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성곽 건축에서 부실공사를 막고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해 공사를 담당한 고을의 이름을 성벽에 새겨 넣은 일종의 '공사 실명제' 흔적이다. 고창읍성에는 당시 전라좌·우도 17개 고을(제주도 포함)의 백성들이 동원되었으며, 성벽 곳곳에 해당 고을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렇게 인구 비례로 구역을 꼼꼼하게 나누고 돌에 이름(축성명문)까지 새기게 한 것은 크게 첫째,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여 부실공사늘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만약 특정 구간의 성벽이 무너지거나 틈이 생기면, 돌에 새겨진 고을 이름을 보고 즉시 책임자를 찾아내어 재시공(부실공사에 대한 처벌 및 보수)을 시켰다.
명문 '삼패 신해 (三牌 申海)'에서 삼패(三牌)는 해당 고을에서 동원된 인력 중 '제3조(3패)'에 속한 작업 부대라는 뜻이다. 조선시대에는 군사나 부역꾼을 조직할 때 '패(牌)'라는 단위를 자주 썼다. 신해(申海)는 그 3조를 이끈 조장(책임자)의 이름이 '신해'라는 인물임을 명시한 것이다.
고을 이름만 새겨놓으면 "우리 고을 구역인 건 알겠는데, 그중에서 정확히 누가 날림공사를 했는가?"를 따지기 모호해진다. 그래서 대규모 축성이나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할 때는 고을이라는 큰 틀 아래에 [ 고을명 → OO패(조) → 책임자 이름 ] 순으로 계층을 나누어 꼼꼼하게 책임을 지웠다.
첫댓글 축성명문석(築城銘文石)은 고창 모양성(고창읍성)을 축성할 때 각 고을의 백성들이 할당받은 구간을 표시하기 위해 고을 이름이나 시작(始)·끝(終)을 표시해 둔 돌이나 글자를 말한다. '각자성석(刻字城石)'이라고도 부른다.
조선시대 성곽 건축에서 부실공사를 막고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해 공사를 담당한 고을의 이름을 성벽에 새겨 넣은 일종의 '공사 실명제' 흔적이다. 고창읍성에는 당시 전라좌·우도 17개 고을(제주도 포함)의 백성들이 동원되었으며, 성벽 곳곳에 해당 고을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옥구종(沃溝終)은
군산시 옥구읍의 옛 지명인 '옥구현'을 의미하고, 옥구 지역 주민들이 동원되어 쌓은 구간의 시작이나 끝을 표시한 것이다.
흥덕시(興德始)는
고창군 흥덕면의 옛 지명인 '흥덕현'의 구간이 시작(始)되는 지점임을 알리는 표시이다.
조선시대에 성곽을 쌓을 때 각 고을에 할당하는 구간의 길이는 그 지역의 인구수(정확히는 세금을 내고 부역 의무가 있는 '호수(戶數)'와 '정남(丁男)의 수')를 기준으로 철저하게 계산하여 배분했다.
조선시대의 고을은 인구와 토지 규모 등에 따라 부·목·군·현 등의 등급이 나뉘어 있었다.
인구가 많고 큰 고을(예: 전라감영이 있던 전주나 대도시)은 그만큼 많은 인력을 동원할 수 있으므로 긴 구간을 할당받았다.
반면, 인구가 적은 작은 고을(예, '옥구현', '흥덕현' 등)은 동원할 수 있는 장정의 수가 적었기 때문에 그에 맞춰 짧은 구간을 할당받았다.
이렇게 인구 비례로 구역을 꼼꼼하게 나누고 돌에 이름(축성명문)까지 새기게 한 것은 크게 첫째,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여 부실공사늘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만약 특정 구간의 성벽이 무너지거나 틈이 생기면, 돌에 새겨진 고을 이름을 보고 즉시 책임자를 찾아내어 재시공(부실공사에 대한 처벌 및 보수)을 시켰다.
둘째는 부역의 형평성이었다. 인구가 적은 고을에 무리하게 긴 구간을 주면 공사 기한을 맞추지 못하거나 유민이 발생하는 등 반발이 심했기 때문에, 민심을 달래고 효율적으로 공사를 끝내기 위해서라도 철저한 인구 비례 배분이 필수적이었다.
고을의 인구와 경제력 크기에 맞추어 나라에서 정해준 "딱 우리 몫만큼의 성벽"이었던 셈이다. 백성들의 땀방울과 조선 행정력의 치밀함이 동시에 녹아있는 역사적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 군대·부역 편성 단위인 패(牌)와 책임자의 이름을 새겨놓은 명문도 있다. 그 고을 안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 조(패)와 책임자"가 이 구간을 담당했는지 기록한 훨씬 더 세부적인 실명제 흔적이다.
명문 '삼패 신해 (三牌 申海)'에서
삼패(三牌)는 해당 고을에서 동원된 인력 중 '제3조(3패)'에 속한 작업 부대라는 뜻이다. 조선시대에는 군사나 부역꾼을 조직할 때 '패(牌)'라는 단위를 자주 썼다.
신해(申海)는 그 3조를 이끈 조장(책임자)의 이름이 '신해'라는 인물임을 명시한 것이다.
삼패 강우 (三牌 姜雨)도 마찬가지로
삼패(三牌)는 '제3조(3패)'를 의미하고, 강우(姜雨)는 이 구간을 담당한 조장(책임자)의 이름이 '강우'임을 나타낸다.
일패 정득화 (一牌 鄭得和)에서도
일패(一牌)는 부역에 동원된 작업 부대 중 '제1조(1패)'를, 정득화(鄭得和)는 이 1조를 이끌고 성벽을 쌓았던 현장 책임자(조장)의 이름이 '정득화'라는 인물임을 나타낸다.
고을 이름만 새겨놓으면 "우리 고을 구역인 건 알겠는데, 그중에서 정확히 누가 날림공사를 했는가?"를 따지기 모호해진다. 그래서 대규모 축성이나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할 때는 고을이라는 큰 틀 아래에 [ 고을명 → OO패(조) → 책임자 이름 ] 순으로 계층을 나누어 꼼꼼하게 책임을 지웠다.
특히 똑같은 '삼패(三牌)'인데 책임자 이름이 '신해'와 '강우'로 나뉘어 있는 것으로 보아, 3패 안에서도 인원을 쪼개어 각각 분담 구역을 주었거나, 혹은 서로 다른 고을의 '3패'들이 각자 자기 책임자의 이름을 걸고 쌓은 구간임을 알 수 있다.
거시적인 행정적 배분(고을별 분담)과 함께 실제 현장에서 흙과 돌을 나르던 노동 조직의 최말단 단위와 현장 감독관의 이름까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유물이다.
수백 년 전 이 거친 돌에 자신의 이름을 정성스럽게 새겨 넣었을 민초 '신해' '강우' '정득화' 씨의 흔적이 오늘날까지 이렇게 생생하게 남아있다는 점이 참 경이롭고 흥미롭고 현장감 있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