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나이를 한 살 더 먹어야 하는 연말이라 그런지
수필방에도 올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과 회한이
담긴 글들이 여럿 보입니다.
길 위에서 올 한 해 대부분의 시간을 흘려보낸 저는
아쉬움과 회한보다는 길 위의 삶에 잘 적응한
저 자신을 위해 선물을 하나 준비했습니다.
천체 망원경을 아마존에서 하나 샀습니다.
59불이니 원화로 팔만원 정도..
아이들 선물용으로 인기가 있다더군요. ㅎ
도시의 불빛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황야나 벌판에서
보는 맑은 날의 밤하늘은 제가 까마득히 잊고있었던
어릴 적 평상에 누워 보던 바로 그 밤하늘을 다시
떠올리게 해 주었습니다.
촘촘히 박혀 있는 별들과 은하수, 북극성, 북두칠성,
삼태성......
보름달은 바로 옆에 있는 듯 가까이 느껴졌습니다.
망원경을 받은 그날, 조립을 하고 뒤뜰에 들고나가
밤하늘을 보았습니다.
달이 렌즈 안에 가득 잡히긴 했는데 적합한 렌즈를
찾지 못했고, 초점도 잘 맞추질 못해 희뿌연한 달만
보았지만 기분이 아주 좋았습니다.
천천히 두고두고 배우며 공부하며 밤하늘을 살필
내년의 희망을 미리 준비했으니까요.
고장이 나거나 부서질 때까지 몇 년을 행복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사용하는 것이 휴대폰 카메라 찍듯 편해지면
새벽이와 같이 밤하늘을 볼 때도 들고나갈 수 있겠지요.
망원경을 가지고 나니 어릴 때 추억 하나 떠올라
올려둡니다.
수필방님들 올해 님들과 함께라 글 쓰고 읽는 일이
참 행복했습니다.
내년에도 모든 님들 건강하셔서 글 나눔으로 행복한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어머니를 조르고 졸라 대롱이 긴 망원경을 하나 샀다.
식목일, 공휴일엔 큰형을 필두로 우리 형제들은
분주해졌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를 하고 김밥을
싸고 사이다 한병 들면 준비 끝.
그때 우리 형제들에겐 식목일이 나무를 심는 날이
아니라 때 맞춰 앞산에 피는 참꽃을 꺾으러 가는
날이었다.
비슬산의 한 등성이. 대구에선 앞산이라 부르는 곳.
오르는 길은 많기도 했다. 우리 형제들이 즐겨 올랐던
길은 예전 미군부대 비행장이 있던 쪽의 앞산.
봉덕동을 지나 더 올라가면 산으로 오르는 길이
나타나고 할미꽃 많이 핀 길을 따라 올랐다가 골골이
피어있는 참꽃을 가슴 한가득 꺾어서 내려오는 길은
대개 고산골 쪽.
꽃잎을 먹을 수도 있는 참꽃 가지를 가득 꺾어 한아름
안고, 지쳐서 풀린 다리 간신히 끌고 와서 빈병에
꽂으면 식목일 행사 끝~
그 길이 참 오래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다.
망원경을 사고 보니 세상이 달라졌다.
저만치 떨어져 있던 것도 허리춤에 찬 망원경 뽑아
이단짜리 대롱 쑥 뽑으면 어느새 눈앞에 바싹
다가오던 풍경들...
새 물건이 생기니 새 마음이 일어난다.
골목대장 권력으로 동네 아이들을 모았다.
완전군장 집합~! 전쟁놀이 하자~
너도 나도 허리춤엔 나무로 만든 장총에다 권총.
서부사나이 모조 권총까지...
나는 대장이니 망원경 손에 들고 작전용 메모지도
한 개.
무슨 노래를 부르며, 무슨 이야기를 하며 갔는지는
기억에 없다. 단지 형과 함께 걸었던 그 길을 다시
걸었다는 것 밖에는...
우리가 올랐던 앞산 중턱쯤까지는 트럭이 오를 수
있는 비포장 넓은 산길이 나있었고, 그 끝에는 비행장
감시용이었는지 아니면 대공진지였는지... 미군 진지와
막사가 하나가 있었다.
바로 우리 전쟁놀이의 정찰대상부대였다.
그 부대보다 좀 더 높은 곳으로 올라 그 부대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바위 뒤에 자리를 잡았다.
메모지를 꺼내고 연필도 꺼내고...
모두가 바위에 배를 깔고 엎드려 망원경을 돌려가며
정찰에 돌입했다.
메모지에는 그 부대의 배치도가 상세히 그려지고...
마침 내 차례. 좀 더 멋있게 무릎을 세운 자세로
상체를 일으키고 관찰하던 중... 망원경 앞의 미군병사가
나를 쳐다보며 손가락질을 하더니...
삐리릭! 삐리릭!
호각소리가 조용하던 산에 난데없이 울려 퍼졌고
곧이어 무섭게 생긴 경비견 셰퍼드가 컹컹 짖는 소리가
뒤따랐다.
심심찮게 무장공비가 내려오고, 이승복 소년이
공산당은 싫어요~ 입이 찢기면서 외치던 시절이었다.
"도망쳐랏!"
나 살자고 쌩~ 도망치니 길 모르는 골목아이들은
내 뒤만 죽어라고 따라 뛰어오는데...
골목대장 체면은 땅바닥을 굴렀다.
"땅~"
분명 총소리였다.
물론 실탄은 아니었겠지만 또 우리를 겨냥하고
쏜 것도 아니었겠지만... 아마 공포탄 한방으로
우리들을 혼꾸멍내겠다는 생각이었겠지만, 우리는
파리하게 질린 채 뒤돌아 봐가며, 몇 번을 넘어지며
고산골 아래에 도착하기 전까지 한 번도 쉰 적이 없었다.
생사를 건 도망이었다.
돌아오는 길은 놀란 가슴 쓸어내리며 힘없이 걷는
패잔병의 길.
그날 우리가 열심히 했던 전쟁놀이는 적군정찰이
아니었고... 손자병법 36계,
줄행랑이었다.
***
첫댓글
ㅎ 참 개구장이 시절입니다.
멋진 손자병법 36계~~~~~~~
마음자리님 글을 읽으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하는 구절이 생각납니다.
경계를 벗어나지도 않으면서
개구장이의 어린 추억과
황야를 새벽이와 달리는 기상과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탐색하는 마음,
말하자면,
대한의 건아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ㅎ
그런 의미에서,
망원경 구입은 참 잘 하셨네요.
새해에는 만사형통 하시기를 바랍니다.
대한의 건아..
연말에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콩꽃님에게서 받습니다.
콩꽃님에 대한 고마움은 어떤
표현으로도 부족할 겁니다.
수필방의 풍성하고 넉넉한 글나눔과
글을 통한 정나눔은 다 든든하게
수필방을 지켜주신 콩꽃님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내년에도 변함없이 수필방에서 뵙겠습니다.
나를 위한 선물 망원경.
넘 좋은 선물이네요.
비슬산, 앞산이란 지명이 나오니
마음이 울컥합니다.
앞산 밑에 사시다 돌아가신 친정엄마.
그리고 큰언니, 셋째 오빠, 다
앞산 밑에서 살다 이제는 이사를 갔답니다.
옛날에 친구랑 앞산 충혼탑에 놀러가서 찍은
사진이 선명하게 떠오르네요.
참꽃의 추억.
하굣길에 친구들이랑 실컷 따먹었던 기억들.
마음자리 님, 새해에는 새벽이와,
망원경과 함께 더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고향의 지명에 늘 울컥해하시는
이베리아님.
올 한해 이베리아님의 응원이
제 글 쓰기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산 충혼탑 그 계단이 늘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현충일이면 충혼탑에 모여 기념식을
하고, 곧바로 식목일 심은 나무들에
붙어 살고있던 송충이 잡이를 했어요.
나무젓가락 들고 한봉지씩 잡아야
집에 보내주던...ㅎㅎ
저는 그날만 되면 송출이 털에
알러지가 있어 간지러운 목 달래느라
며칠씩 고생을 하곤 했었습니다.
어머님과 남매분들 많이 그리우시겠습니다..
개구장이 시절에 미군부대에 접근하니까 미군이 공포탄도 쏘았군요
저위의 망원경은 성능이 좋을거같습니다
우주를 관찰 하기 좋을거 같습니다
나도 학창시절에 친구집 옥상에서 친구집에 있는
건설 현장의 측량기구인 트랜시트 가지고 길거리 여자들 많이 훔쳐보았습니당
나 사우디에서 근무할때에도 현장에 있는 트랜시트 가지고
사막에 가족들과 놀러 나온 여자들 많이 훔쳐 보았지요
(그당시 이슬람 국가인 사우디에서는 여인들 쳐다보는거를 엄하게 금지 했었습니다)
충성 우하하하하하
트랜시트가 측량하는 기사분들 쓰시는
바로 그 망원경을 말하는 것이군요.
당연히 배율과 선명함이 아주 좋겠지요. ㅎㅎ
아이들 선물용이고 망원경 입문용이라
성능이 썩 좋진 않는데,
저에겐 충분합니다.
덕분에 내년이 기대됩니다. ㅎ
든든한 새벽이를
곁에 세워두고
망원경으로 천체를 바라보는
멋진 광경 기대 됩니다.
좋은선물 받으신거
축하드려요.ㅋㅋ
그런데
공포탄 소리에 놀라
줄행랑치는 꼬맹이들
정말 혼쭐났겠어요.
새벽이는 저 잘 때도 늘 혼자
밤하늘 마음껏 볼 수 있으니
부러워요. ㅎ
날 풀리면 저도 새벽이 옆에서
폼 잡고 새벽이 약 좀 올려 봐야지요.
선물 준 저에게 감사합니다. ㅎ
그땐 평생 딱 한번 목숨 걸고 달린
날이었습니다. ㅎㅎ
살다보면
36계를 최상책으로
평가하는 분 있습니다.
59불이라는 말이 안믿어질정도로 멋져보이는 망원경
이 망원경을 통해보는 아름다운 세상 이야기.. 기대가 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값이 저렴하지요.
입문용 천체망원경은 아마존 시가로
대략 저 정도 하더라구요.
제 취미로 쓰기엔 그 정도로 충분한 것
같았습니다.
달의 분화구가 보일 정도의 배율이라
설명되어 있더라구요.
좀 더 가까이 제 곁으로 다가올
달과 별이 저도 기대됩니다.
한 모 정치인이 농구의 피벗 플레이를 이야기했던데
마음님은 어린시절의 동심을 한자락 깔고 우주로 비약하나봅니다.
망원경이 허블로 발전하기를 바랍니다.ㅎ.
가까이 보이면 도란도란 말 건네기가
더 쉬워지겠지요.
그 기대로 따뜻한 날들이 빨리 왔으면
하고 기다려집니다.
석촌님, 올 한해 곁에 계셔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년에도 건강하게 늘 곁에 계셔주세요.
좋은 아이디어 입니다.
새벽이와 더불어 광야를 달리다가
찬란하게 빛나는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은 행복할 것 같습니다.
건강하세요.
어릴때부터 갖고 싶었다고 했더니
와이프가 아이들에게 일러주더군요.
"놀랍지 않냐? 아빠가 저걸 어릴때부터
갖고 싶으셨다네. ㅎㅎ"
제가 철이 없긴 해요. ㅎㅎ
좋은 아이디어라 말씀 주셔서
위로 받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내년에도 늘 건강하세요~
59$ 망원경이 대단히 멋져 보입니다.
별자리는 늘 선망의 대상입니다.
겨우 불두칠정. 오리온 밖에 별자리에 대하여 아는 게 없으니....
나도 별자리 공부 가르쳐 주는곳 있으면 가서 배우고 싶습니다.
저도 비싼 줄 알았는데,
아마존 검색해보고 놀랐습니다.
별자리 공부는 유튜브나 인터넷에
많은 자료들이 올라와있는 것 같습니다.
푸른비님은 집중력과 몰입도가 높으셔서 한번 시작하시면 금세
별자리 공부, 일취월장하실 겁니다. ㅎ
삭제된 댓글 입니다.
지나간 일은 다 어제 일어난
일들 같습니다.
새해 새날이 밝았지요?
구봉선배님,
올해도 건강 잘 챙기시고
봉다리 커피로 스트레스 줄이기고
오가는 길 운전 조심하시고
하시는 일 모두 원하시는 대로
이루시기를 멀리서 철없는 후배가
기원드립니다~
저랑 비슷한 유년시절을 보내셨군요
떡석 위에서
큰 오빠 팔베개에 누워 별 따기를
했지요
별 하나 따서 구워서 불어서
망태에 담고
별 둘 따서 구워서 불어서
망태에 담고ᆢ
그러다 잠이 든 여름 밤의 별들은
황토색에 가까웠는데
개 짖는 소리에 나가
방금 본 별들은 파랬어요
혈관이 좁아졌나ㅎㅎ
망원경 이야기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새해 가내 두루 평강을
빌어요
별을 따서 구워서 불어서
망태에 담으셨다니 저보다
훨씬 더 별사랑이 깊으셨던
것 같습니다.
큰오라버니의 동생 사랑도
그만큼 깊고 컸던 것 같고요.
어느 댓글에 법정스님과 고향이
같고 고속버스 동석의 인연도
있었다고 남기신 걸 보며
법정스님 눈에 그때 젊은 윤슬님이
얼마나 맑게 보였을까 상상해 보았습니다.
윤슬님, 아드님 장가도 보내셨으니
새해는 한층 가벼워진 어깨로
더 높이높이 비상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