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와 나사로 (누가복음 16 : 19 - 31)
서 론 :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여러 가지로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에 대한 경종으로 들려주셨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종말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하여 부자의 결국을 보여주심으로 경고하신 것입니다. 둘째는 부자는 율법적인 의의 표본이요, 나사로는 복음으로 의를 얻는 표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셋째는 사람이 죽은 후에 그 영혼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하여 확실한 믿음을 주시려는 데 교훈의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막론하고 다 죽는다는 사실과 죽은 후의세계를 위해서 준비를 해야 된다는 사실이다.
(죽음) 4가지 다나토스: 죽음은 (희생적인 죽음)예수그리스도롬5:12)책임
(아담의원죄) 레크로스:썩어 있다. <저절로 이루어진다.>
드네토스:필연적인 죽음<다 죽기마련이다.(흙으로 돌아간다. 죽을 수 밖에 없다.순교)
아포드네스:죽음의직면하는것이다.구원받지못한 것은 지옥갈수밖에없다>
1. 부자와 나사로
이 비유에는 두 인물이 등장합니다. 부자와 거지인 나사로입니다. 이곳에서 두 사람의 생활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두 사람은 하나님을 섬겨온 사람들임을 알게 됩니다. 부자가 기도하기를 “아버지, 아브라함이여”라고 말한 것은 그가 생존시에 하나님을 섬겨온 사실을 말해줍니다. 아버지란 말은 이 같은 사실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사로의 경우도 그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사실은 그가 천국에 들어간 것을 의미합니다. 천국은 거지가 들어가는 곳은 아닙니다. 주님은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고 말씀하셨는데 거지 나사로가 들어간 하나님 나라는 바로 복음으로 침입하는 곳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주님이 바리새인들에게 깨우치시려는 바는 돈을 사랑하는 바리새인을 부자에 비유하셨고, 거지 나사로를 자신들이 마치 개처럼 취급하는 이방인들이나 세리나 죄인들을 비유하신 것입니다.
2. 부자와 나사로의 생활
이 두 사람은 그들의 생활이 정 반대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부자의 생활을 보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 했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이 부자에 대하여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이 부자는 생존시에 그가 가지고 있는 재물을 가지고 오직 자신의 정욕과 탐심을 이루는 생활을 해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생의 목적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보다 재물을 모아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그에게서 가난한 이웃에 대하여 사랑을 베푸는 일이라곤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이 부자의 생활은 마치 한해에 많은 풍작을 거둔 어리석은 부자가 계획한 생활을 말해줍니다. 그는 스스로 옳다고 생각했을 뿐 아니라 사람에게서 높임을 받으려 하였습니다. 이들은 바로 그 당시 바리새인들의 생활상을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하나님을 잘 섬기는 줄로 알았고 율법을 잘 지키며 자기들이 가장 의로운 줄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행한 대로 갚으십니다. 그들의 갚음은 바로 그들의 죽음의 문이 열릴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하셨습니다(히9:27). 시73편에 나오는 주인공을 보면 그는 악인이면서도 그의 생존시에 호화로운 인생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그의 결국은 파멸이었습니다(시73:1-26).
그러면 거지 나사로의 경우를 보자. 거지 나사로는 그의 생활상이 가장 비참하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그가 받는 사회적인 학대, 이웃의 모멸을 상징합니다. 사회적인 모든 경제 체제는 권력층인 바리새인들에 의하여 지배되고 있음으로 그들의 눈에 개처럼 보여지는 죄인들은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찌꺼기로 배불리려 하는 모습과 동일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나사로가 받은 고난은 주님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 고난은 비단 삶의 고난만을 가리킨 것은 아닙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은 고난을 말합니다. 이런 고난에 대한 기록은 많이 있습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마5:10-12). 나사로의 생활이 비통한 것은 죄로 말미암은 통회하는 심령을 말합니다. 그리고 나사로의 생활이 재물에 있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에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3. 두 사람의 죽음에서 온 결국
하나님은 이 세상의 일에 대해서는 그리 많은 관심을 갖지 않으십니다. 인생의 종국적인 행복이 이 땅위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소망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그 소망의 실현만이 인생의 최대의 축복인 것입니다. 그들의 행과 불행은 그들의 육신이 죽었을 때 마침내 드러납니다.
나사로 거지는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품이란 하나님 나라를 가리킵니다. 들어갔다고 하신 말씀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는 복음으로,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로 침입하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그런데 부자는 죽어서 음부에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음부는 불 가운데서 고통을 받는 영적인 장소를 말합니다.
돈을 좋아하는 사람의 결국, 율법에서 의를 찾으려는 사람들의 결국,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외식으로 해온 사람들의 결국(말로만 ‘주여’를 찾는 무리)이 어떠하다는 것을 가리키신 것입니다.
주님은 이 비유에서 두 사람의 경우를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신다고 하셨습니다(시116:15).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다고 하셨습니다(잠14:32). 주안에서 죽는 자는 복이 있나니 수고를 그치고 쉰다고 하셨습니다(계14:13).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았을 때 행한 보응은 죽은 후에 이처럼 받는 다는 것을 분명히 알리신 것입니다.
4. 부자의 호소
불꽃 중에서 고통을 견딜 길이 없는 부자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는 나사로가 한없이 부러웠습니다. 이 부자는 일찍이 회개할 수 없었던 자신을 저주했을 것입니다. 30절 말씀에 회개에 대한 말이 나오는 것으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는 오직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동안에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이셨습니다.
그는 하다못해 나사로의 손끝에 물을 찍어 입술에 바르게 해달라는 요구마저 거절당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 세상에서 끝장납니다. 지옥에까지 뻗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에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부자는 자기 집안에 살아 있는 식구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들이 자기가 고통받고 있는 음부로 오기를 원치 아니했습니다.
우리는 부지런히 전도하여 자기 식구들, 이웃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부자와 같은 원통함이 천국에 가서까지 있을 것입니다. 부자는 나사로를 살려 자기 집으로 보내면 그들 식구들은 회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간구를 물리치셨습니다.
지옥에 있는 사람의 기도까지 들어주실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적이나 기적을 보인다고 회개하는 것이 아님을 밝히셨습니다. 하나님의 증거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비록 죽은 자가 살아난다고 해도 믿을 수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결론 : 우리는 과연 어떤 부류에 속해 있는 사람인가에 대하여 스스로 물어 보고 바른 신앙으로 소망의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는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첫댓글 목사님 수고 하셨습니다
2023.10.8.
시온성주일1부강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