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스와 방스2 - 니스에서 방스에 도착해 로제르 예배당에서 샤갈과 마티스를 만나다!
니스 Nice 바우반 Vauban 터미널에서 82번 버스 를 타고 40분만에 에즈 Eze 마을에
도착해 구경하고는 112번 버스로 니스 로 돌아와 가리발디 광장 에 내립니다.
걸어서 니스 해변 에 도착하니 방스 행 400번 버스 는 불과 7분전에 출발했기로 난감해
하는데.... 둘러 보니 버스 전면에 Vence 라는 글자가 적힌 94번 버스 가 보입니다?
버스 운전수에게 방스에 가느냐고 물으니 간다기에 올라타는데,
이 버스는 "94번" 인데 어째서 방스 로 가는지 궁금했더니...
나중에 확인하니 400번 버스는 "생폴 드 방스" 를 거쳐 방스로 가는데
94번 버스는 다른 동네를 경유해서...... 방스로 가는
것이네요? 버스는 왼쪽으로 니스 해수욕장 을 끼고 서쪽으로 달립니다.
버스는 왼쪽으로 엄청 긴 니스 해수욕장 을 끼고 달리는데 예전에 이스라엘의 텔아비브
해수욕장 이 부산의 해운대 보다 3배 나 될 정도로 길어서 엄청 놀란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보는 여기 니스 해수욕장도 텔아비브 못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데.... 하지만 이탈리아 동부 안코나 해안 에도
끊어지다 이어지는 여기 보다도 엄청 더 긴 해수욕장 이 떠오릅니다.
버스는 해변을 끼고 한참동안 달리다가 왼쪽으로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모습이 보이더니
나타나는 건물은 니스 공항 인가 본데... 그러고는 현대자동차 영업소 를 지납니다.
교외로 나가니 멀리 언덕 위에 자리잡은 성채 가 보이는데 예전에 전투로
날을 새우던 중세 시절에는 언덕 마다 저런 성채가 늘어섰겠지요!
도중에 언덕 위에 세워진 마을 에 들러고는 니스를 출발한지 한시간만인 3시경 방스 Vence
에 도착하는데... 그랑 자르댕 광장 Grand Jardin 에서 페라문 Porte du Peyra 을
지나면 구시가지 로 600년전 예전에는 성벽 안에는 허가받은 사람들만 거주 했다고 합니다.
페라 광장에서 이어지는 페라 거리를 걸어 클레망소 광장 Clemanceau 에 이르니 거기에
자그만 동네 성당 이 있고 마당에는 큰 책 이 놓여있는데, 아니 Holy Bible 라고
하니 성경 인 모양인데 너무 크다 했더니..... 그럼 책이 아니고 돌로 된 조형물 이네요?
행인에게 물어 샤갈과 마티스 의 흔적을 찾아 계곡 건너편에 로제르 예배당 을 찾아가는데
이 도시 방스 Vence 는 니스와 앙티브 사이의 내륙 산자락 끝에 4세기에 리구리아인의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성벽으로 보호되는 오래된 시장 도시 이며 온천지대 로도 유명합니다.
아티스트· 조각가· 화가 들의 본고장으로 1930년 3월 로렌스가 사망한 마을 이라는데
중세 도시의 옛 자취를 그대로 간직하면서 "예술가들의 도시" 로 유명한 곳입니다.
영국 소설가 로렌스 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 은 외설시비로 오랜 재판을 겪은후 미국에서는
1959년에 그리고 영국에서는 다음해 1960년에야 비로소 완본 출판이 허용 되었습니다.
교양없는 주정뱅이 광부 아버지와 격렬하게 대립 하였던 중산층 출신 어머니 가 모든 애정 을
그에게 쏟은 일이 사춘기의 그의 여성관계를 복잡하게 만들어 소설로 이어졌던 것일까요?
교사 시절에 어머니를 여의고 대학 은사의 부인이자 6세 연상인 독일 여인 프리다 와
사랑에 빠져 둘이서 독일 · 이탈리아 등을 전전하며 “아들과 연인” 을 씁니다.
1914년에 영국으로 돌아와 프리다와 결혼 했으나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아내가 적국인
이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아 전쟁과 사람들의 광기 를 저주하면서 각지를 유랑 하였으며
대전이 종결된뒤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를 방랑 하였는데 1928년에 피렌체에서
완성한 “채털리 부인의 사랑” 은 그의 성철학을 펼친 작품이나 외설 시비 를 겪었습니다!
오랜 재판을 받으며 폐결핵 에 걸리는데 로한 부인의 초청으로 미국을 다녀온후
여기 기후가 좋고 공기가 맑은 "방스 에서 요양" 하다가 1930년 44세로
죽은 것이라..... 로렌스가 쓴 시 “제대로 된 혁명” 의 일부를 옮겨 봅니다.
혁명을 하려면 웃고 즐기며 하라
지나치게 심각하게는 하지 마라
너무 진지하게도 하지 마라
돈을 좇는 혁명을 하지 말고
돈을 깡그리 비웃는 혁명을 하라
획일을 추구하는 혁명을 하지 마라
혁명은 우리의 산술적 평균을 깨는 결단이어야 한다
노동자 계급을 위한 혁명도 하지 마라
노동은 우리가 이제껏 너무 많이 해온 게 아닌가
노동을 폐지하자, 일하는 것에 종지부를 찍자!
일은 재미일 수 있다, 그러면 일은 노동이 아니다
노동을 그렇게 하자! 재미를 위한 혁명을 하자!
숲이 울창한 깊은 계곡에 놓인 다리 를 건너니 역시나 바위산 아래 숲이 울창한 동네
가 나타나는데 과연 예술가들이 좋아할만한 동네라는 생각이 드니 여기서
저 멀리 남쪽으로 언덕 위에 집과 성당 이 보이는데 방향과 위치로 보건대
우리가 조금 후에 가게 될 바로 그 고풍스러운 마을인 "생폴 드 방스" 인 것 같네요?
계곡에 놓인 다리를 건너 오른쪽 길로 가야하는데 잘못 생각해 왼쪽길로 접어드니
예배당이 보이지 않아 지나가는 마을 소녀에게 물으니 잘 모르겠답니다?
흔히 프랑스 사람들은 자존심이 강해 영어로 물으면 부러 모른체 한다는데...
그보다는 내 영어 발음 이 시원치 않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다시 되돌아와서 오른쪽 길로 접어들어 다시 두갈래 길에서 표지판을 보고는 왼쪽 윗길 로
5분쯤 걸으니 자그만 교회 가 보이는데.....이곳이 바로 샤갈과 마티스의 흔적 을
볼수있는 유명한 유적지인 로제르 예배당 (Chapelle du Saint-Marie du Rosaire) 입니다.
참 경치가 좋은지라 다리를 건너면서 문득 D 일보에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이라는 칼럼에 실린 김남조 시인의 시 "서녘" 을 떠올립니다.
서녘 ―김남조(1927∼)
사람아
아무러면 어때
땅 위에
그림자 눕듯이
그림자 위에 바람 엎디듯이
바람 위에 검은 강
밤이면 어때
안보이면 어때
바다 밑 더 파이고
물이 한참 불어난들
하늘 위 그 하늘에
기러기떼 끼럭끼럭 날아가거나
혹여는 날아옴이
안 보이면 어때
이별이면 어때
해와 달이 따로 가면 어때
못 만나면 어때
한가지
서녘으로
서녘으로
감기는 걸
여긴 입장료 6유로 를 내고 들어가는데 예배당에 무슨 입장료?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마티스의 그림들을 전시하는 미술관 을 겸하기 때문
이리라? 내부로 들어서니 먼저 시골 교회 라서 그런지 아주
자그만 낮은 천장을 가진 아담한 예배당 이 나타나니 우선 마음이 편해집니다.
여기 로제르 예배당 은 1911년에 "샤갈이 외부 조형작업" 을 하였고 그후 1948년
부터 4년간 화가 마티스 (Henri Matisse) 가 벽화와 스테인드 글라스 로
내부 조형작업 을 하였다고 하는데.... 교회를 지나면 그 뒤쪽 공간에
마티스의 작품 이 걸려있으니 데생 부터 시작해 아주 다양한 그림 들이 많습니다.
편견 없이 보자면 초등학생 들이 미술시간에 기분 내키는대로 그린 것 같은 그림도 많이
보인다만??? 할머니 직원이 " 노픽쳐“ 라고 외치니 사진촬영이 금지된 곳 이라 많은
그림들을 카메라에 담지 못한게 아쉬운데 그런 가운데서도 몇번 도촬로 아쉬움을 달랩니다!
앙리 마티스 Henri Matisse 가 주도한 "야수파" 운동은 20세기 회화의 일대 혁명으로
원색의 대담한 병렬 을 강조하여 강렬한 개성적 표현 을 기도하였으니
보색관계 를 교묘히 살린 청결한 색면 효과 속에 색의 순도를 높여 확고한
마티스 예술 을 구축함으로써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회화의 위대한 지침이 되었습니다.
마티스 는 파리에서 모로의 지도 아래 색채 화가 로서의 천부적 재질이 차차 두각을
나타내는 중에 피사로를 통해 인상파 에 접근하였다고 하는데... 1904년 시냐크,
크로스와 함께 남프랑스 해안의 생트로페 에 체재하면서 신인상파풍을 짙게 받아
들였으니 이것을 계기로 이듬해에 강력한 색채의 폭발인 "야수파 운동" 이 일어납니다.
1911년 두 번에 걸친 모로코 여행으로 장식적인 현란한 색채 를 사용하여 아라베스크
나 꽃무늬 를 배경으로 한 평면적인 구성이나 순수색의 나열 로 독특한 작풍을
창조하였으니 1949년 남프랑스 니스 북쪽 여기 방스 성당의 건축 · 장식 일체를
맡아 모든 기법과 재료를 동원해 그의 예술의 집대성을 이룩하고 니스 에서 죽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예배당에 근무하는 직원은 한결같이 모두 할머니 들인데 정식 직원인지
아님 자원봉사자 인지는 모르겠다만.... 나름대로 자부심 을 가진 것 처럼 보입니다!
예배당을 나와 버스 정류소로 가서는 생폴 드 방스 로 가는 400번 버스 를 기다리는데
광장에 있는 경찰서 Police Municipale 가 무슨 가정집 같아 생경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