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다니엘 기도회 4일차를 지냈습니다.
목회자가 복음을 선포하는 일은 너무도 당연한 일인데
그런 목회자를 강사로 만나니 너무도 반갑습니다.
세상 속에서 ‘나의 힘줄’로 여긴 것들을 다 끊어버리고
오직 십자가의 예수님만이 진정한 힘줄임을 듣게 하시니 속이 시원합니다.
그런 우리 교회가 되게 하시고
그런 제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위선과 가식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보혈로 덮어 주옵소서.
정결한 마음과 정직한 영을 허락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하오니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 너희가 내 마음을 괴롭히며 말로 나를 짓부수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3. 너희가 열 번이나 나를 학대하고도 부끄러워 아니하는구나
4. 비록 내게 허물이 있다 할지라도 그 허물이 내게만 있느냐
5. 너희가 참으로 나를 향하여 자만하며 내게 수치스러운 행위가 있다고 증언하려면 하려니와
6. 하나님이 나를 억울하게 하시고 자기 그물로 나를 에워싸신 줄을 알아야 할지니라
7. 내가 폭행을 당한다고 부르짖으나 응답이 없고 도움을 간구하였으나 정의가 없구나
8. 그가 내 길을 막아 지나가지 못하게 하시고 내 앞길에 어둠을 두셨으며
9. 나의 영광을 거두어가시며 나의 관모를 머리에서 벗기시고
10. 사면으로 나를 헐으시니 나는 죽었구나 내 희망을 나무 뽑듯 뽑으시고
11. 나를 향하여 진노하시고 원수 같이 보시는구나
12. 그 군대가 일제히 나아와서 길을 돋우고 나를 치며 내 장막을 둘러 진을 쳤구나
13. 나의 형제들이 나를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내게 낯선 사람이 되었구나
14. 내 친척은 나를 버렸으며 가까운 친지들은 나를 잊었구나
15. 내 집에 머물러 사는 자와 내 여종들은 나를 낯선 사람으로 여기니 내가 그들 앞에서 타국 사람이 되었구나
16. 내가 내 종을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하니 내 입으로 그에게 간청하여야 하겠구나
17. 내 아내도 내 숨결을 싫어하며 내 허리의 자식들도 나를 가련하게 여기는구나
18. 어린 아이들까지도 나를 업신여기고 내가 일어나면 나를 조롱하는구나
19. 나의 가까운 친구들이 나를 미워하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돌이켜 나의 원수가 되었구나
20. 내 피부와 살이 뼈에 붙었고 남은 것은 겨우 잇몸 뿐이로구나
(본문 주해)
1~3절 : “1.욥이 대답하였다.
2. 네가 언제까지 내 마음을 괴롭히며, 어느 때까지 말로써 나를 산산조각 내려느냐?
3. 너희가 나를 모욕한 것이 이미 수십 번이거늘, 그렇게 나를 학대하고도 부끄럽지도 않으냐?”(새번역)
욥은 친구들이 모진 말로 자신을 괴롭히고 모욕하고 학대하는 것을 이제 그치라고 한다.
3절의 ‘열 번’이라 한 것은 회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의 의미이다.
“그대들의 아버지가 나를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였느니라”(창31:7a)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만14:22)
4~6절 : “4. 참으로 내게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내 문제일 뿐이고, 너희를 괴롭히는 것은 아니다.
5. 너희 생각에는 너희가 나보다 더 낫겠고, 내가 겪는 이 모든 고난도 내가 지은 죄를 증명하는 것이겠지.
6. 그러나 이것만은 알아야 한다. 나를 궁지로 몰아넣으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나를 그물로 덮어씌우신 분도 하나님이시다.”(새번역)
욥은 사소한 허물들로 인하여 이런 재앙을 당한다면 ‘너희도 예외가 아니다.’ 라고 한다.
그것도 모르는 자만한 친구들에게 자신이 당하는 고난은 하나님께서 까닭 없이 주시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욥의 말이 그들에게 들리지 않는다.
친구들은 철저히 인과율에 사로잡혀 있었기에 ‘어떻게 하나님께서죄 없는 자에게 이런 재앙을 내리는가?’만을 생각했다. 동시에 그들은 까닭 없는 고난을 당하지 않고 있기에 욥의 말을 더더욱 알 수 없는 것이다.
7~12절 : “7. "폭력이다!" 하고 부르짖어도 듣는 이가 없다. "살려 달라!"고 부르짖어도 귀를 기울이는 이가 없다.
8. 하나님이, 내가 가는 길을 높은 담으로 막으시니, 내가 지나갈 수가 없다. 내 가는 길을 어둠으로 가로막으신다.
9. 내 영광을 거두어 가시고, 머리에서 면류관을 벗겨 가셨다.
10. 내 온몸을 두들겨 패시니, 이젠 내게 희망도 없다. 나무 뿌리를 뽑듯이, 내 희망을 뿌리째 뽑아 버리셨다.
11. 하나님이 내게 불같이 노하셔서, 나를 적으로 여기시고,
12. 나를 치시려고 군대를 보내시니 그 군대는 나를 치려고 길을 닦고, 내 집을 포위하였다.”(새번역)
하나님께서 작정하시고 자신을 몰아치시니 욥 자신에게는 아무 희망도 없고, 자신은 죽은 자와 같다고 탄식을 한다.
13~20절 : “13. 그가 내 가족을 내게서 멀리 떠나가게 하시니, 나를 아는 이들마다, 낯선 사람이 되어 버렸다.
14. 친척들도 나를 버렸으며, 가까운 친구들도 나를 잊었다.
15. 내 집에 머무르는 나그네와 내 여종들까지도 나를 낯선 사람으로 대하니, 그들의 눈에, 나는 완전히 낯선 사람이 되고 말았다.
16. 종을 불러도 대답조차 안 하니, 내가 그에게 애걸하는 신세가 되었고,
17. 아내조차 내가 살아 숨쉬는 것을 싫어하고, 친형제들도 나를 역겨워한다.
18. 어린 것들까지도 나를 무시하며, 내가 일어나기만 하면 나를 구박한다.
19. 친한 친구도 모두 나를 꺼리며, 내가 사랑하던 이들도 내게서 등을 돌린다.
20. 나는 피골이 상접하여 뼈만 앙상하게 드러나고, 잇몸으로 겨우 연명하는 신세가 되었다.”(새번역)
욥의 재앙이 극심해지자 그동안 욥의 도움을 받던 모든 자들-가족, 친척, 식객, 여종, 아내, 친형제(내 허리의 자식들-같은 모태의 자녀들), 어린 아이들-에게 소외되고 버림받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또한 그의 몸 상태는 갈수록 악화되어 피골이 상접한 채 앙상한 뼈만 드러나고, 이빨까지 다 빠져 겨우 잇몸으로 연명하고 있음을 탄식한다.
(나의 묵상)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을 생각한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육체적 고통과 하찮은 인간들에게 뺨 맞고 침 뱉음을 당하신 정신적 고통과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죄를 다 짊어지심으로 단 한 번도 하나님 아버지와 분리된 적이 없으신 분이 아버지로부터 분리되는 되는 영적 고통이다.
욥 역시 온 몸이 악창으로 덧나고 피골이 상접하여 잇몸만 남은 육체적 고통과 과거 욥의 그늘에서 도움을 얻던, 주변의 들끓던 많은 이들로부터 버림받는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당하는 이 고난에 대해 하나님께 절절히 호소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무 답변을 하지 않으시니 이는 그가 당하는 영적 고통이다.
욥은 이런 고통을 당하면서 온힘을 다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여 주실 것을 구한다.
욥은 고난 중에 죽음까지도 생각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욥을 절대 죽게 하시지 않을 것이다. 왜냐 하면 욥에게 주실 것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주시고 싶은 것을 나는 아무 고통을 겪지 않고도 받았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어제 4일차 다니엘 기도회 강사는 미국에서 오신 목사님이셨다.
다니엘 기도회 강사들은 주로 개인적인 신앙을 바탕으로 간증하는 분들이다.
대개 불우한 환경과 역경을 겪으면서 자라나 고생했는데 오늘에 이르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식이 대부분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 신앙이 주를 이루기는 하지만 간증마다 은혜가 있으므로 도전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간증이 위험한 것은 ‘나의 노력, 나의 지극 정성’이 자신도 모르게 드러남으로 주님의 십자가가 설 자리를 없게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어제 목사님은 간증보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복음을 전하셨다.
현재 이 땅의 교회와 교인들이 예수님이 아닌, 세상 속에서 자기의 힘줄이 될 만한 것들을 찾아 안정감을 누리고, 그것들을 섬기는 작태를 지적하셨다.
다윗이 전쟁에서 승리하여 얻은 수많은 말들의 힘줄을 끊어버린 본문(삼하8:3~6)을 바탕으로, 이 땅의 교회와 성도의 진정한 힘줄은 오직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선포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포되는 이 땅의 교회가 되도록 기도를 인도하셨다.
욥의 고통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어간다.
그러나 그는 진정한 힘줄이 되시는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하나님께서는 욥만이 아니라,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들도 진정한 힘줄을 찾아 나서도록 이 땅에서 고난을 겪게 하신다.
그것은 십자가에 연합되는 삶을 살게 하심으로 이 땅에서 힘줄이라 생각되었던 것들을 하나씩 끊어내게 하시는 것이다. 그것을 끊어내는 고통을 욥기를 통해 보여주신다.
재물의 힘줄을 끊어내게 하시고, 자녀에게 붙었던 힘줄을 끊어내게 하시고, 주변의 칭송과 칭찬의 힘줄을 끊어내게 하시고, 육체의 건강이 힘줄을 끊어내게 하시고, 인간에 대한 신뢰의 힘줄조차도 다 끊어내게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오직 예수님만을 ‘신앙’하게 하시는 것이다.
어제 연합회 지체들과 잠시 나누었던 말이 있다.
‘욥기를 읽는 것이 참 괴로웠다. 물론 결론은 알고 있지만 그 과정이 하도 처절해서 그것을 읽을 때마다 내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까봐 불길한 마음이 들었다.’ 하는 대화였다.
나도 그랬기에 ‘맞아, 맞아’하고 격하게 동의했다.
하지만 이제 말씀을 통해 생명으로 사는 삶이 되니 욥기가 참으로 복음임을 깨닫는다.
성도의 고난은 필수이다.
그 고난은 안개에 싸인 것과 같은 미래의 막연하고도 불길한 삶의 고난이 아니라, 십자가에 연합되는 삶을 가리킨다.
십자가에 연합되는 삶은, 그 동안 굳게 붙잡았던 썩은 동아줄을 다 쳐내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진정한 힘줄을 붙잡게 하기 때문이다.
(묵상 기도)
주님,
욥의 처절한 탄식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저희도 살면서 이런 저런 모양으로 탄식할 때가 있습니다.
상황에 대한 탄식이 아니라,
십자가에 연합되지 못하는 저 자신을 탄식하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게 하옵소서.
진정한 힘줄이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그 생명의 힘줄을 의탁하오니
영생의 삶을 힘 있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