그만큼 큰 땅의 울음이 번져나고 있었다. 좌로 이어져 나간 상처는 황해에 이르고, 우로 이어져나간 상처는 동해에 이르고……. 동명은 눈물이 핑 돌면서 가슴이 먹먹하게 막혀왔다. 그리고 형태를 알 수 없는 서러움이 참으려는 의지를 무너뜨리며 꾸역꾸역 부풀어올랐다. 추스르고 추슬러 넘긴 눈물로 목이 막혔다. 어디서 비롯된 슬픔인지 모른다. 껍질 벗기어져 벌건 속살 드러낸 땅은 눈물이었다. 아무 생각도 용납하지 않는 눈물이었다. 석양 햇살이 비껴 비치고 있었다. 저녁 바람이 일고 있었다. 몇 마리의 새가 날아가고 있었다. 그랬다. 첫날 보았던 것처럼 휴전선은 떠나올 때까지도 속살 벌겋게 드러낸 채 신음하고, 울고 있었다. 그곳을 자유로이 통행할 수 있는 건 햇빛과 바람과 철새들 뿐이었다. 그리고 휴전선은 처음에도 마지 막에도 눈물이었다.
그런데 그 기회가 왔다. 회사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부대에서 최전방 시찰 계획을 마련한 것이다.
오랜만에 찾아온 일요일 외출을 반가워하며 소풍 가듯 경쾌했던 아내의 기분은 차츰차츰 우울한 색조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버스가 국도를 버리고 작전 도로로 접어들기 시작하면서부터 탱크 저지대. 철조망 지대 같은 것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사단 사령부에서 브리핑을 받고 다시 차에 올랐을 때는 아내의 기분은 완전히 침울하게 바뀌어 있었다. 차가 회전을 자주 해야 하는 비탈길을 오르느라고 숨을 헐떡이고 있을 때 동명은 눈을 감고서도 휴전선이 가까워졌음을 알 수 있었다.
“어머, 저 땅이 왜 저래요!”
중위의 설명을 듣기도 전에 아내는 벌겋게 드러난 휴전선을 보고 엉겁결에 말해놓고는 자신의 말에 놀랐는지 손으로 얼른 입을 가렸다.
“괜찮아. 저게 바로 휴전선이야.”
동명은 아내의 손을 잡아주며 나직하게 말했다. 그리고 아내의 손을 끌어 중위 가까이로 갔다. 중위는 절도 있는 목소리로 명료하게 설명을 해나갔다. 휴전선의 긴 역사는 중위의 입을 통해서 짧은 시간에 간추려지고 있었다. 아내의 시선은 이미 멀고 멀리 휴전선을 따라가고 있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아내의 경직된 옆얼굴이 어릿거렸다.
“여보…….”
동명은 떨구고 있던 시선을 얼른 아내에게로 돌렸는데, 아내의 눈에는 크렁 눈물이 고여 있었고, 반쯤 열린 입 언저리와 긴장된 콧등에는 금세 쏟아질 것 같은 울음이 담겨 있었다. 동명은 아내의 어깨를 감싸 잡았다. 아내가 동명의 품 속으로 돌아서며 입을 가림과 동시에 흑 울음을 들이켰다. 아내의 어깨가 잘게 들먹였다. 동명은 어깨를 감싼 채 아내의 감정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가슴이 먹먹 한 게……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아내가 울음에서 건져낸 것 같은 음조로 말했다.
“그래…… 휴전선은 누구한테나 다 그래.”
“당신도 그래요?”
아내가 고개를 숙인 채 물었다.
“나는 뭐 아프리카에서 왔나.”
눈물을 수습한 아내를 데리고 한적한 쪽으로 갔다. 아내의 눈길은 다시 그 붉은 황톳빛 띠를 따라 멀어져가코 있었다.
“세상에·…‥.”
탄식처럼 아내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아내는 반대쪽으로 돌아섰다. 아내의 눈길은 다시 멀어져 가고 있었다.
“세상에…….”
아내의 눈에는 새로운 눈물이 담겨 있었다.
“꼭 토끼의 허리 부분 털을 뺑 돌아가며 뽑아버린 것 같군요. 너무 기가 막혀요.”
동명은 놀란 눈으로 아내를 쳐다보았다. 아내의 느낌은 너무나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한반도는 원래 포효하는 호랑이 형상으로 상징되던 것을 일제 시대에 왜놈들이 토끼로 바꾸었는데, 이 경우에는 토끼라는 것이 적절했고, 휴전선은 그 허리를 반으로 갈라놓고 있었다.
“그럼, 저 붉은 땅에는 뭐가 살 수 있나요?”
아내는 대답을 들으려는 것이 아니라 독백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햇빛, 바람, 철새…….”
동명도 꼭 아내가 들으라고 한 말은 아니었다.
“이렇게 슬프고 심각한 줄은 몰랐어요.”
아내가 차를 타러 언덕바지를 내려오며 조그맣게 말했다. 그건 아내의 실감이고 결론이었다.
버스는 비탈길을 조심스럽게 내려가고 있었다. 그 누구도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올 때의 소란과는 대조적인 침묵이 버스 안에 가득 차 있었다.
“풀 한 포기 없이 그렇게 땅껍질을 벗겨놓고서도 갈라져 사는 건 누구 잘못인가요?”
버스가 국토로 진입하고 얼마가 지나 아내가 물었다.
“글쎄…… 우리 모두의 잘못이겠지.”
둘 사이에는 더 말이 계속되지 않았다.
“어머님 이 아들을 원하시는 거…… 무리가 아니에요.”
버스가 시내로 들어서기 시작했을 때, 남편이 왜 자기를 휴전선 나들이를 시켰는지 알고 있다는 듯 아내는 말했다. 동명은 아내의 손만을 가만히 잡았다.
아내가 임신 소식을 알린 것은 다음 달이었다. 의사의 말을 전하듯 간접화법을 쓰고 있는 아내는 부끄러움이나 쑥스러움보다는 안도감을 더 느끼는 것 같았다.
자신의 생명이 아내의 몸을 빌려 이어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동명은 그때의 기억이 선명한 천연색 사진으로 의식 속에 확대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 불구덩이 속에서 어떻게 빠져나오게 되었는지 전혀 기억이 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마당 가에 널브러져 있었고, 견뎌낼 수 없는 오한으로 전신이 오그라들며 턱이 제멋대로 떨려 이빨이 맞부딪치고 있었다. 동명은 눈을 비비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툭툭 소리를 내며 불길은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는데 집은 온데간데가 없었다. 지붕이 내려앉아 버린 것이었다. 엄니는 워찌됐으까! 동명은 벌떡 일어섰다. 연기가 가득 찬 방으로 불길이 번지기 시작했고, 밖에는 총을 들이댄 사람들이 지키고 있었다. 꼼짝없이 타 죽을 수밖에 없었다. “정신채려, 이 에미가 있응께 정신채려.” 어머니는 이빨을 뿌드득 갈며 말하고는 동명을 방바닥에 엎드리게 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동명을 품고 엎드려 치마를 뒤집어썼다. 공포와 숨막힘과…… 그 다음은 모른다. 동명은 어머니를 찾아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변소 가까이에 있는 짚더미 옆에 눈길이 끌렸다. 얽힌 지푸라기 때문에 누구인지 식별할 수는 없었지만 사람인 것만은 분명했다. 엄니다! 동명은 그쪽으로 뛰였다. 워메·…¨ 동명은 소리치며 주춤 물러섰다. 그건 어머니가 아니라 누나였다. 누나는 짚더미 속에 누워 있었다. 그런데 누나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동명은 누나를 얼싸안듯 하며 귀를 코에다 갖다 댔다. 누나는 살아있었다. 어머니를 찾아낸 것은 구정물통 옆에서였다. 구정물통은 나뒹굴어져 있었고, 어머니는 구정물을 뒤집어쓴 채 넘어져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의 등허리 쪽 옷이 거의 다 타고 없었다. 동명은 비로소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머니도 살아 있었는데 누나의 숨소리보다는 훨씬 약해서 곧 끊어져버릴 것만 같았다. 짚단을 옮겨다가 두껍게 깔고 낑낑대며 어머니를 옮겼다. 그리고 다시 짚으로 덮었다. 불길이 약해져 가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사람은 누구 하나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의 총에 죽을까 봐서였다. 날이 밝을 때까지 어머니를 저대로 둬서는 죽게 되리라는 다급하고 무서운 생각만이 머리를 채우고 있었다. 사람을 불러야 했다. 올 만한 사람은 외삼촌뿐이었다. 외삼촌이 사는 가시리까지는 10리가 넘었다. 여우고개를 넘어야 했고, 공동묘지를 지나야 했다. 아이들은 그곳을 낮에도 혼자 가기를 무서워했다. 그러나 어머니와 누나를 살려내기 위해서는 외삼촌을 부르러 갈 수밖에 없었다. 어둠 속을 줄곧 뛰었다. 외삼촌 집에 당도했을 때는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외삼촌과 다시 짐으로 돌아왔을 때 불길은 다 잦아져 있었다. 정신이 깨어난 누나는 짚덤불 속에 참새처럼 조그맣게 쪼그려앉아 있었다. 그런데 겁에 질린 것 같은 눈은 외삼촌도 동명도 알아보는 것 같지가 않았다. 그때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어머니는 등의 화상 때문에 들것에 엎어져 실려졌다. “썩을 놈의 시국이다, 참말로 징혀 못살겼다.” 들것을 들며 외삼촌이 무너지게 한숨을 쉬었다.
누나는 시름시름 앓다가 실성을 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등에 입은 화상으로 더위를 이겨내지 못해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던 어느 날 저수지에 빠져 죽고 말았다.
6
강춘복의 말은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거짓말이라고 할 수만도 없었다. 어쩌면 남편은 자기 앞에서 자식 죽어가는 꼴을 보기보다는 차라리 자기가 죽는 길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말 한마디 없이 섬뜩하게 추운 얼굴을 하고 떠나던 모습이 예사롭지는 않았다.
그러나 남편이 실수가 아니라 고의적으로 낭떠러지에서 몸을 던진 것이라 하더라도 강춘복을 용서할 수는 없었다. 남편을 그런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붙인 것이 강춘복이었다. 아무리 서로 생각이 달라 총구멍을 맞겨누고 있는 사이 라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자식 이 제아무리 흉악한 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그 자식을 고발할 수 없는 게 부모 마음인 것이다. 병신 자식일수록 더 안쓰럽고 더 마음이 쓰이듯이. 그런데 강춘복은 그 거역할 수 없는 인륜을 거역하라고 강요한 인물이었다. 남편을 죽인 것은 바로 강춘복이었다. 그런데도 강춘복은 미안한 기색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만약 장례를 치르는 데 얼굴만 한 번 비쳤더라도 그를 용서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큰아들이 저지른 일을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새터댁은 결코 큰아들을 두둔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점쟁이한테 미치는 속 빈 사람들처럼 큰아들이 넋을 팔아버린 공산주의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또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큰아들한테서 용서 못 할 것이 한 가지 있었다. 제가 미친 것에 반대하거나 방해가 되는 사람들을 죽이는 점 이었다.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는가. 네 발로 기는 짐승은 말할 것도 없고 나비나 하루살이 같은 미물도 목숨을 얻어 이 세상에 올 때는 다 제 명 누리며 한세상 살아보라고 하늘이 점지하신 것인데, 짐승도 아니고 더구나 미물도 아닌 사람을 어찌 생각이 다르다고 죽일 수 있단 말인가. 큰아들이 거두절미하고 한 말로는, 너나없이 고루 잘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공산주의라고 했다. 그런데 그 말과 행동이 어찌 그리 다를 수 있을까. 그리 좋은 세상을 이루려고 하면서 왜 사람을 죽이는 것인가. 큰아들이 엿새 만에 도망을 치고 말았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옷소매 틀어쥐고 앉아 단단히 따져보기라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따져보나마나 다 시장스러운 짓거리들일 게 뻔했다. 사람 사는 세상에 어찌 높고 낮음이 없을 수 있으며, 음지와 양지가 없을 수 있으랴. 과수원에 오랜 세월을 묻다 보니 알게 된 사실인데, 나무들 사이에도 층하가 있었다. 기운 센 놈 옆에서는 기운 약한 놈은 치이게 마련이었다. 그런데, 사람이라고 생겨난 물건들은 딴 짐승들에 비해 욕심이 제일 많은 짐승인데 어찌 고루 잘사는 세상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인가. 그 세상에도 면장은 있고, 경 찰서장은 있고, 판검사는 있을 것이 아닌가. 그런 사람들이 어찌 농사 짓는 사람들하고 똑같이 산단 말인가. 제아무리 좋은 법이라고 해도 사람이라는 것이 만들어 낸 법이라면 다 피장파장인 것이다. 사람한테서 욕심이라는 것 꼭 뽑아내지 않고 오만가지 법 있어봤자 다 그 법 만들어낸 즈이들 좋은 대로 발라맞춰 권력 잡자는 속임수 아닌가. 설령 이 세상에 아무리 기막힌 법이 있다 한들 하나밖에 없는 목숨하고 바꿀 가치가 있는 법이 어디 있겠는가. 사람답게 살아보자고 만드는 법이지 그 법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죽는 것은 얼마나 미친 짓들인가. 철딱서니 없는 것, 세상을 뼈아프게 살아보지도 못한 것이 달차근하게 발라맞추는 소리에 속아 넋을 팔아버린 것이지. 괜한 사람들 죽이고, 끝내는 아버지까지 잡아먹은 바보 같은 놈……. 새터댁은 아들이 주장하는 법도, 아들을 잡으러 다니는 법도 다 신용하지 않았다. 양쪽 모두에 정나미가 다 떨어지고 말았다. 일본놈 등쌀에서 벗어난 지가 몇 년이나 되었다고 서로 못 잡아먹어 그 야단들이란 말인가. 잘났으나 못났으나 사람 한평생 사는 건 순리를 따르면 될 일 아닌가. 새터댁이 믿는 법은 딱 한 가지밖에 없었다. 이 세상에 목숨 가진 것들은 한 번 태어나서 한 번 죽게 되어 있는 하늘이 만든 법이었다. 그 법을 따라 부지런히 일하며 곱게 살다 죽는 것이 바른 길이라 여겼다. 과수원 일을 하며 터득한 것이었다.
새터댁은 남편을 과수원 위쪽에 터를 잡아 묻어주었다. 그 자리에서는 과수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새터댁은 남편 옆에 자신이 누울 자리까지 미리 마련해두었다.
큰아들이 경찰서를 습격해 온 것은 남편 장례를 치르고 사흘째 되는 밤이었다.
여자의 비명처럼 찢어지는 총소리에 놀라 잠이 깬 새터댁의 가슴은 걷잡을 수 없이 벌떡 거리고 있었다. 그 총소리에서 큰아들의 냄새를 직감했기 때문이다. 무슨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총소리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칼끝처럼 예리한 그 소리는 한 줄기씩의 피를 뿌려대는 것 같았다. 밤이 얼마나 깊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저놈이 죽을라고 환장을 혔구나, 죽을라고 환장을 혔어. 새터댁은 벽 쪽으로 바짝 쪼그리고 앉아서 실성한 것처럼 같은 말을 자꾸 되풀이하고 있었다.
총소리가 멎은 다음에도 새터댁은 이불 속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속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큰아들이 아니기를 빌었다. 별로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닭이 울었다. 총소리는 자정이 지나 울리기 시작한 것 같았다.
새터댁의 예감은 그대로 맞아들었다. 어둠이 걷히기를 기다려 동네 우물로 나갔을 때는 벌써 소문이 돌아 있었다. 우물가에 둘러선 여인네들은 새터댁을 보자 하던 말을 뚝 끊고 딴전을 피웠다. 그들의 태도에서 찬바람이 일었다. 그건 노골적인 배척이었다. 새터댁은 자신이 애타했던 것이 그대로 들어맞았음을 알았다. 그러나 그냥 돌아설 수는 없는 일이었다. 총은 장난삼아 쏜 것이 아닐 것이었다. “나가 무슨 낯짝 들 면목이 있겄소. 허나 고것도 새끼라고 맘 쓰이는 기 에미 맘인디, 워찌 되았는지 말 잠 해보씨요들.” 새터댁은 간곡하게 말했다. “셋이 붙들렸는디, 그 속에 새터댁 큰아들도 들었답디다.” 어느 여자가 빠르게 말했고, “워메 요 일을 워쩌끄나!” 새터댁은 물이 질퍽하게 고인 우물가에 철퍽 주저 앉고 말았다.
큰아들은 허벅지에 총을 맞고 도망치다가 잡힌 것이었다. 새터댁은 경찰서에 가서 그 사실을 알고도 눈물을 홀리지 않았다. 누구를 붙들고 애걸하지도 않았다. 천지개벽을 하지 않는 한 큰아들이 살아날 가망은 바늘구멍만큼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새터댁은 남편의 묘 앞에 엎드려서야 눈물을 쏟았다. 아무 할 말이 없었다. 말로 헤아릴 수 없는 죄스러움만이 눈물로 흘러내렸다. 생전에 술 한 번 홍건하게 마셔본 일 없이 일에만 묻혀 살았던 남편이었다. 세세한 정 드러내는 남편은 아니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자식들을 끔찍이 여기는 뜨거움이 감추어져 있었다. 평소에는 정겨운 말 한마디 하는 일 없으면서도 아이들이 가벼운 고뿔만 앓게 되어도 안절부절못하는 남편이었다. 큰아들이 홍역을 치를 때는 며칠 밤을 꼬박 뜬눈으로 새우다가 끝내 벽 쪽으로 돌아앉아 눈물을 훔친 남편이었다. 남편의 그런 여린 마음은 일을 해내는 황소 같은 뚝심과는 대조적인 것이었다. 부모 한평생은 자식들 위해 사는 것이라는 말을 남편은 입버릇처럼 했다. 남편은 평소의 그 말대로 큰아들을 대신해서 죽기로 작정했던 것인가. 어떤 영화를 얻자코 자식을 키우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식 때문에 생생한 목숨 빼앗기려고 그 자식을 기른 것이 아니었다. 새터댁은 자식을 잘못 키워 모든 것이 그렇게 된 것만 같아 죄스러움이 자꾸만 커가고 있었던 것이다. 큰아들이 당하고 있는 일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새터댁은 남편의 묘 앞에서 물러났다.
다음 날 점심 때가 지나서였다.
“새터댁, 새터 댁!”
누군가가 쫓기는 것처럼 다급하게 부르고 있었다. 어제부터 줄곧 긴장되어 있는 새터댁의 신경 끝에 파드득 불꽃이 일었다.
“누구요? 나 여겄소.”
새터댁은 소리치며 나무 사이를 빠져 나가고 있었다.
“큰일났소, 새터 댁.”
구례댁이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우리 동일이헌테 무신 일 났소?”
“그려라. 총살시킨다고 공회당 뒤 언덕배기로 끌고 가드랍디다.”
“워메, 어쩌끄나!”.
새터댁은 비명처럼 외치며 뛰기 시작했다. 고무신이 벗겨져 달아났다. 저고리 옷고름이 풀어져 너풀거렸다. 돌에 걸려 사정없이 나뒹굴어졌다. 그러나 새터댁은 부리나케 일어나 무섭게 내달리고 있었다.
머리에 썼던 수건이 날아갔고, 치마가 흘러내렸다. 발가락에서 피가 흘렀다.
탕, 탕, 탕·… ¨.
공회당에 거의 이르렀을 때 총성이 울렸다. 새터댁은 뚝 멈춰섰다.
눈동자가 빙그르르 도는 것 같았다. 그리고 흰창이 많은 눈으로 변했다. 그 눈이 이상야릇한 빛을 쏘아냈다. 넘어질 것처럼 몸이 휘청하더니 새터댁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언덕배기는 사람으로 뒤덮여 있었다.
“동일아, 동일 아…….”
새터댁은 울부짖으며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사람들이 양쪽으로 갈라졌다.
“동일아, 동일 아…….”
언덕마루에 올라선 새터댁이 큰아들의 이름을 절규하며 다시 뛰려고 했을 때 누군가가 앞을 막아섰다.
“아니…… 니가 누구여!”
앞을 가로막고 선 것은 강춘복이었다. 그의 어깨에는 총이 메어져 있었다.
“니놈이 기엉 코 우리 동일이럴…….
증오가 이글이글 타고 있는 새터댁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쏟아졌다. 새터댁은 입이 돌아가도록 아랫입술을 깨물며 부르르 떨었다.
“우리 동일이 어딨냐; 동일이…….”
새터댁은 강춘복의 가슴을 떠밑며 앞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강춘복의 억센 팔이 새터댁을 막았다.
“이눔아, 여그 놔, 노란 말이여!”
울부짖고 있는 새터댁의 입에서는 침에 섞인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 모습이 흡사 미친 사람이었다.
“강 순경, 보내주게. 어차피 시체는 인계해야 하니까.”
권총을 찬 순경이 말을 해서야 강춘복은 새터댁의 양쪽 팔을 놓아주었다. 큰아들 동일은 다른 두 명과 함께 소나무에 나란히 묶여 죽어 있었다.
“이눔아, 워디 보자 이눔아.”
새터댁은 아들의 시체에 매달리듯 하며 푹 떨구어진 고개를 두 손으로 받쳐올렸다. 아들은 이빨이 박히도록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아이고 이눔아, 아이고 이눔아…….”
마침내 새터댁은 통곡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새터댁의 피를 토하듯 하는 곡성은 긴 파문을 일구며 퍼져나가고 있었다. 햇살도 내려 앉기를 잠시 머뭇거렸고, 바람도 문득 가던 길을 멈추었다.
“요런 불효막심헌 놈아, 요렇게 험헌 꼴로 죽을라고 그 잘난 공산당에 미쳤드냐. 니는 부모 형제간보담도 그 빌어묵을 공산당이 더 중허드냐. 이눔아, 니가 그 못된 공산당 귀신헌테 씌운 것을 죽어서라도 알아야 혀. 니놈 하나 잘못으로 생때 겉은 아부지 잡아묵고 인자 니놈꺼정 요리 숭허게 죽어도 누구 원망 한번 못 혀. 이눔아, 이눔아, 요런 꼴로 죽으라고 그 고상혀 감서 키운 줄 아냐.”
새터택은 아들이 묶여 있는 삼끈을 풀며 실성한 것처럼 중얼거리고 있었다.
해가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새터댁은 있는 힘을 다 살려 아들을 업었다. 새터댁의 허리는 반으로 굽었고, 등에 업힌 아들의 두 팔이 축 늘어져 곧 땅에 끌릴 것만 같았다. 기울고 있는 해가 그들의 모습을 해괴한 그림자로 길게 그려내고 있었다.
새터댁은 며칠째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다. 죽조차 넘길 수 없도록 열은 온몸을 끓이고 있었고, 정신을 가다듬으려 해도 눈앞에는 헛것이 어른거렸다. 그것은 남편 같기도 했다가, 큰아들 같기도 했다가, 엉뚱하게 어머니 같기도 했다. 새터댁은 가까스로 정신을 바로잡곤 하면서, 이러다가 사람이 미치게 되는 것인가 보다 마음을 독하게 사리고는 했다. 자신의 옆에는 아직 세 자식이 남아 있는 것이다. 더구나 작은아들은 행방을 모르는 처지였다. 그런데 작은아들은 어느 날 해거름에 그림자처럼 조용하게 돌아와 있었다.
“엄니, 엄니, 작은오빠가 돌아왔구만요.”
딸 정순이가 방으로 뛰어들며 금방 얼싸안기라도 할 듯이 두 팔을 벌리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기쁨과 반가움이 그득 안겨 있었다.
“무신 소리냐?”
“금메 정제서 나오다 본께로 오빠 방 앞에 눈에 익은 신발이 있드랑께요. 잘못 봤는가 싶어 또 봐도 작은오빠 신발이 틀림웂드랑께요. 작은오빠, 부름스로 문을 열어본께 작은오빠가 방가운데 멍허니 앉었드만이라.”
“머허고 섰냐. 얼렁 일로 오라고 안 허고!”
새터댁은 조급해서 소리쳤다.
“금세 오겄담서 날보고 앞서 가라드만요.”
“근디, 워디 갔었다디야?”
“암 말 안 허드만요.”
정순이가 작은오빠가 집을 비운 이유를 아버지, 어머니한테는 일절 알리지 않았음을 미리 귀띔해 두었다.
“워째 집 나갔는지도 말 안 허고?”
“야…….”
그때 작은오빠가 들어섰다.
“많이 편찮으신 모양이 구만요.”
작은오빠가 어머니 옆에 앉으며 하기 싫은 말을 하듯 힘을 들였다.
“워디 갔었드냐와. 몸은 성허고?”
새터댁은 눈물을 글썽이며 작은아들 손을 잡았다.
“야.”
“동현아, 니가 웂는 새에 말이다…….”
“아부지, 성님 돌아가신 거 다 알고 있구만요.”
더 듣고 싶지 않다는 듯 동현은 냉정하게 말했다.
“고걸 워처케 알았냐?”
“경찰서에서 들었구만요.”
“경찰서는 무신…… 니 또 잽혀갔었드냐?”
새터댁은 금방 두려운 얼굴이 되었다.
“내 발로 찾아갔었구만요. 큰성 나대는 것이 암만 봐도 위험혀서 ㅂ시에 있는 동무 집으로 피했어요. 친구 아버지가 경찰주임인디, 집으로 돌아옴스로 내가 거기서 지냈다는 글을 증거로 써 받았구만요. 집에 오먼 보나마나 또 의심을 받을 테니께요. 그 글을 전헐라고 오든 길에 경찰서에 먼저 들렀었지라우.”
“그려, 그려·…….”
새터댁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한 배로 낳은 자식 이 어쩌면 그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싶었다. 몸집이나 생각이 그렇고 주의성까지가 큰아들과 작은아들은 정반대였다. 큰아들은 쫓기고 있는 신세에 어쩌자고 경찰서를 치고 들었는지 모른다. 그 어리석음은 토끼가 호랑이한테 덤비는 격이었다. 그런데 작은아들은 아버지가 경찰인 친구 집에 피해 있다가 돌아오면서는 그 증표까지 받아온 것이다.
작은아들은 마음 그 어느 구석에 얼음처럼 차가운 생각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았다. 형은 말할 것도 없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에 대해서도 야속하리만큼 아무 내색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진 것이 실수였겠느냐, 고의였겠느냐 물었을 때도, “그건 아버지만 아는 일이겄지요” 하며 더는 아무것도 묻지 못하도록 냉기 서린 막을 둘러쳤다. 강춘복에 대해서도 긴 말을 하지 않았다.
“엄니 맘이 어떤지 다 알아요. 그렇지만 그 사람 미워허는 맘 잡슷지 말어요. 엄니 맘만 더 병드니께요. 그 사람도 좋아서 허는 일 아닐 거구만요. 다 잊어뿌려야 혀요. 지끔은 사람 사는 시상이 아닌께요.”
새터댁은 작은아들의 모습에서 이 뒤숭숭한 세상 살아내기를 고단해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작은아들의 나이는 자신이 시집올 때 남편의 나이와 비슷했다. 그때 남편은 일에 파묻혀 몸이 고단해 있었고, 지금 작은아들은 어지러운 세상 물결에 마음이 고단해 있는 것이다. 새터댁은 작은 아들이 마음 실하게 먹어주기를 바랐다. 남편도 큰아들도 떠나고 없는 앞으로의 세상살이에서 자신이 믿고 의지할 데라곤 작은아들뿐이었다. 앞으로 남은 날들을 살아낼 일이 땡볕 속에 끝없이 뻗어나간 황톳길처럼 아슴하고도 겁나게 느껴졌다.
작은아들은 대학 공부를 포기했다. 남편의 생전 약속을 지켜주려고 새터댁은 대학 가기를 권했지만 작은아들은 무뚝뚝한 한마디로 거절해 버렸다. “공부 더혀서 쓸 데가 웂는 세상이구만요.” 작은아들은 남편이 그랬던 것처럼 과수원 일에 매달렸다. 그러나 일손에 아무런 재미도 붙는 것 같지가 않았다. 일을 하다가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서 있었고, 나뭇잎이 파르르 떨릴 정도로 짙은 한숨을 내쉬고는 했다. 그˙런 작은아들을 볼 때마다 새터댁은 가슴이 아파 견디기가 어려웠다.
남편 제사를 한 번 지내고 나서 해가 바뀌었다. 구름을 몰아오는 샛바람만 부는 것 같던 세상 물결이 마침내 전쟁을 일으키고 말았다. 난리가 터졌다는 소문이 흉흉한 바람처럼 휩쓸고 지나가고 며칠이 안 되어 그 전쟁의 손길은 새터댁의 집안에 불쑥 나타났다. 작은아들이 군대에 나가야겠다고 한 것이었다.
“고게 무신 소리다냐? 피혀도 션찮을 판인디 자원을 허겄다는 것은 또 뭔 말이여?”
미련하게 왜 사지(死地)로 뛰어드느냐는 말을 차마 못하고 새터댁은 작은아들의 옷깃만 틀어잡았다.
“나라에 전쟁 이 터지면 젊은 사람들은 으당 나가 싸워야 되는 것잉께요.”
작은아들은 이 말 한마디로 또 새터댁은 다른 말을 막아버리듯 차가운 기운을 온몸에 묻혀냈다.
“참말로 무신 뜻인지 못 알아묵겄다. 가면 원제 간다는 것이냐?"
“내일 떠나야지라우.”
“멋이여?”
새터댁은 부르짖듯 했다.
작은아들은 다음 날 열서너 명의 청년들과 함께 경찰서 마당에서 자원 입대 축하식을 받고는 떠나갔다. 새터댁은 다음 날에야 비로소 작은 아들이 자윈 입대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결국은 큰아들 때문이었다. 그리고 식구들을 위해서였다. 작은아들은 자원 입대를 함으로써 빨갱이 집안이 아닌 것을 내보이려 했던 것이다.
“누님, 너무 상심 마시씨요. 어채피 끌려나가야 헐 군대, 동현이가 똑똑혀서 한 발 먼첨 나간 것뿐인께요.”
동생의 말을 들으면서도 새터댁은 남편의 묘 앞에서 일어날 줄을 몰랐다.
그리고 며칠이나 지났는지 모른다. 밤사이에 세상이 바뀌어 있었다.
경찰서가 텅 비어버렸고, 다시 붉은 완장을 두른 사람들이 어디서 솟은 듯이 나타난 것이다. 새터댁은 땅이 뒤집어지고 과수원 나무들이 뒤엉켜 쓰러지는 어지럼증에 몰리며 나무를 부둥켜안고 주저앉고 있었다. 그 어지러운 의식 속에 작은아들의 얼굴이 흔들리고 있었다.
눈에 익은 얼굴을 앞세워 그들이 총을 들이댄 것은 한밤중이었다.
“자원 입대한 반동 집구석!”
연기 냄새가 맵게 펴지기 시작했다. 새터댁은 막내아들 동명을 끌어안았다. 새터댁의 암담한 의식 속에는 막내아들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려내야 한다는 생각만이 한 줄기 빛으로 명료하게 그어져 있었다.
7
제복을 단정하게 입은 안내양이 제복처럼 무미한 음성으로 안내 방송을 하고 있었다. 휴게소가 가까워진 모양이었다.
“…… 식사를 못 하신 분들은 짧은 시간이나마 이용하시고, 발차 시간에 늦지 않도록 승차하시기 바랍니다.”
고속버스의 둔중하고 지루한 엔진 소음의 일부처럼 들리던 안내양의 음성이 이 대목에서 갑자기 생기를 띤 말로 바뀌었다. 동명은 자신이 아침 식사를 하지 않았음을 상기했다. 아니 그건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옆자리에 큰아들에 대한 깨우침이었다. 동명은 얼른 옆자리로 고개를 돌렸다. 유리창의 낀 성에 위에 무료를 그리고 있던 큰아들 상섭이는 그것마저 무료했던지 잠이 들어 있었다.
“상섭아, 상섭아, 그만 일어나거라.”
동명은 아들의 어깨를 가만가만 흔들었다.
“예, 예? 다, 다 왔어요?”
동명의 조심스러움이 무색해지도록 큰아들은 화닥닥 놀라 잠이 깨더니 아무것도 제대로 보일 것 같지 않은 잠이 묻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말을 더듬었다. 아들의 그 당황하는 몸짓의 의미가 동명의 가슴에 찡하니 와 박혔다. 아들은 제 나름으로 긴장해 있었던 모양이다.
“조금 더 가야 한다. 휴게소에 곧 도착하는데 뭘 좀 먹도록 하자. 너 배 고프지?”
동명은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 아아뇨, 괜찮아요.”
아들의 얼굴은 색전등이 켜지듯 확 밝아졌다가 금방 불이 꺼지며 음울하게 변했다. 그 예민한 감정 변화에서 동명은 아들의 성장을 발견하고 있었다. 큰아들은 이제 아이의 마음과 어른의 감정을 공유하고 있는 중간 지대에 와 있었다.
동명은 자신이 큰아들과 같은 학년이 되었을 때 여자를 최초로 느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 경험은 오래도록 뜨거움과 설렘으로 가슴에 남아 있었다. 여름이었다. 친구 집 에 놀러갔다가 고등학교에 다니는 친구. 누나가 상체를 벗고 씻고 있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그 희고 큰 젖가슴을 보는 순간 숨이 딱 멎으며 무언가 뜨거운 덩어리가 불쑥 솟아 가슴 속을 마구 구르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서 그 자리를 도망 나왔는지 기억이 없었다. 그날 밤 잠자리에서 친구 누나의 젖가슴은 감은 눈 속에 선명하게 떠올랐고, 자신의 성기가 발기하는 당혹감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건은 누나의 기억을 새롭게 깨닫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누나는 동명의 목욕을 자주 시켜주곤 했는데, 누나는 때도 별로 없는 사타구니께를 때가 많은 무릎이나 발뒤꿈치만큼 오래 문지르는 것이었다. 동명이 간지럼으로 몸을 비틀면 누나는 볼기를 찰싹찰싹 치며 씻겼는데, 그때의 누나는 다른 데를 씻길 때와는 달리 꽁꽁 힘쓰는 소리를 내는 대신 강글강글 이상한 콧소리를 냈다. 동명은 간지럼을 타면서도 누나가 거기를 오래 씻어주는 것이 누나의 젖을 만지며 잠드는 것 만큼이나 기분 좋았다. 동명은 밤마다 누나의 가슴에 안겨 잠이 들었는데, 두 손은 누나의 젖을 감싸고 있었다. 동명은 누나의 젖을 만지는 것만이 아니라 빨고도 싶었지만 누나는 그것만은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야가 누구 시집 못 가게 헐라고 이런다냐. “젖 뽈먼 워째 시집 못 가는감?” “그거는 담에 크먼 알게 되야.” 그러나 그런 것들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비밀이었다. 누나가 땅에 묻힐 때 차라리 따라 죽고 싶도록 암담한 슬픔에 몸부림치며 손가락에서 피가 나도록 땅을 긁어 팠던 것도 그런 비밀을 더 간직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누나가 죽고 나서 동명이 제일 고통을 겪었던 것은 밤마다 손이 허전해서 잠들 수 없는 것이었다. 그 괴로움을 벗어나기까지는 1년이 넘어 걸렸다. 누나는 동명의 소년기를 꾸며준 가장 아름다운 꽃인 동시에 가장 서러운 허무였다.
버스가 휴게소로 들어서고 있었다.
“가자, 뭘 좀 먹어야지.”
동명은 큰아들을 앞세워 차를 내렸다. 우동 판매대 앞에는 거른 아침 한 끼를 제한된 짧은 시간 안에 찾아 먹고자 하는 본능들이 난무하고 있었다. 동명은 그 원색적 아우성을 보며 잠시 기가 꺾이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아들은 배가 고플 것이고 한정된 시간은 짧았다. 아들에게 변소를 다녀오라고 이르고 그 물결을 헤집고 들었다.
“어서 먹어라. 꼭꼭 씹고.”
동명은 큰아들의 그릇에 고춧가루를 타주며 말했다. 그러면서 언뜻 놀랐다. 어디선가 어머니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밥상 앞에 앉을 때마다 꼭꼭 씹어 먹으라는 말을 꼭꼭 하셨다. 지금 자신은 어머니의 그 말을 무심결에 대신하고 있었다.
큰아들은 묽은 국물에 담가진 굵은 국수 가락을 입으로 긁어 넣느라고 코가 국물에 빠질 지경으로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서너 시간이란 간격이 만들어낸 무서운 식욕이었다. 녀석, 시장이 반찬이군. 동명은 아들에게서 눈길을 돌리며 국수를 한 젓가락 떠넣었다. 혓바닥이 깔깔한 게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국물을 한 모금 마셔 억지로 넘겼다. 그리고 젓가락을 놓다 보니 큰아들은 그 사이 국물까지 다 들이마시고 나서 손등으로 입술을 쓱 문지르는 참이었다.
“자, 이것 마저 먹어라.”
동명은 자기 그릇을 아들 앞으로 밀어주었다.
“아빤……”
큰아들은 어색하고 쑥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아빤 속이 안 좋구나. 어서 먹어라.”
“엄마가 걱정하신단 말예요.”
큰아들은 간접화법으로 염려를 표시하고 있었다.
“속 불편할 땐 굶는 게 약이다. 어서 먹으라니까.”
큰아들은 달갑잖은 듯한 얼굴로 그릇을 끌어갔지만 일단 젓가락을 들자 아까의 식욕이 되살아났다. 그런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앉아 서 동명은 부모의 마음이란 다 이런 것인가 생각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동명 자신이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을 보고 흐뭇해하고 고마워했다. 그래서 동명은 무엇이나 제 맛보다도 훨씬 맛있게 먹어 보이려고 노력했었다. 어머니는 그런 모습을 장래에 복 받고 잘살 것이라는 데까지 비약시키고는 했다. 그 비약은 어머니의 소망과 기원으로 바뀌었고, 동명이 학교 시절에는 공부에 열성을 쏟고, 사회생활에서는 일에 성실을 다했던 것은 어머니를 실망시켜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동명의 생활에서 어머니는 언제나 일차적 목표로 앞세워져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남보다 빠른 성취가 어머니에게 드릴 수 있었던 것은 만족감이나 보람이라는 무형의 것일 뿐이었다. 모든 유형의 것들은 자신의 차지였고, 어머니의 그 간절한 소망이나 기원은 결국 자식에게 바친 사랑이었다.
“더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빨리 사가지고 차로 오너라.”
동명은 큰아들에게 천 원을 쥐여주었다. 크리고 자동 판매기에서 커피 한 잔을 빼가지고 차로 돌아왔다.
고속버스는 다시 추위 속을 맹렬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잎이 하나도 남김없이 떨어져 가지만 앙상한 미루나무들은 꼭 대빗자루를 거꾸로 세워놓은 것 같았는데, 거센 바람에 상단부의 가지들이 한쪽 방향으로 쏠리고 있는 것이 하늘을 빗질하고 있는 것 같았다. 큰아들은 사가지고 온 햄버거를 건강한 식욕으로 먹고 있었다.
외삼촌 집으로 옮겨진 어머니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기 까지는 사흘이 걸렸다. 의사는 치료를 하면서도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외삼촌은 동명을 조용히 불러 어머니가 정신이 깨어나지 못하고 돌아가실지도 모르니 마음 단단히 먹고 있으라고 다짐을 하기까지 했다. 동명은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따라 죽고 말겠다는 생각을 곱씹으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목이 막히도록 삼켰다. 혼수상태인 어머니의 등에서는 진물이 질질 흘러내렸다. 의사는 어머니의 정신이 깨어나도 그 심한 화상 때문에 생명이 위독할지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사흘 만에 깨어났던 것이다. 어머니는 깨어나자마자 동명 이부터 소리쳐 불렀다. 동명이 울음을 터뜨리며 안기자 어머니는 내 새끼, 내 새끼를 백 번도 더 되풀이 하며 부들부들 떨었다.
어머니는 억지로라도 많이 먹고 기운을 차리려고 애를 썼지만 너무 심한 화상으로 몸을 못 가눈 채 밤낮없이 끙끙 앓았다. 어머니는 동명을 한시도 옆에서 떠나지 못하게 했다. 어머니의 화상은 차츰 더워지는 날씨 때문에 낫기는커녕 더해지는 것 같았다. 의사의 말로는 미군들이 쓰는 좋은 약이 있는데 구하기가 어려워 무척 비싸다는 것이었다. “동상, 나 좀 도와주소. 요놈에 난리 끝나먼 내 두 배 쳐서 갚을 팅께 논이락도 폴아서 그 약 좀 구해다 주소. 불구뎅이 속에서 타죽어 뿌렀으먼 몰라도 요런 꼴로라도 살았는디 약을 못 구해 죽을 수야 웂잖은가.” 어머니는 외삼촌에게 애원했다. “하먼이라, 그래야제라. 사람 목심 보담 귀한 것이 또 워딨겄소.” 외삼촌은 고마운 분이었다.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 그 좋다는 약을 구했고, 화상이 다 아물어 낫기까지 반년 가까운 동안에 외삼촌은 논을 네 마지기나 헐값에 팔아치웠다: 어머니의 화상은 10윌 들어 찬바람이 일어나면서부터 급속도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12월 중순께에 완치가 되었다. 실성한 누나가 죽었을 때 어머니는 수척한 얼굴로 눈물만 한정 없이 흘렸을 뿐 소리 내어 울지는 않았다.
작은형의 전사 통지서가 오기 전까지 다섯 달 동안에 어머니의 건강은 거의 전처럼 좋아져 있었다. 그런데 작은형의 전사 통지서를 받고 까무러치더니 어머니도 그 길로 실성을 해버렸다. 다행히 어머니의 실성기는 그리 심한 편은 아니었다. 집을 뛰쳐나간다거나 보기에 민망한 짓을 한다거나 하지 않았다. 방에 들어앉아 히물히물 웃거나 먼 산을 넋 놓고 바라보고 앉아 무슨 말인가를 끝도 없이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실성기는 2년을 갔다. 동명은 학교를 오가면서 만나게 되는 미친 여자들을 예사로 보아넘길 수가 없었다. 그 흔하게 보이는 미친 여자들이 모두 어머니 같은 고통을 당한 끝에 미치게 된 것이라고 여겨졌다. 동명이 제일 싫어한 아이들은 그런 미친 여자들을 놀리거나 돌팔매질하는 아이들이었다. 실성기가 잡힌 어머니는 과수원을 외삼촌과 함께 해나갔다. 기쁨도 즐거움도 노여움도 슬픔도 나타내는 일이 없는 그 얼굴로.
“할머니 연세가 몇이신가요?”
큰아들이 버스가 터미널에 도착하기 직전에 물었다.
“일흔둘이시다. 앞으로는 잊지 않도록 해라.”
큰아들은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 의미가 일흔둘이라는 나이가 이 세상을 버릴 만큼 많다는 뜻인지 아니면 앞으로는 잊지 않겠다는 대답인지 동명으로서는 구분이 되지 않았다.
일흔둘―一그러니까 어머니는 동명 자신의 지금 나이 그 언저리에서 그런 흉악한 일들을 당한 것이고, 여태껏 혼자서 억새풀처럼 살아온 것이었다. 어머니가 살아낸 30여 년의 세월 동안 어머니를 지탱해 온 것은, 무엇이었을까. 마지막 남은 아들을 지키고자 했던 의지였을까. 아니면 또 다른 그 무엇이 있었을까.
동명 이 집에 당도하니 어머니는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가까워진 어머니의 임종을 한눈에 느낄 수 있었다. 검은빛에 가깝게 상해 있는 얼굴과 움푹 꺼진 눈자위에 임종의 그림자가 짙게 덮여 있었다.
“그동안 왜 이리 상하셨습니까? 어디가 편찮으셨던가요?”
동명이 목이 멘 소리로 물었다.
“지금 고게 급힌 게 아니다. 엄니헌테 니가 온 것을 얼렁 알려야 써.”
외삼촌이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 있는 대로 소리쳤다.
“누님, 동명이가 왔구만요. 동명이가 왔당게요오―.”
마치 기적처럼 움푹 파인 어머니의 눈자위가 잠자리의 투명한 날개가 미세하게 떨리듯 경련을 일으켰다.
“엄니, 동명인디요, 동명이가 왔구만요!”
동명은 왈칵 울음이 쏟아지며 외삼촌보다 더 크게 소리쳤다.
어머니의 움푹 파인 두 눈이 아까보다 좀더 강하게 떨렸다. 그리고 눈꼬리로 물기가 약간 번져나왔다.
“엄니, 눈을 떠요. 동명이라니께요!”
동명은 다시 소리쳤지만 이번에는 반응이 없었다. 함께 들여다보고 있던 외삼촌이 얼른 귀를 코에 댔다. 동명은 서둘러 어머니 손목을 찾아 잡았다.
“운명허셨다!”
손목의 맥 자리를 짚기도 전에 외삼촌의 말이 동명의 가슴을 쳤다.
“어엄니, 어엄니…….”
동명은 어머니를 붙안고 통곡했다.
동명은 눈물이 범벅된 얼굴로 이미 혼이 떠나버린 어머니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마지막 힘으로 죽음의 문이 열리지 못하도록 떠받치고 있다가 아들이 온 것을 확인하고는 그 문에서 손을 뗀 것이었다. 그리고 죽음의 마차에 실려 이승의 일흔두 해를 껍질처럼 남겨놓고 표표히 떠나버린 것이다. 어머니는 마지막 길마저 어머니의 매운 마음처럼 냉정하게 막음하고 말았다. 어머니는 외로운 하나의 산이었다. 항시 거기 그렇게 계심으로써 자신에겐 힘이었고 위안이었고 길이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이제 영혼의 바다로 떠나 섬이 되어버렸다. 그 바다를 건너갈 수 있는 배가 없고, 동명은 마침내 홀로 납겼다는 외로움과 만나며 다시 허망한 서러움에 사무쳤다. 그 외로움은 나이와
상관없이 슬픔이었고, 그 슬픔은 어머니의 한스러운 세월을 아프게 반추시켰다.
어머니는 위암이었다. 3개월 전에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면서 어머니는 당신의 병명을 의사한테 직접 물어 알았다는 것이다.
“어채피 죽을 병인디 절대로 알려서는 안 된다고 허셨지. 인명재천이고 인생무상이라고. 내가 곰곰 생각혀봐도 느그 어무님 말씸이 맞는디 공연시 알려갖고 쓰잘 데 웂이 돈이나 깨묵고 맘고상 시키먼 머헐 것이냐. 다 어무님 뜻이다.”
“그래도 며칠 전에는 알렸어야지요. 얼굴 한 번 못 보시고, 유언 한 마디 못 하시게 하는 법이 어딨습니까.”
“야아야, 나헌테 화내덜 말어. 그것도 다 느그 어무님 뜻이었응께. 유언은 발써 오래전에 써갖고 저 반닫이 안에 꼭꼭 넣어놓셨다.”
어머니의 유언은 너무 간단했다.
―과수원은 니 자석 때꺼정은 몰라도 니 평생에는 꼭 간수허고 있어야 헌다. 고것은 그냥 과실밭이 아니라 느그 아부지 살아 있는 몸이다.
누구에겐가 대필을 시킨 그 문장은 생전의 어머니 육성 그대로였다. 그 유언 위에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고건 아버지의 몸만이 아니라 어머니의 몸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그 땅에 한을 심고 목숨을 심고 내생까지 심은 것이었다. 어머니의 유언이 아니었더라도 그 과수원은 대대로 물려야 된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그곳엔 아버지가 묻혀 계셨고, 이제 어머니도 묻힐 것이었다. 불현듯 동명의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큰형 그리고 누나의 혼도 그리로 이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야 자신이 죽어서도 그 땅에 묻히게 될 것이었다. 어머니 생전에 이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던 게 안타까웠다. 어머니는 이제라도 반가워하실 것 같았다. 어머니, 아버지가 평생을 바쳐 가꾼 나무들이 차츰차츰 없어지고 그 자리에 자손들이 묻혀가면 어머니, 아버지는 당신들의 품에 자손을 품게 되는 것이었다.
빨간 보자기에서는 다섯 개의 저금통장이 나왔다. 하나에는 아내의 이름이, 나머지 세 개에는 상섭이·상희·상준이의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마지막 것에는 ‘상규’ 라는 알 수 없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상규?
……그때 머리를 관통하는 생각이 있었다. 어머니는 네 번째 아이. 그러니까 세 번째 아들의 이름을 ‘상규’ 라고 지어 저금통장을 마련한 것이었다.
“엄니이…….”
동명은 그 저금통장을 두 손으로 감싸 이마에 대며 오열했다.
“니가 20년 동안 다달이 보낸 생활비 한푼도 축 안 내고 넷으로 쪼개 적금을 부었니라. 느그 어무님은 니가 자석을 하나도 갖지 못헌 총각적부텀 통장 셋을 맹글었는디 둘째 상희가 생기니께 하나를 더 늘군 것이여. 그라고 느그 안식구 이름으로 된 것에는 어무님이 1년 농새짓고 나서 살고 남은 돈은 다 저축헌 것이다.”
외삼촌의 설명이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자꾸만 설움이 복받쳐올라 울음을 참아낼 수가 없었다.
장례 준비는 외삼촌이 다 해놓아 신경 쓸 것이 없었다. 두 아이를 데리고 두 시간쯤 늦게 도착한 아내는 오래도록 섧게 울었고, ‘상규’ 라는 이름이 적힌 저금통장을 보고는 다시 통곡했다.
밤이 어둑어둑해지고 문상객이 뜸해진 즈음이었다. 외삼촌이 손짓으로 불러 마당으로 나갔다. 외삼촌의 옆에는 의외의 남자가 서 있었다.
강춘복이었다.
“니 이분 알제?”
외삼촌이 물었고,
“강춘복 씨, 알고 있습니다.”
동명은 강춘복을 똑바로 보면서 대답했다. 그러면서 가슴이 꿈틀 요동하는 것을 느꼈다.
“나 자네를 이렇게 대하기 미안헌 사람이네. 자네 외숙은 내 진심을 잘 알고 계시네만, 자네 모친 살아 계실 때 몇 차례 인사 올리고, 그때적 일 사죄혈라고 혔었네. 자네 모친은 번번이 나를 퇴하셨고, 끝까지 날 용서 안 허시고 가셔버렸네. 내가 사죄헌다고 모친 가슴에 맺힌 한이 풀리시겄는가. 다 내 맘 무거운 짐 덜자고 헌 욕심이제. 자네 아직 젊고 생각 깊은 사람이니 생각 좀 해보소. 내가 자네 모친 가슴에 못박을라고 해서 박았겄는가. 내 맡은 일이 그랬고, '다 시국 어지러운 탓이었제. 나도 그때적 기억 땀새 이날 이때꺼지 꿈자리가 사나운 사람이네. 인자 모친 가셨는디 자네가 내 입장 이해허고 허락헌다면 영전에 절 올리고 명복을 빌라고 찾아온 것이네.”
동명은 가슴의 요동이 가라앉아 있음을 의식했다. 동명은 외삼촌을 쳐다보았다.
“말헌 그대로다. 진심이여.”
외삼촌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들어가시지요.”
동명 이 비켜서며 말했다.
“고맙구만, 참말로 고마워 .”
강춘복이 손을 내밀었다. 동명은 그 손을 잡았다. 그의 체온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자네 여섯 살 적에 자네 큰성허고 나허고 저수지서 미역감은 일 생각나는가? 그때 수박밭에서 수박 홈쳐다 깨 묵고, 내가 자넨헌테 큰 메기 한 마리럴 잡아줬는디.”
동명의 머릿속에서는 한 토막의 기억이 또렷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그랬었지요. 그 메기로 어머님이 매운탕을 끓이셨지요.”
“그랬어, 그랬어.”
강춘복은 동명의 팔을 몇 번이고 흔들었는데, 그 얼굴에 이미 황혼이 깃들여 있었다.
강춘복은 어머니 영전에 향을 꽂고 정성스럽게 두 번 절을 올렸는데, 두 번째의 읍은 좀체로 풀어질 줄을 몰랐다. 그는 울고 있었던 것이다.
강춘복은 밤을 새고 아침에야 돌아갔다. 다음 날 밤도 새웠다. 그리고 어머니의 관을 운구했다.
어머니는 과수원의 아버지 옆에 나란히 누웠다.
〈198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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