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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장
솔로몬의 箴言
1 솔로몬의 箴言이라 智慧로운 아들은 아비를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
The proverbs of Solomon. A wise son makes a glad father, but a foolish son is a sorrow to his mother.
Filius sapiens lætificat patrem, filius vero stultus mœstitia est matris suæ.
Υἱὸς σοφὸς εὐφραίνει πατέρα, υἱὸς δὲ ἄφρων λύπη τῇ μητρί.
지혜로운 아들이란 그리스도의 성령과 성경으로써 올바르게 신앙생활을 해나가고자 하고 해나가는 모든 성도들을 지칭한다. 지혜로운 아들인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하나님을 아빠아버지로 섬기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은 결국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며 이는 결국 성도들의 신앙의 어머니인 이 땅의 참된 교회의 기쁨이기도 하는 것이다. 미련한 아들은 참된 신앙은 없으면서 표면적으로만 교회의 구성원 행세를 하는 교회의 모든 위선자들을 지칭한다. 이 땅의 교회들은 성도들의 신앙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교회의 위선자들은 성도인 척 하면서도 성령과 성경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교회를 해롭게 할 뿐이어서 교회의 근심거리가 될 수 밖에 없고 더 나아가서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까지 근심시키는 것이다. 악의적인 위선자는 아닌 것 같은데 신앙의 분별력이 떨어져서 자꾸만 어긋나는 언행을 저지르는 교인들도 어찌보면 미련한 아들이라 할 수 있다. 오랜기간 교회를 다니면서도 성경을 알아가고 행하는 것에 너무나 미미한 진전만 있어서 여전히 어린 아이들처럼 옆에서 돌봐주지 않으면 위태위태한 지경에 이르는 교인들은 교회에 끊임없이 근심을 끼치는 아들들이다.
2 不義의 財物은 無益하여도 公義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
Treasures gained by wickedness do not profit, but righteousness delivers from death.
Nil proderunt thesauri impietatis, justitia vero liberabit a morte.
οὐκ ὠφελήσουσιν θησαυροὶ ἀνόμους, δικαιοσύνη δὲ ῥύσεται ἐκ θανάτου.
불의의 재물이란 그리스도의 성령과 성경의 원리를 따르지 않고 세속적인 방식으로 이룬 교회 사역의 가시적인 성과들을 의미한다. 교회의 건물과 교인 수와 재정 규모와 사회적인 영향력을 키우려는 목적으로 시행하는 모든 교회 사역들이 불의한 것이다. 불의한 방식으로 이룬 교회의 가시적 성과는 교인들에게는 육적인 만족을 줄진 모르나 그리스도 하나님께는 아무런 기쁨도 되지 못하고 도리어 가증하게 여김받을 뿐이다. 교회의 이름을 내건 모든 영리사업, 가난한 목사의 생계활동, 정치 및 사회활동, 복음과는 무관한 교회 내 문화행사들이 모두 불의한 사역에 해당된다. 심지어 공적 유익의 기여를 위한 공공기관과의 협업연계 사역들도 자칫하면 불의함에 빠질 수 있으니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교회가 복음 사역보다 이러한 불의한 사역에 잠식되면 교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불의하고 거짓된 교회로 정죄를 받아 버려지게 될 뿐이다. 설령 어느 정도 교회가 복음 사역의 비중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복음과 무관한 불의한 사역으로 이룬 성과들은 성령의 공의로운 불시험을 견디지 못하고 전부 불살라져 버리고 오로지 참된 복음 사역만이 남게 된다.
3 여호와께서 義人의 靈魂은 주리지 않게 하시나 惡한 者의 所欲은 물리치시느니라
JEHOVAH does not let the righteous go hungry, but he thwarts the craving of the wicked.
Non affliget JEHOVAH fame animam justi, et insidias impiorum subvertet.
οὐ λιμοκτονήσει ΙΕΗΩΟΥΑ ψυχὴν δικαίαν, ζωὴν δὲ ἀσεβῶν ἀνατρέψει.
그리스도 여호와께서 의인의 영혼을 주리지 않게 하신다는 것은 이 땅에서 재물이 부족하지 않게 풍족하게 잘 먹고 잘살게 해주신다는 뜻보다는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을 따라 성경을 더 많이 깊이 알고 행하게 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두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성도들에게 천국이 주어지는 복을 받을 것이며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하는 이들마다 성령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땅을 살아가는 의로운 성도들은 결코 자신의 신앙에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할 수 밖에 없으나 주님께서는 당신의 성령의 역사로 인해서 우리의 신앙을 끊임없이 장성숙 시키신다.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의 영혼에는 항상 두가지 마음이 공존하게 되는데 하나는 지금보다 더 장성숙한 신앙을 원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주님께서 자신에게 허락하시는 신앙의 수준에 감사하며 만족하는 것이다. 즉, 우리가 더 나은 신앙을 원한다고 해서 불만이나 원망이나 짜증을 내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지금의 신앙에 만족한다고 해서 더 이상 장성숙할 필요를 갖지 않는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을 위해서는 언제나 필요와 만족이라는 두 마음이 연합해야 한다.
복음 사역이 목적이 아니라 외형적인 규모 성장이나 모종의 세속적 이득을 위한 교회의 위선자들의 모든 교회 활동이 악한 자의 소욕을 따르는 것이다. 설령 이 땅에서는 그런 위선자들의 악한 소욕이 외형적인 성과를 거둘지는 몰라도 그리스도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것들을 부질없는 것으로 여기셔서 성령의 불시험으로 살라버리시고 위선자들은 알지 못하는 자들이라 하시며 바깥 어두운 곳으로 내쫓아버리신다. 악의적으로 교회를 이용해 먹으려는 자들은 물론이고, 그런 자들에게 스스로 미혹되어 추종하는 자들도 악한 위선자들에 포함된다. 자기에게 까불면 하나님이라도 자기 손으로 어찌해버리겠다는 것은 명백한 신성모독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정치이념이 같다는 이유로 그런 신성모독자를 목사라고 부르며 그를 위해 변호하고 추종하는 것은 결국 그의 신성모독에 동참하는 것이다.
4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者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이는 富하게 되느니라
A slack hand causes poverty, but the hand of the diligent makes rich.
Egestatem operata est manus remissa ; manus autem fortium divitias parat. Qui nititur mendaciis, hic pascit ventos ; idem autem ipse sequitur aves volantes.
πενία ἄνδρα ταπεινοῖ, χεῖρες δὲ ἀνδρείων πλουτίζουσιν. [1] υἱὸς πεπαιδευμένος σοφὸς ἔσται, τῷ δὲ ἄφρονι διακόνῳ χρήσεται.
목사 장로 집사 등의 교회의 직분인들이 복음 사역을 소홀히 하는 것이나, 직분인이 아닌 교회 구성원들이 신앙활동을 소홀히 하는 것들이 자기의 손을 게으르게 놀려서 가난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교회의 직분인들이 무엇보다도 복음 사역을 중시하여 시행하는 것이나, 성도들이 신앙활동에 열심을 내는 것이 자신의 손을 부지런하게 하여 하늘의 신령한 복과 상급에 부유하게 되는 것이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세속적인 부를 쌓는데는 부지런하였어도 복음 사역과 신앙활동에는 열심을 내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 보시기에 게으름을 피워서 가난하게 된 교회였다. 주님께서 그런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내리신 처방은 그들이 쌓은 이 땅의 재물을 팔아서 참된 복음 사역과 신앙활동에 치중하라는 것이었다. 반면에 서머나 교회나 빌라델비아 교회는 비록 이 땅에서는 핍박과 환난으로 빈천함이 극심했으나 복음 사역과 신앙활동에 있어서는 주님 보시기에 그 어느 교회들보다도 더 부지런하여 부유한 교회였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소작농은 자신의 전재산을 팔아서 그 밭을 삼으로써 육으로는 가난하나 영으로는 부유하게 되었다. 상인이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서 극히 값진 진주를 산 것 또한 이 땅에서는 가난하게 되었으나 하늘에서는 부유하게 된 것이다. 가난한 목사가 목회와 무관한 생계활동을 병행하는 것은 육으로나 영으로나 사역으로나 전부 게으르게 손을 놀려 가난하게 되는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혼인 잔치에서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명의 처녀들 중에서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다섯 처녀들은 손을 게으르게 놀린 것이고 기름을 충분히 준비한 다섯 처녀들은 손을 부지런하게 놀린 것이다. 정치활동과 영리활동은 교회와 목사를 반드시 가난하게 만드는 것이므로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 교회의 사회공헌 활동은 복음 사역보다 우선해서는 안된다. 신앙 활동을 이유로 주어진 일상과 부양의 책임을 소홀히 하는 것은 다른 면에서 가난해지는 것이다. 선행이 동반되지 않는 신앙활동은 아무리 열심을 낸다 하여도 아무런 신앙의 이윤을 남기지 못한다. 성도의 신앙이 나날이 거룩해지고 장성숙해가는 것은 부지런함으로 신앙이 부유해지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가르친 바 육신이 후패해질수록 영혼은 날마다 새로워진다는 것은 이 땅에서의 우리의 생명은 나날이 가난해져도 우리의 신앙은 날마다 부유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땅에서도 부유하고 신앙도 부유해지는 경우는 그렇게 흔하게 주어지지 않으며 통상적으로는 둘 중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과 돈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하신 것이다. 돈에 부지런한 자는 신앙에 가난해질 수 밖에 없고, 신앙에 부지런한 성도는 돈에 가난해지는 것이 이 땅에서의 복음의 원리이다.
5 여름에 거두는 이는 智慧로운 아들이나 秋收 때에 자는 者는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이니라
He who gathers in summer is a prudent son, but he who sleeps in harvest is a son who brings shame.
Qui congregat in messe, filius sapiens est ; qui autem stertit æstate, filius confusionis.
διεσώθη ἀπὸ καύματος υἱὸς νοήμων, ἀνεμόφθορος δὲ γίνεται ἐν ἀμήτῳ υἱὸς παράνομος.
솔로몬 시대의 이스라엘 지역은 아마도 여름이 추수기인 것으로 보인다. 농작물의 추수 시기는 눈에 확연히 보이기 때문에 이를 추수하는 것은 딱히 지혜랄 것도 없고 그냥 당연한 것이고, 추수하지 않는다는 것은 고의적으로 게으름을 피워 방치한다는 것이다. 교회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과 그분의 말씀이신 성경을 따라 복음 사역과 신앙활동을 하는 것은 추수기에 농작물을 거두는 것처럼 명확하고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그것을 지혜롭다고 칭찬하신다. 반면에 교회와 교인들이 성령과 성경을 따르지 않고 행하는 모든 활동들은 추수 때에 자는 것과 같은 미련한 짓이어서 주님의 영광을 가리고 자기들 스스로에게도 부끄러움과 수치를 남기게 된다. 복음 사역과 신앙활동을 굳건히 지켜나가는 것도 지혜로운 것이나 시시각각 변하는 국내외 정세를 보고서 교회와 성도들이 어떻게 유연하게 대응해 나가야 하는지 파악하는 것도 지혜로운 것이다. 따라서 교회와 성도들에게는 견고하게 지켜내는 지혜와 분별하여 유연하게 대응하는 지혜를 겸비해야 한다.
6 義人의 머리에는 福이 臨하나 惡한 者의 입은 毒을 머금었느니라
Blessings are on the head of the righteous, but the mouth of the wicked conceals violence.
Benedictio JEHOVAH super caput justi ; os autem impiorum operit iniquitas.
εὐλογία ΙΕΗΩΟΥΑ ἐπὶ κεφαλὴν δικαίου, στόμα δὲ ἀσεβῶν καλύψει πένθος ἄωρον.
의인과 악한 자, 머리와 입, 복과 독이 대비를 이룬다. 그리스도의 의로운 성도들은 매사에 섣불리 말하지 않고 일단 머릿속으로 그것에 대한 성경의 원리를 곰곰이 생각하고 따져본 후에 조심스럽게 입밖으로 꺼내므로 교회와 주변에 그리스도 여호와의 복을 가져다 준다. 그러나 교회의 악한 위선자들은 매사를 항상 악한 의도로만 적용하기 때문에 자동기계적으로 입밖으로 독이 되는 말만 내뱉게 마련이다. 베뢰아 사람들이 신사적이라는 평을 받은 이유는 자신들이 사도들에게서 들은 복음이 과연 성경에 부합하는지 곰곰이 깐깐히 따져보았기 때문이다. 교회의 위선자들은 교회와 그 구성원들의 대소사를 악의적으로 왜곡하고 침소봉대하여 여기저기 옮겨 퍼뜨리며 심심풀이 이야기거리를 삼는다. 어려운 이를 도와주지는 않으면서 말로만 따뜻하게 입고 배부르게 먹으라고 하는 것은 머릿속 생각을 거치지 않고 입에서만 맴도는 헛되고 해로운 독설에 불과하다. 바울 사도가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교훈한 이유는 여자들은 본성적으로 남자들보다 다섯배나 더 말을 많이 하기 때문에 그만큼 입에 독을 머금을 가능성도 남자들보다 다섯배나 더 높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가 가장 많이 입에 독을 머금게 되는 때는 세속 정치 이념이 맞지 않아 갈등과 충돌을 일으킬 때이다. 그래서 그들은 교회와 성도를 자처하면서도 자기들의 정치 이념에 반대된다고 판단되는 상대는 대통령이건 자식을 잃은 부모건 누구건 간에 악귀들처럼 저주 비방 악담 조롱을 서슴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의를 저버린 행악자가 되어버린다.
7 義人을 紀念할 때에는 稱讚하거니와 惡한 者의 이름은 썩게 되느니라
The memory of the righteous is a blessing, but the name of the wicked will rot.
Memoria justi cum laudibus, et nomen impiorum putrescet.
μνήμη δικαίων μετ᾽ ἐγκωμίων, ὄνομα δὲ ἀσεβοῦς σβέννυται.
그리스도께서 의롭게 하신 성도들은 이 땅에서는 칭찬으로 기념되지 않는다. 그리스도를 저버린 교회의 악한 위선자들은 도리어 이 땅에서는 썩지 않을 것처럼 기념된다. 그리스도의 의로운 성도들이 칭찬으로 기념되는 때는 주님의 재림과 성도의 부활승천과 세상의 종말과 최후의 심판 이후 하나님의 도성인 새 예루살렘에서 영원무궁히 이루어진다. 반면에 교회의 악한 위선자들의 이름이 썩어지는 것은 세상의 종말과 마지막 심판 후 블랙홀처럼 영원히 타는 불못 안에서 이루어진다.
8 마음이 智慧로운 이는 誡命을 받거니와 입이 미련한 者는 滅亡하리라
The wise of heart will receive commandments, but a babbling fool will come to ruin.
Sapiens corde præcepta suscipit ; stultus cæditur labiis.
σοφὸς καρδίᾳ δέξεται ἐντολάς, ὁ δὲ ἄστεγος χείλεσιν σκολιάζων ὑποσκελισθήσεται.
그리스도의 성도들은 우리 영에 내주하시는 보혜사 성령 하나님께서 감동시키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말과 행위를 점검하고 단속하는 주님의 계명을 꺼리지 않고 즐거이 기쁘게 받는다. 그러나 교회의 위선자들, 특히 입이 가벼워서 왜곡과 험담을 하지 않고서는 입이 근질근질해서 견디지 못하는 자들은 아무리 교회에서 주요한 직분과 봉사를 맡고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녔다고 하더라도 주님께 외면당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자기에게 까불면 하나님이라도 자기 손으로 어찌 해버리겠다고 하는 것, 남북통일을 위해서 북한 주민 이천만명을 하나씩 끌어안고 자살하자고 하는 것, 정치경제 이념이 다르다고 대통령과 정부와 자녀잃은 부모들을 향해 저주 비방 악담 욕설 조롱을 일삼는 것 등은 자기 입을 미련하게 놀려서 멸망을 당하려는 짓에 불과하다.
9 바른 길로 行하는 이는 걸음이 平安하려니와 굽은 길로 行하는 者는 드러나리라
Whoever walks in integrity walks securely, but he who makes his ways crooked will be found out.
Qui ambulat simpliciter ambulat confidenter ; qui autem depravat vias suas manifestus erit.
ὃς πορεύεται ἁπλῶς, πορεύεται πεποιθώς· ὁ δὲ διαστρέφων τὰς ὁδοὺς αὐτοῦ γνωσθήσεται.
바른 길은 그리스도 여호와께서 성령과 성경으로 드러내시는 신앙의 도리를 가리킨다. 바른 길을 가는 교회와 성도들의 발걸음은 세속적인 관점에서는 좁고 힘들고 멍에를 지고 손해를 봐야 하는 불편안한 길을 가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육체적으로 힘든 복음의 바른 길을 굳이 가는 것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주님을 향한 굳건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른 길을 가는 교회와 성도들은 육으로는 힘들어도 영으로는 평안함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복음의 바른 길은 가면 갈 수록 그 자체만으로 점점 더 어렵고 힘들어지는데다가 이 땅에서의 우리의 육신은 점점 더 후패해짐에 따라서 육적인 고달픔은 배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이 교훈한 바 주님께서는 우리의 육신이 점점 후패해질수록 우리의 영은 날마다 더 새롭게 하시는데다가, 아무리 복음을 위해 복음으로 인해 욱여쌈을 당하는 상황이 온다 하더라도 능히 감내할 수 있도록 피할 길을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감히 넉넉히 복음의 바른 길을 끝까지 갈 수 있는 것이다.
주님의 바른 길을 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것이 과연 주님의 바른 길인지를 분별하는 능력이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바른 길을 분별하는 능력은 처음부터 한꺼번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우리 혼자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처음에는 겨자씨만큼의 분별력 밖에 없어서 긴가민가 하다가 점진적으로 장성숙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개인의 묵상과 공부 등도 있어야 되겠지만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분별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교회는 무엇보다도 주님의 복음을 가르치고 선포하는데 힘써야 하고 구성원들은 배우는데 힘써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주님의 바른 길을 배우고 분별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으로만 만족하고 머물러서는 안된다. 바른 길을 분별하는 만큼 그 길로 행하여 가는 것이 반드시 후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분별만 하고 정작 가지 않는 것은 야고보 사도가 책망한 바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 죽은 지식일 뿐이다. 바른 길을 몰라서 못가는 것도 잘못이지만, 알고서도 안가는 것은 고의적인 것이므로 더욱 큰 죄이며 굽은 길로 행하는 자와 마찬가지다.
굽은 길은 복음의 바른 길과 아예 무관한 세속적인 길보다는 바른 길인 것처럼 교묘하게 위장하고 속이는 거짓된 길을 의미한다. 주님과 교회와 복음 등의 이름을 내거는 모든 이단들, 신학을 가장한 반성경적 이단사설들, 목사를 가장한 세속 정치협잡꾼들, 복음을 빙자해서 하늘의 신령한 상급이 아니라 이 땅의 세속적 번영만을 추구하게 하는 거짓 설교들, 상호배타적일 수 밖에 없는 성경의 창조와 무지성 진화론을 억지로 엮어 놓는 것들, 일반은총이라는 허울좋은 빌미로 세속 학문으로써 성경의 권위를 재단하는 바빙크식 개혁주의, 성도에게 여전히 남아있는 죄성을 무시한 이상적인 무교회주의, 가난을 핑계로 목회와 상관없는 생계활동 주장 등이 바른 길을 가장한 굽은 길이고, 그것들을 추종하는 것이 굽은 길을 행하는 것이다.
주님의 교회와 성도들이라고 해서 매순간 복음의 바른 길을 분별하고 행하고 가는 것은 아니다. 굽은 길은 바른 길과 아주 교묘하게 어느 정도 겹쳐져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여전히 남아있는 죄성으로 인해 종종 굽은 길을 바른 길로 착각하고 가기도 한다. 그럼에도 성도들은 각인들의 영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감동으로 말미암아 어느 순간에 가고 있는 길이 굽은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주님께서 에베소 교회에 명하신 것처럼 어디서부터 잘못 들어선 것인지를 확인하여 되돌아오고 바른 길로 접어들게 된다. 반면에 교회의 위선자들은 어느 정도는 성도들과 함께 주님의 복음의 바른 길로 가지만 각자의 정욕과 탐심을 따라 바른 길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되고 결국에는 바른 길을 완전히 저버리게 된다. 위선자들은 어쩌니저쩌니 해도 자기들 스스로의 의지로 조금씩 점진적으로 바른 길을 벗어나서 굽은 길로 나아간 것이어서 굽은 길이라는 것도 인식하지 못하고 도리어 바른 길이라 여기기 때문에 두 번 다시 바른 길로 돌아올 마음 자체를 갖지 않는다. 이를 두고 예수님께서는 원숙가 밭에 뿌린 가라지라 하셨고 사도들은 교회 안에 있으나 처음부터 우리의 형제가 아닌 자들이어서 두 번 다시 회개와 죄사함을 받지 못하는 신성모독자라고 하였다.
이 땅에서는 주님의 바른 길이 굽은 길에 가려지기도 하고 굽은 길이 바른 길을 위장하기도 한다. 때문에 바른 길이 바른 것으로, 굽은 길이 굽은 것으로 명백히 드러나 판결을 받는 것은 세상의 종말 이후 주님의 보좌 앞에서 완전하게 이루어진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두고 추수 때에 알곡은 거두고 가라지는 한데 모아 불태우는 것, 물고기 그물을 끌어올려 좋은 물고기는 취하고 나쁜 물고기는 다시 바다에 버리는 것, 양은 오른편에 두시고 염소는 왼편에 두시는 것, 주여 주여 하는 위선자들을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아내는 것 등으로 가르치셨다.
바른 길이 광야에서 천이백륙십일 동안 양육을 받는 해를 옷입은 여인이라면, 굽은 길은 붉은 용이 세운 두 짐승을 올라타고 온갖 휘황찬란한 것으로 몸을 감싼 큰 음녀 바벨론이다. 이 음녀는 두 짐승인 정부와 경제를 힘입어 광야 여인보다 더 우월하고 참되다는 듯이 교인들을 현혹한다. 광야 여인의 후손들은 잠시 음녀의 유혹에 흔들리더라도 광야를 떠나지 않으나, 그렇지 않은 많은 자들은 잠시 광야 여인에게 머물다가 결국 음녀의 유혹에 미혹되어 음욕을 채우고자 음녀에게로 가게 된다. 광야 여인은 천이백륙십일 동안 붉은 용에게 공격을 받으나 끝내 보호를 받고 하늘로 옮겨지게 되지만, 음녀 바벨론은 천이백륙십일 동안 짐승의 권세를 힘입으나 광야 여인이 들림받은 후에는 짐승에게 버려지고 살이 뜯어먹히고 뼈가 불살라지게 된다.
10 눈짓하는 者는 근심을 끼치고 입이 미련한 者는 滅亡하느니라
Whoever winks the eye causes trouble, and a babbling fool will come to ruin.
Qui annuit oculo dabit dolorem ; et stultus labiis verberabitur.
ὁ ἐννεύων ὀφθαλμοῖς μετὰ δόλου συνάγει ἀνδράσι λύπας, ὁ δὲ ἐλέγχων μετὰ παρρησίας εἰρηνοποιεῖ.
한쪽 눈을 깜빡이며 눈짓하는 것은 대체로 좋고 선한 의도와 목적보다는 나쁜 의도와 목적인 경우가 많다. 음녀가 간음을 저지를 상대남을 유혹할 때, 은밀하게 죄악을 꾀하는 자가 암묵적인 동참의를 구할 때, 그런 우두머리 앞에서 바르고 참되며 옳은 말로 간언하는 충직한 사람의 입을 다물게 할 때 종종 눈짓하게 마련이다. 교회의 위선자들은 은밀하게 여기저기 눈짓함으로써 교회를 해롭게 하므로 교회의 근심이 될 수 밖에 없다. 눈짓하는 교회 위선자들은 겉으로는 마치 신앙생활을 잘 하는 척 위장하는데 능하여서 드러나게 책잡힐만한 일이 없으므로 권징하기에도 애매모호하다. 겉으로는 개혁신학가를 표방하면서도 일반은총 연구라는 빌미로 일관되게 세속학문을 기준잣대로 삼아 성경을 재단함으로써 성경의 권위를 끊임없이 잡아끌어내려 훼손하는 바빙크식 개혁주의가 근심을 끼치는 눈짓이다. 부목사들이 담임목사를 비롯한 유력자들에게 잘보이고자 정당하고 올바른 얘기를 하는 성도들을 함구시키는 것이 근심을 끼치는 눈짓이다. 교인들이 목사에게 자기들이 듣기 싫어하는 설교를 하지 못하도록 은근히 압박하는 것이 근심을 끼치는 눈짓이다. 여기저기 쏘다니며 여러 교회구성원들을 만나서 자기 마음에 안드는 목사와 성도들 흉을 보는 것이 근심을 끼치는 눈짓이다. 자기의 어렵고 불우환 환경을 가지고 젊고 잘생기고 훤칠한 목사를 유혹하는 것이 근심을 끼치는 눈짓이다. 당회가 교회에서 발생한 초유의 불미스러운 사건사고를 쉬쉬하며 덮으려고 부교역인들과 교인들에게 압박을 가하는 것이 근심을 끼치는 눈짓이다. 오래된 세례 교인이나 교회 직분인이면서도 몰래 점집이나 다른 종교의 행사나 심지어 정치집회에 가자고 다른 구성원에게 권유하는 것도 근심을 끼치는 눈짓이다.
붉은 용이 바다와 땅에서 일으켜 세운 두 짐승을 올라탄 큰 음녀 바벨론은 마치 자기가 참된 교회인양 교회 구성원들에게 전방위적으로 끊임없이 눈짓을 보낸다. 주님께서 혐오하시는 교회의 발람과 이세벨과 니골라당은 복음의 가치수준을 떨어뜨리고 은근히 죄를 조장하는 눈짓을 한다. 사도 시대에는 거짓 사도교사들이 할례와 율법제사를 행해야 한다며 성도들에게 눈짓하였다. 헤롯은 갓 태어나신 예수님을 죽이려는 의도를 숨기고 자기도 예수님께 경배하러 가겠노라 하면서 수많은 동방박사 무리들에게 눈짓하였었다. 선지사 에스겔 시대에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겉으로는 그리스도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면서도 뒤로는 몰래 유다 왕국의 고관들에게 눈짓하여 그것도 심지어 성전 안에서 은밀히 우상을 숭배하였었다. 아합은 이세벨의 눈짓에 놀아났고, 잠언을 지은 지혜자 솔로몬과 날 때부터 성령의 나실인이었던 삼손 조차도 음녀들의 눈짓에 놀아나 거의 멸망당할 뻔하였었다. 모세 시대에 시므온 지파의 젊은 수령들은 술사 발람이 모압과 미디안 귀족 여자들의 눈짓을 앞세운 바알브올의 획책에 놀아나 창에 배가 뚫리고 목이 매달리며 이만사천여 명이 염병으로 목숨을 잃게 되었었다. 야곱의 장자 르우벤은 야곱의 첩 빌하의 눈짓에 놀아나 장자의 권리를 박탈 당하였었다. 아브라함은 첫 아들을 낳아준 애굽녀 하갈의 눈짓에 휘둘리지 않고 아내 사라가 원하는대로, 그리스도 여호와께서 시키시는대로 그녀를 대우하였었다. 첫 사람 아담은 하와의 눈짓에 휘둘려서, 그 전에 하와는 뱀의 눈짓에 놀아나서 금지된 과일을 먹었었다.
이렇게 교회에서 음흉하게 눈짓하는 위선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들은 주님을 거역하는 반성경적이어서 반드시 주님께로부터 정죄를 받고 영원히 타는 불못에 던져지게 되므로 세상 그 무엇보다도 어리석고 미련한 말이라 할 수 있다.
11 義人의 입은 生命의 샘이라도 惡한 者의 입은 毒을 머금었느니라
The mouth of the righteous is a fountain of life, but the mouth of the wicked conceals violence.
Vena vitæ os justi, et os impiorum operit iniquitatem.
πηγὴ ζωῆς ἐν χειρὶ δικαίου, στόμα δὲ ἀσεβοῦς καλύψει ἀπώλεια.
그리스도 여호와께서 의롭게 하신 성도들의 언행은 항상 성령과 성경의 원리를 따르고자 하고 드러나게 마련이다. 반성경적인 것에는 아무리 욱여쌈을 당하여도 강력히 저항하고, 성경적인 것에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순종하고자 한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 성급히 판단발설 하지 않고 언제나 성령과 성경으로써 심사숙고하여 조심스럽게 판단발설 한다. 혹여 여전히 남아있는 죄성과 부족함과 연약함 때문에 잘못 판단발설 한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차후에 주님의 은혜로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되면 바로 인정하고 돌이킨다. 그러나 이러한 의로운 성도들의 언행은 겉으로 보기에는 불편하고 힘들기 때문에 믿음이 아니고서는 섣불리 성도들의 생명의 샘에 다가오지 않는다. 해를 옷입은 여인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성읍이 아니라 황량한 광야에 거하여도 하나님의 양육하심을 받음으로써, 자신을 찾아 기꺼이 광야로 나아오는 이들에게 생명의 샘을 제공한다.
교회의 위선자들은 그리스도 여호와의 의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매사에 성령과 성경을 거슬러 반역한다. 교회의 위선자들이 성령과 성경을 거스른다는 것은 처음부터 악의적으로 그러는 것도 있고, 조금씩 점진적으로 미혹되어 그러는 것도 있다. 자기에게는 믿음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면서 교회에서 위선을 행하는 것도 있고, 자기에게는 믿음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하고 믿음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면서 그러는 것도 있다. 스스로 목사라 하면서 자기에게 까불면 하나님이라도 자기 손으로 어찌해버리겠다는 악독한 말을 내뱉은 것은 스스로 가증한 신성모독자임을 드러낸 것이고, 신앙인이라 하면서 그런 신성모독자를 옹호추종 하는 것은 스스로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는 새에 악독한 자의 신성모독에 동참하는 것이다. 스스로 목사라 하면서 북한주민 이천만명을 하나씩 끌어안고 죽어서 남북통일을 이루자고 하는 것은 애국목사가 아니라 히틀러보다 더 한 대량학살자임을 드러내는 것이고, 신앙인이라 하면서 그런 자를 옹호추종 하는 것은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새에 미혹됨으로 그의 대량학살에 동참하는 것이다.
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Hatred stirs up strife, but love covers all offenses.
Odium suscitat rixas, et universa delicta operit caritas.
μῖσος ἐγείρει νεῖκος, πάντας δὲ τοὺς μὴ φιλονεικοῦντας καλύπτει φιλία·
의로운 목사나 성도를 미워하는 교회의 위선자들은 다른 구성원들에게 그들을 험담함으로써 분란을 조장하여 교회에서 내쫓으려 한다. 반면에 의로운 목사나 성도를 사랑하는 신앙인들은 설령 그들에게서 몇몇 허물과 연약함과 부족함을 발견하게 되더라도 가능한대로 호의긍정적으로 여기며 품어준다.
악을 미워하는 목사나 성도들은 교회에서 위선자들과 끊임없이 다툼이 생길 수 밖에 없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바 당신께서 이 땅에 화평대신 갈등과 분란을 주러 오셨다고 하신 것과 비슷하다. 하나님의 두 증인은 끊임없이 땅의 사람들을 괴롭게 하였고 급기야는 용이 세운 짐승들과 싸우다가 그것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만다.
악을 사랑하는 교회의 위선자들은 공의로운 권징을 받아 마땅한 죄악이라도 자기들과 함께라면 거짓된 사랑으로 품어주고 가려주고 묻어준다. 아무리 신성모독을 저질러도 자기들의 정치이념에 부합하기 때문에 그저 단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여서 그런 것이라 옹호추종한다. 아무리 여자 교인들에게 성범죄를 저질러 왔어도 그가 단기간에 교회 규모를 어마어마하게 키워놓았다는 이유로 거액의 퇴직금을 주고 무마해버리기도 한다. 담임목사로서 갖춰야 할 정식 신학과정을 이수하지 않았어도 그가 단지 초대형교회 담임목사라는 이유만으로 편법적인 신학과정 이수를 허용해준다.
13 明哲한 이의 입술에는 智慧가 있어도 智慧 없는 者의 등을 爲하여는 채찍이 있느니라
On the lips of him who has understanding, wisdom is found, but a rod is for the back of him who lacks sense.
In labiis sapientis invenitur sapientia, et virga in dorso ejus qui indiget corde.
ῥάβδῳ τύπτει ἄνδρα ἀκάρδιον.
명철은 세속적인 명철함이 아니라 그리스도 여호와께서 주시는 명철을 의미한다. 즉, 세속적으로 어떻게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명철이 아니라, 어떻게 주님 뜻에 부합하는 올바른 신앙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명철이다. 주님의 명철은 성도 스스로 갖출 수는 없는 것이고 그리스도께서 성도의 영에 내주하게 하신 보혜사 성령 하나님께서 갖추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성도의 성품과 분리되어 독단적으로 명철을 부여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전인적인 성품을 활용하셔서 마치 성도가 스스로 당신의 명철을 갖춰 나가는 것처럼 역사하신다. 그리하여 성도는 성경을 아는 지식 지혜 명철이 늘어남과 동시에 성경을 아는대로 행하는 것도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지혜 없는 자란 교회의 위선자들을 지칭하는데, 남들보다 성경 지식을 비롯한 여러 은사들은 풍부하면서도 아는만큼 받은만큼 실천하지 않는 자들과, 교회 활동과 봉사에는 열심이면서도 성경을 아는데는 관심이 없는 자들과, 성경도 교회도 관심이 없으면서도 모종의 세속적 유익을 위해 교회에 속한 자들 모두를 포함한다.
이 땅에서는 용이 어느 정도 공중권세를 잡고 있기 때문에 주님의 지혜와 명철을 가진 교회와 성도들은 세상권세를 잡은 용에게 종종 등에 채찍질을 당하는 등의 핍박해를 당하게 되어 광야로 도피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기도 한다. 반면에 주님의 지혜와 명철이 없는 교회의 위선자들은 용이 세운 짐승에게서 이마와 손에 용과 짐승의 표를 받았기 때문에 짐승을 올라탄 큰 음녀 바벨론과 더불어 온갖 세속적 향락을 만끽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야의 여인에게서는 천이백륙십일 동안 끊임없이 하나님의 두 증인들이 나와서 큰 음녀 바벨론과 그에 속한 자들을 대적하여 주님의 지혜와 명철로써 괴롭게 한다. 주님의 교회와 성도들은 이 땅에서는 잠시 등에 채찍질을 당하나 영원한 생명의 복락을 얻게 되는 반면에, 주님의 지혜와 명철이 없는 교회의 위선자들은 이 땅에서는 잠시 복락을 누리나 주님의 재림과 성도의 부활승천 후에는 천년 동안 일곱 대접 재앙이라는 채찍을 맞다가 세상 종말과 심판 후에는 영원한 불못의 채찍질을 당하게 된다.
14 智慧로운 이는 知識을 간직하거니와 미련한 者의 입은 滅亡에 가까우니라
The wise lay up knowledge, but the mouth of a fool brings ruin near.
Sapientes abscondunt scientiam ; os autem stulti confusioni proximum est.
σοφοὶ κρύψουσιν αἴσθησιν, στόμα δὲ προπετοῦς ἐγγίζει συντριβῇ.
그리스도 여호와의 성령께서는 성도들을 지혜롭게 하시기 위해서 인간의 언어로 기록된 성경을 깨달아 알고 행하게 하시는 방식을 쓰시므로 성도들은 나날이 성경에 대한 지식과 지혜와 명철이 선순환적으로 쌓이게 된다. 지식이 지혜가 되고 지혜가 명철이 되며 그 명철이 또 확장된 지식이 되어 계속적으로 반복순환하며 장성숙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교회의 위선자들은 비록 세속적인 지식과 지혜와 명철은 풍부하더라도 주님의 지식 지혜 명철에는 관심도 없고 배척하기 때문에 어리석고 미련해지므로 결국에는 영원한 멸망에 빠지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흔하지는 않지만 한동안 교회의 위선자들에게 미혹되어 미련하게 행하다가 구사일생으로 기적적으로 건짐을 받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물론 그렇게 건짐을 받게 되면 이후에는 성도로서의 삶을 살아나가게 되겠지만서도 그가 영원한 멸망에 거의 근접했었다는 것과, 건짐 받기 전 까지의 모든 종교활동이 그저 재산과 건강과 시간낭비였을 뿐 아무런 상급도 얻지 못하는 허무한 것이었다는 사실은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잠언을 기록한 솔로몬은 자신이 기록한 전도서에서 자신의 허랑방탕하고 죄악된 지난날을 헛되고 헛된 것이라 후회하며 한탄했던 것이다. 재산이나 건강이나 시간이나 그 외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이 풍부할 때에 주님의 지혜를 얻기에 힘쓰는 것이 참된 지혜이다.
15 富者의 財物은 그의 堅固한 城이요 가난한 者의 窮乏은 그의 滅亡이니라
A rich man’s wealth is his strong city; the poverty of the poor is their ruin.
Substantia divitis, urbs fortitudinis ejus ; pavor pauperum egestas eorum.
κτῆσις πλουσίων πόλις ὀχυρά, συντριβὴ δὲ ἀσεβῶν πενία.
부유함과 가난함은 이 땅에서의 육적인 재물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주님의 복음에 대한 지식 지혜 명철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를 의미하는 것이다. 성령의 불 시험에 견뎌내는 신앙의 열매를 많이 갖춘 성도는 부유하나 그렇지 않은 자는 가난한 것이다. 신랑이 올 때까지 기름을 충분히 준비한 지혜로운 다섯 처녀는 부유하나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미련한 다섯 처녀는 가난하다.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는 세속적으로는 가난하나 신앙적으로는 부유해서 주님께 칭찬을 받았지만, 라오디게아 교회는 세속적으로는 부유하나 신앙적으로는 가난하였으므로 주님께 책망을 들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여덟가지 참되고 복된 부유함을 가진 성도들을 가르치셨다. 밭에 감추인 보화와 지극히 값진 진주를 얻기 위해 전재산 모든 소유를 팔아버린 사람은 이 땅에서는 가난하나 영으로는 참되게 부유한 사람이다.
교회가 복음 사역을 소홀히 여기는 것, 목사가 목회 아닌 생계활동을 겸하는 것, 개혁신학교수가 세속학문에 눈을 돌리는 것, 성경을 배우고 행하는데 힘쓰지도 자라가지도 않는 것 등은 자기들의 신앙을 가난하게 만들어 결국 빈털터리가 되어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하는 것들이다.
16 義人의 수고는 生命에 이르고 惡한 者의 所得은 罪에 이르느니라
The wage of the righteous leads to life, the gain of the wicked to sin.
Opus justi ad vitam, fructus autem impii ad peccatum.
ἔργα δικαίων ζωὴν ποιεῖ, καρποὶ δὲ ἀσεβῶν ἁμαρτίας.
의인이란 그리스도의 의를 옷입고 그리스도의 성령으로 심령이 변화되는 성도들을 말한다. 의인이 수고를 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의롭게 하시는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뜻을 위해 이 땅에서 견고히 인내하며 수고해 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의로운 성도들의 수고는 세상에서 판단하는 수고와는 의미가 다르다. 세상에서는 크고 웅장한 무언가의 대의를 위해 희생할수록 칭송을 받지만, 주님께서는 복음을 위해서 물 한그릇 대접하는 것이나 두 렙돈 밖에 안되는 생활비 전부를 헌금하는 것을 더 큰 수고로 여기신다.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자연적인 노화와 질병과 가난과 사고 등도 의로운 성도들에게는 신앙의 거룩함을 증진시키는 수고의 방편이 된다.
악한 자는 교회의 위선자들로서 겉으로는 신앙과 복음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반 성경적인 태도를 일삼는 자들을 말한다. 특별히 어려운 일 없이 무난하고 평탄한 상황에서는 복음대로 하다가도 정작 신앙의 결단을 내려야 하는 중차대한 상황이 닥치게 되면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를 대면서 복음을 저버리고 세속적인 방식을 취하는 자들이다. 교회와 복음을 악용해서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는 자들이다. 성경교사라 하면서 성경의 권위를 깎아내리고 세속학문의 권위를 성경만큼 높이는 자들이다. 개혁주의 기독교 세계관을 강조하면서 정치이념에 안맞는 국가지도자와 정부를 교묘히 비방하는 자들이다. 목사라 하면서 가난과 생계를 이유로 목회와 상관없는 생계활동을 겸하는 자들이다. 그렇게 교회와 복음을 악용해서 얻은 모든 소유물은 결국 나중에 주님 앞에서 자기들의 죄악에 대한 부인할 수 없는 증거가 될 뿐이다.
17 訓戒를 지키는 이는 生命 길로 行하여도 懲戒를 버리는 者는 그릇 가느니라
Whoever heeds instruction is on the path to life, but he who rejects reproof leads others astray.
Via vitæ custodienti disciplinam ; qui autem increpationes relinquit, errat.
ὁδοὺς δικαίας ζωῆς φυλάσσει παιδεία, παιδεία δὲ ἀνεξέλεγκτος πλανᾶται.
주님의 훈계를 지키는 것은 수고로운 일이기 때문에 오직 주님의 의를 힘입은 의로운 성도들만이 할 수 있고 갈 수 있는 길이다. 반면에 교회의 위선자들은 주님의 의를 힘입지 않음으로써 성령과 성경의 원리를 따르지 않으므로 주님의 생명의 길에서 벗어나게 될 수 밖에 없다. 의로운 성도는 이 땅에서 울며 수고로운 길을 가더라도 마지막에는 웃으며 영원한 생명에 다다르게 되지만, 교회의 위선자들은 이 땅에서는 웃으며 편한 길을 가더라도 마지막에는 울며불며 이를 갈며 영원한 멸망에 다다르게 된다.
18 미움을 감추는 者는 거짓된 입술을 가진 者요 中傷하는 者는 미련한 者이니라
The one who conceals hatred has lying lips, and whoever utters slander is a fool.
Abscondunt odium labia mendacia ; qui profert contumeliam, insipiens est.
καλύπτουσιν ἔχθραν χείλη δίκαια, οἱ δὲ ἐκφέροντες λοιδορίας ἀφρονέστατοί εἰσιν.
교회의 위선자들 중에서도 유난히 음흉하게 영특한 자들은 참된 교회나 목사나 성도들을 해하고자 하는 증오가 가득하면서도 겉으로는 그들을 위하는 양 그럴듯하게 꾸며댄다. 그래서 참된 교회 구성원들 앞에서는 악의를 파악하지 못하게 좋은 말과 행동으로 대하면서도 그들 뒤에서는 슬며시 은근슬쩍 험담을 끼워넣고 무너뜨릴 계획을 조심스럽게 이행한다. 그런 영특교활한 위선자들을 미련하다고 하는 이유는 그들이 설령 사람의 지혜로는 아히도벨처럼 하나님의 지혜와 방불할 정도로 탁월할지는 몰라도 하나님의 방식과 법도를 따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에는 아히도벨과 같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움과 중상은 아무리 성도라 하더라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성도들도 신앙으로 인해 누군가에게서 부당한 핍박과 괴롭힘을 지속적으로 받게 되면 상대에 대한 미움이 생기게 되고,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하려다가 상대를 지나치게 험담하게 되는 경우도 있게 마련이다. 물론 성도가 불가피하게 가지게 되는 미움과 중상도 거짓되고 미련한 것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가 위선자들과 다른 것은 그 미움과 중상을 하염없이 이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조금씩 훌훌 털어버림으로써 진실함과 지혜로운 길로 들어서기 때문이다.
19 말이 많으면 허물을 免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制御하는 이는 智慧가 있느니라
When words are many, transgression is not lacking, but whoever restrains his lips is prudent.
In multiloquio non deerit peccatum, qui autem moderatur labia sua prudentissimus est.
ἐκ πολυλογίας οὐκ ἐκφεύξῃ ἁμαρτίαν, φειδόμενος δὲ χειλέων νοήμων ἔσῃ.
사도 바울이 교훈한 바, 여자들은 교회에서 가르쳐서는 안되고 잠잠해야 하며 남편을 비롯한 남자들을 통해서 성경을 배워야 한다고 한 이유에는 남자들보다 다섯 배나 더 많은 말을 하는 여자의 본성 때문인 것도 있다. 남자들이라고 말에 허물이 없을수는 없지만 산술적으로만 따져본다고 하더라도 여자들은 그만큼 남자들보다 다섯배는 더 말의 허물이 많다는 것이고 이는 교회 안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따라서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단순히 가부장적 남녀차별이라 여겨서는 안되고 여성 성도들은 도리어 스스로를 낮추어 남편을 비롯한 남자 성도들을 앞세우는 것이 신앙의 지혜이다.
20 義人의 혀는 純銀과 같거니와 惡한 者의 마음은 價値가 적으니라
The tongue of the righteous is choice silver; the heart of the wicked is of little worth.
Argentum electum lingua justi ; cor autem impiorum pro nihilo.
ἄργυρος πεπυρωμένος γλῶσσα δικαίου, καρδία δὲ ἀσεβοῦς ἐκλείψει.
그리스도의 의로운 성도들은 어떤 사안에 대해서 생각없이 말부터 내지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과연 성령과 성경의 원리에 부합하는지를 면밀히 따져본 후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기 때문에 교회와 구성원들에게 큰 유익을 준다. 그러나 위선자들은 생각없이 말을 하거나 악의적으로 말을 하기 때문에 교회와 구성원들에게 해악을 끼치게 된다. 위선자들의 마음이 가치가 적다는 것은 무언가 그 가운데에서도 유의미한 유익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거의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굳이 위선자들의 마음과 말에서 유익이란 것을 억지로나마 찾아낸다고 한다면 다음에는 그런 위선자들의 악한 언행에 나와 우리의 신앙이 휘둘려서는 안된다는 다짐을 하는 정도일 것이다.
21 義人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敎育하나 미련한 者는 知識이 없어 죽느니라
The lips of the righteous feed many, but fools die for lack of sense.
Labia justi erudiunt plurimos ; qui autem indocti sunt in cordis egestate morientur.
χείλη δικαίων ἐπίσταται ὑψηλά, οἱ δὲ ἄφρονες ἐν ἐνδείᾳ τελευτῶσιν.
그리스도의 의로운 성도들은 복음에 부유하기 때문에 교회와 구성원들을 위해 넉넉히 복음의 유익을 베풀 수 있다. 그러나 교회의 위선자들은 복음을 거부하여 복음에 가난하기 때문에 영원한 멸망의 심판을 받게 된다.
22 여호와께서 주시는 福은 사람을 富하게 하고 근심을 兼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
The blessing of JEHOVAH makes rich, and he adds no sorrow with it.
Benedictio JEHOVAH divites facit, nec sociabitur eis afflictio.
εὐλογία ΙΕΗΩΟΥΑ ἐπὶ κεφαλὴν δικαίου· αὕτη πλουτίζει, καὶ οὐ μὴ προστεθῇ αὐτῇ λύπη ἐν καρδίᾳ.
여호와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성도들에게 주시는 복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세속적인 부귀영화가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서의 영원한 생명과 상급에 이르는 복음의 지식 지혜 명철 등이다. 복음으로 부유하게 하시되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않으신다는 것은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조금의 고난과 염려와 근심 걱정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이 땅에서 겪게 되는 모든 걱정 근심들을 복음 신앙으로 넉넉히 견고히 인내할 수 있게 하심으로써 절대로 신앙을 저버리기까지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반드시 천국에 이르게 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23 미련한 者는 行惡으로 樂을 삼는 것 같이 明哲한 이는 智慧로 樂을 삼느니라
Doing wrong is like a joke to a fool, but wisdom is pleasure to a man of understanding.
Quasi per risum stultus operatur scelus, sapientia autem est viro prudentia.
ἐν γέλωτι ἄφρων πράσσει κακά, ἡ δὲ σοφία ἀνδρὶ τίκτει φρόνησιν.
미련하다는 것은 단지 생각하는 힘이 부족하여 우둔하다는 것이 아니라 반성경적이고 세속적인 방식에 지혜롭고 약삭빠른 교회 위선자들의 언행을 의미한다. 교회 위선자들은 겉으로는 신앙행위를 흉내냄으로써, 속으로는 세속 유익을 추구함으로써 신앙과 재물, 하나님과 돈, 그리스도와 벨리알을 모두 취하고 섬기려 하므로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지만, 정작 그리스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불시험으로써 위선자들의 악행을 모두 불살라 버리시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남은 것 없이 영원한 멸망에 처하게 되므로 미련하다고 하는 것이다. 개혁신학을 세속학문과 자꾸 연관지으려 하는 것, 가난한 목사가 목회와 무관한 생계활동을 하는 것, 성경해석을 정치이념과 자꾸 섞어버리는 것 등이 대표적으로 미련한 짓이다.
명철하다는 것은 세상의 흐름을 세속적으로 잘 파악한다는 것이 아니라, 비록 세속적인 교회의 위선자들에게서 미련하고 어리석다는 판단을 받고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게 되더라도 그것이 성령과 성경의 복음 원리에 부합한다면 우직하게 그대로 실천해 밀고나가는 신앙을 의미한다.
24 惡한 者에게는 그의 두려워하는 것이 臨하거니와 義人은 그 願하는 것이 이루어지느니라
What the wicked dreads will come upon him, but the desire of the righteous will be granted.
Quod timet impius veniet super eum ; desiderium suum justus dabitur.
ἐν ἀπωλείᾳ ἀσεβὴς περιφέρεται, ἐπιθυμία δὲ δικαίου δεκτή.
교회의 위선자들은 이 땅의 교회에서 누구의 제재도 받지 않고 교회를 악용하여 호의호식을 누리지만 결국 육신의 죽음은 물론이거니와 영원한 멸망의 심판을 당하게 된다. 반면에 그리스도의 의로운 성도들은 이 땅의 교회에서 위선자들의 괴롭힘에 시달리고 올바르게 기도하는 것들이 더딘 것처럼 느껴지지만 육신의 죽음과 부활 승천 이후에는 이 땅에서 올바르게 바라고 소망했던 모든 것들이 이뤄지고 보상받게 된다.
25 회오리바람이 지나가면 惡한 者는 없어져도 義人은 永遠한 基礎 같으니라
When the tempest passes, the wicked is no more, but the righteous is established forever.
Quasi tempestas transiens non erit impius ; justus autem quasi fundamentum sempiternum.
παραπορευομένης καταιγίδος ἀφανίζεται ἀσεβής, δίκαιος δὲ ἐκκλίνας σώζεται εἰς τὸν αἰῶνα.
회오리바람은 교회와 그 구성원들의 신앙의 진위여부와 수준을 점검하는 성령의 불시험으로서, 이 땅에서 교회와 구성원들이 겪게 되는 크고 작은 모든 고난과 역경들을 의미한다. 회오리바람에 악한 자가 없어진다는 것은 고난과 역경이 닥쳤을 때 교회의 위선자들은 세속적인 방식으로 교묘하게 피하여 승승장구 할 수는 있어도 결국 그들의 생명의 신앙은 사라져 버리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회오리바람에 의인이 영원한 기초같다는 것은 비록 성도들은 고난과 역경으로 인해 이 땅에서는 많은 것들을 잃게 된다 하더라도 종국에는 회오리바람에도 꺾이지 않은 견고한 신앙이 주님께 인정을 받게 되어 영원한 생명과 상급을 얻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26 게으른 者는 그 부리는 사람에게 마치 이에 食醋 같고 눈에 煙氣 같으니라
Like vinegar to the teeth and smoke to the eyes, so is the sluggard to those who send him.
Sicut acetum dentibus, et fumus oculis, sic piger his qui miserunt eum.
ὥσπερ ὄμφαξ ὀδοῦσι βλαβερὸν καὶ καπνὸς ὄμμασιν, οὕτως παρανομία τοῖς χρωμένοις αὐτήν.
주님의 복음 사역과 신앙활동을 소홀히 하는 모든 것이 주님의 입에 식초를 붓고 주님의 눈에 연기를 내는 게으름이며, 주님께서 가장 호되게 책망하신 라오디게아 교회가 이러한 게으름을 대표한다. 성경을 알아가고 행해야 한다는 것은 알면서도 정작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와 빌미를 대면서 밍기적거리는 것이 주님의 눈과 입을 힘들게 하는 게으름이다. 이 땅에서의 신앙은 완성될 수 없으므로 끊임없이 장성숙함을 부지런하게 이뤄가야 하는데도 지금의 자기 수준에 만족하며 정체되어 있는 것도 주님을 힘들게 하는 게으름이다. 목사가 정치활동이나 영리사업이나 생계활동 등 목회와 무관한 일들을 겸하는 것, 개혁신학자가 성경을 더 넓고 깊게 연구하기는 커녕 세속학문에 눈길을 돌리는 것 등이 주님을 괴롭게 하는 게으름이다.
원론적으로는 이 땅의 모든 교회와 그 구성원들은 주님앞에서 게으른 자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참된 교회와 성도들은 자신들의 게으름을 알고 그 게으름을 줄이고 벗어나기 위해서 끝까지 사역과 신앙의 고군분투를 해 나가는 것이 교회의 위선자들과 다른 점이다.
27 여호와를 敬畏하면 長壽하느니라 그러나 惡한 者의 壽命은 짧아지느니라
The fear of JEHOVAH prolongs life, but the years of the wicked will be short.
Timor JEHOVAH apponet dies, et anni impiorum breviabuntur.
φόβος ΙΕΗΩΟΥΑ προστίθησιν ἡμέρας, ἔτη δὲ ἀσεβῶν ὀλιγωθήσεται.
그리스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성도나 그렇지 않은 악한 자의 수명은 이 땅에서의 육체의 생명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육체의 죽음 이후 주님의 재림과 성도의 부활승천과 세상의 종말과 마지막 심판 이후의 영원에 대한 것을 가리킨다. 그리스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성도들은 비록 이 땅에서는 오래 살지 못하고 단명하게 된다 하더라도 주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과 생명과 상급을 누리게 된다. 반면에 그리스도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는 악한 위선자들은 비록 이 땅에서는 부귀영화와 호의호식을 즐기고 누리더라도 죽음 이후에는 영원히 타는 불못에서 영원한 고통을 당하게 된다. 정치활동이나 영리사업이나 생계활동 등 목회와 무관한 일들을 겸하는 목사들은 자기들이 과연 주님의 장수함을 누리게 될지, 단명함을 당하게 될지 스스로 돌아보아야 한다.
28 義人의 所望은 즐거움을 이루어도 惡한 者의 所望은 끊어지느니라
The hope of the righteous brings joy, but the expectation of the wicked will perish.
Exspectatio justorum lætitia, spes autem impiorum peribit.
ἐνχρονίζει δικαίοις εὐφροσύνη, ἐλπὶς δὲ ἀσεβῶν ἀπολεῖται.
그리스도 여호와의 의로운 성도들은 하늘에 소망을 두기 때문에 이 땅에서 당하는 고난과 역경들을 기꺼이 감내할 수 있고 그 소망들은 하늘에서 반드시 보상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의를 거부한 교회의 위선자들은 오로지 세속적인 것에만 소망을 두기 때문에 설령 이 땅에서 그러한 것들을 어느 정도 이룬다 하더라도 죽음 이후에는 끊쳐지게 될 뿐이다.
29 여호와의 道가 正直한 이에게는 山城이요 行惡하는 者에게는 滅亡이니라
The way of JEHOVAH is a stronghold to the blameless, but destruction to evildoers.
Fortitudo simplicis via JEHOVAH, et pavor his qui operantur malum.
ὀχύρωμα ὁσίου φόβος ΙΕΗΩΟΥΑ, συντριβὴ δὲ τοῖς ἐργαζομένοις κακά.
성도들은 여호와의 도를 정직하게 알고 행하고자 하는데 이는 우리에게 내주하시는 여호와와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땅에서는 비록 성도들이 여호와의 도를 정직하게 지키다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는 고난과 역경과 핍박을 당하여 재물과 지위와 심지어 생명까지 잃게 되더라도 구원신앙 만큼은 그리스도 여호와의 성령께서 산성보다 더 굳게 지켜주시기 때문에 절대로 잃지 않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주님의 재림과 성도들의 부활승천과 세상의 종말과 주님의 크고 흰 보좌 앞에서의 최종 심판이 끝난 후 하늘의 성도들이 거하는 새 예루살렘 성은 사방으로 견고한 성벽이 둘러싸여 있어서 성도가 아닌 악자들은 절대로 침범할 수 없다.
세상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부패하여 타락했기 때문에 여호와의 정직한 도를 왜곡하고 뒤틀어버린다. 그래서 교회의 위선자들은 자기들이 보기에 여호와의 도는 바르지 않고 꼬불꼬불하고 배배 꼬인 것이고, 세속적이고 반성경적인 도가 똑바르고 올바른 것이라 여기게 된다. 그런 위선자들이 교회에서 직분을 가지거나 영향력이 커질수록 뒤틀린 것처럼 보이는 여호와의 도를 자기들이 어떻게든 바로잡아 펴보겠다면서 벼라별 난리짓을 치고 교회 구성원들을 끌어들인다. 그러나 구부러져 보이는 여호와의 도에 자기자신을 구부리지 않고 자기들의 도에 여호와의 도를 바로잡아 보려고 하는 모든 것들은 장차 그리스도 여호와의 성령의 불시험에 소멸되고 위선자 자신들은 영원한 멸망을 당하게 될 뿐이다.
30 義人은 永永히 移動되지 아니하여도 惡한 者는 땅에 居하지 못하게 되느니라
The righteous will never be removed, but the wicked will not dwell in the land.
Justus in æternum non commovebitur, impii autem non habitabunt super terram.
δίκαιος τὸν αἰῶνα οὐκ ἐνδώσει, ἀσεβεῖς δὲ οὐκ οἰκήσουσιν γῆν.
그리스도께서 의롭게 하신 의로운 성도들은 창조 세계의 시공간 안에서 선택된 것이 아니라, 창세 전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그분 자신의 인성 안에서 구원받기로 예정되었기 때문에 성도가 살아가는 시공간 안에서의 그 어떤 상황에도 선택이 영향을 받지 않는다. 반면에 교회의 위선자들은 창세 전부터 선택된 성도들이 아니기 때문에 단지 이 땅에서 자기들 나름대로의 종교행위만 할 수 있을 뿐이고 죽음 이후에는 더 이상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없고 궁극적으로 성도들을 위한 하늘의 새 예루살렘 성에도 거하지 못하며 마치 모든 물질들을 빨아들여 산산이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블랙홀과 같은 불못에 던져져서 육체의 찢김과 불태움을 영원히 당하게 된다.
31 義人의 입은 智慧를 내어도 悖逆한 혀는 베임을 당할 것이니라
The mouth of the righteous brings forth wisdom, but the perverse tongue will be cut off.
Os justi parturiet sapientiam ; lingua pravorum peribit.
στόμα δικαίου ἀποστάζει σοφίαν, γλῶσσα δὲ ἀδίκου ἐξολεῖται.
그리스도의 의로운 성도들은 매사 언행을 성령과 성경의 원리를 따라 하고자 하므로 성도들의 행위를 본받는 것만으로도 주님의 지혜를 어느 정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성도들의 언행은 그만큼 교회의 위선자들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이므로 위선자들에게서 이런저런 괴롭힘을 당하기 일쑤다. 성도들은 설령 교회의 위선자들에게서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더라도 굴하지 않고 성령과 성경의 언행을 고수하며 교회의 타락과 부패를 막기 위해 홀로라도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한다. 교회의 위선자들은 온갖 패역하고 악독한 혀를 놀림으로써 자기들을 성가시게 하는 의로운 성도들을 교회에서 쫓아내려 하고 그러기도 하지만 결국 육체의 죽음과 영원한 심판으로 말미암아 그 가증한 혀가 잘리게 된다.
32 義人의 입술은 기쁘게 할 것을 알거늘 惡한 者의 입은 悖逆을 말하느니라
The lips of the righteous know what is acceptable, but the mouth of the wicked, what is perverse.
Labia justi considerant placita, et os impiorum perversa.
χείλη ἀνδρῶν δικαίων ἀποστάζει χάριτας, στόμα δὲ ἀσεβῶν ἀποστρέφεται.
그리스도의 의로운 성도들은 설령 교회의 위선자들을 화나게 하더라도 우리를 의롭게 하신 그리스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를 주저하거나 멈추지 않는다. 교회의 위선자들은 성도들과는 정반대로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려고 교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 하나님을 화나시게 한다. 그리스도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성도들의 언행이 설령 나를 불편하게 하더라도 그것이 올바름을 인정하고 그들과 함께 한다면 우리 또한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성도라 할 수 있다. 위선자들의 언행이 아무리 내 기분을 좋게 한다 하더라도 주님께서 화내시는 것임을 알고 과감히 끊쳐버린다면 우리는 주님을 화나시게 해드리지 않는 성도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