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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쩌면 오래된 걸작의 그림자 속보다는 세상의 가장자리에 있는 이러한 작은 집들 중 하나에 사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여기서는 언제든 새로운 방랑자 무리에 공격당할 수도 있다. 적어도 그것이 서양에 온 초기 기독교인들의 생각이었다. 그들은 원래 금욕주의의 시발지인 동부 지중해에서 왔다. 그들 중 일부는 마르세이유와 투르에 정착했다. 그 후 삶이 너무나 위험해지자 그들은 콘월, 아일랜드 또는 헤브리디스의 가장 접근이 어려운 가장자리를 찾아 투쟁했다. 그들은 놀랄 만큼 수가 많았다. 550년에 한 배 분량의 50명의 학자들이 코크에 도착했다. 그들은 약간의 안전과 소규모의 호의적인 사람들을 찾아 그 나라를 떠돌았다. 그들이 찾은 곳을 보라! 12세기 프랑스나 17세기 로마의 위대한 문명을 돌아보면, 믿기 어려운 것이,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거의 백년간- 서양의 기독교가 스켈리그 미카엘(아일랜드, 수도사들의 섬) 같은 곳에 정착해 살아남았는가이다. 이 곳은 아일랜드 해안에서 18마일이나 떨어져, 바다에서 700피트나 솟아오른 바위섬이다.
이 작고 폐쇄된 학자들의 세계와는 별도로, 무엇이 그 방랑문화를 살아남게 했을까? 책은 아니다. 건물도 아니다. 대부분의 건물이 목재이며, 그래서 소멸된다는 것을 인정한다 해도, 몇 개 남지 않은 석조물도 너무나 초라하고 졸렬하다. 놀랍게도 그들은 최상이다- 그러나 방랑자들은 지속적인 거주지를 만들 욕망을 잃은 것 같다. 그들은 무엇을 가졌을까? 답은 시에서 나온다: gold. 앵글로색슨 시인이 자신의 이상적 사회를 표현하고 싶을 때마다 그는 금에 대해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럴듯한 분위기에, 금빛으로 반짝이는, 빛나는 장식들에,
와인으로 붉어진 얼굴에, 무기를 번쩍이며,
인조 보석과 금, 은을,
손에 잡은 부와, 빛으로 가득한 호박을 바라본다.
방랑자들은 항상 직공들과 함께 있었다. 그리고 경험의 흐름에 어떤 영원한 형태를 부여하려는 그들의 모든 억압된 필요는, 단지 그들의 불완전한 존재에 무언가 완전한 것을 만들기 위해, 이 놀라운 대상들에 집중되었다. 그들은, 심지어는 회전력을 추구하다가, 범상치 않은 강렬함(명도, 채도)을 성취했다. 그러나 어떻게 신대서양지역이 지중해의 그레코-로만 문명에서 떨어져 나왔는가에 대해서는 뚜렷한 근거가 없다. 지중해 예술의 주제는 인간 으로, 이것은 초기 이집트 이후의 경향이었다. 그러나 방랑자들은, 숲을 헤쳐 나오고, 파도와 싸우면서, 엉킨 가지들에 매달린 새들과 동물들을 주로 인지하였고, 인간의 몸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마지막 전쟁 직전에, 두 곳에 숨겨둔 보물이 영국에서 발견되었다- 둘 다 서포크 지역이었고, 서로 60마일 떨어져있었다. 그것들은 둘 다 지금은 대영박물관에 있다. 밀덴홀에서 나온 것은 거의 완전하게 인류와 함께 장식되어있다- 고대의 모든 오래된 인물들, 바다의 신들, 네레우스 등등. 그림은 약간 불안정한데, 고대 말에서 오늘에까지, 인간에 대한 믿음은 실속 없이 자라왔으며, 오래된 윤곽은 그다지 확신도 없이 채워져 왔기 때문이다. 다른 보물은 써튼 후의 제례용 배에서 나왔다. 2백년이 지났다- 아마도 조금은 더- 그리고 인간은 거의 사라졌다. 인간이 보인다면, 그는 장식적인 하찮은 것이거나 (판독이 어려운) 상징이었다. 그리고 사람 대신에 새나 동물이 멋있었다- 암흑의 시대의 인간은 기독교 카드를 만드는 사람들보다는 새들에 대해 덜 방어적인 관점을 가졌다고 덧붙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대상이 우리가 야만적이라 부르는 것이라 해도, 재료를 고르는 감각이나 기술은 더 훌륭하고 더 당당하며, 밀덴홀 보물에서보다 기술적으로 더욱 앞서있다.
금이나 인조 보석에 대한 이러한 사랑, 그들이 이상향을 반영하고, 어떤 종류의 지속적인 마법을 가졌다는 이러한 느낌은, 암흑이 생존을 위해 싸우던 시간이 끝났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서구 문명이 직공들에 의해 지켜졌다는 것은 논란이 있다. 방랑자들이 직공들을 데리고 갈 수도 있었다. 대장장이들이 장식품들만큼 훌륭한 무기도 만들었기 때문에, 그들은 방랑시인의 칼립소가 그 용기를 찬양하듯이, 지도자의 위상에 필요한 존재였다.
그러나 책의 인쇄는 좀 더 안정된 조건을 필요로 했고, 두 세 개의 영국 섬 일부가 제공되었다. 당분간이라고 상대적으로 안전했기 때문이다. 그 중 하나가 아이오나 섬이다. 안전하고 성스러웠다. 어렸을 때 나는 거의 매년 이 섬에 가곤 했는데, 매번 ‘이 곳에는 어떤 신이 계시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델파이나 아시시 같은 다른 성스러운 곳에서처럼 외경심 때문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이오나는 내가 평화와 내면의 자유를 느낀 어떤 다른 곳 이상의 무언가을 주었다. 무엇이 그렇게 했을까? 빛, 모든 곳에 흘러넘치는 빛이었을까? 그 땅이 놓인 모양은, 뮬의 성스러운 언덕에 이어지는데, 이상하게도 그리스처럼, 심지어는 델로스처럼 보인다. 짙은 와인 색 바다와, 하얀 모래와 분홍 대리석의 조화 때문일까? 아니면 2백년간 서구의 문명을 생존케 한 그 성자들을 기억하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