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은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주의(경고)를 왜 만들었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만한 이유가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살다보니 충분히 이해합니다. 다만 좀 과장되었다 싶은 생각은 듭니다. 그만큼 강력하게 뜻을 나타내고 싶었을 것이라 이해합니다. 하기야 요즘은 성장이 하도 빨라서 그에는 못 미치더라도 십대 초반만 되어도 아마 가능한 아이가 있을 수도 있겠지 싶습니다. 그러나 남녀가 한 몸이 된다는 것은 육체로만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럴 수야 있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야 도덕과 윤리, 사회질서가 제대로 서겠습니까? 그에 따른 부작용과 책임에 대하여 우리 모두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요즘이야 가장 염려되는 임신을 피할 수 있는 방법도 여러 가지 있으니 서로가 요령껏 피하며 행할 수도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몸만 즐기는 수준으로 살면 안 되겠지요. 그 좋은 말 ‘사랑’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쾌락입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악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정당한 환경에서 만드는 두 사람의 사랑이야말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사랑’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행하는 섹스야말로 충만한 기쁨과 즐거움을 줄 수 있겠지요. 사랑이라는 구실을 붙이며 불륜으로 만들어내는 섹스는 자칫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주변의 관계된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그런 일은 피하는 것이 함께 살아야 하는 공동체를 위해서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이면 판단이 흐려지기 쉽습니다. 동정도 할 수 있습니다. 안타깝지요. 이해는 하지만 그것이 정당하다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당사자도 그것을 이해하고 그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다른 한편 충분히 격분하여 모두를 처형할 수 있는 권한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와 같은 경우에 살인사건으로 연결되는 사건들을 현실과 사건들 속에서 익히 들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비극적인 결말을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대(?)와 전혀 다르게 마무리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리고 그의 사람됨에 경의를 표합니다. 덕에 그는 아들을 하나 얻은 셈이기도 하지요.
다른 또 하나의 생각도 있습니다. 왜 하필 북한을 배경으로 하였을까,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보다 훨씬 철저한 계급사회입니다. 그러니 그의 지위에서는 그까짓 병사 하나쯤은 즉결심판 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전혀 다르게 문제를 받아들였습니다. 일반적으로는 분노가 먼저일 것이라 짐작합니다. 그렇다면 두 남녀는 살아남지 못합니다. ‘신무광’도 그 두려움을 꿈에서 보았습니다. 그게 보다 현실적입니다. 그런데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전개됩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사단장의 판단과 처신이 보다 긍정적이고 생산적이라는 것입니다. 다만 일반 사람들이 택하기에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마음의 상처는 생겼을 것입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나을 것이라 판단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나이만 든 것이 아니라 성기능불능입니다. 어쩌면 결혼하지 말아야 할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만한 지위에 있으려면 특히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눈총을 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뭐가 잘못 되었을까? 특히 남자가 성기능 불능이라면 매우 자존심 상하고 무엇보다 남자답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도 받습니다. 일단 사람들의 시선은 피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를 택하였습니다. 그만한 지위에 있는 사람이 자존심도 세울 수 있을 만큼의 여성을 택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과 존경을 받을 만해야지요. 물론 여자의 입장에서도 그런 배우자를 얻었다면 대단한 출세(?)지요. 서로가 대만족이었을 것입니다. 그 밤이 오기까지만.
사람이 자의적으로 독신을 택하는 일이 아니라면 그리고 스스로 금욕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면 억지로 견딘다는 것은 곧 지옥생활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 욕구를 어떻게 매일 이기며 살아갑니까? 언제까지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두 달도 아니고 한두 해도 아닐 것입니다. 기약도 없이 마냥 참고 살라고요? 죽느니만 못할 것입니다. 용케 참으며 지냈는데 마침 아주 가까이 젊고 건장한 젊은 병사가 함께 지내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남편은 장기 출장입니다. 둘이서만 한 지붕 아래 거하게 됩니다. 아무 일이 생기지 않으리라 보장하기 어려운 환경입니다. 물론 사모님 하기 나름입니다. 그런데 참아왔던 욕망을 채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을 어쩌겠습니까?
어쩌면 사실 여자가 두 남자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기도 합니다. 그만한 자신과 확신이 없다면 어찌 감히 그런 행각을 저지르겠습니까? 더구나 그러고서도 자기 위치를 지키며 병사의 뒤까지 봐줄 수 있다니 말입니다. 결국은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뒤의 이야기는 다 큰 아들 하나 남겨두고 영영 집을 나갔다니,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간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곳이 그렇게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환경은 아닌데 말입니다. 더구나 조금 비현실적인 장면은 당시 북한 병사들의 복장입니다. 너무 깔끔합니다. 우리도 그 때는 어려웠는데 말이지요.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SERVE THE PEOPLE)을 보았습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복된 한 주를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