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다 그렇듯 눈에 보이는게 전부는 아니다.
내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이미지를 확정하는 오류를 범하기 쉽상인데
사물. 현상의 한쪽 면만 들여다 보고
어찌 다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연애를 해도 일년을 해봐야 하고
사람도 오래 사귀어봐야 진면목을 알 수 있다.
달의 한 쪽면만 봐서는 그믐달인지 초승달인지 보름달인지 밝은 달인지 어두운 달인지 알 수 없다.
프로그레시브 락 그룹 '핑크 플로이드'의 걸작 음반
"the dark side of the moon" 도 그런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 아닐까.
그래서 글을 쓴다.
가끔 쓴다.
산에 다녀와서 쓰는 산행기
등반을 하고 나서의 등반기
산악인에 대해 느끼는 생각들
그리고 산에 관한, 산사람의 생각/태도에 대한 글…
쓰면서 반추하고 반성하고 기록에 남긴다.
솔직히 말해서
그리 논리적이지 않고 잘쓰지도 못하는데
과분한 칭찬을 받을 때가 있다.
감사한 일이지만 부끄러울 때가 많다
성격이 감성적이고 내성적이라
글도 그런 쪽으로 흐르기 쉽다는 것도 알고
아는 것도 부족해서 여러 책을 두루 읽으려 하나
게을러서 그마저도 쉽지 않다
책장에 책을 꽂아두면 더 읽지 않게 된다는 생각에
침대 머리맡에, 읽으려는 책과 새로 구입한 책들을 쌓아두고 , 틈만 나면 읽으려고 하는데
몇 장 못읽고 덮어두기 일쑤이며 구입해놓고 아직 첫 페이지를 열어보지도 못한 책이 대부분이다.
원래 책읽기를 좋아한 것이 아닌데
나이먹어서 그 맛을 알게 됐다.
어떤 계기가 있다고나 할까.
2003년에 처음 토왕폭 등반을 하고
그 때의 감정을 정리해서 등반기아닌 등반기를 쓴 적이 있다.
당시 속해있던 공간(ER홈피)에 그 글을 올렸는데 많은 좋은 호응을 얻었다.
거기에 용기를 얻어 어떤 등산 잡지사에서 주관하는 산행/등반기에 응모를 하였는데 큰 상을 수상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다.
무협소설의 원조격이 소설 영웅문이라 한다면
국내 무협만화의 새지평을 연 것은 작가 야설록이다.
원래 만화가 이현세의 스토리작가여서 주옥같은 이현세 만화의 스토리를 만든 주인공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만의 프로덕션을 만들어 데뷔를 하면서 내놓은 처녀작이 '오도칠검' 이었다.
다섯 개의 도와 일곱 개의 검.
이 만화는 큰 반향을 일으켰고 무협만화가 부흥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그 이전에 이재학 같은 걸출한 무협만화 작가 있었으나 비주얼적인 면에서나 스토리적인 면에서도 한단계 점프한 요즘 트렌드의 무협만화의 시조격이 된 것이다.
난 당시 이 만화를 보고 감동을 받았고, 주위 친구들에게 권했으며 새로 이사간 집의 전화번호를 이 오도칠검에서 따온 번호 5577로 신청해 만들기도 했었다.
토왕폭 등반기는 졸작이지만 내게 있어 오도칠검같은 작품이었는데 하찮은 글일지언정 자신감을 갖고 글을 쓰게 만든 용기를 준 글이었다.
'토지'의 작가이신 박경리선생께서는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렇게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라고 하셨다
또한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고 존경하는 박완서선생께서는
"나이가 드니 마음 놓고
고무줄 바지를 입을 수 있는 것처럼
나 편한 대로 헐렁하게
살 수 있어서 좋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할 수 있어 좋다.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하고 싶다고 말 할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좋은데
젊음과 바꾸겠는가 . . .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
한 겹 두 겹 어떤 책임을 벗고
점점 가벼워지는 느낌을 음미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라고 하셨는데,
두 분은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여성 소설가였으며 시골집에서 조용하고 행복하게 삶을 마감했다.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 있다
인생을 가장 좋게, 가장 훌륭하게,
가장 아름답게 사는 것(上善)은
물처럼 사는 것(若水)이라는 말이다.
흐르는 물처럼 살다가 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이처럼 인간의 아름다운 삶을 진지하게 함축해서
표현하는 말도 없을 듯 하다.
두 분처럼 흐르는 물처럼 살다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도 하게하고 반성도 하게 하는 글이다.
난 등반을 늦게 시작했다.
게다가 바위 선등서는 것은 등반을 시작하고 한참 뒤의 일이며,
빙벽의 선등은 그보다 더 시간이 지나서인 2003년 정승권등산학교에서 빙벽기술을 제대로 습득하고 나서야 하기 시작했다.
나이먹어서 하는 등반의 묘미는, 등반의 참맛을 제대로 느낄 줄 안다는 것 아닐까.
왜 젊은 나이에 시작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를 할 때도 있었지만, 젊을 때 일찍 시작한 친구들이 이른 나이에 산을 떠나고 등반을 접는것을 보면 오히려 늦게 시작해서 누리는 지금이 더 좋고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인생의 가장 큰 행복 중 하나는
벗들과 즐거운 등반을 하는 것이고,
등반이 끝난 후 그 감정을 잊지 않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다.
요즘처럼 디지털 기술이 발달한 시대에는 간편하게 스마트폰이나 똑딱이로 얼마든지 등반기록을 남길 수 있다.
사진은 등반과 글쓰기와 더불어 함께 하는 큰 즐거움이다.
사진만으로는 하고 싶은 내면의 이야기를 표현하기에 부족함을 느낀다.
글은 그래서 좋다.
사진에 대한 글이 한토막 있는데 난 거기에 산과 등반을 넣어 이렇게 만들었다.
"사진이란 무엇인가?
누구를 위한 사진인가?
이 모든 사진에 대한 물음의 중심에 인간,
인간성, 인간다움이 있다.
산, 등반이란 무엇인가?
누구를 위한 산, 누구를 위한 등반인가?
이 모든 등반에 대한 물음의 중심에 인간,
인간성, 인간다움이 있다."
그렇다.
등반이건 사진이건 모든 행위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그와 함께 내가 좋아하는 단순함 이라는 단어가 있다.
단순함, 단순성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사람을 이야기할 때, 사람의 성격을 말할 때 단순하다는 말을 약간 비하하는 말로 비유하곤 한다.
단순하다는 건 생각이 깊지 못하다는 뜻이고
생각이 깊지 못하니 사려깊은 사고와 언행이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므로.
또 하나의 단순성은 좋게 말해서 올곧음,
우직함, 잡스럽지 않은 …
이런 뜻이 있지 않을까
소설가 김훈은 동인문학상 수상작 '칼의노래' 책 첫 머리에
‘이순신 그 한없는 칼의 단순성에 대하여’라고 썼다.
이순신은 3도의 수군통제사로서 전 국토를 유린한 왜적의 종자를 박멸하고자 했다.
그래서 백의종군이 끝나고 조선 수군 총사령관으로 복귀한 뒤, 새로 만든 칼에 새겨 넣은 문장을
‘일휘소탕 혈염산하’라고 했다.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산하를 물들이도다.”
여기서 그는 ‘색칠할 도(塗)’를 버리고 ‘물들일 염(染)’ 을 썼다.
이 것이 그의 단순성이다.
명의 수군 총사령관 진린은 퇴각하는 적을 놔두는 것은 병법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라고 조언했지만
퇴각하는 적의 무리를 하나라도 없애기 위해 그의 마지막 전투 노량에서 싸우다 전사한 것이 그의 단순성이다.
세상을 사는 방법은 수없이 많은 갈래가 있고,
각자가 선택하고 선택되어진 길을 따라 간다.
그 각자는 나름대로 자신이 단순하게 살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개별적인 단순함
난 그렇게 생각한다.
나 역시 단순하게 살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으니까.
...
다시,
세상사 다 그렇듯 눈에 보이는게 전부는 아니다.
사람, 사람관계 역시 그렇다.
사람들과의 친한거리가 좋을 수도 있지만 그 거리가 크고 많은 오판을 가져오기도 한다.
사람과의 거리는, 적절한 거리 'Arm Length' 가 좋을 수도 있다.물론 답은 아니다
우리들이 설정해놓은 그 거리 안의 많은 위선들.
스스로의 그 많은 가면, 가식들이 보이는지.
아 아... 난 죽을 때 까지 인생의 의미를 깨달을 수 없을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