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슬로우 욕구 5단계
- 생리적욕구
경영학이나 심리학을 공부했던 사람들은 매슬로우 욕구 5단계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오늘은 매슬로우 욕수 5단계중 가장 하위개념은
생리적 욕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매슬로우 욕구 5단계 표를 보면
가장 밑의 하위개념인 생리적 욕구가 달성되면
순차적으로 마지막 자아실현의 욕구가 달성된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아실현의 욕구를 달성하고자 할 것이다.
자아실현이라는 것은 단지 물질적인 성공의 개념을 뛰어남어서
나라는 한 개인이 달성하고자 하는 사명이나 영혼의 순수성을 발견하는 단계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학자는 학문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삶의 지혜를 가져다 줄 것이고,
종교인은 종교의 가르침을 통해서 영혼의 성장에 큰 기여를 할 것이고,
정치인은 올바른 정치를 통해서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에 기여를 할 것이고,
부모는 자식을 잘 키워서 현명한 성인이 되도록 기여할 것이고,
과학자는 세상 사람들의 편리함과 육체적 고통을 덜게 해줄 것이고,
.......
각자가 우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삶이 있으며 그러한 삶을 실현하기 이해서
오늘도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
그러한 개인의 자아실현을 위해서는 가장 제일 중요한 생리적 욕구를 이해해야한다.
생리적 욕구라는 것은 쉽게 말하면 먹고 사는 문제이다.
그런데 ㅠㅠ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생리적 욕구가 아닌가? ㅎㅎ
그러나 꼭 그렇지 만도 않다.
생리적 욕구라는 것은 말 그대로 먹고 사는 것인데 솔직히 우리나라 사람중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도 가장 하위단계인 생리적 욕구속에 갇혀 있기도하다.
이제는 생리적 욕구가 먹고 사는 것만이 아닌, 남들처럼 잘 먹고 잘사는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리 우리가 생리적 욕구가 절실하다고 하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지금도
많은 아이들이 밥한숟가락, 물한모금을 못 먹어서 굶어 죽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는 생리적 욕구를 이미 벗어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실질적인 만족도는 아프리카 사람들보다도 부족한 것이다.
대한민국이 행복지수 최하위라는 통계를 보듯이 아프리카 사람들보다도
심리적 배고픔은 훨씬 크다고도 볼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으로 평생을 살아가면 가장 하위개념인 생리적 욕구조차도
넘어서지 못하고 마치 돈만을 위한 힘겨운 삶이 진행되기도 한다.
인간이 추구하고자 하는 자아실현의 욕구는 언제 도달할까?
자아실현의 욕구라는 것은 단지 우리 눈앞에 보여지는 성공이나 물질적인
잣대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누군가의 평가도 아닌 본인 스스로만이 알 수 있는 개념이다.
내 친구가 100만원 고급과외를 받고 있으면 10만원 과외를 받는 나는 무가치해진다.
나는 전세집에 살고 있는데 옆집 00는 10억 아파트에 살면 나는 무가치해진다.
나는 국내에서 학교를 다니는데 친구는 외국에서 학교를 다니면 나는 무가치해진다.
우리는 스스로 남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생리적 욕구를 박탈당하고 있다.
물론 사람이기 때문에 남과 비교를 안할수는 없지만, 그것이 기준의 1순위가 되었을때
우리는 항상 배고프고 목 마른 사람처럼 불안하게 살아갈수도 있다.
이 개념은 돈이 소중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라 만족에 대한 개념이기도하다.
사실 지금의 상태를 만족하고 생리적 욕구를 넘어서면 우리는 더 많은 세상과
자유로움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활발하게 성취할수가 있다.
성공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불만족의 상태에서 시작했다라기보다는
만족과 감사함이라는 긍정의 씨앗에서 시작했다고도 볼 수 있다.
불만족이 우리에게 동기부여를 하고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만족하는 마음은 포기하지 않는 엄청난 열정과 노력을 제공해주기도 한다.
그러한 마음에서는 삶이 즐겁고 일이 즐겁고 살아가는 것이 자유롭다.
마음이 자유롭고 하는 일이 즐거우면 남들보다 당연히 빨리 성공할수밖에 없는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나무를 보는 사람과 숲 전체를 보는 사람은 나아가는 속도가 다르다.
그리고 한가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점이 있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의 생리적 욕구를 달성하지도 않는 상태에서
욕심만 자아실현의 욕구를 갖고 있는다면 이것도 아주 큰 문제이다.
우리는 20살이 넘으면 성인이 된다.
성인의 개념은 몸의 성장만이 아닌 정신의 성장을 말하고
한 사람으로써 자립하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요즘에는 20살이 넘어도 부모에게 의지하고.
결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에게 의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내가 성인이라면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경제적인 독립을 해야한다.
부모에게 의지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우리는 평생을 의지하며 살기도한다.
또한 부모도 자식이 20살이 넘으면 잡았던 끈을 놓아주어야 하는데,
사사건건 간섭을 하면서 자식이 스스로 만들어가야 할 인생을 방해하기도한다.
그러다보니 자꾸 마마보이, 파파보이, 애정결핍, 대인공포, 집착증등의
심리적인 문제가 점점더 크게 발생하기도 한다.
시골 촘놈인 내가 서울에서 학교를 다닐때 우리 아버지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 우리 집은 돈이 없다, 월세 10만원만 보내줄테니 니가 알아서 살아라 " ㅠㅠ
그때에는 너무나도 야속하고 원망스러웠지만 돌이켜보면 참으로 감사하기도하다.
나에게 풍족한 삶이 주어졌더라면 그동안 내 스스로 달성했던
소중한 씨앗들과 경험들은 저 멀리 사라졌을 것이다.
우리는 생리적 욕구를 먼저 해결 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서 나이가 30이 다 되어가는데도 부모에게 의지하고
유학을 보내달라고 하거나 대학원을 진학하는 등의 모습들은
사실 그리 좋은 상황들은 아니다.
물론 부모가 그러한 능력이 되어서 많은 자본을 투자해 줄 수 있다면,
자식은 그것이 공짜로 받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이자까지 갚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결혼할때는 집까지 부모가 해주기도 하고, 엄청난 혼수도 해주고,
심지어는 손자까지 키워주는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는다.
혹자는 이것을 엄청나게 부러워할수도 있고 혹자는 거절을 할수도 있다.
부모의 극직한 사랑은 참 감사하고 위대하지만 이것이 점점더
자녀들의 자립심과 책임감을 줄어들게 할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생리적 욕구는 결국 스스로의 삶에 대한 자립심과 책임감을 말하는 듯 싶다.
이러한 생리적 욕구는 누군가가 자꾸 도와주고 챙겨주었을때
욕구만 많아지고 그것을 만족하는 심리상태는 상대적으로 줄어들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 누군가를 원망하고 불만족스럽게 살아가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는 생리적 욕구를 해소하는 최고의 방법은 바로 만족이다.
그것이 되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토록 만족하지 못한 심리적 불균형 상태에서
삶의 즐거움보다는 삶의 고통이나 현실의 두려움속에서 살아간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는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삶의 과정이기도 하지만,
욕구라는 것은 결국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공허함과도 같다.
그래서 모든 마음공부나 종교수행에서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고
현재에 감사하는 마음의 자세를 강조하는 것이다.
종교의 목적은 내 개인적으로 자아실현의 욕구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종교를 통해서도 결국 생리적 욕구를 해소하려고 애를 쓴다.
" 하느님, 좋은 대학에 합격시켜주세요 "
" 부처님 사업에 성공해서 돈을 많이 벌게 해주세요 "
" 조상님 좋은 직장에 취직시켜주세요 "
누구나가 이러한 간절한 마음이 있겠지만 결국은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삶의 과정이다.
이런 생리적 욕구를 이제 스스로가 남과 비교하지 말고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우리 각자에게는 남들보다 부족한 점들도 있겠지만,
남들보다 훨씬 뛰어난 점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단점은 보완하고 장점은 개발시켜서 자신이 가장 잘 할수 있고
가장 좋아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러면 어느순간 나라는 자아의 만족도가 높아지면서 삶이 즐거워진다.
내가 지금 성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진지하게 고민해보자
내가 가장임에도 불구하고 가정을 책임지지 않는다면 잘 생각해봐야 한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의 생리적 욕구는 가장 기본중의 기본을 말하는것 같다.
아마 매슬로우는 한 개인의 책임감과 자립심을 말하지 않았을까라는
개인적으로 추측을 해본다.
그것이 올바르게 형성된다면 우리는 다음단계를 향해서 나아갈수가 있다.
글을 쓰다보니 조금 광범위 하게 여기저기 왔다 갔다 했네요 ㅎㅎ
핵심은 생리적 욕구를 달성하기 위해서 지금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마음으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만족하는 삶은 희망이 있으며 미래가 다채롭게 펼쳐집니다.
만족하는 인생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뛰어가지 않습니다.
만족하는 사람은 남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습니다.
만족하며 사는 사람은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갑니다.
만족하는 사람은 내면의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 행복최면사 청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