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기 2568년 4월 14일 4월 둘째주 성지순례법회 (법회소식 1477호)
군위 제 2 석굴암
성지순례로 예경올리는 제2석굴암은 대구광역시 군위군 부개면 남산리 지역의 신라 석굴사원인데, 제2석굴암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며 1962년 12월 국보 제 109호로 지정된 곳이다. 석굴안의 삼존불은 원각의 굴안에 안쪽벽에 붙여서 아미타불 대세지보살 관세음보살의 삼존불이 모셔져있다.
석굴사원은 7세기 중엽~ 말엽경에 이 지역의 신라인들이 천연 절벽의 거대한 자연 암벽에 생성된 자연동굴을 뚫어 조성한 석굴사원으로, 훗날 경주시 토함산에서 신라인들이 조성한 석굴암(774년)의 모태가 된 곳으로 유명하다. 오랫동안 존재가 전혀 드러나 있지 않다가 1962에 처음 발견되었고, 이후 학계의 조사결과 경주 석굴암보다 100여 년 일찍 조성되었지만, 문화재적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고 한다.
이 제2석굴암을 처음 조성한 사찰기록에 의하면 신라소지왕 15년(493) 극달화상이 창건하였으며, 신라의 불교 공인(公認)이 일어나기 전 핍박받던 시대에 오로지 숨어서 불심으로 수도하던 곳이라 여겨진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석굴을 완성한 극달화상과 수행하던 분들의 결집과 노고가 담겨있는 이 석굴사원의 조각법과 석굴의 구조를 볼 때 정교함이나 아름다움에서는 경주 석굴암보다는 못하지만,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로 넘어가는 과정에 조성된 과도기적 작품으로 바위에다 그대로 새기는 마애불에서 인공석굴을 만들어 부처님을 조각하여 앉히는 과정의 중간 형태로서 미술학적 의미가 매우 깊은 곳이다.
그리고 석굴 앞 마당에는 신라시대 모전석탑(문화재 제246호)이 있는데, 탑이라고 하기에는 단층의 모양이 좀 특이하다. 원래는 돌을 쌓아 만든 삼층탑이었으나 조선시대 관리가 되지 않아 무너졌는데, 1949년 지금의 모양(모전탑)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구미 신라불교초전지
신라불교초전지는 경북 구미시 도개면에 위치해있다. 이름에서부터 역사의 유래가 깊어 보이는 곳으로 주변에는 많은 유적지가 산재해 있다.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바람에 흩날려 들리는 풍경소리와 잘 정돈된 전시가옥과 초가집, 견성관과 성불관이 눈길을 끈다. 그리고 연못 주변의 아름다운 연등이 부처님 오신날이 가까워졌음을 참배객께 널리 알려주고 있다. 다음으로 전시관에 들어서면 이 지역에 전해진 신라불교의 전래(아도화상, 263년) 내용이 눈길을 끌고 있는데, 조금 지루하더라도 그 내용을 자세히 읽다 보면 어느결에 당시를 연상하며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된다. 이 지역이 유명한 것은 유적지(모례내집에 숨어삼. 도리사. 보천사)등이 모두 마을을 중심으로 모여있기 때문이다.
◆ 고구려에 불교가 공인된 것은 소수림왕(372년)의 일로서 중국의 전진왕 부견이 순도화상을 통하여 불상과 경문을 보내왔는데 이를 공적으로 받아 들임으로써 공인되었다. 우리 역사상 최초의 불교공인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강개토대왕은 392년에 평양에 9개의 절을 세워 국가적으로 불교를 장려하며 국가의 부강을 기원하며 신봉케했다.
◆ 백제에 불교가 처음으로 전해진 것은 침류왕(384년)으로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가 진나로부터(지금 법성포) 들어오자 왕이 궁중으로 모셔 예를 다하여 모심으로 백제에 불교가 뿌리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 다음해에 한산(지금 서천)에 절을 짓고 10여명의 승려가 되는 것을 허락했다는 기록이 있다.(참고로 백제 불교의 초전지는 굴비로 유명한 법성포이다.)
◆ 신라에 불교가 공인된 것은 고구려나 백제보다 많이 늦은 법흥왕 14년(527년)인데, 이는 그 당시 신라의 족장세력들이 전통신앙에 강했기 때문에 그렇게 늦어진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사회 저변에서는 불교를 믿고 따르며 출가한 승려가 있었다는 사실은 불교를 훨씬 이전부터 믿고 있었다는 것이다. 비록 다른 나라보다 공인은 늦었지만 적극적인 불교 정책으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