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 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깨끗한 영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21. 나의 친구야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
22.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처럼 나를 박해하느냐 내 살로도 부족하냐
23. 나의 말이 곧 기록되었으면, 책에 씌어졌으면,
24. 철필과 납으로 영원히 돌에 새겨졌으면 좋겠노라
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26.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27. 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이 초조하구나
28. 너희가 만일 이르기를 우리가 그를 어떻게 칠까 하며 또 이르기를 일의 뿌리가 그에게 있다 할진대
29. 너희는 칼을 두려워 할지니라 분노는 칼의 형벌을 부르나니 너희가 심판장이 있는 줄을 알게 되리라
(본문 주해)
21~24절 : “21. 너희는 내 친구들이니, 나를 너무 구박하지 말고 불쌍히 여겨다오. 하나님이 손으로 나를 치셨는데,
22. 어찌하여 너희마저 마치 하나님이라도 된 듯이 나를 핍박하느냐? 내 몸이 이 꼴인데도, 아직도 성에 차지 않느냐?
23. 아, 누가 있어 내가 하는 말을 듣고 기억하여 주었으면!
24. 누가 있어 내가 하는 말을 비망록에 기록하여 주었으면! 누가 있어 내가 한 말이 영원히 남도록 바위에 글을 새겨 주었으면!”(새번역)
욥은 친구들에게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하지만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하나님인 양 욥을 박해하고 있는 것이다.
욥은 자신의 변론이 책에 기록되고 돌에 기록되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로 욥의 이 말들이 기록되어 오늘 우리에게 읽혀지고 있는 것이다.
25~27절 : “25. 그러나 나는 확신한다. 내 구원자가 살아 계신다. 나를 돌보시는 그가 땅 위에 우뚝 서실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26. 내 살갗이 다 썩은 다음에라도, 내 육체가 다 썩은 다음에라도, 나는 하나님을 뵈올 것이다.
27. 내가 그를 직접 뵙겠다. 이 눈으로 직접 뵐 때에, 하나님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내 간장이 다 녹는구나!”(새번역)
욥이 까닭 모를 고난을 당하면서 드디어 보이지 않는 세계를 바라보게 된다. 자신의 대속자가 살아계신다고 하는데 이 대속자는 히브리어로 ‘고엘’이다.
욥은 그를 돌보시는 대속자(고엘)가 땅 위(먼지, 티끌)에- 땅의 티끌로 만들어진 모든 인생들에-굳게 설 날을 고대한다. 그리하여 자신을 변호해주기를 고대한다.
그 때에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산 사람들, 이 세상의 원리 곧 인과율을 따라 살아간 사람들이 다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욥은 죄인의 대속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지금 희미한 그림자로 보여주고 있다.
26절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에 대한 해석이 여러 가지이다.
‘가죽이 벗김을 당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지금 욥이 죽는다고 하여도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하는데 이를 부활 신앙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즉 까닭 없는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 욥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임함으로 부활의 소망을 가지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한편 이 말씀은 우리 육체의 한계를 넘어서야 된다는 뜻을 함유하고 있다고도 본다. 즉 육체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 육체의 죽음과 부활의 내용만이 아니라 인과율을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욥은 자신의 믿음을 인정하여 주시는, 낯설지 않은 그 하나님 뵙기를 원하는 것이다. 욥은 자신이 죽기 전에 이런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될까 두렵고 초조한 것이다.
그런데 드디어 욥의 이런 소망이 욥의 결론에서 이루어진다.
그것은 ‘내가 귀로만 들었는데 이제 눈으로 본다’(42:5)고 고백함으로 육체 밖에서 즉 인간의 모든 이론과 논리를 넘어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28~29절 : “28. 나는 너희가 무슨 말을 할지 잘 알고 있다. 너희는 내게 고통을 줄 궁리만 하고 있다. 너희는 나를 칠 구실만 찾고 있다.
29. 그러나 이제 너희는 칼을 두려워해야 한다. 칼은 바로 죄 위에 내리는 하나님의 분노다. 너희는, 심판하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새번역)
욥의 친구들은 아직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자들이다. 즉 인간의 모든 이론과 사상을 넘어서지 못한 자들, 까닭 없이 주어지는 고난과 일한 것도 없이 주어지는 은혜를 모르는 자들이다.
이들이 심판을 받는 것이다. 욥은 그것을 알라고 말한다.
결국 욥기에서 심판장이 나타나셔서 욥의 손을 들어준다.(42:7)
(나의 묵상)
기도에 대한 어떤 이의 간증을 들었다.
자신을 위해 기도해 주시던 믿음의 할머니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자신의 사업이 말할 수 없이 곤두박질 쳤는데 이후 자신이 하루에 한 시간씩 기도하니 모든 것이 다시 회복되었다고.....꼭 기도하라고 기도를 강조한다.
분명히 ‘찬양, 회개, 말씀, 기도’의 성경적인 단어를 사용하는데 구하는 것은 오직 땅의 것만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에게도 거룩한(?) 목표가 있다. 바로 예수님을 믿는 자신이 세상의 힘을 가지고 보란 듯한 증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세상에 속한 이론과 사상에 사로잡힌 증거요, 만물 안에 갇힌 신앙이다.
이들은 기도를 자신의 정성으로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는 자들이며(지성감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부적처럼 사용하는 자들이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기는 하지만 영적으로 깨어 있지 못하니 열심히 기도하여 구하는 것이 세상 속에서의 성공과 풍요뿐인 것이다.
욥과 세 친구의 신앙은 다 만물 안에 갇힌 신앙이었다.
지금까지 욥 자신도 세 친구처럼 세상의 이론과 사상 즉 인과율에 따른 신앙을 가졌었지만, 해석되지 않는 극심한 고난을 당하는 가운데 ‘다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아가게 된 것이다.
오늘 욥은 드디어 자신의 대속자를 바란다.
그 대속자는 십자가의 길을 가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욥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 욥은 희미한 가운데 그분을 바라는 것이다.
오늘날 성도는 십자가를 통하여 육체 밖에서, 세상의 논리 밖에서 하나님을 보게 된다.
타고난 죄의 본성으로 말미암아 땅의 것만을 추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존재였지만, 고난을 통해 십자가를 붙잡게 되고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을 신앙하게 되는 것이다.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을 신앙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만물 위, 하늘에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며, 그분이 십자가로 열어 놓으신 하나님 나라, 아버지의 품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날마다 말씀이신 주님과 교제함으로 이 땅에서부터 영생을 누리는 것이다.
이 영생의 삶을 사는 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주님의 십자가에 기꺼이 연합되는 삶을 살아간다.
또한 종말을 현재로 살아가는 은혜를 누리며 주님 다시 오실 때 완전한 몸의 부활을 믿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만물 위의 하나님을 신앙하기 위해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육체 밖에서, 세상의 논리 밖에서 하나님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욥이 그렇게 구한 대속자,
나의 주님을 십자가를 통해 바라봅니다.
십자가에 연합된 삶으로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을 신앙하게 하옵소서.
제 남은 삶이 이 복음을 전파하는데 집중되기를 원합니다.
저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