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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모놀과 정수 원문보기 글쓴이: 이종원
내고향 괴산만큼 더 좋은 곳이 어디 있으랴.
사극 단골 촬영지- 수옥폭포 고향 괴산에서 사촌동생 결혼식이 있습니다. 황금같은 3일 연휴에 결혼식 날짜를 잡은 것이 무척이나 야속하지만 이것도 기회다 싶어 새벽 일찍 출발해서 괴산 연풍일대를 둘러보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누워계시는 산소까지 둘러보고 왔습니다. 이곳은 수옥폭포랍니다. 영남의 유생들이 한양으로 과거보러갈때 험준한 문경새재를 넘으면 예쁜 폭포가 그들의 노고를 위로해줍니다. "수고했어...발 한번 담그고 떠나게나." 특히 팔각정에서 바라본 폭포의 모습이 좋은데...시 한수가 절로 생각나는 곳이지요.
지금이야 쉽게 찾아갈 수 있지만 예전엔 참 접근하기 힘든 곳이지요. 고려 공민왕때 홍건적을 피해 이곳까지 왔다고 하니까요. 깎아지는 절벽과 울창한 숲이 천연요새로 손색이 없습니다. 수옥폭포는 드라마의 배경으로 많이 나온 폭포이기도 합니다. 드라마 '주몽'에서 여미을이 폭포옆에서 앉아 폼을 잡았던 곳입니다. 바둑판처럼 편편한 바위, 고풍스런 정자. 그리고 전봇대가 없는 배경등이 사극찍기 최고의 조건이랍니다. 전설의 고향, 왕의여자, 다모, 여인천하, 변강쇠, 영원한제국의 명장면은 이곳에서 만들어졌습니다. f 아이들이 뛰어 놀기도 좋아요. 빠져도 물이 깊지 않으니까요.
지금 철쭉이 한창이더군요
연폿에 꽃물이 들 것 같아요
명주실을 뿌려 놓은 듯한 분위기
대장의 남동생입니다. 왜 머리 퍼머하고 수염까지 기르냐고 물었더니 "장동건처럼 보일라구."
"니가 장동건이면, 나는 배용준이다."
쌍둥이부처를 보신 적이 있나요? 원풍리마애불좌상 삼존불도 아니고 두 분이 나란히 모셔진 불상은 처음 본 것 같습니다. 처음 본 사람은 부부불상이라고 하는데...그럼 부처님 한사람은 여자란 말인가. 부부처럼 다정한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우선 육중한 바위에 압도당합니다. 단단한 화강암을 조심스레 파 불상을 만들어낸 정성이 대단합니다. 천정은럼 감살로 꾸며져 비바람을 막아줍니다. 덕분에 천년전 고려인이 생각하는 불처님의 얼굴을 원형그대로 볼 수 있답니다.
잔잔한 미소, 옷주름의 부드러운 곡선. 목이 뻐근할 정도로 부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천년동안 단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 부부의 모습을 상상합니다. 두 분의 부처가 나란히 앉아 있는 석불은 5~6세기 중국 북위에 조성되었으나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것 자체만으로 의미있고 합니다. 법화경 설화에 나오는 석가여래와 다보여래로 추정됩니다.
직두를 이겨낸 순교자 황석두가 있는 곳-연풍성지 연풍에서 가장 먼저 우릴 맞이해주는 건물이 '연풍공소'랍니다. 쭉 뻗은 나무밑에 아늑한 건물이 보이지요. 연풍현의 수령의 행정을 보좌하는 연풍향청 건물이랍니다. 지금은 성당이 따로 만들어져 문화재로 남아있습니다. 이방이나 형방은 풍속을 바로 잡고 민정을 대신하는 일을 했답니다. 간혹 권한을 남용하여 민폐를 끼치는 일이 있었다고 안내문에 쓰여 있네요. '민폐를 끼치는 일'...바로 천주교 신자를 잡아 들이는 것이랍니다. 저 아담한 건물에서 무수히 많은 신앙인들이 죄없이 죽어갔답니다. 일제때는 헌병대 주재소로 사용되었고, 광복후에는 연풍 지서로 있다가 1963년 천주교에서 매입하여 연풍공소로 쓰였다고 합니다. 가장 아픈 현장이 신앙을 고백하고 미사를 드리는 장소로 바뀌었습니다. 주님이 하시는 일이 이렇게 오묘합니다.
공소는 일제때는 독립군을 잡아들였던 헌병사무실로 쓰였답니다. 박해시절, 일제시대 사용햇던 형구랍니다.이 구멍에 머리를 짓이기고, 지하에서 이 구멍에 밧줄을 달아 교수형을 행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바위에 피빛이 물들어 있는 슬픈 상징물입니다. 연풍에서 작두를 이겨낸 신앙인 황석두(루가)를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황석두는 나이 20세에 서울로 과거를 보러 떠납니다. 우연히 주막에서 천주교 신자를 만나 밤새 토론을 하면서 이것이 세상의 진리임을 깨닫게 됩니다. 출세를 보장하는 과거급제보다 '천국의 과거'에 급제한 자신을 발견합니다.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께 "저는 이미
과거에
급제하여 돌아왔습니다." 라로 말합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아버지는 작두를 가져다 놓고 서학에 빠지는 것을 그만 두라고 최후 통첩을 내립니다. "작두밑에 목을 내밀어 죽을 지언정 저는
천주를
공경하겠습니다." 그 천주학이 무엇이길래..내 아들이 저렇게 빠졌을까? 그리고 그 이상한 교리가 담겨진 책의 책장을 넘깁니다. 진리의 마력이랄까. 온 식구들이 모두 세례를 받고 열렬한 신자가 됩니다..아멘
그 후 황석두는 다불뤼 주교의 일을 돕습니다. 성서번역과 사전편찬을 일을 합니다. 오죽했으면 그에게 신부님 서품을 주기 위해 교황청에 특별히 요구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당시 황석두의 부인이 들어갈 수녀원이 없기 때문에 그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감시를 눈초리를 벗어나 무수히도 새재를 넘나들며 신앙을 전파했습니다. 그러나 서슬퍼런 병인박해때 그가 모시던 신부님이 붙잡혀 서울로 압송당합니다. 다불뤼 주교 옆에 있던 황석두는 스스로 밧줄을 묶습니다. "저도 잡아가 주세요. 저분들은 나의 스승입니다. 단 하루라도 헤어져서 살 수 없습니다. 저분들이 살아난다면 나도 살려니와, 내 스승들이 죽는다면 저도 죽겠습니다." 그리하여 프랑스 선교사 3명과 황석두, 장낙소 5명은 충암 보령군의 갈매못에서 순교의 칼을 받아 죽습니다. 가족들이 몰래 시신을 거두어 이곳 연풍에 안장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천사의 날개를 달고 새의 고개 (새재)를 넘고 계십니다. 거룩한 새의 순교자들 덕분에 우린 보다 높게 날았고 넓은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교수대가 있던 치명터에 높이 10미터의 거대한 노천 십자가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십자가랍니다. 주님은 신앙인이 넘나들던 새재를 기쁜 마음으로 바라보고 계십니다.
순교 현양비가 더욱 의연하게 보입니다. 맨주먹으로 추방당하고 신앙을 지키고자 이곳까지 왔는데.. 결국은 죽음으로서 주님과 약속을 지킵니다. 지금은 주님의 집이 되었습니다. 새재를 넘는 길은 주님걸었던 십자가의 길이 아닐까요? 성지 바로 앞에 수백년된 느티나무가
서있습니다.
지금은 작약의 계절입니다. 순교자의 선혈을 보는듯
충청도 반가의 아름다움-김기응 고택 연풍에서 괴산쪽으로 가다보면 칠성면이 나옵니다. 칠성은 속리산 자락 군자산, 보배산이 우뚝 솟아있고 물이 좋은 곳입니다. 이곳에 1800년대초 충청도 반가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고택이 있답니다. 병풍같은 산을 시야에 두고 야트마한 언덕에 사쁜이 앉아있는 집이지요.
솟을문에 흙이 잔뜩 묻은 장화가 보이더군요. 민초의 정성이 잔뜩 묻어있어요. '미소지움'이라고 영문으로 쓰여진 장화가 반가의 전통에 스며들었더군요. 집이 아기자기 해요. 안채까지 들어가려면 미로같은 문을 세 곳을 거쳐야 합니다. 예를 중시하는 충청도 사람의 심성이 건축에 묻어 있어요.
장동건이 영화를 찍는다고 하네요.
나무색이 참 곱지요. 너울 너울 춤추는 아리랑 선율같기도 하고...
이 집의 가장 매력적인 것이 바로 흙담이랍니다. 흙을 이겨서 담을 쌓았는데..참 자연스럽고 소박합니다. 충청도의 우직한 맛이지요.
부엌이 꽤 넓더군요.
왼쪽문이 안채 들어가는 문이고 오른쪽은 사랑채.. 그 앞쪽이 행랑채
똑똑
대장이 반한 흙담
흙담
4만명이 한숱밥을 먹을 수 있는 세계 최대의 가마솥 괴산. 여행지로 특징이 없고 그다지 내세울 것이 곳이지요. 그래서 군수가 야심차게 추진한 것이 세계에서 가장 큰 가마솥을 만들자. 둘레 17.85 m, 무게 45톤, 기중기로 솥뚜껑을 여닫는다고 한다. 괴산군민 4만명이 한 솥에서 밥을 먹을 수 있는 거대한 솥입니다. 그러나 영세 중소업체에 주물을 맡겨 깨지기 여러번...8번 실패끝에 9번째 성공해서 만든 솥입니다. 공장에서 나올 때는 워낙 커서 담을 부셔가며 나왔다고 합니다. 쏟아부운 시간과 돈이 어마어마하겠지요. 전시행사라든지, 세금낭비라든지...반대의 목소리도 자꾸만 높아갑니다. 그런데 기내스북 등재의 마지막 한 방에 희망을 걸었는데 호주에 이것보다 더 큰 질그릇이 있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아이디어를 제공한 군수의 심정은 오죽하겠습니까?
기중기로 뚜껑을 엽니다.
쌀 50가마가 한방에 들어간다고하는데....쌀 푸는 기중기랍니다.
평소에는 수영장으로 활용해도 될 것 듯 ^^
느티나무가 많아 괴산(槐山)이랍니다. 산도 얼마나 많은지. 손 바닥 만한 땅을 일구고 산신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담배, 고추농사가 많은데...이것이 얼마나 힘든 농사인지 어르신들 손 바닥을 보면 거북등처럼 갈라졌답니다. 고향도 고향이지만 고단한 삶이 묻어 있어 더욱 쓰다듬어 주고 싶은 곳이 괴산입니다. 그러고보니 수많은 글을 썼어도 내고향 괴산은 한번도 소개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아무리 멋진 곳이라고 고향 괴산만큼이나 하겠어요. |
첫댓글 아...장동건과 배용준...^^*
괴상한 괴산이네요.지금 철쭉에 작약이 피어있으니...
장동건과 배용준 정말로 멋있는 형제분들의 모습 보기좋네요. 오늘 꿈을 잘 꾸어야 내일 신청을 잘 할 수 있을텐데... 지금부터 두근두근
참가신청은 어떻게하나요?
10시 정각에 글쓰기 권한을 드립니다. 그때 바로 신청하셔야 합니다.~~ 빨리 마감이 될때는 20초에 마감된 적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