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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현대 모터스(이하 전북)가 2015 AFC챔피언스리그(이하 ACL) 감바 오사카와의 8강전에서 패하면서 실로 오랜만에 K리그 팀 없는 동아시아의 4강 대진이 만들어졌다. 종료 1분전까지 4강 진출의 주인공이 전북이었기에 충격이 아직도 가시지 않지만, 경기에서 졌음은 겸허하게 인정해야 한다. K리그 입장에선 최악의 성적을 거둔 시즌이 되었지만 K리그는 다음 시즌 아시아 무대에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기 위해 몇 가지 교훈을 얻었다는 점에선 배운 것이 많은 실패인지도 모르겠다.
(△ '레오'의 페널티킥 선제골. 불과 1분 후 실점을 주면서 경기 분위기가 변하고 말았다. 출처:프로축구연맹 홈페이지)
0.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해
'주말 - 리그, 주중 - 유럽대항전 및 컵대회'라는 정형화 된 틀을 가지고 있던 유럽 축구와 달리 우리 K리그에게 ACL참가는 아직은 어색한 일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아시아 무대는 K리그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었다. 하지만 AFC에서 챔피언스리그에 대한 위상을 제고하면서 K리그 뿐 아니라 아시아 각 국 리그의 강팀들이 ACL에 모두 진지한 자세로 나서기 시작했다. 체력적으로 터프함이 강조되는 K리그와 병행해서, 많은 자본의 투자와 함께 유입된 수준급 ‘용병’ 선수들을 중심으로 꾸려진 타 리그 팀과 경쟁하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최강희 감독은 비교적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국가대표팀을 맡으면서 전북을 떠나 있는 기간도 있었고, 여전히 리그와 ACL을 병행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듯하다. 최용수, 서정원 등 젊은 감독들이 대거 등장하여 팀을 지도하고 있고, 이들이 경험이 전혀 없다고 할 순 없지만 여전히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맨유를 이끌던 퍼거슨 경처럼 능수능란하게 리그와 챔피언스리그 모두를 다룰 수 있는 감독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직은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1. 더블 스쿼드 운용
이번 시즌을 앞두고 대대적인 선수 영입을 하면서 전북은 더블 스쿼드를 갖춘 형세였다. 시즌 전반에 걸쳐서 여러 선수들의 로테이션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순위 경쟁이 치열해진 시즌이 후반으로 치달으면서 주요 선수들의 체력적 부담이 커졌다. 더블스쿼드 구축의 의의는 상대의 전력에 따라 로테이션 멤버를 가동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비교적 약팀을 상대론 핵심 선수에게 휴식을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전북의 경우 이것을 실패했다고 봐야 한다.
시즌 말미로 가면서 성적이 중요해지는 시점이 오자 주요 선수들에게 쏠리는 부담이 과했다. 전북의 이재성은 국가대표 경기까지 소화하면서 혹사 논란이 불거져 나왔으며, 이동국 역시 나이를 속일 수 없는 만큼 체력적으로 부치는 모습을 보였다. 이재성을 대체할 미드필더 자원을 제대로 구하지 못했고, 에두의 이적 그리고 베라와 이근호의 적응이 늦어지면서 이동국의 대체자도 마땅치 않았다. 그럼에도 선수 운용의 묘를 발휘해야 했다. 핵심 선수에게 휴식을 줄 수 없다면, ‘이 대신 잇몸을 쓰는’ 플랜B가 필요했다. 연이은 강행군에 핵심 선수의 체력은 크게 떨어졌다. 오늘 8강전에서 이 선수들이 몸이 무거워 보인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K리그 2위를 달리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이하 수원)는 부상 선수가 속출하면서 16강전에서 일찌감치(!) 탈락하면서 주중에 벌어지는 ACL의 부담을 덜었음에도 선수단 운영에 어려움이 있었다. ACL에서 살아남았다면 더 어려운 상황을 겪었을 것이 분명하다. 마찬가지로 16강에서 탈락한 FC서울과 성남FC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행인 것은 내년에도 ACL 진출이 유력한 수원의 경우 유소년 시스템에서 많은 재능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양적 팽창을 이뤘다는 것이다. 이번 시즌 가장 빛나는 선수 중 한 명인 권창훈 역시 그 중 한 명이다. 내년 시즌 ACL에 진출하는 팀들은 두터운 스쿼드를 갖추고 부상 선수 관리에도 힘을 쓰면서 효율적인 선수 기용으로 전력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2. 토너먼트에 적합한 전술의 필요성
이번 경기에서는 전술적인 실수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토너먼트와 리그 경기는 분명히 다른 전략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리그에서 중요한 것은 3점을 따내는 것이다. 공격에만 집중해서 1승 2패를 거두는 것은 안정적인 경기로 무승부를 3번 거두는 것과 승점이 같다. 전북처럼 객관적 전력이 앞서는 팀은 승점을 벌기 위해 적극적으로 몰아붙이는 것이 유리하다는 의미이다. 3무보단 2승 1패가 더 많은 승점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팬들까지 화끈한 공격 축구를 좋아하니 리그 경기에선 좋은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토너먼트에선 승리를 위해 다른 전략이 필요했다. 특히 오늘과 같은 벼랑 끝 승부에서는 안정적인 경기 운영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전북은 실점하지 않으면서 한 점만 넣어도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오늘 선발 라인업만 봐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었다. 최철순의 미드필더 시프트는 이해할 수 있다고 해도 레오나르도, 한교원, 이근호, 이재성이 2선을 이루면서 미드필더 장악을 포기한 전술로 보였다. 이근호의 경우 투톱 중 한 명으로 활약이 가능하긴 하지만, 레오나르도, 한교원, 이근호 모두 ‘측면 성향’이 강한 선수들이다. 게다가 최철순 시프트를 통한 대인마크로 효과를 봤던 우사미는 출장하지 않았고, 수비력을 뽐낼 자원이라면 전문 미드필더인 최보경도 있었기에 최철순 시프트 역시 좋은 선택으로 보이진 않는다. 안정적인 경기를 펼쳐야 할 경기에서 전북 스스로가 변칙 전술을 꺼내들었다.
그 결과 표면 상의 ‘닥공’이 펼쳐졌다. 선수들은 끝없이 전진했다. 미드필더의 수비가 상대에게 ‘덤비는’ 수비가 되었다. 팀 차원에서 전개되지 않은 전방으로의 압박은 엔도를 중심으로 한 감바의 패싱 플레이의 먹잇감이 되었다. 2번째 실점 장면을 보면 그 문제를 확실히 볼 수 있다.
(△ 이재성의 압박이 무의미해진 순간. 이재성 배후 공간을 커버해주는 미드필더가 없었다. 열심히 뛰긴 하지만 압박을 팀차원에서 조직적으로 가하지 못해, 경기 내내 상대를 옭아매지 못했다. 결국 완벽한 슈팅찬스를 내주고 말았다.)
물론 전북의 팀 컬러는 공격 축구이다. 일본 원정에서 약하다는 평을 깨기 위해 공격적으로 승리를 노린 것도 같았다. 그런 팀 컬러를 내세워 진검 승부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감독의 선택임을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최강희 감독 역시도 ‘이기는 승부’를 하고 싶었을 것이 분명하다. 리그에서 전북이 체력을 아끼기 위해 ‘닥공’을 버리고 안정적인 전술을 펼쳤듯이, 토너먼트 무대에 어울리는 전략도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승부를 겨루는 스포츠이기에 결국 이기는 축구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3. 전력 지키기
가장 중요한 것은 K리그의 전력 누수가 심하다는 사실이다. 여러 차례 언론에서 지적되었듯 K리그의 핵심 선수들 중 상당수가 해외의 러브콜을 받고 팀을 떠났다. 이는 국내 선수, 외인 선수를 가리지 않고 일어나는 중이다. 염기훈이 수원에 남겠다는 선언을 한 것은 예외적인 상황이라고 봐야 한다. 선수 영입을 위한 투자가 따르지 않는 상황에서 성적을 바라는 것은, 밭에 비료도 주지 않고 잡초 제거도 하지 않고 큰 열매가 열리기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투입이 없으면 산출도 없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이번 시즌 16강에서 바로 그 감바에 패해 탈락한 FC서울이다. K리그의 강자로 군림했던 FC서울은 데얀, 하대성, 김주영, 에스쿠데로, 고명진 등 핵심 선수들이 줄줄이 이적하면서 전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지난 시즌에는 ACL에서 4강에 진출했지만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진 수비적 전술로 일궈낸 결과였다. 결국 이번 시즌은 K리그에서도 기대에 못 미치는 모습이다.
특히 전북의 최근 부진 역시 전력 누수에 따른 것이다. 여름 이적 시장을 통해 중국으로 이적한 에두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컸다. 에두는 이동국과 번갈아가며 출전하며 체력 안배도 가능했고, 득점 1위에 오르는 물오른 득점력으로 전북의 공격력 폭발에 앞장섰다. 여름 이적 시장은 시즌 중에 열리기 때문에 ‘즉시 전력감’을 영입하는 장이다. 성적을 생각한다면 핵심 선수를 이적시켜선 안 된다. ‘너무 좋은 조건’이라는 말로 동계 훈련부터 팀 전술에 녹아든 선수를 이적시킨 것이 팀에 치명타였다. 에두의 대체자로 영입된 베라와 이근호의 적응이 아쉬운 상황이었다. 만약 에두의 이적이 시즌 이후 겨울이었다면 조금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었을까.
선수 유출이 이대로 계속 된다면 아시아 무대에서의 K리그의 부진은 일회적 일이 될 것 같지 않다.
4. 전북에 격려와 위로를 전하며
전북의 패배 후 각종 포털사이트와 커뮤니티를 통해 전술적 실수였다는 차분한 반응부터 최강희 감독의 무능을 꼬집는 격한 반응들까지 다양한 반응을 보았다. 하지만 최강희 감독 이하 전북 선수들이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의 삶에서도 상당 부분이 그렇듯 최선을 다해도 때론 결과가 그에 못 미칠 때도 많다. 그래서 우리의 주변 사람을 슬프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실패했을 때 가장 괴로운 것은 본인이다. 자신에 대한 자괴감부터 믿어준 사람을 실망시켰다는 생각까지. 부진한 경기력을 보였고, 또 집중력이 부족해 너무도 아쉽게 패배한 것은 사실이지만, 격려와 위로를 전하고 싶다. 올해의 결과만 K리그와 K리그의 아시아 무대 도전이 끝난 것이 아니므로. 남은 K리그에서 그리고 내년에는 오늘의 부진한 경기력을 지울 모습을 기대한다.
(△ 전북의 오사카 원정팬. 팬들이 있기에 K리그 팀들은 다시 살아날 것이다. 출처:전북현대모터스 홈페이지)
8강에서 K리그의 모든 팀들이 떨어졌다는 결과는 실망스럽다. 또한 팬들의 실망도 부정할 순 없다. 리그의 성적도 유지하면서 ACL에서 선전하려면, 핵심 전력도 지켜야 하고, 더블 스쿼드를 운용하면서 체력 안배도 해야 하고, 토너먼트에 맞는 전술도 준비해야 한다. 갖춰야 할 조건이 적지 않다. 그러나 여기서 주저 앉을 순 없다. 그리고 우리에게 희망은 있다. 이번 시즌 광저우를 괴롭혔던 시민 구단 성남FC의 저력을 기억한다. 개개인의 능력은 조금 떨어져도 하나의 팀이 되어 싸운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에 축구란 스포츠가 위대한 것이다. 올해의 실패를 경험삼아 내년엔 아시아 무대에서 K리그가 좀 더 나은 활약을 보여주길 기대해본다.
뱀다리. K리그 클럽 경기를 홍콩 방송인 스타스포츠를 통해 접하는 게 이제 익숙해졌다. 일반적인 경기도 아니고 아시아에서 4강을 다투는 경기인데 방송국들의 태도가 해도 너무하다. 오늘 경기 패배 후 각종 포털과 축구 커뮤니티에 터져나온 반응들을 살펴보면 경기를 지켜본 이들은 너무도 많았다. 상업 논리가 우선인 스포츠 중계라지만 획일적으로 한 가지 스포츠의 중계에 몰두하는 게 ‘스포츠 채널’들의 역할은 아니다. 매번 나오는 이야기이지만 변하는 게 없으니 멈출 수도 없다. 우리에게 '중계'를 달라.
첫댓글 중계좀 줘라 우리도 맘편히 tv에서 보고싶다 작디작은 폰으로 보는거 지친다 ㅜㅜ ... 여기가 잉글랜드냐 ㅇㄱ의 나라냐 진짜..
잘읽었습니다. 좋은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