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 정일형 박사 25주기 추도식 참석
"올 대선은 민주선거로 고인의 유훈에 보답해야.."
정일형 박사 25주기 추도식 및 제11회 '정일형·이태영 자유 민주상' 시상식이 21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구민회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재단법인 정일형·이태영 박사 기념사업회(이사장: 정대철)가 마련한 추도식장에는 고인과 정치
역정을 함께 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 내외를 비롯해 열린우리당 정세균 의장, 한명숙 전 총리, 김덕규 유인태 김영주 유승희 박영선 의원,
통합신당모임 김한길 노웅래 의원, 민주당 신중식 의원과 김상현 신낙균 전 의원, 민생정치모임 김태홍 의원 등 범여권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통합작업을 위해 정대철 고문과 교감을 가져온 것으로 알려진 열린우리당 정봉주, 문학진 의원이 각각 사회, 약력보고를 맡아 눈길을
끌기도 했다.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과 김옥두, 정균환 전 의원 등 동교동계 인사들과 이재정 통일부 장관, 강영훈 전 총리,
이철승 헌정회장, 천용택 전 국방장관, 김성수 성공회 대주교, 한승헌 변호사 등도 참석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
임채정 국회의장, 민주당 박상천 대표와 범여권 주자로 분류되는 우리당 정동영 전 의장, 김혁규 의원, 민생정치모임 천정배 의원, 김두관 전
행자장관 등은 추모화를 보내왔다.
고 정일형 박사는 독립운동에 가담 21차례 체포돼 7년간 옥고를 치렀으며, 해방 직후
과도정부에서 인사행정처장. 물자행정처장을 지냈다. 제2공화국에서는 외무부 장관을 맡아 국정을 이끌면서 기독교 전파와 교육 사업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8선 의원을 지낸 고인은 30여년의 정치인생 대부분을 군정종식과 민주화, 통일운동에 헌신했으며, 63년 5.16 군정
종식을 위한 '재야 12인 정치지도자회의'에 참여했고 65년엔 한·일 협정에 반대해 동료의원 8명과 함께 의원직을 사퇴하기도 했다. 77년
3월에는 고 함석헌 옹, 김대중(DJ) 등과 함께 명동성당 구국선언 사건에 연루돼 3년형을 언도받고 의원직과 공민권을 박탈당하는 등 고초를
겪었고, 복권2년 뒤인 82년 타계했다.
제 11회 정일형·이태영 자유민주상 수상자로는 민주통일 부문에서 김진경 중국
연변과학기술대 총장이, 사회복지부문에서는 우총평 '프란치스코의 집' 원장이 각각 선정됐다.
재단 측은 선정이유에서 “김 총장은
중국 연변과학기술대 설립 및 운영, 평양기술대학 설립 추진 등으로 재외 동포 사랑을 몸소 실천하며 민족의 화해와 협력 통일을 위해 기여한 공로가
인정됐다”고 밝혔다.
사회복지 부분의 수상자인 우총평 '프란치스코의 집' 원장은 본인이 장애자이면서도 1982년 장애우 복지운동에
투신한 이래 '무소유 복지운동'을 몸소 실천해 살아 있는 진정한 실천적 봉사자임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정일형·이태영
자유민주상’은 고 정일형·이태영 부부가 자녀들에게 "너희들의 과제는 민주주의 정착과 조국통일이다."라고 했던 유언의 듯을 기리기 위해 지난
1997년 제정됐다.
▲왼쪽부터 이희호, 정일형, 이태영, 김대중 전대통령[1968년]
고 정 박사의 소개로 이희호 여사를 만난 김 전 대통령은 추모사에서 "정 박사님은 독립투사이자 불굴의 민주투사로 일생을 가장 위대한 삶으로 장식했으며, 저 개인적으로는 막중한 사랑과 많은 은혜를
입었다"면서 "항상 정치적 제자로서 지도해 주셨고 71년 대통령 후보 당시 사무장을 맡아줬으며 73년 저의 도쿄피랍 당시 국회에서 규탄하기도
하셨다"며 고인과의 각별한 인연을 회고했다.
김 전 대통령은 또 "금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용공조작, 지역주의, 모략선전 등의
폐단을 없애고, 후보자의 정책과 인물됨을 바탕으로 진정한 민주선거를 치름으로써 정일형 박사의 유훈에 보답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김 전 대통령 추모사 전문
정일형
박사님이 돌아가신 지 어언 25년이 되었습니다. 긴 세월이 지났지만 우리는 그분에 대한 존경과 그리움의 정을 이기지 못하여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 세상을 뜬 후 생각조차 하기 싫은 사람, 무관심 속에 잊혀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월이 가도 간절한
추모의 정을 가지고 다시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정일형 박사님이 세월이 갈수록 더욱 간절한 추모의 정으로 되새기게 되는 분입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정일형 박사님은 그 일생을 가장 위대한 삶으로 장식했습니다. 박사님은 6년이나 복역한
독립투사였습니다. 8선 국회의원, 외무장관을 지낸 대표적인 의회 정치인이었습니다. 의원직을 잃으면서까지 싸우신 불굴의 민주 투사였습니다. 야당의
거목으로서 민주당과 국민을 지도하셨습니다. 독실한 기독교신자라는 것은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행복한 가족생활 속에 이태영 선생과 모범적인
부부생활을 하셨고, 자제분들을 모두 훌륭하게 기르셨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정일형 박사님은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하고, 행복한 인생을 사신
분이라고 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저는 개인적으로도 정일형 박사님의 막중한 사랑과 많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정일형 박사님은 항상 저를 정치적 제자로서 지도해 주셨습니다. 제가 1971년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했을 때는 당에서 후보로 지명받도록 하기
위해서 시민회관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서주시기도 하고, 후보로 지명되자 사무장을 맡아주시기도 하셨습니다. 그 때문에 정부기관이 정 박사님의 자택에
불을 질러 전소를 당한 일도 있습니다. 제가 1973년 일본에서 납치되었을 때는 국회에서 ‘정부가 한 뼘 손으로 태양을 가리듯이 진실을 호도하고
있다’고 규탄하기도 하셨습니다.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 때는 현역 정치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참가하여 저와 같이 싸우시기도 했습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금년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번 선거에서 종내 흔히 있었던 용공조작, 지역주의,
모략선전 등의 폐단을 일소하고, 후보자의 정책과 경력과 인물됨을 바탕으로 진정한 민주선거를 치름으로써 정일형 박사님의 유훈에 보답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최근 6자회담에서 북핵문제가 해결의 길을 가고 있고, 남북 대화가 다시 이루어지고 있는 마당에 우리는 정
박사님께서 그토록 염원하시던 통일에의 자세를 가다듬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베트남식의 무력통일을 배제하고, 독일식의 흡수통일도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는 평화공존, 평화교류, 평화통일의 원칙 밑에 단계적으로 통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리하여 통일 후에도 남북간의 갈등이나 혼란 없이 민족이
하나로 단결할 수 있는 공동승리의 통일을 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정일형 박사님 영전에 이러한 점을 다짐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정일형 박사님과 이태영 선생님에게 하나님께서 천국영생의 은혜를 충만하게 내리시기를 바라면서, 유가족과 여기에 참석한
모든 분들이 큰 위로를 받고 행복하시기를 빕니다.
첫댓글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정일형박사와 이태영 여사가 김대중,이희호 부부를 중매했지요..그래서인지 대통령님과 정대철 전 의원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이상의 정을 나누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평생을 독립운동과 민주화투쟁으로 일관하신 정일형박사님... 21번의 체포와 7년간의 감옥생활을 감내하셨다는군요.새삼 고인의 큰뜻을 기려 봅니다.