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태국 등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에서 조류독감이 발견돼 수백만마리의 닭과 오리가 도살되고 있다. 사람에게도 감염돼 최근 베트남 등 동남아 일대에서 18명이 조류독감으로 생명을 잃었다.
고작 18명의 숫자로 왜 이렇게 난리법석인가 하고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다.
해마다 우리나라에선 24만여명이 각종 질병으로 생명을 잃고 있다.
게다가 겨울철 흔히 유행하는 독감으로도 매년 수천명씩 사망한다.
이에 비하면 조류독감 사망자 18명은 매우 적은 숫자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세계보건기구를 비롯한 전문가 그룹이 조류독감을 예의 주시하는 이유는 조류독감이 지닌
잠재적 치명성 때문이다. 18명이 적은 숫자이긴 하지만 이들 희생자는 대부분 건강한 보통 사람이었다.
해마다 수천명씩 독감에 걸려 숨진 사람은 대부분 노약자와 만성질환을 앓고 있던 사람들이란 점에서
차이가 있다.
보통 사람의 경우 독감에 걸려도 고열과 몸살로 며칠 고생하는 정도지 이것으로 생명까지 잃진 않는다.
그러나 조류독감은 생명을 위협한다. 지난해 창궐했던 사스보다 독성이 수십배 이상 강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독성이 강하다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전염력이다. 아직까지 조류독감이 사람에서 사람으로 옮는다는 증거는 없다. 조류독감의 전염력은 보통 독감보다 훨씬 떨어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사람에게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조류독감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서로 만나 유전자 돌연변이를 일으킬 경우 간단치 않은 사태가 예상된다. 예컨대 국내 조류독감 유행지역 주민 중 보통 독감과 조류독감 바이러스에 동시 감염되는 경우다.
이 경우 드물지만 조류독감의 독성을 그대로 지닌 채 숨쉬는 공기를 타고 수백m까지 퍼져갈 수 있는 보통 독감의 전염력까지 갖춘 말 그대로 수퍼 독감 바이러스가 태어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1918년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명의 사망자를 낳은 스페인 독감의 악몽이 재현될 수도 있다. 당시보다 비행기를 비롯한 교통수단이 훨씬 발달했고 도시 등 인구 밀집지역이 많음을 감안할 때 조류독감으로 수백만명이 숨질 수도 있다는 세계보건기구의 경고가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조류독감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정답은 생태계 등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있다.
양계장에 한번 가보자. 수만마리의 닭이 배설물이 덕지덕지 묻은 빽빽한 공간에서 움직일 틈조차 없이
사육된다. 이들은 그저 모이를 먹고 살이 포동포동 찌면 그만이다.
질병 예방을 위해 항생제도 사료에 넣게 된다. 그러나 항생제는 세균만 죽일 뿐 바이러스엔 속수무책이다. 예전처럼 띄엄띄엄 키울 땐 설령 돌연변이 바이러스가 발생해도 감염된 닭만 죽으면 그만이다.
닭이 죽으면 바이러스도 죽게 되므로 확산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대량 사육 환경에선 삽시간에 퍼진다.
광우병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자연의 섭리를 거슬러가며 초식동물인 소에게 육식 사료를
강요했기 때문이다. 에이즈 역시 아프리카 열대밀림을 개간하면서 원숭이의 체내에 있던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옮겨온 것으로 본다.
사스도 중국 광둥(廣東)성 일대 고양이 등 야생동물을 식용으로 조리하는 과정에서 사람에게 옮겨온
것으로 추정된다. 최하등 생물인 바이러스가 최고등 생물인 인간을 위협하는 아이러니는 인간에게
겸손을 강요한다.
아직도 야생동물의 체내엔 인류가 한번도 접해보지 못한 바이러스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은 언제든
인류를 공격할 수 있다. 제2, 제3의 괴질이 언제든 출몰할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로선 평소 체력관리를 통해 면역력을 높이고 청결한 위생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국가적으로 조기격리 등 방역에 힘써야 한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가능하면 생태계를 자연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조류독감의 본질은 수백만년 동안 지구의 지배자로 군림해온 인간의 오만에 대한 바이러스의 복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