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H2
작 가 : 아다치 미쓰루(安達 充)
출 판 사 : 1992 년 [소년 선데이]지에서 연재
국내상륙일자 : 1990 년 500 원 짜리 손바닥 만화책으로 아다치 미쓰루의 역작 터치가 나온 직후 일본에서 연재중이던 H2의 잡지 연재분을 교묘히 편집해 해적판으로 출간 시작, 이후 1996 년 대원에서 라이센스 출간 되기 전까지 해적판으로 출간 되었음. 대원에서 34 권 전권을 완간시킴(역시 만화왕국 대원임)
평 점 : ★★★★★
필 독 자 : 야구를 좋아하시는 분, 삼각관계 좋아하는 사람, 열혈 청춘만화 좋아하시는 분 필독. 그 외 맛깔난 만화 원하시는 분 추천 |
아다치 미쓰루를 말할 때마다 그의 뒤를 따라붙는 몇 가지 수식어가 있다. '일평생 갑자원 만화만 그리는 만화가', '야구에 미쳐 있는 야구 만화가', '만화 연출의 천재', '심심하지만 결코 심심하지 않은 만화'...
대충 위와 같은 평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다치 미쓰루이다. 그럼 한 번 살펴 볼까? 아다치는 1970 년 [소년 선데이]지에 <사라진 폭음(The Fadded Explosion, 消えた爆音)>이란 작품으로 데뷔했는데, 이후 70 년대 내내 <Ace of Heart>나 <아 청춘의 갑자원>, <나인>같은, 제목만 딱 봐도 야구만화란 느낌이 팍팍 오는 '야구만화' 를 그려내기 시작했으나, 이때는 그닥 주목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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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1981 년 그의 작품인생에 일대 전환점이 되었던 최고의 역작이 탄생하게 된다. 바로 <Touch>의 탄생이었다. 쌍둥이 형제인 타츠야와 카츠야(한국에선 하늘이와 바다로 더 알려져 있는 그 인물들) 그리고 이 둘 사이에 존재하는 미나미와의 삼각관계, 그리고 동생이 죽고 나서 다시 한 번 갑자원에 도전하는 형 타츠야의 모습.
10 년 후에 한 번 더 말할 테니까 잘 들어둬... 사랑해.
타츠야가 미나미에게 건넨 프로포즈 장면에서 눈시울을 한번쯤 적셨을 독자들... <터치>는 그야말로 아다치 미쓰루의 역작 중의 역작이었다. 그전까지의 그의 작품과는 달리 확실한 남녀간의 삼각관계 구축과 <터치> 이후 농익게 되는 아다치류의 '확실한 심리묘사' 가 시작된 작품이 <터치>였던 것이다. 한국에서는 역시 90 년대 초반 500 원 짜리 손바닥 만화책으로 한 바탕 일진광풍을 일으킨 다음에 대원에서 정식으로 라이센스 출간되면서 다시 한 번 독자들의 가슴에 불을 땡겼지만, 500 원 짜리 손바닥 만화책의 감동은 이미 사라져버렸고(불량식품이 더 맛있는 이유 아니겠는가?) <H2>에 대한 기대를 가지게 만들었던 작품이다.
각설하고, 아다치 미쓰루에 대해 다시 한 번 이야기 해보자. 일단 아다치가 '야구만화' 만 그려내는 작가인가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과연 그럴까? 그가 출간한 만화의 압도적 대다수가 야구 관련이고 그중에서도 '갑자원' 관련 만화만 그려냈다는 건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아다치는 야구만화만 그렸는가? 그건 또 아니다. 열혈 고교 수영부 이야기인 <러프(Rough)>도 있었고, 야구는 아니지만, 그 비슷한 소프트 볼과 복싱이 교차한 <슬로우 스탭>이란 작품도 있었다. 전혀 다른 SF 작품... 본인 말로는 SF 지만, 분명한 시대극인 <레인보우 스토리>란 작품도 있었다. 초능력 만화도 찾아보면 나오는데, 최근에 나온 <미소라>란 작품이 바로 그것이다.
자 이렇게 보면 아다치 미쓰루의 작품이 그렇게 '야구' 에만 집중되었다는 느낌은 안들 것이다. 하지만, 아다치가 들고 나온 작품 중 우리들 기억 속에 각인된 대부분의 작품이 '고교야구 만화' 란 점과 다른 소재보다 야구에 집중한다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하긴 본인 자체가 야구를 좋아하고, 그 스스로 개인 야구팀인 Vitamin A 란 팀을 만들어 뛰고 있는 걸 보면 야구만화에 집착하는 그의 모습도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니다.
1. 아다치 미쓰루 작품의 특징
아다치 미쓰루...1951 년 2 월 9 일 일본 군마현 이세자키(伊勢崎)시 출생. 한국 나이로 이미 50 줄이 훨씬 넘은 나이. 개인 야구팀인 Vitamin A 의 소유자. 야구에 대한 집착과 야구에 대한 사랑이 만화 전반에 걸쳐 속속들이 스며 나오는 작가. 이런 아다치 미쓰루의 작품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첫째, 열혈 스포츠 만화를 지향한다. 그가 그린 만화들 중 대부분이 '갑자원 야구 만화' 이고, 그렇지 않은 만화들 대부분도 '고교 스포츠' 를 그 주제로 삼고 있다. 한 마디로 이팔 청춘을 그려내는 50 줄의 만화가란 소리다.
둘째, 끊임없는 재활용의 만화이다. 아다치 미쓰루의 작품은 그 작품 하나 하나가 다음 작품을 위한 '포석' 의 의미를 가진 작품이다. <미유키>의 근친상간적 분위기가 <레인보우 스토리>에서 미완적 완결로 끝을 맺었고, <진배>로 그 완결을 봤었다. 어쨌든 한 번 사용한 구조와 구성은 다음 작품에서 끝까지 써먹어 '완결' 을 보는 것이 아다치이다. 이런 특징은 인물로 들어가면 여지없이 증명되는데, 그의 작품은 아무리 많이 봐도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계속 들고, 그 다음 전개도 예상이 된다는 상업만화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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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느낌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 주인공들이 '똑같기' 때문이다. 아다치 미쓰루는 작품에 한 번 등장한 캐릭터는 그 캐릭터가 성공적이라는 판단 아래 다음 작품에 다시 등장시키는 묘한 버릇이 있다(물론 이름과 모양은 다르게 그려내지만, 캐릭터 특징은 똑같다). 주연 격으로 따지자면, 아다치 미쓰루는 81 년 <터치> 이후 남자 주인공의 정석은 '타츠야' 였다. 약간 덜 떨어지고, 여자를 밝히며, 활달하지만, 중요한 순간 엄청난 집중력과 멋있는 대사로 좌중을 압도하며 열혈 청년으로 변신 하는 이 캐릭터는 <H2>의 주인공 '히로' 로 발전하게 된다. <터치>에서 메이세이 고등학교 매니저였던 '니따 유카' 역시 <H2>에서 '오사나이 미호' 로 다시 한 번 등장했고, 주인공 아버지는 <러프>의 케이스케 아빠의 캐릭터가 쭉 이어져 내려와 <레인보우 스토리>에서 아키마쯔 영주로, <H2>에서 히로의 아버지로 그 면면을 쭉 이어왔다. 좋게 보면 기본이 튼튼한 안전지상주의 만화이지만, 나쁘게 본다면 천편일률적인 현실 안주의 만화라 할 수 있겠다.
셋째, 삼각관계 없이는 만화가 안 된다는 주의다. 아다치 만화의 스토리적 특징은 크게 두 가지 축선의 스토리를 가지고 진행 된다는 점인데, 하나는 열혈 청춘들의 스포츠 만화로 나가는 축선이고, 나머지 하나는 여자 한 명을 두고 남자 두 명이 싸우든, 여자 두명이 남자 한 명을 두고 싸우든, 꼭 삼각관계를 형성 한다는 것이다. 그가 유일하게 삼각관계를 탈피한 작품이라고 내놓은 <H2> 역시 삼각관계를 발전시킨 사각관계로 시작하였지만, 삼각관계로 버텨온 20 년 인생을 무시할 순 없었는지 종국에 이르러선 결국 삼각관계로 회귀하게 된다.
넷째, 일상을 일상답지 않게 그려내는 연출력이 느껴지는 만화. 아다치 미쓰루의 만화는 어떤 극적 스펙터클이나 거대한 주제와는 거리가 있다. 같은 갑자원을 주제로 그린 하라 히데노리의 <청공>이나 그의 다른 야구만화를 보면 느껴지는 인간으로서의 성장이나, 스펙타클한 승부를 보면, 같은 주제를 가지고 만화를 그려도 이렇게 다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이다. 일단 하라 히데노리나 아다치 미쓰루 둘 다 인물의 심리묘사와 일상의 표현 등에 강한 면모를 보이지만, 하라 히데노리의 경우는 전통적인 일본만화의 초점인 '주인공의 성장' 에 포커스를 맞추고 그림을 그린다는 점에서 아다치 미쓰루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그렇다면 아다치 미쓰루는?
그의 경우에는 만화 자체를 두고 본다면 상당히 '심심' 하다. 일종의 여백의 美랄까? 그가 그리는 만화는 한두 편만 보고 나면, 그의 모든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끝날 것이라는 게 대충은 다 눈에 들어온다. 이런 상황 하에서 심심할 정도의 내용이라면 아다치 미쓰루의 어떤 면을 보고 그의 만화를 봐야 하는 것인가?
그렇다. 바로 그의 30 년 노하우가 고스란히 묻어나오는 '연출력' 이다. 독자를 얼르고 뺨치며 데리고 놀 정도의 구성과 연출력에, 만화 칸 하나하나를 늘리고 줄여 연재의 탄력과 스토리 전개시의 강약 조절을 능수능란하게 해내며, 수시로 만화 안팎을 오가면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여유(개인적으로 만화가가 이렇게 많이 등장하는 만화는 못 봤다) 대충 이 세 가지로 그의 연출력을 말할 수 있겠다.
다섯째, 은근한 변화를 그려낸다는 것이다. 만화를 포함한 모든 이야기의 구조는 간단하다. 주인공이 있는데, 이 주인공이 어찌어찌 세상 풍파를 겪어 나가며 성장하거나 생각의 변화를 느껴 종국에 가선 애초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변화한다. 아다치 미쓰루의 경우도 크게 다를 게 없지만, 다른 작품과 차이점이 있다면 그 은근함이다. 아다치 스토리의 특징 중의 하나는 다른 작품에 비해 '오해' 가 많이 쓰인다는 것이다. 주인공끼리의 오해와 심리갈등은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서도 많이 나오지만, 아다치의 경우는 특별하다.
일단 오해를 하고, 오해가 풀리면 주인공의 반응이 있어야 하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은근히 그걸 가슴속 품안에 묻어든다. 그리고 그 오해가 쌓이고 풀리고 하는 과정들이 이어지면서 천천히 상대방에게 젖어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종국에 가선 상대방에게 완전히 젖어버린다. 그 은근함이 20 권, 30 권 내내 아다치 미쓰루 특유의 심리묘사를 가능케 한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1990 년에 그동안 팔린 아다치 미쓰루의 단행본만 1 억권이란 통계가 나온 걸 보면, 그의 만화에 뭔가 있긴 있다는 걸 단적으로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다. 심심한 작품, 극적인 스펙타클이 부족한 작품, 천편일률적인 인물구성 등등의 욕을 먹고 있지만 적어도 뭔가가 있기에 1 억권이 팔리지 않았겠는가?
2. <터치>와 <H2> 그 채워지지 않는 10 년간의 간극
개인적으로 아다치 미쓰루의 작품을 평해 보라면,
- 80 년대까지의 패러다임으로 만든 <터치>로 아다치류(類)를 완성하였고, 90 년대 감각으로 만든 <H2>로 아다치의 종착점을 찍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다치 미쓰루의 최근작 <미소라>에 대한 실망이 채 가시지 않은 것도 있지만, 아다치 미쓰루의 차기작에 대한 기대를 그리 하지 않는 편이다. <슬램덩크>에 열광한 나머지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배가본드>에 시큰둥한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작품세계를 보면서 그나마 그에 대해 신선함을 느꼈던 기억은 중편이라고 할만한 <진배>를 봤을 때와 <레인보우 스토리>를 보고 나서 뭔가 찝찌름한 감정의 앙금을 남겼을 때 빼고는 없었다.
<레인보우 스토리>야 아다치 미쓰루의 유일한 'SF 시대극' 이라는 타이틀이 절반은 먹어준 작품이니, 그렇다 치고 <진배>의 그 일상의 조바심과 <미유끼>에서 끝내지 못한 가족에 대한 재해석이란 탈을 쓴(!) 근친상간적 분위기와 묘한 환상을 이끌어 내는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아다치 미쓰루의 다른 작품은 정녕 무의미하단 것인가? 필자 역시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 하에서 아다치 미쓰루의 작품을 바라봐도 그다지 유의미 하다고까진 말하기가 그렇다.
이미 그의 작품은 <터치>에서 만개하였고, <터치>에서 보여준 재능을 다시 한 번 능수능란한 테크니션의 입장으로 재해석해서 내놓은 것이 <H2>란 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다. 달리 해석해 보면, <터치>는 80 년대를 그린 아다치 미쓰루의 <터치>이고, <H2>는 90 년대를 그린 <터치>라고 봐야 할까?
이런 표현이 맞을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사학계에서 조선을 표현할 때 '세종이 앞에서 끌고, 정조가 뒤에서 민 나라' 란 표현을 쓰곤 하는데, 아다치 미쓰루의 작품세계에 이 공식을 대입하면 딱 떨어진다는 느낌이다. <터치>가 앞에서 끌고, <H2>가 뒤에서 밀었다... 그럼 그 사이와 그 이후의 작품들은? 단순히 아다치의 작품이라는 자체만으로 유의미 하다라고는 말할 순 없지만, <터치>와 <H2>의 중량감을 버텨내기엔 역부족이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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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로 |
그렇다면, 어째서 <터치>는 80 년대를 그린 아다치 미쓰루의 <터치>이고, <H2>는 90 년대를 그린 <터치>라고 봐야 할까?
음, 일단 <터치>의 연재 시기가 81 년부터 86 년이었다는 점과 <H2>가 92 년부터 2000 년까지 연재되었다는 점을 말해야 하나? 일단 <터치>와 <H2>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야구를 하게 된 '동기' 와 '감독' 에서 찾을 수 있다.
<터치>의 경우 이후 아다치 미쓰루 만화의 전형이 된 '타츠야 타입' 주인공이 완성된 작품답게 주인공 타츠야는 기존의 주인공과 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테리우스와 하록선장이 난무하던 80 년대 초반의 그 엄혹(?)했던 분위기에서 우리의 타츠야는 뭔가 나사하나가 빠진 주인공 캐릭터로 등장하게 된다. 문제는 80 년대의 분위기를 끝까지 벗어날 수는 없었다는 점이다.
주인공이 주인공성이 없는 상황에서 주인공성이 있기 위한 방향으로 변화해 가는 계기, 즉 타츠야가 글러브를 잡는 이유가 80 년대의 분위기 그대로 흘러갔던 것이다. 바로 동생 카츠야의 죽음이었다. 일단 동양의 정서상 형제의 죽음과 못다 이룬 꿈에 대한 도전 같은 경우는 역시 '먹힌다'. 더군다나 80 년대 아닌가? 거기에 더해 <터치>의 경우는 70 년대에 만개해 80 년대까지 끈덕지게 살아남은... 그리고 90 년대까지 회자되어오다 밀레니엄 세기에 오자 '남자의 로망' 이라는 이름으로 정리되는 '지옥훈련' 과 '악질감독' 이 등장하게 된다. 바로 카시와바 에이지로 감독의 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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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오 |
악질감독, 열혈감독의 등장은 80 년대 야구만화에 있어선 빼놓을 수 없는 단골소재이다(바다건너 한국에서도 이현세씨의 공포의 외인구단에서마저도 등장하는 것이 악질감독이다). 아다치 미쓰루는 여기에 한 술 더 떠 에이지로 감독의 경우엔 시력상실이라는 핸디캡까지 쥐어준다. 조금만 있으면 더 이상 눈을 뜰 수 없는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타츠야 팀을 몰아 붙히는 그 혹독함이란...
<터치>는 26 권 전권을 보는 동안, 크게 3 부분으로 나뉘어지는데, 초반부와 카츠야의 죽음 이전까지는 아다치 미쓰루의 모습 그대로를 볼 수 있었지만, 카츠야가 죽고 야구부가 좌절하는 극 중반부와 지옥훈련과 함께 갑자원 정상에 올라가기까지의 마지막 부분은 '시대와의 타협' 을 한 작품이란 것이 내 개인적 판단이다. 물론 <터치>란 작품이 가지는 미덕, 그러니까 아다치 미쓰루의 연출력과 흡입력, 그리고 타츠야로 대변되는 아다치류의 주인공성의 정립이란 점에선 걸작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아다치 미쓰루의 작품이라면 <H2>라는 것... 그러니까 시대상에 함몰되지 않고 오로지 아다치 미쓰루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H2>라는 것이다.
일단 <H2>의 주인공성은 그야말로 아다치류의 전형인 타츠야의 발전형이다. 이름만 바뀌어 쿠니미 히로란 녀석이 등장하게 되는데, 역시 전형적인 아다치 미쓰루 작품의 주인공다운 모습을 보여준다(여자를 적당부분 밝히고, 적당히 열혈이고, 순정파이다). 그의 상대역인 타찌바나 히데오의 경우도 지금까지의 톤 그대로 진지하고, 성실한 모습을 보여준다(물론 허점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문제는 여자 쪽으로 넘어가서인데, 여자가 두 명이 등장하게 된다. 바로 하루까와 히까리의 등장인데, 이렇게 보면, H4 가 맞을지도 모른단 생각과 함께 아다치 미쓰루 작품 역사상 최초의 4 각관계의 연결 등등 상당히 유의미한 진전을 보이지만, 역시 아다치 미쓰루식의 여자주인공(언제나 상대를 배려, 야구를 좋아하며, 혼자 속앓이를 한다)이란 한계점도 분명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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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까리 |
이 작품이 다른 아다치 미쓰루의 야구 작품과 달리 특이점을 보이는 점이 하나 더 있다면, 역시 '안방마님' 에 대한 배려라 할 수 있겠다. 바로 노다 아쯔시의 비중이 올라갔다는 것이다. <터치>의 안방마님인 마쯔다이라 코타로가 그저그런 포수로서의 모습을 보여준 반면에 <H2>에서 히로와 배터리(Battery : 한 벌, 한 조를 의미하며 포수와 투수를 엮어서 칭하는 의미)를 이루는 노다의 등장은 지금까지와의 야구 만화와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보통 한 팀이 우승하기 위한 전력 중에서 가장 중요한 전력으로 치는 것이 바로 '포수' 이다. 프로야구에서 각 구단들이 좋은 투수만큼 좋은 포수에 연연해하는 것이 바로 이 포수의 역할 때문이다.
-그라운드에서 보면, 유일하게 모든 야수들을 다 볼 수 있는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바로 포수이다.
란 말의 의미처럼 투수리드부터 시작해 수비의 모든 시작과 끝이 포수에게서 시작되는 것이다(2003 년 SK 와이번즈 돌풍의 뒤에는 박경완이라는 걸출한 포수가 있었기에 가능했었다). 지금까지의 아다치 미쓰루 만화에서 포수란 모습은 다른 야수들보다 좀 더 등장하는 덩치 산만한 뚱뚱한 야수 정도의 의미였고, 조연급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었다. 그러나 <H2> 에서의 노다는 덩치 큰 야수까지는 맞지만, 조연급의 그저 그런 야수는 아니었다. 이유는 간단했는데, 일단 히로가 '어쩔 수 없이' 야구부가 없는 학교로 가야 했고, 거기서 야구부를 만들어 내 갑자원으로 진출한다는 스토리였기 때문이란 것이다. 최소한 손발이 맞는 포수와 내야수비는 있어야 야구팀을 꾸릴 수 있지 않은가?
해서 등장한 것이 주조연급으로 격상한 포수 노다의 등장과 2 루수 야나기의 등장이다. 작품 전반을 걸쳐 등장하는 노다는 말 그대로 배터리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다. 투수 리드는 물론, 히로와의 일상에서도 안방마님처럼 세심하게 챙겨주는 모습에 더해 그동안 아다치 미쓰루의 만화에서 보여주는 포수의 전형적인 모습 '한방' 터뜨리는 거포로서의 역할까지 해내는 모습은 확실히 계산된 등장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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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까 |
<H2>의 이야기 구조는 아다치 미쓰루의 다른 작품들처럼 상당히 단조롭다. 중학교시절 야구로 이름깨나 날리던 히로, 노다, 히데오 그리고 히까리, 그러나 히로와 노다는 돌팔이 의사의 진단에 의해 야구를 포기하게 된다. 결국 이 두 명은 야구부가 없는 학교로 진학해 허리에 좋다는 수영과 축구를 하며 소일하게 되다가, 이 의사가 돌팔이 의사임이 드러나면서 다시 야구를 하려 하지만, 이 센까와 고교엔 야구부가 없다. 교장 선생 자체도 야구부 창설을 반대하고 나선다. 이유는 첫 진출한 갑자원에서 대량실점으로 패배한 상처가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히로와 노다, 2 루수 야나기(이 녀석의 아버지가 교장이다) 그리고 고교야구 팬이라는 하루까의 노력 덕에 야구부는 창설하게 되고, 히데오와의 격전에 뛰어 들게 된다. 그 사이에 히로는 히까리에 대한 사랑을 느끼고, 하루까는 히로에 대한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저렇게 얽히고 설키지만, 결론으로 가선 히까리를 사이에 두고 히로와 히데오가 노려보는 형국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갑자원의 마지막 결승에서 히로와 히데오는 마지막 대결에 나서게 된다. 자그마치 34 권이란 분량을 자랑하는 <H2>의 결론은 히로가 히데오를 삼진아웃시켜버리는 그 한 장면을 위한 것이었다. 정말 어마어마한 분량이라 아니할 수 없다.
3. 도대체 갑자원이란 무엇인가?
일본 만화를 접하고, 서서히 문리가 트이면서부터 필자의 머리 한 가운데에서 맴돌던 것이 하나 있었는데, '도대체 갑자원이 뭐하는 거 길래 저 난리지?' 라는 것이다. 아무리 봐도 우리나라의 청룡기나 백호기, 봉황대기 같은 고등학교 야구대회인데, 일본 만화나 만화영화에서 등장하는 갑자원은 어떤 광풍이 몰아치는 청춘의 열기 그 자체였다.
필자의 아버지가 '역전의 명수 선린상고' 를 얘기하며 70 년대에 한국의 고교야구가 날렸었다는 말을 들어도 시큰둥하던 때였기에 그다지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늘상 필자의 기억 속에 있는 고교야구란 것은 썰렁한 동대문운동장과 하일성씨 그리고 심판들의 부정심판 등등이 다였기에 과연 저렇게 열광하는 고교야구 만화가 존재할까 하는 의구심이 먼저 들 법도 했다. 문제는 한국의 만화에도 갑자원은 언제나 '흥행대박' 이었다. 이현세씨의 <머나먼 제국>이란 작품에서도 주인공은 갑자원 우승을 한 문무겸비의 남자로 나오게 된다.
이런 의구심은 몇 개의 갑자원 야구대회 만화를 보며 점점 증폭 되었다가 1993 년 8 월...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인 수학능력시험 2 번 실시의 시기에 걸쳐서 해결되었다. 당시 본 필자는 수학능력시험에는 전혀 뜻이 없었고, 오로지 한 일이란 게 일본 위성방송을 보며 시간을 소일하는 것이었다. 오죽하면 담임선생까지도 날 포기하고, 일본 수입서점에 가서 뉴타입 사오겠다는 말을 듣고는 선선히 내보내셨을까? 그 당시 본 필자는 대학이란 것에 그닥 뜻을 두지 않고 있었던 시기였고, 야간자율학습과 보충수업도 모잘라 방학기간까지 학교를 나오게 했던 이 입시지옥에 치를 떨던 시기였다. 원체 공부와는 거리가 있는 인생이었지만, 그때는 정도가 좀 더 심했다. 어쨌든 그렇게 집안에 틀어박혀 NHK 를 보던 필자, 지금도 여름방학만 되면 만화영화 특선 시리즈와 영화특선 시리즈 등 꽤 볼만한 프로를 방송하고 있는 NHK 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그러니까 그 뒹굴거리던 고 3 여름방학(?)의 한 가운데 NHK 방송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보던 필자는 이색적인 일본 문화에 묘한 감흥을 느끼다가 결국 못볼 걸 보게 된다. 바로 제 75 회 전국 고교야구 선수권 대회를 보게 된 것이다. <터치>나 다른 일본 야구만화를 보며, 반신반의 했던 사실들을 직접 확인하게 되었다. 갑자원 대회 열리기 며칠 전인가? 이미 갑자원 구장에 몰려든 수많은 인파들이 서로 자신의 고향팀과 모교를 응원하느라 난리를 쳤고, 갑자원 근처의 '우승라면집' 과 '우승덮밥집' 에선 서로 자기네 돈부리와 라멘을 먹으면 우승할 수 있다며 라면과 덮밥을 내밀고 있었다. 촌티 나는 TV 세트장에 앉아 화기애애한 웃음을 지으며 조추첨을 하던 필자와 비슷한 또래의 고교 야구 선수들. 이때까지는 바다 건너 한국의 내 또래 학생들의 모습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대회 개막일 조 추첨 때의 그 화기애애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고, 이제 분위기는 열광 그 자체였다.
하이라이트는 그 입장식이었다. 49 개교란 자막이 나오고 나서 마치 2 차 대전때의 학도병처럼 로봇과 같이 뻣뻣하게 무릎과 팔을 직각으로 꺽으며 입장하는 모습. 머리는 완전 빡빡 밀어서 만화의 그것과는 좀 다르단 걸 알게 되었지만, 일단 그네들의 표정엔 '비장미' 와 '결연함' 이 넘쳐 흘렀다. 그리고 49 개교를 둘러싼 스타디움 안의 열기들... 5 만 8 천석이 꽉 미어터져서 이 49 개교의 선수들을 바라보는 그 모습이란, 아니 일본 열도의 모든 이들이 이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실제로 거기 나온 응원석의 여학생들이 이 소년 야구 선수들에게 연정과 애모의 눈빛을 보내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강렬하게 말이다. 한 때 갑자원 배경 만화에서 나오는 락커룸 안에서의 러브씬이 거짓이 아니란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선수 선서와 개회사 그리고 긴 사이렌과 함께 시작되는 갑자원의 제 1 시합, 정말 그들은 미친 듯이 야구를 했었다. 말 그대로 그해 여름에 자신의 청춘을 불태웠다. 치고, 던지고, 구르고, 달리고, 갑자원의 그 고운 검은색 점토흙에 자신을 내맡긴 채 그들은 야구를 했었다. 내가 보기엔 별반 우리네 고교야구 수준과 다를 거 같지 않았다. 직구 구속이 130 킬로를 넘는 걸 보기 힘들었고, 무사 1 루면 여지없이 나오는 번트 사인에, 몇 개의 커브와 포크볼, 슬라이더 정도가 구질의 전부였었다(낙차는 컸지만, 속도는 여지없이 고교 야구의 평균이었다). 타자도 썩 잘 치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뭔가가 달랐다. 그렇다. 그들은 열정을 가지고 달렸던 것이다. 자신들의 온 힘을 다해 야구를 했었고, 결과는 그 다음이었다. 진 팀은 울면서 갑자원의 흙을 '모래주머니' 에 담아갔고, 이긴 팀은 자기들을 응원한 모교가 있는 펜스로 달려가 교가를 불렀다. 교가를 부르던 그들의 얼굴에선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과 뿌듯함이 느껴졌었다. 그렇게 그들은 야구를 했었고, 난 그해 여름에 있었던 갑자원 야구대회 전 시합을 다 봤었다.
그 당시 내가 느꼈던 문화적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분명 나와 같은 고 3 인데, 난 수능이란 입시괴물에 쩔어서 갈피를 못잡고 있는 상황에서 바다 건너 일본의 고 3 은 말 그대로 '청춘을 불태우고' 있었다.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일본이란 나라에 대한 동경심이 가슴 속 깊숙한 심연에서부터 피어 올랐다. 더 대단한 건 그런 그들을 지켜보는 일본인들의 시선이었다. 당장 야구장에 모인 모교 학생들, 선후배는 물론이거니와 갑자원을 중계하는 NHK 의 모습이란... 정말 NHK 는 아침부터 시작해 오후들어 모든 게임이 끝날 때까지 전 게임을 쉬지 않고 중계했다. 이 짓을 대회 끝날 때까지 했던 것이다. 더 대단한 건 취재 열기인데, 이긴 팀이든 진 팀이든 장비를 챙겨 들고 락커룸으로 통하는 복도를 지나 기자회견장(?)으로 향하는데, 복도 좌우를 빽빽이 메운 기자들의 플레쉬 터지는 소리와 기자회견장으로 보이는 그 곳에서 투수는 투수대로, 그 날의 수훈선수는 수훈선수대로, 감독은 감독대로 전부 기자들에게 포위되어 인터뷰를 해야 했던 것이다. 진 팀 역시 인터뷰를 하는데, 그 열기란 것이 웬만한 프로스포츠의 그것과 다를 게 없었다. 그리고 후에 이 갑자원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면서 이 갑자원의 규모와 수준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일단 갑자원, 그러니까 고시엔이라 불리는 유래에서부터 시작해야겠는데, 효고(兵庫)현 니시미야(西宮)시의 오사카(大阪)만 연안에 5 만 8 천 명을 수용하는 야구장 '고시엔(甲子園)' 이 있다(야구장 이름에서 갑자원이 나온 것이다. 야구장 이름이 갑자원인 건 甲子年에 야구장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센트럴리그 한신(阪神) 타이거즈의 홈구장이기도 하지만 매년 여름에 열리는 전국 고교야구 선수권 대회의 본선 무대로서 더욱 유명해졌다. 한국에 소개된 <폭렬 갑자원>이란 만화에서 매니저가 '고시엔에 가고 싶다!!' 라고 말하자, 주변에서 한신 타이거즈 팬클럽에 들으라고 말한 연유가 여기에 있다. 일단 이 녀석은 1924 년 완공 직후 10 회 대회가 여기서 열리면서 정식 명칭인 '전국 고교 야구 선수권 대회' 라는 명칭은 밀려나고, '고시엔 대회' 라는 명칭이 자리잡게 된다.
이 대회의 역사란 것이 '일본 야구의 역사' 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 1915 년 1 회 대회가 열렸으니, 거의 100 년에 가까운 역사가 된다. 이 갑자원 시스템이란 건 '연중 쉬지 않고 이어지는 야구경기' 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겠는데, <H2>를 보신 독자라면 갑자원 야구대회가 봄에도 한 번 있고, 여름에도 한 번 있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뭐 봄 경기가 여름 경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이 두 경기가 일본 고교 야구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니, 대단한 이벤트임에도 틀림없다. 어쨌든 이 두 개의 고시엔은 3,4 월에 치러지는 '봄 고시엔' 혹은 '선발(選拔) 고시엔(선발의 일본식 발음 센바츠를 따라 센바츠 고시엔이라고 한다)' 과 7,8 월에 열리는 본격적인 청춘의 대로망 '여름 고시엔' 으로 나뉘어진다. 카와구치 카이지의 <배터리> 란 작품을 보면 '갑자원 춘하제패 실패' 라며 흥분하는 모습이 바로 이거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고시엔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에 대해서 말해봐야 겠는데, 1999 년 현재 일본에 등록된 고교 야구팀의 숫자만 4,200 여 개다 이 4,200 여 개의 팀은 전국 49 개 권역으로 나뉘어져 자기네 권역 안에서 예선을 치루게 되는데, 팀마다 최소 7 번의 예선을 거쳐 갑자원 구장에 발을 내딛을수 있는 숫자가 바로 49 개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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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갑자원 대회에 진출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들은 그 지방의 '영웅' 이 될 만한 것이다. 우리나라 고교 야구대회 중 유일하게 '예선전' 이 없어 그 대회규모가 제일 큰 봉황대기의 출전 학교수가 50 개교를 겨우겨우 넘긴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지 않는가? 더 대단한 건 이 49 개교 팀 중에서 왕중왕을 가리는 갑자원 본선인데, 49 개팀이 6 번의 시합을 거치는 동안 하나 둘 떨어져 나가 종국에 가서 갑자원 우승을 하게 된다는 것 자체가 '신화' 의 한 장면으로 기록되는 것이다(쉬지 않고 계속 던지고 뛰고 하는 토너먼트 방식이다. 지면 짐싸서 내려가야 하는 상황이니 매일매일의 승부가 그야말로 전투였던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NHK 가 정규방송 중에서 뉴스만 제외한 모든 프로를 올스톱시킨 다음에 이 갑자원대회의 전경기를 생중계 하는 것이다.
<H2>나 <4 번 타자 왕종훈>, <터치>를 보면, 갑자원 구장 안의 매점이나 숙소에서 '모래 주머니' 란 걸 파는 장면이 나온다. 또 경기에 진 팀의 경우 인사를 마치자 마자 그라운드에 주저 앉아 열심히 갑자원의 흙을 퍼 담는 장면이 보여지는데, 본 필자 역시 이 장면을 TV 에서 보기 전까지는 믿지 않았다. 그러나 TV 를 통해서지만 이 모습을 보고 나선 할 말을 잃었다. 실제로 이런 '흙 담아가기' 의 전통은 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데, 1949 년 우승후보로 꼽혔던 기타규슈(北九州)시의 고쿠라기타(小倉北) 고교가 준준결승에서 패퇴할 당시 투수가 슬그머니 흙 한 줌을 주머니에 담는 장면이 보도된 후 갑자원의 전통이 되어 버렸다.
이런 전통이 '모래 주머니' 에까지 이어지고, '절대 지지 않는다!!' 라는 신념을 가지고 경기에 임하겠다며, 절대 모래주머니를 사지 않는 선수도 있고, 모래주머니를 준비 못해 양말을 벗어 흙을 담아가는 모습 등등 재미있는 장면도 연출되곤 한다. 실제로 이 흑토를 퍼가는 걸 보면, 한신 타이거즈의 배려가 느껴지는 대목인데, 갑자원이 열리는 대회 기간 동안 한신은 홈구장을 버려 두고 이리저리 어웨이 경기를 뛰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열혈 청춘의 로망' 을 위해서 이들이 갑자원의 상징이랄 수 있는 이 흑토를 퍼가는 걸 허락해 준 것이다.
실제 갑자원 대회가 끝나고 나서 이 흑토를 다시 깔고, 운동장 보수를 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은데도 한신 타이거즈 측은 열혈 청춘의 로망을 위해 기꺼이 이 갑자원 부대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무서운 것이 이런 비용 이상의 수익을 뽑아내는 것이 바로 일본 야구계란 것이다. 생각해보라 4,200 여 개 학교의 야구부 부원수가 얼마나 될까? 10명씩만 잡아도 4 만 2 천 명이 넘는다. 이들 중 프로가 되는 극소수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어떻게 되겠는가? 이들은 다시 사회로 나와 사회인 야구를 하던가, 옛날 옛적 자신이 고교야구를 했던 추억을 반추하며 일본야구의 팬이 되는 것이었다. 일본은 1 년마다 최소 4 만명이 넘는 열혈 야구팬을 양산해 내는 것이다.
한 가지 좀 의외의 기록도 있긴 있는데, 바로 바다 건너 한국도 이 갑자원과 인연 아닌 인연을 맺었던 적이 있다는 것인데, 2000 년 시드니 올림픽 때 한국 타선과 한 바탕 승부를 벌였던 일본의 괴물투수 마쓰자카(松坂大輔)의 경우도 2 년 전인 1998 년 150 킬로미터를 넘나드는 강속구로 봄, 여름 고시엔을 제패 요코하마高를 일약 그해 가장 주목받는 학교로 만들어 버렸다. 2003 년 메이저리그 시즌 초반에 시카고 컵스의 최희섭과 곧잘 비교되었던 괴물 마쓰이 히데키(松井秀喜) 역시 92 년 여름 갑자원에서 5 연타석 고의사구란 신기록을 만들어 내며 갑자원의 신화를 다시 썼었다.
이외에도 박찬호와 한솥밥을 먹었던 노모나, 시애틀의 이치로 등등 웬만한 야구 선수들의 약력에는 갑자원에 관한 기록이 한줄씩 올라가 있는데, 한국과의 이런 인연 아닌 인연보다 조금 더 아픈 기억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까... 일제 강점기 시절 그네들 기준으로 따져보면 조선 역시 일본의 한 영토였기에, 조선의 야구팀도 갑자원에 출전하게 된다. 지금도 낯익은 부산상고, 선린상고, 휘문고보 등이 조선지역 예선을 거쳐 갑자원에 나간 기록도 있다. 씁쓸한 역사의 기록은 야구에서도 이렇게 나타나는 것인가 보다(만약 YMCA 야구단처럼 한 번 야구로 일본은 평정했다면 이 역시 재미있을 듯 싶다).
4. 뒷 이야기...
<H2>의 경우 심한 말로 표현하자면, 여자 한 명을 두고 남자 두 명이 야구로 승부를 거는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갑자원의 마지막 타석 히로와 히데오는 정면승부를 펼치게 된다. 마지막 순간 서로에 대한 친구로서의 운명과 히까리를 사이에 둔 남자로서의 숙명이 교차되면서 일구 일구 승부를 거는 두 명의 남자들의 대결은 심하게 말한다면, 이 한 장면을 위해 34 권을 끌고 왔다고 보일만 하다. 뭐, 나중에 가서 히까리의 선택이 옳았느냐 틀렸느냐에 대해 말들도 많았지만, 글쎄... 그건 어디까지나 작가의 몫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아다치 미쓰루만큼 인물 심리묘사로 절반은 먹고 들어가는 작가의 아우라를 뚫고 지나가기엔 독자들의 힘이 딸리는 것은 사실이니 말이다.
사랑과 청춘을 위해 공을 던지는 아다치 미쓰루의 만화에서 언제나 주인공들은 자신의 여자를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했고, 그 결과는 언제나 만족스러웠다. 과연 <H2>에서의 히로 역시 만족스런 결과를 얻었는지에 대해선 독자들의 판단이겠지만 말이다. 여기서 끝을 이야기 하긴 그렇지만, 나름대로 아다치 미쓰루 다운 결론이었다고 평하는 바이다.
5. 기억에 남는 대사...
솔직히 말해 <H2>에서 기억에 남는 대사를 선택한다는 건 고문이다. 작가 자체가 인물 심리묘사와 탁월한 연출과 대사로 먹고 들어가는 타입이기에 섣불리 기억에 남는 대사를 뽑기에 힘이 들었다. 그 중 끝까지 순위에 남았던 대사가 두 개 있었는데, 바로 12 권에 이시가미 상고와의 대혈투를 마치고 히로가 히까리에게 건배를 제의하며 나온 대사가 있는데,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tour.ddanzi.com%2F2004%2Fm04%2Fm04_img%2Fm04_9932-02.jpg)
라는 대사이다. 상황 자체가 히로가 하루까와 얼떨결에 한 키스로 이야기가 흐르자, 히로는 자신이 히까리에게 어느 정도 마음이 있었음을, 지금고 그런 마음이 있음을 은근히 내비치며 던진 이 대사는 말 그대로 압권이었다. 그러나 이 대사 역시 22 권의 히로의 '사랑고백' 앞에선 맥없이 꼬리를 내려야 했다. 22 권 5 화의 2/3 가까이를 차지하는 이 대사는 그 은근함과 함께 아다치 미쓰루의 뛰어난 심리묘사가 고스란히 묻어나오는 명장면 중에 명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이때 당시 주변 상황이란 것이 히로는 히까루의 생일날에 있는 경기에선 꼭 승리를 해왔다. 히까루의 생일 선물로 자신의 승리를 주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바상고의 쯔끼가따의 1 루 베이스 커버를 할때 쯔끼가따의 손을 밟지 않기 위해 발을 빼다 헛디디는 히로, 발목이 나간 상황에서 결국 이바상고에게 지게 된다. 그리고 히까루와 만나는 히로, 그리고 5 년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속내를 '가장 확실하게' 드러내게 된다. 여기서 그들의 대사를 한 번 들어 보자
히까리 : 그렇게 승리에 집착하는 히로는 처음 봤어. 돌다리를 손이 부르트도록 두드리고 고의사구까지 내주면서 이기려 하다니... 히데오랑 어지간히도 싸우고 싶었나 보구나.
히 로 : 그래, 야구로... 중학교 때 제대로 싸우지 못했으니까, 히데오랑은...
히까리 : 그야 당연하지, 같은 팀이었는 걸.
히 로 : 첫사랑을 걸고... 말야
히까리 : 무슨... 얘기야?
히 로 : 히데오의 첫사랑은 당연히 너잖아.
히까리 : 싸운다고... 무... 무슨 소릴하는 거야, 히데오를 소개해 준 건 히로 너잖아?
히 로 : 중학교 1 학년 때였지, 내 첫사랑은 중 2 끝날 때였어... 알겠냐?
히까리 : 뭐... 뭘 ?
히 로 : 아마 다시 한 번 중 1 때로 돌아간다 해도 또 기꺼이 히데오한테 널 소개할 거야. 그리곤 다시 1 년 반 후에 알게 되겠지. 히까리도 알고보니 꽤 괜찮은 여자네 하고 말야. 승부를 피한 것도 억지로 참은 것도 아니야...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tour.ddanzi.com%2F2004%2Fm04%2Fm04_img%2Fm04_9932-03.jpg)
마지막의 '다만 내 사춘기가 일년 반 늦었어... 그것 뿐이야.' 이 대사 한 마디로 <H2>의 주제와 갈등관계의 모든 축선이 다 담겨져 있다. 그리고 이 대사 한 마디로 아다치 미쓰루의 심리묘사와 대사톤의 특징이 다 담겨져 있다. 한 마디로 <H2> 최고의 대사란 말이 되겠다.
P.S.
H2에서의 나만의 명대사는 사실 따로 있다...
나중에 한가하면, 한번 올려볼까... |
첫댓글 H2,터치 상당히 잼게 봤었는데 가끔씩 보면 감동의 눈물이
카츠의 연재가 끝나면 과연 어떤 종목의 스포츠만화를 연재할런지... 개인적으로는 아다치가 그리는 축구만화가 보고 싶긴한데 왠지 별로일거 같다는...
애들 표정 참 오묘하다.. 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 속에서 상황과 내면을 어쩜 저리도 탁월히 표현 할 수 있는지.. 아다치미츠루 천재 ㅜ.ㅜ
참 좋아하는 거
오... 뭔진 모르지만 디게 길다...
아다찌 미츠루의 만화 정말 좋아하는데...최근에 미소라나 카츠는 좀 약하지만....
30권즈음... "많이 컸구나.." .... 왈칵 -_ㅜ
오늘 집에가면 다시 한 번 봐야지. 내가 유일하게 소장하고 있는 만화지요~하하~
그려. 만화책이나 디지게 보고 니 서울 올라오지 마라. 흥. ㅡ0ㅡ
아다찌 미츠루의 사진은 처음 봤는데......주인공들이랑 닮앗군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