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강원도 산골 말단 포병 부대에서 포수로 복무하게 된 육군 이등병 조은일. 거친 사람들과 험한 부대 분위기 속에서 적응하기란 쉽지 않다. 요즘 들어 부쩍 자주 하게 된 죽는 상상은 그를 더욱 위험하게 만든다.
이 책은 저자가 직접 겪은 일과, 각 시기마다 머릿속을 지배하던 상상이 시나리오 형식으로 구현된 “평행 우주”로 이루어져 있다. 평행 우주에서는 그가 군대에 가지 않는가 하면, 절대 일어나지 않길 바라던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조은일은 거기서 죽었는지도 모른다. 무엇이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나. 선임? 간부? 어쩌면 군대에 왔다는 사실 자체가?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책은 우울증 환자의 정신 건강과 외부 환경 간의 복잡한 역학 관계와 투쟁을 조명한다.
[지은이 소개]
조은일
충 성!
신 고 합니다.
이병 조 은 일은 2018년 5월 4일부로
◯◯ 포병대대로부터 ◯ 포대 전입을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 고 합니다.
1997년생입니다.
철학과 나왔습니다.
영화 좋아합니다.
다큐멘터리도 찍었습니다.
게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군대에서 이루고픈 목표가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화 제대로 내는 방법 배우기입니다.
또 하나는 장편 시나리오 하나 써서 나가기입니다.
긍정적인 마인드로 임하겠습니다.
충 성!
[출판사 서평]
“충 성!”
대대장님이 지나다니면 한 명씩 손을 내밀어 악수한다. 우린 관등성명과 함께 앞으로의 군 생활에 대한 짧은 각오를 말해야 한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같은 식상한 말은 싫다. 내 다짐은 이거다.
"긍정적인 마인드로 임하겠습니다."
벌써부터 부정적인 감정이 들어서다.
강원도 산골에 위치한 작은 포병 부대에서 포수로 복무하게 된 육군 이등병 조은일. 모르는 것이 많아 일단 주특기 공부에 매진해 보지만 험한 부대 분위기와 거친 사람들에게 적응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다 누구나 한 번쯤 군 생활에 찾아오는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그는 행정 분과로 보직을 옮긴다. 하지만 이미 부대 사람들에게 박힌 ‘폐급’ 이미지를 지우기란 쉽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요즘 들어 부쩍 자주 하게 된 죽는 상상은 그를 더욱 위험하게 만든다.
입대 전 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할 때도, 훈련소에서도, 그리고 자대에서 계급별로 신인성 검사를 할 때도 ‘그 문항’을 항상 보았다.
조은일은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해 온 사람이다. 입대 전부터 그는 “까라면 까”로 대변되는 상명하달식 명령체계 속에서 자신이 잘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아니나 다를까 훈련소에서부터 또다시 위험한 생각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에게 신호를 보낸다는 말이 있다. 그렇듯 조은일도 힘든 일 없냐며 걱정해 주는 사람에게, 자살을 생각해 본 적 있는지 묻는 심리 검사지에 성실히 답하여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려 했다. 그러나 이는 좋은 판단이 아니었는데.
상담을 하면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난 왠지 우울해지기만 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힘든 일이 있을 때 다른 사람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나면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나아진다고. 그러나 예외가 있다. 바로 자신을 우울한 사람이라고 단정해 버리는 자들이다. 스스로를 우울한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나면 그 이외의 모습은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서도 주변에 잘 맞는 사람이 없어 외롭다고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바로 자신의 행복한 모습을 자기 정체성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정말로 그 사람은 자기가 만들어 놓은 우울함이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버릴지도 모른다.
조은일도 마찬가지다. 상담을 받아 보면 어떻겠냐는 조언, 정신과 약을 처방받아 보라는 권유는 전부 다름 아닌 그를 위하는 마음에서 왔을 것이다. 그러나 우울한 자기 정체성 안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다면 이는 소용이 없다. 그 사실을 직접 깨닫기까지는 너무나도 오랜 시간과 고통이 필요했다.
지금도 군대 꿈을 꿉니다. 어찌어찌해서 지금까지 사회에서 겪은 시간이 전부 휴가였고, 전역 절차를 위해 부대에 복귀한다는 내용입니다. 저는 왜 입대 꿈을 안 꾸는 걸까요. 거기서 뭔가가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나왔기 때문입니다. 물리적으로는 전역했지만, 심리적으로는 전역이 이루어지지 않은 겁니다. 어쩌면 그때 거기서 내가 죽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사망한 조은일의 심리적 부검에 참여하고 계신 겁니다.
[책 속에서]
카투사나 의경, 공군으로 지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카투사에 지원 하려고 토익점수를 올리기는 너무도 귀찮았다. 그래서 포기하고 자기합리화를 택했다. 어차피 운에 의해 뽑히는 추첨 제도이고 경쟁률도 높았으니 지원해도 떨어졌을 거라는 논리였다. 의경은 6번이나 지원했었다. 그러나 제대로 시험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처음에는 한 시간이 걸리는 심리검사를 마치고 이유도 모른 채 탈락해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검색해 보니 교정시력 진단서를 안 챙겨갔기 때문이었다. -p27 굳이 육군을 택한 이유
우리를 인솔하는 분대장에겐 표정이 없다. 넋이 나가 축 처져 있다. 말투도 어눌하다. 그는 밥을 먹으려고 대기하다가 훈련병 한 명과 시비가 붙었다. 근데 훈련병이 겁도 없이 발로 흙바닥을 팍 차버리더니 작게 “씨발” 하고 욕하며 휑 가 버린다. 이래도 되는 건가. 논산에서 쌓은 내 상식으로 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분대장은 어이없게 그걸 또 보고만 있다. 눈빛을 보면 화가 난 것 같기는 하다. 간부가 와서 조치를 하는가 싶었는데 그러지도 않는다. 왜 이러지. 여긴 분대장들이 만만한가? -p54 자대배치
군의관님은 내 상처가 그리 심각한 건 아니라고 한다. 대신 내일 다시 가서 몇 바늘 꿰매야 된다. 부대로 복귀하니 포대장님은 병사들을 모아놓고 오늘 있었던 나의 부주의에 관해 얘기하고 계셨다. 부주의로 인해 일어난 사고. 왜 차에 탈 때 다들 장갑을 안 끼냐며 혼을 낸다. 그 누구도 하지 않던 생각을 당연하단 듯 말한다. 이제부턴 모두 장갑을 끼고 탑승하라. 내가 사람들 귀찮은 일을 만들었다. 운전병 선임의 급정차도, 후탑자 좌석 설계 문제도 아닌 나의 부주의가 말이다. -p84 군대에서 아프면 서럽다는 말의 이유
누군가의 근무가 잘못 짜여 있으면 바로 이렇게 항의가 들어온 다. 오늘 야간 위병소 말번 근무자가 내일 주간 위병소 초번 근무자와 동일한 게 문제다. 선임은 자기더러 2시간 동안 근무 서라는 거냐며 따진다. 근데 이건 내가 짠 경작서가 아니다. 내가 휴가를 나간 사이 대리업무자 수 상병이 한 실수다. 하지만 수 상병을 찾아가 고치라고 항의할 수는 없다. 내 일이기 때문이다. -p133 경작서 갈갈이 I
선임과 맞서기는 어렵다. 할 말을 못 해 생기는 스트레스는 풀리지 않는다. 가장 괴로운 건 나다. 모두와의 못 어울림으로 인해 난 죽고 싶다는 생각을 꾸준히 해왔다. 이전엔 군대에서 친구가 없는 게 내가 너무 예의를 차리고 나를 안 드러내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드러낸다고 정답은 아닌 것 같다. 왜냐면 내가 지금 여기 대부분의 사람을 혐오하고 있기 때문이다. 드러낼 속이 썩어 있는데 뭘 어쩌나. -p185 사단 정신과
포대장님이 아버지의 이런 행동을 비웃는 것 같았다. 펜 굴리는 업무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의미로 하신 선물이었을 거다. 하지만 부대에는 병사들이 성인이기 때문에 부모에게 종속된 티가 나는 순간 개무시하는 분위기가 있다. 또한 병사들을 맘대로 굴려야 하는 간부들 입장에서는 더더욱 병사 부모와의 접촉을 꺼린다. 간부님들이 밤마다 부대에 전화를 거는 후임 병사 어머니 욕하는 걸 자주 들었다. -p215 면담 기록 조회
그동안 모든 휴가엔 계획이 있었다. 하지만 말출에는 약속이 딱히 없다. 15일씩이나 되는 긴 휴가는 처음이다. 약속으로 채울 수 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많이 떨어졌다. 휴가 나가면 몸과 얼굴을 전부 검은 상자로 가리고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 안에 든 게 누구 인지 모르게 말이다. 사람들을 만나는 일 자체가 조심스러워졌다. 더구나 군 생활을 지속하다 보니 떨어져 나갈 사람들이 꽤 떨어져 나갔다. 연락 안 한 기간이 오래되면 친했어도 다시 연락을 하기가 껄끄럽다. -p261 말출
[차례]
작가의 말
1부 평발로 공익 간 121번 훈련병
열심히 해도 오히려 손해만 / 훈련병의 면도날 / 평발은 그냥 달고 사는 수밖에 없어 / 굳이 육군을 택한 이유 / 마음의 편지의 파워 / 불침번 / What is Love? / 열외는 용기다 / 팔굽혀펴기 가라와 결과에 흔들리지 않는 윤리관 / 좌좌좌 우좌좌 / 수료식 / 자대 배치 / 평행 우주 I
2부 아침 먹고 침대에 누워 유튜브 보는 조 이병
알파의 문화 / 공부로 앞서 나가자 / 취침 갈갈이 / 대대장님께 건의한 세 가지 / 여자친구 가슴 크기를 묻는 선임과 아무런 저항도 안 한 나 / 군대에서 아프면 서럽다는 말의 이유 / 병영 생활 상담 I & II / 평행 우주 II
3부 신관과 함께 폭발한 조 일병
출타자 보고 갈갈이 / 수신용 전화기와 마음의 편지 / 폐급 / 동기 갈갈이 / 보직 변경 / 스마일 배지 / 후임에게 찔리다 / 외로움 / 평행 우주 III
4부 행정반 한가운데서 목 맨 조 일병
경작서 갈갈이 I / 경작서 갈갈이 II / 새로운 시대가 오는가 / 새로운 병영생활 상담관 / 응급처치 경연대회 / 내가 그리 뛰어난 사람이 아니었구나 / 조모상으로 인한 청원 휴가 / 맞후임 증발 / 사단 정신과 / 평행 우주 IV
5부 거울에 머리 박고 죽은 조 상병
박치기 / 이사 / 면담 기록 조회 / 먹혔나 싶은 순간 이미 / 착한 사람 / 자살하고 싶습니다 / 힐링캠프 프로그램 / 메뚜기의 종류 / 평행 우주 V
6부 하천에 떠내려 간 조 병장
선임들의 전역 / 말출 / 커다란 실망 / 평행 우주 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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