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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메도록 초청하시는 순종의 멍에
우리의 충성에 대한 증거 -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14:15).(TMK 293.1) 이 말씀이, 모든 사람의 마음에 충분히 자리 잡도록 하라. 우리가 그리스도를 구주로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그를 통치자로서 받아 들여야만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주가 되신다는 확신과 완전하고도 확고한 신뢰심을 가질 때만이, 비로소 그를 받아들이고 그의 계명에 순종하게 된다. 이와 같이 함으로 우리는, 충성심을 하나님께 나타내 보인다.
그 때에 우리는 믿음 가운데, 참된 고리[신뢰]를 갖게 될 것이다. 믿음은, 사랑으로 말미암아 역사 한다. 그것을 그대의 마음에 이야기하라.
“주님이여, 나는 주님께서 내 영혼을 구속하기 위하여, 돌아가신 것을 믿나이다. 만일 주님께서 나의 생명을 위하여, 주님의 생명을 주시리 만큼 내 영혼을 가치 있게 여기신다면, 나도 미약[너무 미미하고 약소]하나마 나의 생애와 또한 생애의 모든 가능성들을, 주님이 지켜주시도록 바치겠나이다.”
우리의 의지는 하나님의 의지와, 완전히 일치하도록 해야 한다.(TMK 293.2) 오늘날 다음과 같은 초청[간절한 사랑의 부르심]이 주어졌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11:28,29).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멍에를 메고, 마음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는 모든 자들을 위한 평안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자제[절제]와 순종을 배우게 되며, 또한 이 가운데서 평안히 쉼을 발견하게 된다.(TMK 293.3)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15:10).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메도록 초청하시는 멍에, 곧 순종의 멍에이다.
“주여, 나는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취합니다. 나는 주님의 약속을 받아 드립니다. 나는 개인의 구주로서 필요하기 때문에, 주님께 옵니다. 나는 임재[성령통한 임함]하시는, 그리스도를 가져야 합니다. 나는 주님께 의존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나의 것입니다”라고, 우리는 말할 수 없는가?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신다, 거짓 없이 온 마음과 뜻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요14:21)라. 이것이 품성의 참된 시금석[순종이 품성평가 기준]이다. 우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TMK 293.4)
품성의 참된 표준 - 하나님을 최고의 분으로 받아들이는 자는, 그에게 충성하기로 서약하여야만 한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제복을 입고, 그가 누구의 군대에 속하였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는, 깃발을 높이 들어야만 한다.
그리스도께 대한 충성을, 공공연히 나타내야 한다. 감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스도의 증표(證票:증명의 징표)는, 생애를 정결[성결]하게 하는데 나타나야 한다.(TMK 296.5)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의 행동[순종의 생애]에 대한 시금석[평가기준]이다. 그의 눈은 우리의 모든 행동을 보시며, 마음의 모든 구석구석을 살피시며 감추어 있는, 자아기만과 모든 의식을 찾아내신다. 우리가 관계를 맺어야 할 그분께는, 모든 것이 드러나 다 펼쳐져 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악한 것을 버리기 위하여, 애통하는 마음과 참된 목적을 가지고, 그에게 나오는 자들을 다 받으실 것이다.(TMK 290.4)
우리의 충성에 대한 증거 - 우리의 모든 상업적 거래에 있어서, 우리의 모든 말과 행실에 있어서 우리는 순결한 목적과 깨끗한 양심을 유지해야만 한다. 우리의 행사를 하나님께 의탁하고, 그의 손에 맡겨야 한다. 하늘 궁정에 갖고 가지 못할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일할 때에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라. 이것만이 우리의 일을 [세상에 대한욕심의]이기주의로부터, 자유롭게 해 준다는 것을 기억하자....
깨어 위를 바라보라. 왜냐하면 그대는 하늘의 신령한 공기[성령역사]를, 끊임없이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하늘 아버지와, 교통하고 생애 함이 필요하다.... 그대의 의무를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있는 것처럼 수행[경성하여 의무를 준수]하라.(TMK 290.5)
믿음순종으로 이루는 완전함의 대가 -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히2:10).(TMK 287.1)
우리 모든 사람에 대한 그리스도의 초청은, 평안과 안식 곧 자유와 사랑의 생애로 나아오며, 또한 내세에는 썩지 않을 생명으로써, 풍성한 기업을 누리라는 부르심이다....
우리는 이 자유의 길이, 투쟁과 고난들을 통과해 나아가도록 놓여 졌다할 지라도, 놀랄 필요가 없다. 우리가 장차누릴 자유는 우리가 그것을 누리기 위하여, 희생한 까닭에 더욱 가치 있는 것이 될 것이다.
지식을 초월하는 그 평화는 흑암의 권세와 더불어 싸움, 곧 이기심과 마음속에 있는 죄들을 대적하여 싸울, 치열한 투쟁의 값을 지불할 것이다.(TMK 287.2)
우리는 죄인들을 그분 자신과 교통할 수 있도록 구원하시고, 높이시기 위하여 그분의 신성한 능력을 사용하시지 않으시고, 고통을 당하시지 않으면 안 될 인성을 취하시고 인간으로서의 고난을, 당하시며 인간의 처참한 상태의 밑바닥까지 내려오셨던 주님을, 믿음의 눈으로 보기까지는 우리가 구주를, 최고의 의미로 평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오, 어찌하여 우리가 죄에 대하여, 그처럼 무감각한가? 우리는 어찌하여, 그처럼 조급한가?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점점 가까이, 나아가지 않는 까닭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서 멀리 떠나간 채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우리의 양심은 죄의 기만으로 인하여 완고해 졌다.
우리 구원의 대장을 생각하라. 그는 우리가 영원한 수치와 멸시를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를 위해 수치를 당하셨다.
또한 타락한 인류에게 자비가 임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는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셨다.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은 보존함을 받았고, 죄를 지은 인간은 용서함을 받았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이 살도록 하기 위하여 돌아가셨다.
가련한 죄인들이 속량함을 받고 영원한 영광으로써 관 씌움을 받도록 하기 위하여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은 그들을 위하여 수치를 당하셨다.(TMK 287.3)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자신을 숨기고, 우리의 말과 품성 가운데는 예수님이 가장 아름답게, 또는 만인 중에서 가장 으뜸 되는 분으로서, 나타나게 해야만 한다. 우리의 대화나 품성에 있어서 주님을 사랑하시는 분으로, 만인 가운데 머리로서 나타내야 한다.
우리의 생애나 태도는, 그분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려 우리를 위해 대가를 지불하신, 그리스도와 그 구원을 얼마나 높이 찬양하고 있는가를, 증거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슬픔을 담당하신 주님을 끊임없이 바라볼 때, 주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능력을 구하게 된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소망스럽고 복된 포로[영원히 결속되어 잡힌자]가 되게 할 것이다.(TMK 287.4)
순종함의 행복 -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골1:12,13).(TMK 291.1)
우리의 미래의 행복은 우리의 인성으로 하여금, 그 인성의 모든 재간들과 능력들을 하나님께 복종시켜, 신성의 지배 아래 있도록 함에 달려 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갖지 못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신성이시기 때문에, 그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쉬운 일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러나 그분의 말씀은, “그는 모든 일에 우리와 한 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히4:15)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그의 고상한 마음에, 비례[비교]해서 시험을 받으셨다.
그러나 그는 시험에 복종함으로써, 거룩한 능력을 약화시키거나 또는, 무능하게 만드시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지상 생애 가운데서 그는, 인류가 그분 안에서 허락된 특권과 기회들을 이용할 때에, 무엇이 될 수 있는지에 관한 대표자였다.(TMK 291.2)
사단이 우리의 첫 조상을 유혹했을 때 ... 그는 그들이 인간의 영역 밖을 벗어나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믿게 하려고 아첨하는데 힘썼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앞에 두신 그의 모본으로서, 인간 가족으로 하여금 인간의 영역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격려하셨다. 예수님 자신이 사단의 속성을 내어 쫓기 위하여, 사단의 노예가 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인,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는 도덕적 힘을 소유한 사람이 되셨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지혜롭고 선한 율법에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은, 배교의 권세의 종이 될 것이다.(TMK 291.3) 예수님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중재하시기 위하여, 또한 인간이 사단의 기만적인 유혹을 통하여 ‘에덴’에서 잃어버린 본래의 마음을, 우리 인간에게 다시 회복시키기 위하여 인간이 되셨다....
불순종은 하나님이 ‘에덴’에서 인간에게 주셨던, 본성과는 일치하지 않는다.(TMK 291.4)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에게 도덕적 능력을 주셨다. 우리를 빛의 성도들의 유업을 받을, 후사가 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 그리고 자기 자신의 능력으로 승리할 수가 있고,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품성으로 설 수가 있는 것이다.(TMK 291.5)
순종을 위한 힘 -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15:10).(TMK 292.1)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는다고 주장하는 어떤 사람들은, “아무도 율법을 지킬 수 없다”고 말하였다. 이 점에 관하여, 그리스도의 말씀은 명확하다. 그는 “내가 아버지의 율법을, 지켰”(요15:10)다고 말씀하신다. 그는 범사에 있어서, 우리의 모범이시다.(TMK 292.2)
‘산상수훈’ 가운데서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사명에 관하여 명백히 말씀하셨다. 그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마5:17)고 말씀하셨다. 그는 선지자들이 증거 한 것에 관하여. 문자 그대로 설명하시기 위하여 오셨다.
세상을 창조하기 전에 아버지와 같이 계셨던 그는. 이 땅에 오신 후에 성취시킬 모든 예언들을 거룩한 사람들로 하여금. 기록하도록 친히 주시었다.(TMK 292.3)
하늘 아버지와 그리스도의 지위는, 동등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그는 범법자들을 위한, 속죄물이 되실 수 있으셨다. 그는 율법을 크게 하고, 존귀하게 하는데 충분하셨다.... 그는 사람들의 격언과 유전으로부터, 여호와의 교훈을 분리시켰다. 그는 진리의 모든 순결함 가운데서, “십계명”을 진리의 표현으로서 높이 드셨다.(TMK 292.4)
사람이 지킬 수 없는 율법을, 하나님이 만드셨다는 사단의 거짓말을 반박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었다. 몸소 인성을 쓰시고 이 세상에 오시어 순종의 생애를 사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순종할 수 없는 율법을, 만드시지 않으셨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셨다.
그는 사람이, 율법을 완전히 순종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셨다.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여 신성의 참여자가 된 자들은, 율법의 모든 계명에 순종하여 생애 하신 그분의 모범을 따를 수 있다.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하여 인간은 하늘에서 신뢰할 수 있고, 반역하지 않을 것임을 그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보여주어야 한다.(TMK 292.5)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이 소유한, 동일한 인성을 소유하셨다. 그는 모든 일에 인간과, 한 결 같이 시험을 받으셨다. 그분이 순종한 동일한 능력이, 인간에게 주어졌다.(TMK 292.6)
순종하는 자의 특권들 -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15:14).(TMK 296.1) 그리스도와 더불어 밀접한 우정을 맺고 사는 자들은, 우리의 그리스도로께서 신용할 수 있는 위치로 승진될 것이다.
예수님을 위하여 힘이 미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는 종은, 그가 순종하기를 좋아하는 그 분(예수님)과 더불어 친밀히, 교제하도록 허락을 받게 된다.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데 있어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가 될 수 있는 바 이는,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자들은, 그에게 자유자제로 말할 수 있는 까닭이다.
거룩한 지도자와 더불어 가장 친밀하게 이야기하는 자는, 그의 위대하심에 관한 가장 고상한 관념을 가졌으며, 또한 그의 계명들을 가장 잘 순종하는 자이다.(TMK 296.2)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요15:7,14~15)(TMK 296.3)
믿음 가운데서 하나님께 나오는 자의 품성은, 구주께서 그의 생애 가운데 들어 오사 모든 것을, 증거 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자들은 끊임없이, “오 나의 구주여 이것이 주님의 뜻이며, 길 이니이까?”라고 질문하고 있다. 그는 끊임없이 그의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본다.
그는 그의 모든 행동에 관하여 거룩하신 친구(예수님)의 뜻을 타진하는 바, 이는 그가 이 확신 가운데 그의 힘이 놓여 있음을 아는 까닭이다. 그는 모든 역경 가운데서, 마음을 하나님께 쳐드는 것이 습관화되었다.(TMK 296 .4)
“나는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 너희는 내게 거룩할 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로. 나의 소유를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레20:24, 26)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TMK 296.6)
순종을 위한 동기 -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5:3).(TMK 297.1) 하나님의 성민들이 하나님을 높이고 영화롭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서 이성의 힘을 받은 모든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며 그가 사신 소유로서, 우리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확실히 해야 할 의무 아래 놓여 있다.
우리는 주의 말씀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모든 것을 이해하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하나님의 왕국을 다스리는 법칙들인 그분의 모든 계명들을, 부지런히 청종한다는 것을 하늘 거민들과 타락하지 않은 세계들과, 타락한 사람들에게 나타내는 것보다 더 크게, 창조와 구속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소유주가 되시는 하나님께, 존경을 나타내 보일 수 있는 길이란 없다.(TMK 297.2)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에 관한 지식을 얻기 위하여, 부지런히 연구할 필요가 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왕국을 다스리는 법칙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순종하는 백성이 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성경을 펴고 하나님의 교훈에 관하여, 그대에게 빛을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상고하라.
그대가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라는, 말씀을 발견하거든 사람의 의견을 묻지 말고, 어떤 대가를 지불하게 될지라도 즐겨 순종하라. 그때에 하나님의 축복은, 그대에게 임할 것이다.(TMK 297 .3)
종종 엄숙한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기도하라. “오, 주님이여 나로 무엇을 하도록 하시겠나이까? 내가 조금이라도, 거룩한 교훈을 경홀히 여겼나이까? 내가 운수(運數:우연한 요행수)의 편에서 감화를 끼치는 일을 하고 있나이까?
내가 하나님의 계명에 대하여, 조심성 없는 경솔함을 나타내고 있나이까? 나는 그리스도와 멍에를 함께 하고 짐을 지고, 주와 동역자가 되고 있습니까?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는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려고 변명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는 세상에서 나오기를 기뻐하지 않음으로, 확실히 밝혀진 여호와의 계명에 순종하지 않을 위험은 없습니까?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보다, 더 큰 영향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까?”(TMK 297.4)
“주여, 내가 내 자신을 버리나이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나를 원수의 편에 두려고 할지라도 나는, 주님의 율법에 불순종하는 일을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그대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라.(TMK 29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