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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페.톡Cell)회원에게 함께 있을 지어다▷
💖丙午年 육체의 소욕(所欲)을 억제하고,성령의 열매를 맺는 해(1/3)💖
† 구약(舊約)☆(律法書)
*축복(祝福)* 해방동이 행전(行傳) (聖潔)⇨(正直)⇨(觀心)⇨(信賴)⇦(義理)⇦(順從)
창9:18-29절) 노아의 실수(失手)와 저주(咀呪)
부모라고해서 다 완전(完全)한 삶을 살 순 없습니다. 때로는 자식(子息)들 앞에서 실수(失手)를 하기도 하고, 자식(子息)들 앞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자식(子息)들 한테는 두 가지 반응(反應)이 나타납니다.
어떤 자식(子息)은 아버지의 실수(失手)를 마음속 깊이 생각(生角)합니다. 즉 아버지의 약(弱)한 점과 부끄러운 부분(部分)을 가슴 깊이 새겨서 *자신(自身)은 절대로 그런 실수(失手)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실제(失題)로 아버지의 약(弱)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성장(成長)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미워하고, 증오(憎惡)하면서도 자기(自己)가 가장 미워하는 바로 그 모습을 닮아가는 자식(子息)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속담(俗談)에 *욕(辱)하면서 닮아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며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독(至毒)한 시어머니 밑에서 훈련(訓練)받은 사람이 나중에 자기 며느리에게는 친정어머니 이상(以上)으로 잘해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즉 자기(自己)가 엄(嚴)한 시어머니 밑에서 당해보니까 *다시는 이런 나쁜 시어머니가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어머니를 욕(辱)하면서도 자기(自己)는 더 지독(至毒)하게 며느리를 구박(驅迫) 하고, 못살게 구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실수(失手)를 보고 미워하는 이유(理由)가 무엇일까? 또 욕(辱)하면서도 그대로 닮아가는 이유(理由)가 무엇일까? 그것은 자기(自己) 안에 그 모습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기(自己) 안에 있는 좋지 못한 모습을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 자체 (自體)를 아주 싫어하고, 미워합니다. 그러면서도 자기(自己)안에 있는 기질(器質)은 바꾸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自己)의 나쁜 기질(器質)이 다른 사람 안에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철저하게 반성 (反省)하고, 고쳐서 다시는 그런 삶을 살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本文) 말씀은 의(義)로운 사람 노아가 실수(失手)한 사건(事件)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것도 보통 실수(失手)가 아니라, 엄청난 실수(失手)였습니다. 홍수(洪水)가 끝난 후(後), 노아는 농사(農事)를 지어서 수확(收穫)한 포도(葡萄)로 포도주(葡萄酒)를 담갔습니다.
그런데 그 포도주(葡萄酒)를 얼마나 마셨는지. 그만 취(醉)해서 알몸으로 자기 장막(帳幕) 안에 쓰러져 잠이 들었습니다. 그 추(醜)한 꼴을 함이라는 아들이 보았습니다. 함은 아버지의 이 모습을 보고, 다른 두 형제(兄弟)에게 가서 아버지를 비난(非難)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두 아들 셈과 야벳은 함처럼 행동(行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지 않기 위해서 옷을 양 어깨에 걸치고. 뒷걸음 질 쳐서 아버지의 벌거벗은 알몸 위에 옷을 덮은 다음 조용히 물러갔습니다.
나중에 술이 깬 노아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問題)는 거기서 그친 것이 아닙니다. 노아는 이 일로 인(因)하여 함의 아들 가나안을 저주(咀呪)했습니다. 가나안은 이 사건(事件)과 아무런 상관(相關)이 없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함의 아들 가나안을 저주(咀呪)하며. *모든 사람의 종(從)들의 종(從)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셈과 야벳을 축복(祝福)하면서 *가나안은 이들의 종(從)이 될 것'이라고 몇 번씩이나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노아의 세 아들로부터 *백인(白人)종(從), *황인(黃人)종(從), *흑인(黑人)종(從),이 나왔는데. *흑인(黑人)종(從)이 바로 함의 후손(後孫)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즉 *흑인(黑人)들은 저주(咀呪)를 받아 종(從)들의 종(從)이 되어야 하니까 이들이 노예(奴隷)로 팔려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지요.
창세기의 이 한 구절(句節)을 잘못 해석(解釋)하는 바람에 얼마나 *많은 흑인(黑人)형제(兄弟)들이 억울하게 무시(無視)당하고, 착취(搾取)당했는지'모릅니다.
그러나 함의 아들이 저주(咀呪)를 받았다. 해서 흑인(黑人)들이 무시(無視)당해도 되고. 가난(家難)해도 되며, 업신여김을 받아도 된다는 생각(生角)은 완전(完全)히 잘못된 성경(聖經) 해석(解釋)입니다. 또 실제(失題)로 함의 자손이 흑인(黑人)이라는 증거(證據)도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本文)을 통하여 다음 몇 가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심리적(心理的)인 부분입니다. 함은 아버지의 그런 부끄러운 추태(醜態)를 싫어했습니다.
그런데도 함과 그의 자손(子孫)들에게는 아버지에게 부끄럽게 여겼던 바로 그 *부분(部分)이 유난(留難)히도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특히 가나안은 성(性)에 대(對)해 굉장히 민감(敏感)하고. 타락(墮落)한 모습을 보여 주는데, 우리는 *이 점을 살펴볼 필요(必要)가'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노아의 축복(祝福)과 저주(咀呪)가 단순(單巡)히 감정적(感情的)인 보복(報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事實)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이 말을 통(通) 해 앞으로 인류(人類)를 어떻게 구원(救援)하실 것인지? 에 대(對)한 대략적(大略的)인 계획(計畫)을 밝히고 계십니다.
Ⅰ.노아의 실수(失手)(상)
9:20-21절)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醉)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어떤 사람들은 *노아가 포도주(葡萄酒)를 전혀 마셔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 술이 얼마나 지독(至毒)한지 모르고, 자꾸 마시다가 실수(失手)했다'고 해석(解釋)합니다. 이것은 노아를 너무 순진(純眞)한 사람으로 생각(生角)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노아는 인류(人類) 최초(最初)로 포도주(葡萄酒)를 당근 사람인 동시에 인류(人類) 최초(最初)로 포도주(葡萄酒)에 취(醉)해서 추태(醜態)를 부린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대부분(大部分)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生角)하지 않습니다.
포도주(葡萄酒)는 홍수(洪水) 전(前)에도 있었습니다. 노아는 최초(最初)로 포도주(葡萄酒)를 담근 것이 아니고, 홍수(洪水) 전(前)에 있었던 포도주(葡萄酒) 맛이 생각(生角)나서 담근 것 같습니다.
노아가 포도주(葡萄酒)를 담근 이유(理由)가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포도주(葡萄酒)가 필요(必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포도주(葡萄酒)가 사람에게 얼마나 큰 즐거움을 줍니까? 처음에 노아는 좋은 일이 있을 때, 자식(子息)들과 함께 마시려고. 포도주(葡萄酒)를 담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問題)는 왜 혼자서 포도주(葡萄酒)를 이토록 많이 마셨으며, 급기야는 취(醉)해서 옷을 홀딱 벗고 벌거벗은 채로 쓰러져 자고 있었느냐?하는 것입니다.
이유(理由)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곧 노아의 방심(放心)입니다. 홍수(洪水) 전(前) , 노아의 삶은 어떠했습니까?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 앞에서 올바로 살려고 몸부림 쳤습니다. 자기(自己) 눈앞에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審判)이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홍수(洪水) 직후(直後)에는 어떠했습니까? 이전(以前)과 마찬가지로 긴장(緊張)의 연속 (連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또다시 홍수(洪水)가 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아는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살려고 노력(努力)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狀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는 홍수(洪水)로 사람들을 멸망(滅亡)시키지 않겠다,고 약속(約束)하셨고, 그 약속(約束)대로 비가 올 때마다 무지개가 하늘에 나타났습니다.
이제는 농사(農事)도 어느 정도 잘 되고, 자식(子息)들의 일도 모두 잘 되는 것 같습니다. 즉 이제는 더 이상(以上) 긴장(緊張)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 결과(決科)가 무엇입니까? 비참(悲慘)한 실패(失敗)였습니다.
마치 노아의 마음속에 홍수(洪水)가 다시 터진 것 같았습니다. 한번 포도주(葡萄酒)를 입에 대기 시작하자. 그동안 포도주(葡萄酒)에 굶주려 있었던 노아의 육체(肉體)가 한없이 포도주(葡萄酒)를 불러들였습니다.
노아는 포도주(葡萄酒)만 마시는데서 그치지 않고, 처음에는 생각(生角)조차 못했던 선(線)까지 가고 말았습니다. 노아가 왜 알몸이 되었겠습니까? 단지(但只) 포도주(葡萄酒)를 마시니까 열이 나서 옷을 벗다 보니, 알몸이 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에게는 어떤 성적(性的) 충동(衝動)이 있었던 것입니다. 노아는 방심(放心)했습니다. 이제 홍수(洪水)는 끝나고, 무지개는 계속 떠오르고 있습니다. 노아의 삶에는 문제(問題)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즉 하나님의 진노(震怒)는 끝났고. 자연(自然)도 질서(秩序)를 회복(回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自身)은 늘 은혜(恩惠) 충만(充滿)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아가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은 아직도 자기(自己) 안에 죄(罪)성(性)이 남아 있다는 사실(事實)입니다. 그는 사탄(詐誕)이 아직도 여전히 활동(活動)하고 있다는 사실(事實)을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두 가지 현상(顯賞)으로 나타났습니다.
우선 노아 안에 있는 죄(罪)성(性)은 술을 절제(切除)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결국(結局) 자신(自身)이 의도(意圖)하지 않았던 선(線)까지 가고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옷을 벗겠다고 생각(生角)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술 맛만 보고. 뚜껑을 덮으려고 했는데, 그 선(線)에서 그치지 않고, 어떤 성적(性的)인 범죄(犯罪)까지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사탄(詐誕)은 아들의 입을 통(通)하여 노아를 여지없이 정죄(定罪)했습니다. 이제는 후회 (後悔)해도 소용(所用)이 없습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이것은 비단 노아만의 문제(問題)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 모두의 문제(問題)이기도 합니다.
내 안의 존귀(尊貴)한 모습이 파괴(破壞)되며,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경멸(輕蔑)과 비난(非難)이 들어옵니다. 남자(男子)의 경우, 아내로부터 경멸(輕蔑)에 찬 공격(攻擊)을 받게 됩니다. 여자(女子)들은 술 취(醉)한 남자(男子)들을 믿지 않습니다. 즉 술을 마시고. 헛소리를 지껄여 대는 남자(男子)들을 여자(女子)들은 다 싫어하고 경멸(輕蔑)합니다.(경멸=깔보고 업신여김)
오늘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신앙생활(信仰生活)에는 휴식(休息)이나, 방학(放學)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가끔 보면. 교인(敎人)들이 자기(自己) 혼자 방학(放學)을 선포(宣布)합니다. 그러나 방심(放心)하면, 반드시 본문(本文)과 같은 결과(決科)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信仰)은 늘 영적전쟁(靈的戰爭) 상태(狀態)입니다.
◇근신(謹身)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對敵) 마귀(魔鬼)는 우는 사자(獅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者)를 찾나니(벧전5:8)
그러므로 깨어서 자기(自己) 마음을 지켜야 하고, 내 마음이 지금 어디서 어디로 움직이고 있는지. 예의주시(例義注視)하지 않으면, 한순간에 집중(集中) 포격(砲擊)을 맞아서 폐허(廢墟)가 되고 맙니다.
오늘날 영적(靈的)으로 혼탁(混濁)한 시대(時代), 우리는 우리의 마음 상태(狀態)가 얼마나 중요(重要)한지 잘 모릅니다.
건강(健康)이 좋지 못하면, 고민(苦悶)하지요. 집안의 경제사정(經濟事情)이 좋지 못하면, 밤에 잠도 못자면서 걱정을 합니다. 또 학생들은 시험을 망치면, 밤새 고민(苦悶)합니다.
그러나 자신(自身)의 마음이 어떤 상태(狀態)에 있는지에 대(對)해서는 그렇게 깊이 생각(生角)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重要)한 것은 지금 내 마음이 어떤 상태(狀態)에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축복(祝福)을 받는 것이 곧 이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병(病)들면, 하나님과 교통(交通)할 수 없고,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祝福)이나, 위로(危路)도 전혀 받을 수 없습니다. 마음이 교만(驕慢)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선(善)한 것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聖經)은 거의 대부분이 우리 마음을 살피게 하고, 이 마음 상태(狀態)를 건강(健康)하게 치료(治療)받게 하는데 목적(目的)을 두고 있습니다.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驕慢)한 것과 악인(惡人)이 형통(亨通)한 것은 다 죄(罪)니라(잠21: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들의 마음은 어떤 상태(狀態)에 있습니까? 하나님이 내 마음에 임(臨)하실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사람입니다. 내 육체(肉體)는 병(病)들고. 주머니에 돈은 없지만, 내 마음이 건강(健康)하다면, 즉 하나님이 임(臨)하시기에 부족(不足)함이 없다면, 그 사람은 모든 축복(祝福)을 다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몸이 건강(健康)하고, 경제적(經濟的)으로는 부유(富裕)하지만, 마음이 병(病)들어 있다면, 그 사람은 진정(眞正)한 축복(祝福)을 하나도 받을 수 없습니다. 즉 우리 안에 있는 약간(若干)의 교만(驕慢)이나, 음욕(淫慾)이나, 허탄(虛誕)한 생각(生角)들이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榮光)을 몰아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항상 마음속에서 생선(生鮮) 썩은 냄새가 납니다. 썩어서 큼큼한 냄새가 나는데도 자신(自身)은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각(生角)은 굉장히 무서운 것입니다.
여러분!,지금 생명의 양식을 읽으면서 무엇을 생각(生角)하십니까? 5월분 1만원 건축헌금? 규칙엔 전혀 관심이 없는 좀비들보다 돈에 민감한 자들은 국세청과 세무소 같습니다.1원도 거치지 않았는데 *신고하라*하네요.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의 마음 상태(狀態)를 보시고. *회(灰)칠한 무덤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겉은 흰색으로 칠해서 아름답지만. 속은 온갖 더럽고 썩은 것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은혜(恩惠)가 임(臨)하면, 어떻게 됩니까? 내 마음이 치료(治療)됩니다. 내 마음이 치료(治療)되면,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축복(祝福)을 다 받을 수 있습니다. 또 죄(罪)를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생각(生角)을 지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생각(生角)을 지키는 그것이 능력(能力)입니다. 자기(自己)의 생각(生角)과 마음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世上)에 지키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中)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생명(生命)의 근원(根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그러나 한순간(瞬間)이라도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노아처럼 순간적(瞬間的)인 실패(失敗)를 하게 됩니다.
우리는 혹시 시궁창에서 살고 있지 않습니까? 온 몸에서 썩은 냄새가 나고. 경건(敬虔)의 능력(能力)은 다 잃어버렸으면서도, 수입(收入)이 꼬박꼬박 들어오고 있고, 생활(生活)에 다른 문제(問題)가 없으니까 평안(平安)하다고 생각(生角)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위험(危險)한 생각(生角)입니다.
여러분!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내 마음이 정결(淨潔)하고, 건강(健康)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축복(祝福)을 다 받을 수 있습니다. 혹시 지난 주간(週刊)에 노아처럼 자기(自己) 자신(自身)을 믿었다가 실패(失敗)한 경험(經驗)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 시간(時間) 조용히 주(主)님 앞에 나의 모든 추(醜)한 부분을 고백(告白)하십시오.*깨끗하게 해달라'고 주(主)님께 매달리십시오. 즉 *나에게 건강(健康)이 회복(回復)되고, 경제력(經濟力)이 회복(回復)되는 것보다도 이 썩은 마음을 회복(回復)시켜 주십시오'하고 기도(祈禱)하십시오.
심령(心靈)이 썩었음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썩은 부분(部分)을 고침 받지 않는 자(者)는 함처럼 노예(奴隸) 중(中)의 노예(奴隸)로 살게 될 것입니다.아-멘 찬송가 420장 *너 성결(聖潔)키 위해*
| 오늘의 묵상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凡事)에 감사(感謝)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向)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가 5:16-18) |
💖진리의 복음*축복의 통로💖
†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소통의 시대, 친절한 댓글 소통☞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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