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광덕사 호도나무..2013.2.4.월
호도나무의 시배지인 천안 광덕사를 둘러 본 하루
2013.2.4.월
아침에 눈을 뜨니 세상은 온통 하얗다.
주차된 자동차 위에도,
도로에도 흰눈이 두텁게 쌓여 있었다.
2월에 찾아 온 하얀천사들의 축제가
세상천지에서 하얀찬가로 울려 퍼진다.
일정이 잡힌 중요한 일이 있어
아침식사 마친 후 준비하고 나가려던 참에
"따르릉" 전화음이 울린다.
폭설로 그 일정이 취소되었다는 연락이다.
잘 됐다 싶었다.
얼마전에 용산에서 출발하는 천안행 급행전철을 타고
천안 광덕사를 가려다 혹한으로 미뤘던 그 산사를 찾아 가기로 한다.
아름다운 설경을 담을 생각하니 하얀기운이 신명으로 들어 앉는다.
하늘엔 찬란한 햇님이 방실거리며 하얀 세상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하얀세상을 걷노라니
마음속에 끼어 든 때가 그 하얀 빛에 말끔히 벗겨지는 듯 했다.
하얀마음으로 하얀풍경이 있는 산사로 "핫둘" 출발이다.
인터넷으로 검색한 열차 시간에 맞추어 집을 나선다.
용산에 도착해 전동열차시간표부터 확인하며 "찰칵!" 담는다.
용산에서 천안역까지 가는 10시24분발 급행전철을 탔다.
많이 내린 눈 때문인지 시발점인 용산역에 탑승객들이 많지 않아
빈자리가 많았다. 가산디지털단지까진 일반열차와 똑같이 정차했다.
가면서 자리가 채워지고.....
달리는 열차내에서 담은 차창밖 하얀 풍경들..
머지않아 돌아 올 새봄엔 파릇파릇 모들로 채워질 들녘에
아직 겨울이, 하얀겨울이 하얀 미소를 보내며 잘 다녀오라 한다.
1시간30분 소요로 전철은 천안역에 도착하였다.
천안역에 도착해 1번 동편 중앙시장 시내버스 타는 방향으로 나가는
긴 복도 벽면에 걸린 천안의 여러 문화유적들이 내 동공에 잡힌다.
벽면에 걸린 사진속 천안시 전경을..
천안시는 석기시대의 유허(遺墟)가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사람이 살아 온 유구한 역사를 지닌 곳이다.
삼국시대에 우리 고장은 위례성→사산(蛇山)과 대목악군 및
감매현(甘買縣)등의 여러 고을로 갈라져 고려시대까지 지속되었고,
그 중간에 고려 태조왕건이 이곳을 거점으로 후삼국을 통일할 무렵에
사산에서 도솔(兜率)의 땅과, 대목악군(대록군)에서 풍세ㆍ광덕을,
그리고 탕정(湯井)의 일부를 합쳐 천안부(天安府)를 세우니 이때부터
천안이라는 지면이 불리우게 되었다.
2004년 12월초, 50만 인구를 돌파한 천안시는
중부권의 문화를 주도해 가며, 서해안 시대의 중요 거점 도시로
교육, 교통, 유통, 공업, 스포츠 도시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으며,
민족사의 전통과 영광의 새 장을 열게 된 독립기념관을 안고 있는
축복 받은 땅으로, 충절의 고장으로, 삼거리 문화를 활짝 꽃 피워가는
아름다운 고장으로 성장하고 있다.-윗글 일부옮김
천안문화재 및 관광안내
천안역에서 담은 전동열차시간표..
오후4시54분 천안발 용산역착 급행열차를 점찍어 두고
천안역을 빠져 나가다가
시원히 펼쳐 진 창밖 눈덮힌 하얀 선로풍경에 매료된다.
좌측 중앙시장 시내버스 타는곳으로 화살표 따라 나간다.
역전 앞 바로 앞에 광덕사로 가는 시내버스탑승장이 있었다.
돋보기 안에 보이는 600번과 601번 버스가 광덕사 가는 버스다.
광덕사까진 40여분 소요이며 배차 시간은 30분이라 한다.
탑승장소를 확인하곤 점심식사를 천안역에서 하기로 하곤 차도를 건넌다.
골목을 들어와 이리저리 살피다가
좌측골목에 위치한 화성식당이 눈에 띄었다.
내장탕 6천냥..정성들인 반찬들을 맛스럽게 "냠"했다.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점심식사 손님들로 방안 한가득으로 좀 기다렸다가
식사를 하게 되었다.
메뉴에서 보듯이 식사비 싸고 맛있는 곳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오천냥 된장찌게엔 우리보다 밑찬이 더 잘 나왔다.
천안역에 가시면 그 곳에서 한끼식사 뚝딱하셔도 좋을 것 같군요.
한번 드신 사람은 또 찾게 될 식당이지 싶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길건너 버스승차장으로 오니
마침 600번 버스가 도착해서 기다림없이 바로 타게 되었다.
배차시간이 30분, 운좋게도 바로 만났으니 30분 시간벌이를 한 셈이다.
그때 시간이 오후 1시5분이었다.
천안역에서 우리를 태워다 준 600번 버스다.
손님들을 내려주고 천안으로 다시 나갈 방향을 트는 중이다.
광덕사입구가 종점인 이곳에서 정시와 30분에 천안역행버스가 출발이란다.
입구에서 광덕사까진 300m, 장군바위까진 3km이다.
우리는 광덕사 사찰까지만 산책이어서 300m만 가면 된다.
광덕사는 소박한 작은 시골마을에 위치해 있었다.
음식점도 여러 곳 있었고, 멀지 않은 곳에 펜션도 있었다.
이곳엔 눈이 많이 오진 않았나 보다.
날씨도 춥지 않아 도로엔 눈이 녹아 마치 비라도 온 듯
눈이 녹아 물로 푹 젖어 있었다.
철철철 흐르는 계곡 물소리가 기운을 산뜻하게 북돋아 준다.
어디 잠시 쉬어가며 부서지는 하얀 계곡물과 인사라도 나눌까?
광덕사 입구에 있는
사미대백련지(沙彌臺白蓮池) 연못앞에 세워진 비석
사미(沙彌)란
출가하여 10계를 받아 지내는 나이 어린 남자.
절에서 먹는 음식을 보고 날아드는 까마귀를 쫓으며 또 파리 따위를
날리는 사미라는 뜻으로 일곱살에서 열세살까지를 구오(驅烏)사미라 하고,
구족계(具足戒)를 받지 못하여 사미이기는 하지만 대승(大僧)이 될 만한
나이이므로 이름만의 사미라는 뜻에서 스무살에서 일흔까지를
명자(名字)사미라 하며, 사미로서 올바르게 수행할 수 있는
열네살부터 열아홉살까지를 응법(應法)사미라고 한다.
스님이 되기 위해 출가했지만,
아직 20살이 안된 나이가 어린 스님을 사미승이라고 한다.
사미대는 승려가 되기 위해 들어가는 문이라고 한다.
*네이버 여름날 블로그에서
좌: 고려승상영밀공유청신공덕비(高麗丞相英密公柳淸臣功德碑)
우: 호도전래사적비(胡桃傳來史蹟碑)
호도전래사적비(胡桃傳來史蹟碑) 뒷면 내용
계곡을 끼고 있는 광덕사 일주문으로 든다.
태화산 광덕사 일주문
내고장 특산물 광덕호두
이 고장의 "호두"는 고려충열왕 16년(1209년) 류청신 선생이 원나라로부터
왕가(王駕)를 모시고 올때 열매와 묘목을 가져와 묘목은 광덕사 경내에 심고,
열매는 광덕면 매당리 고향의 집앞 뜰에 심은 것이 시초이다.
광덕산 등산안내도
광덕산 산악위치 안내표지판
거울에 비친 제7경 광덕산 설경 그림
광덕사 안내도
광덕사 연혁
湖西第一禪院
일주문 뒷면 현판
좌측길은 태화산 안양암 우측길은 광덕사 천년지장도량이다.
그러나 두길이 다 통해져 있다. 우린 좌측길로 들어선다.
광덕사 표지석
광덕사(廣德寺)
충청남도 천안시 광덕면 광덕리 광덕산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47호로 지정된 천불전 안에는 천불이 그려진
후불탱화(後佛幀畵) 3점이 있어, 전체 3,000불의 그림이 장엄한
기운을 풍기고 있다. 이 탱화는 가로 28자, 세로 35자의 거대한 규모이다.
이 절에는 진산이 832년(흥덕왕 7)에 가져왔다는 불치(佛齒) 1매와
사리 10과, 승가리(僧伽梨) 1령(領)과 불좌(佛座) 1병 등을 비롯하여,
금·은·흑자로 된 『법화경』과 금자사적기(金字寺蹟記) 및
세조어첩(世祖御帖) 등의 귀중한 문화재가 있다.
고려 말기의 사경(寫經)으로 추측되는 금은자법화경(金銀字法華經)은
비록 낙질본(落帙本: 한 질을 이루고 있는 책에서 권책 수가 빠진 것)이기는
하지만 여러 권이 남아 있는데, 그 중 6책이 보물 제390호로 지정되어
현재 불교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보물 제269호와 제270호로 지정된
마곡사의 금은자법화경도 원래는 이 절에 소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금자사적기는 다른 데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조선시대의 작품이며,
세조어첩은 1457년(세조 3) 세조가 온양 온천에 왔다가
이 절의 부처님 치아와 사리를 친견한 뒤, 광덕사와 개천사(開天寺)의 부역을
면제시켜주고, 위전(位田: 위토전)을 사급(賜給)한다는 교지를 친서한 것이다.
이 절에서 동북쪽으로 조금 올라간 곳에는
진산의 부도 등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된 부도 4기가 있으며,
천불전 우측에는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0호로 지정된 삼층석탑이 있다.
또한, 이 절 일대에는 호도나무가 많기로 유명한데, 대웅전 앞에 있는 호도나무는
700여 년 전 유청신(柳淸臣)이 중국에서 처음 들여와 심은 것이라고 전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440살된 보호수 느티나무 옆으로 어느등산객 부부가 지나간다.
福은 검소함에서 생기고,
德은 겸양에서 생기며,
智慧는 고요히 생각하는 데서 생기느니라.
마음도 다스리며 오르는 길이다.
광덕사 방향으로 먼저 향한다.
전통찻집에서 차나 한잔하고 가라는데 그냥 지나쳐서..
극락교를 지나서
나무 뒤로 범종각이..
광덕사 보화루앞 호도나무가 나목으로 하늘로 향해 있다.
광덕사 보화루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2층 누각으로 바깥에서 보면 2층이지만
대웅전 쪽에서는 1층 건물로 보인다. 아래층은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통로로 사용되며
출입문에 불법을 수호하는 반 나신의 금강역사가 그려져 있다.
호두나무 전래지 광덕사..호두나무가 우측에 자리하고 있다.
이 호도나무는 400살 정도 된 나무이다.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 온 나무로서
문화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한다.
호두나무 3m 앞에 세워진 '유청신 선생 호도나무 시식지'란 비석이다.
광덕사 대웅전앞에서 내려다 본 호두나무
대웅전의 정면 계단 앞 좌우에 석사자 1구씩 서 있다.
돌의 풍화가 심하여 사자의 모습을 찾아 보기 어렵다.
대웅전에서 바라 본 보화루
대웅전에서 바라 본 하얀 경내 여기저기 둘러 본다.
범종각과 보화루가 하얀 겨울뜰에 호젓하게 서 있다.
지붕위의 눈이 녹아 내린
낙숫물이 만들어낸 멋진 무늬가 예술작품으로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감로수도 한 바가지 쭈욱 들이킨다.
천불전으로 가는 길이 시원히 넓게 펼쳐져 있다.
산신각으로 오르는 운치있는 돌 계단
산신각
산신각에서 바라본 건너편 천불전
부도탑으로 오르는 산길에서 만난 흘러 내리는 물
무명 부도
나란한 3기 부도위에 작게 보이는 1기의 부도를 크게 옮김
연꽃무늬를 새긴 아래받침돌 위에 8각의 가운데받침돌을 올리고
세 줄의 연꽃잎을 새긴 윗받침돌을 얹어 기단을 마련하였다.
가운데받침돌은 8면마다 신장상(神將像:불교의 법을 지키는 신)을
1구씩 돋을새김 하였는데, 그 수법이 대담하고 우수하다.
탑신은 종모양을 하고 있어서 둥글고 길쭉하며,
꼭대기에는 보주를 얹어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부도탑에서 바라본 풍경
5층석탑
스리랑카에서 온 진신사리와 버마에서 온 패 옆경을 봉안한 5층석탑
천불전 옆에 위치한 慈光堂을 멀리서 클로즈업..
풍경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든 담이 이채롭다.
다리 건너면 천불전이다.
천불전은 모든 중생이 다 부처요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의미로
천불을 모신 전각이다.
다리아래 아취가 둘인데
좌측은 자동차와 사람이, 우측은 계곡물이 지나는 물길이 특이하다.
천불전 가는길의 바위에 양각된 금강역사상이 호위를 해 주듯 한다.
뒷면..
천불전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에 바람이 스치우니
청아한 소리가 고요한 산사를 흔든다.
그 풍경에 왜 물고기를 매달았는지...
물고기 뒤로 펼쳐진 푸른 하늘은 곧 푸른 바다를 뜻하고
그 바다에 한마리의 물고기가 노닐고 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한 마리 물고기를 매달므로써
그 곳은 물이 한없이 풍부한 바다가 되었다.
그 풍부한 물은 어떠한 큰 불도 능히 끌수 있다.
바로 나무로 지은 목조건물을
화재로 부터 보호한다는 상징성을 담고 있다.
또 하나의 이유는
물고기는 깨어 있을 때나 잠잘때 눈을 감지 않을 뿐 아니라
죽어서도 눈을 감지 않듯이 수행자도 물고기처럼
항상 부지런히 도를 닦으라는 뜻을 상징한다.
자광전
천불전 앞에서 전면을 향해 찰칵!
천불전 처마끝에서 떨어지는 雪水,
눈 녹아 떨어지는 물이
또 자갈을 덮은 눈을 녹여주니
자갈이 싱싱한 몸을 들어내며 조잘조잘 좋아라 한다.
하늘의 물고기가 세찬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딸랑딸랑 목청을 높이니 정신이 번쩍 든다.
천불전 관람을 마치고 내려오다가 만난,
흘러 내리는 물에서 봄의 전주곡이 들려 오는 듯 했다.
길따라 발걸음 되돌려 경내로 다시 이동한다.
광덕사 적선당과 대웅전
범종각
새벽 예불엔 범종을 28번 치며 저녁 예불엔 33번을 친다.
28번 치는 까닭은 욕계의 6천과 색게의 18천 그리고 무색계의 4천까지
모두 범종 소리가 울려서 중생들의 번뇌를 쉬게 해 준다는 의미다.
그리고 저녁에 33번 치는 종은
도솔천 내의 33구역까지 울리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그림바위 글에서 옮김
사찰 언덕에 기묘한 나무가 있어 찰칵!
보물 1247호 광덕사소장 조선시대사경
충남 천안 광덕사에 전해지는 사경(寫經)이다.
사경이란 불경의 내용을 정성스럽게 옮겨 적고,
화려하게 장식하여 꾸민 것을 말한다.
백지에 먹으로 쓴 ‘부모은중경’과 ‘장수멸죄호제동자다라니경’으로
병풍처럼 펼쳐서 볼 수 있는 형태이다.
부모은중경은
부모의 은혜를 크게 10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은혜를 갚기 위해
공양하며 경전을 읽고 외울 것을 권장하고 있다.
다른 경전과 달리 각 내용에 따른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장수멸죄호제동자다라니경은 부처의 힘을 빌리거나 수행을 통해
모든 죄악을 없애고 장수하는 법에 대한 가르침이다.
부모은중경의 끝에 남은 기록을 통해
조선 태종의 둘째 아들 효령대군(1396∼1486)이 부인·아들과 함께
시주하여 만든 책임을 알 수 있다.
조선 전기 불교 진흥에 큰 역할을 했던
효령대군의 불교신앙을 살펴볼 수 있으며,
불교 문화사 및 서지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출처:roks821.egloos.com
보물지정기념비
'효령대군 사경 부모은중경장수태골경 합부'
부모은중경의 내용은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말씀이며,
태골경은 인과 경으로 생명 존엄을 말씀하신 경으로
이 시대의 심성교육에 필요한 인류의 교과서인 것이다.
기념비를 돌려가며 담았다.
사찰 관람을 마치고 돌아 나오면서 사찰풍경을 다시 담으며..
광덕산 등산을 하려면
좌측돌에 쓰여진 등산로 화살표 표시대로 가면 되겠다.
하얀 겨울속의 푸르름이 싱그럽다.
안양암으로 돌아 나오면서..
광덕사 안양암은
광덕사 바로 아래에 있는 암자로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처라 한다.
안양암의 극락전
잘 띄워지고 있는 메주를 볼만해서 담았다.
안양암(安養庵) 출입문
안양암(安養庵) 출입문에도 그려진 주인공은
금강역사(金剛力士) 또는 인왕역사(仁王力士)라고도 부른다는 불교의 수호신이라
알고 있을 뿐이다.
사찰 관람을 모두 마치고 광덕사 입구로 내려와
일주문 앞에서 포즈를 취한 필자의 모습
입구엔 음식점이 여러곳 있었다.
관람객들이 많지 않아 식당들이 한가하다.
두시간의 자유로운 관람을 마치고 나니 오후4시 10분전이다.
천안행 버스가 정시와 30분에 출발한다고 내릴때 버스기사님이 말해 주었다.
시계도 보지 않은 쫓기지 않은 한가로운 관람이었는데 시간이 절로 맞추어졌다.
천안역 급행전철 시간은 4시54분이니 시간은 오토로 맞춰진 셈이다.
600번 버스는 정확하게 4시 정각에 종점인 광덕사 입구로 들어 와
우리와 몇사람 태우곤 40분만에 천안역에 도착되어 예정시간에 맞춰
4시54분발 용산행 급행열차를 탈 수 있었다.
예정대로 착착 진행되어 하루 나들이를 참으로 유쾌히 보낸 복된 날이었다.
전철이용 당일나들이의 행복을 느끼며..
다음행선지는 어디로 할까 생각도 해 보며 하루의 여정을 마친다.
*[교통편]
* 네비게이션: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광덕리 640번지
*지면 : 광덕사
*차량(고속도로)
- 남천안IC-광덕사 (약20분소요)
- 남천안IC-대전,연기방향 우회전후 약3키로직진-소정리 고가차도 넘어서
풍세,광덕사방향으로 우회전 -광덕산 이정표 따라 약10분소요
*광덕사 홈피에서
광덕산
높이는 699m이다. 아산시 송악면과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광덕리의 경계에 있는 천안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예로부터 산이 크고 풍후(豊厚)하여 덕이 있는 산이라 하였다.
명산으로서 나라에 전란이 일어나거나 불길한 일이 있으면 산이 운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광덕산 부근에서 생산한 호두는 껍질이 얇고 알이 꽉 차서
천안시의 대표적인 명산물이다.
산에는 광덕사, 잣나무 군락지, 장군바위, 강당사 등의 볼거리가 많다.
광덕사에는 고려사경(보물 390)·광덕사 대웅전(충남문화재자료 246)
·광덕사 삼층석탑(충남유형문화재 120) 등의 문화재가 있고,
이밖에도 호도나무 전래비와 조선시대 기생 김부용의 묘가 있다.
주변에는 아산 현충사와 온양 민속박물관이 있어 둘러볼 만하다.
천안에서 풍세면과 광덕면을 지나 약 20분 정도 달리면
광덕사 주차장에 이른다. 네이버 지식백과
사진및편집찬빛/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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